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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 님의 서재입니다.

병, 병, 병, 그리고 병.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김지.
작품등록일 :
2019.03.07 21:45
최근연재일 :
2019.03.18 23:25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223
추천수 :
2
글자수 :
76,339

작성
19.03.18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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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제 1 병.

DUMMY

“여기까지가 제 이야기입니다.”


샤이닝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실. 한 젊은 사내가 의자에 비스듬히 몸을 누워, 병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말없이 이야기를 듣던 중년의 박지운 원장이 이내 입을 연다.


“많은 병 들.. 참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

“정말이지 듣는 내내 흥분을 감추기 어려웠어요.”

“선생님, 제가 미쳐가는 건가요?”

“아니요. 아닙니다. 누구나 그런 상상에 빠질 수 있지요.”

“그저 상상인 건가요?”

“좀 많은 상상이죠. 조금은 조절할 필요가 있어요.”

“선생님은 이 세상이 진짜라고 생각하시나요?”

“우선은 약을 조금 먹어보죠. 그리고 조금씩 상상이 줄어가는 걸 지켜볼까요.”

“네.”

“중요한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거예요. 본인의 상태를 너무 걱정하다 다른 불안에 빠지지 말자는 거죠.”

“예.”

“그럼 몇 가지 약을 처방해드릴게요. 음. 일주일 뒤에 다시 뵐까요?”

“저기 선생님..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개운치 못한 표정으로 사내가 원장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애써 관리하던 원장의 표정이 차가워진다. 매일 같이 많은 환자들을 만나지만 이번 환자처럼 수많은 인격과 배경, 이야기를 가진 사람은 드물었다.


‘심각하네. 간만에 중증이 왔구나. 젊은 나이에 참..’ 라며 탄식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음 환자를 받는다. 정신과 전문의, 전문직의 성공한 삶. 사소한 일들에 감정을 쏟기엔 그가 가진 시간의 기회비용이 크다.



**



병 집착증의 환자가 다녀간 지 사흘이 지났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 수많은 상담 환자들, 그리고 쌓여가는 돈에 박지운 원장의 중증 환자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졌다.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때,


“수 간호사님. 저 사람..”

“응? 왜?”

“저 사람.. 얼마 전에 왔던 환자 아닌가요?”

“어디? 저 사람?”


샤이닝 정신의학과 간호사들의 눈이 TV로 향한다. 병원 응접실의 TV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 남자가 반포대교 위에서 경찰과 대치중인 화면이 계속해서 보여 지고 있다.

화장실을 가려고 나온 원장도 이내 말없이 TV를 시청한다. 장면이 바뀌고, 현장 기자가 나타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그 순간 그의 뒤편에 잡힌 남자의 몸에 불꽃이 일어난다.


“어머, 어머..”

“어떡해요!!”


두 간호사는 놀라며 탄식을 내질렀고, 원장은 그저 말없이 TV를 응시하고 있다. 미간에 주름이 깊어져가고 한쪽 광대 주변이 찡그려진다.


자신의 환자를 방치한 것 같은 죄책감, 죽은 사람과 마지막 대화를 나눈 꺼림직 함이 교차한다. 간호사들의 시선이 느껴지자 원장은 점심 약속이 있다며 병원을 나온다.


치료하던 환자가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것은 정신과 전문의들이 간혹 겪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환자는 제대로 치료를 하기 전이었기에 무거운 어지러움을 느꼈다.


이런 경우에는 같은 정신과 전문의인 친구를 찾아가 대화를 하는 것이 제 1 책이다. 원장은 친구의 병원으로 이동하며 약속을 잡는다.



**



“그래 고맙다. 재구야.”

“뭘 고마워. 야. 너무 감정 넣지 말고.”


“알겠다.”

“우리 레지던트 아니잖아. 이런 걸로 흔들릴 나이 아니다.”


“그렇지. 명색이 전문의인데.”

“밤에 느낌 쌔하면 전화해 임마.”


“그려. 고마워. 점심시간 끝나가네. 간다.”

“에휴, 그 환자는 하필 너네 병원으로 오냐.”



박지운이 대학 동기 조재구의 병원에서 나오는데 골목 어귀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돌리니 어떤 남자가 통화를 하며 자신을 쳐다보다 황급히 뒤로 돈다.


통화를 한다기보다 하는 척을, 자신을 쳐다본다기보다 지켜본다는 느낌이 강했다. 문제는 그의 얼굴이 낯익다는 것. 왠지 모르게 아까 자신의 병원에서 나올 때 건너편에 있던 사람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뭐야. 정신적 충격이 좀 컸나.”


환자가 자신에게 꺼내놓은 첫 번째 조현병 이야기. 그의 이야기를 박지운의 무의식은 애써 부정하고, 의식은 애써 외면 한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다 환자와 같은 망상에 빠진다는 것은 전문의로서 수치다. 이는 필시 육체적 피로가 누적된 것이렸다. 조만간 하루 휴원 하고 좀 쉬면 나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지만 앞에서 마주 오는 사람들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만 같다. 그들끼리 수근 대고 폭력적인 눈빛을 쏘아대는 것 같다.


다시 뒤를 돌아보는데 유독 인파 속에 어울리지 않는 여자가 자신 쪽을 바라본다. 설마하며 건너편을 보니 아까의 그 남자가 여전히 자신을 따라 걸어오고 있다.


박지운은 환자의 이야기가 내게 전이되어 망상이 나타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자신의 병원에 도착했다.


“점심들은 잘 먹었어요?”

“네 원장님.”


간호사들의 태도가 소름끼칠 정도로 차분하다. 점심 직전의 호들갑이나 혼란을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는 이질감. 마치 다른 사람들 같다.


점점 기분이 나빠지고, 이 감정을 통제해야한다 되뇌이며 원장실로 들어가려는데 옆에 있는 큰 거울에 비친 간호사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차갑게 웃고 있다.


신경질적으로 방문을 닫고 의자에 몸을 파묻으니 조금 진정이 된다. 자신의 책상, 데코용의 전공 서적들, 모니터에 현출 된 진료기록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 마음이 이완되자 정신이 나른해진다.


*


이런, 잠시 졸았다. 몇 시야 대체? 이런, 두 시간이나 잠들었다고?

계속해서 환자가 없었나? 그래, 차라리 잘된 거지. 정신 차려라 박지운. 하나만 기억해. 외계인만 안 나타나면 돼.

외계인 병 이야기가 안 나타나면, 다른 이야기들은 다 내 머리가 만들어내는 허상이란 소리니까. 그리고 환자의 병 이야기 중에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들도 있었잖아.


좋게 좋게 생각하자고. 정신과 전문의라면 언젠가는 겪어야 했을 일이야. 그리고 뭐, 첫사랑 환영도 보이면 좋지.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환자들을 기다렸다. 진료를 마치고 아늑한 나의 집으로 간다. 운전하며 가는 길에 차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 애매하다. 나를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여보, 나왔어!”

“왔어요?”

“응, 애들은.”

“여보. 잠깐 얘기 좀 해요.”


아내 손에 이끌려 안방에 들어왔다. 침대 위에 그림 두 장이 나란히 놓여있다.


“지현이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그린 그림이라는데요.”


나는 짜증이 솟구쳤다. UFO 그림 하나, 길쭉한 외계인 세명과 누워있는 발가벗은 사람 그림 하나.


“애가 이런 그림을 그려왔어요. 유튜브에서 본건지 참.”

“애랑 얘기는 해봤어?”

“기억이 안 난대요. 잠깐 딴 생각했는데 미술 시간 끝나있었다고..”

“당신은 애한테 관심 좀 가지고 그래! 초등학생이 이게 뭐야? 그림이, 어?”


애꿎은 아내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사실 짜증이라기보다는 조금씩 두려움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는 나의 심리.


천사 같은 아내는 멋쩍은 웃음으로 날 맞춰준다. 이내 미안해 아내에게 사과하고 평소 같은 저녁을 맞이했다. 딸아이와 대화를 통해 그림 이야기를 해보는 게 당연한 일인데, 사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 했다.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왠지 강렬한 노란 불빛이 눈 주위를 비추는 것 같았다. 눈을 뜰 수 없어 꼭 감은채로 간신히 잠들기를 기도했다.

「쉬이이이익-」


**



“원장님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원장님.”

“네 좋은 아침이에요.”

“원장님, 아까 종로 경찰서 수사과에서 오늘 방문 한다고 연락 왔어요.”


사람이 스스로 죽었으니 형식적인 조사를 할 것이고, 우리 병원에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저 손님들에게 안 좋은 인상이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얼마 뒤, 인상 좋은 수사관이 방문했다.


“의사선생님. 그날 고인께서 특별한 말씀은 없으셨나요?”

“음.. 조현병 전조 증상이 보여 약을 처방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얘기를 했나요?”

“글쎄요, 워낙 많은 이야기를 하셔서요.”

“그러니까 그 얘기가 뭐죠.”

“필요하시면 서면 제출로 하겠습니다. 많은 얘기라고 말씀 드렸는데요.”


생각지 못한 불협화음에 어리둥절했다. 명백한 자살이기에 살인교사, 방조 가능성에 대한 탐문 정도나 할 사항인데, 집요하게 그날의 대화를 묻는 수사관.



“이 세상은 가짜다. 뭐 그런 이야기 나온 게 있습니까?”

“아니요.”

“맡긴 물건이나 편지 같은 것도 없나요?”

“네, 전혀 없습니다.”

“아 예. 혹시 기억나는 게 생기면 연락 부탁드리죠.”

“알겠습니다.”


수사관이 가고 몹시 불쾌했다. 누군가의 교사로 피해자가 자살한 가능성을 조사하기 위해, 우리 병원에 정보를 구하는 것이라면 환영이다. 그런데 수사관의 태도는 마치 나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


오후가 되자 몇몇 기자들이 찾아왔고, 간호사들에게 적당히 응대해 돌려보내라 했다. 오늘은 병원을 일찍 닫아야겠구나. 헌데 대기 환자가 있다는 알림이 뜬다.


심승범 환자. 처음 보는 이름. 환자 진료 승인을 누르니, 얼마 안 있어 거구의 사내가 들어온다.


“반갑습니다.”

“예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마흔 정도의 이 사내. 몸에서, 눈빛에서, 걸음걸이에서 강인함이 묻어나온다. 대체 어디가 문젠가 모니터를 힐끗, 진료설문카드를 보는데 ‘병에 대한 망상’ 이라 써져 있다.


“얼마 전에 한 남자가 왔었죠?”

“형사님이신가요?”

“형사가 왔다 갔나요?”

“형사과는 아니고 수사과에서 나오셨던데요.”

“뭘 물어보고 갔죠?”


오늘따라 내게 궁금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일단 그쪽 신분부터 말씀하시죠. 이게 뭐하시는 겁니까. 왜 환자로 접수하십니까?”

“박지운 씨.”

“네?”

“최근에 뭔가 이상해지지 않았나요.”

“이상하긴 뭐가 이상··”

“누군가 따라다니고 감시하고, 주변 사람들이 이상해지고.”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까. 경찰 아니신가요?”


이쯤 되면 환자의 역할놀이에 자연스럽게 맞춰주며 환자를 알아보아야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저 이 사람이 국가공무원인, 정상의 정신 상태인 경찰관임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었다.


“두려워하고 있네요.”

“제가요?”

“감시가 시작되었네.”

“경찰이 아니시면, 환자분 이야기를 해보세요. 제게 질문하지 마시구요. 제가 이야기를 들어드릴··”

“이미 늦었나. 다음에 다시 올까요?”

“그러세요. 그럼.”



거구의 사내가 깔끔하게 일어서 돌아나간다. 이런 행동을 보일 줄 몰랐다. 그가 문에 다가갈 때까지 참고 또 참아보았다. 하지만 결국..


“환자분, 그런데 뭐가 이미 늦었다는 거죠?”


궁금증과 불안을 참지 못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이 주소로 오시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어떤 명함을 액자에 꼽고 그대로 내 방을 나갔다.

무언가를 아는 사람을 밀어낸 것인가 하는 의문, 전문가로서 도와줘야할 환자에게 농락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 머릿속이 복잡했다.


「띠리리리-」


깜짝이야. 데스크에서 오는 내선 전화.


[원장님, 종로서 수사과에서 오늘 못 들렸다고 내일 오전에 꼭 오겠다고 메모 남겨 달라 했어요.]


“무슨 소리야? 아까 왔었잖아? 수사관”

[응? 그러네요? 그럼 전화 걸어서 서에 확인 할게요.]


다행이다. 수 간호사도 오전에 경찰이 왔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수사관의 얼굴이. 아무리 생각을 해도 기억이 안 난다.


그래, 이번엔 알츠하이머 병 이야기야? 둘 중 하나는 확실하다. 내가 미쳐가거나, 약해졌다는 거. 정신을 좀 확 차려야..


「띠리리리-」


“어, 뭐래.”

[종로서 에서는 아무도 방문 안했다고 하는데요?]

“수사과에서?”

[담당 경찰이 자기 아니면 병원 주소 아는 사람 없다는 데요?]

“...”

[다시 한 번 전화 걸어서 확인해요 원장님?]

“민영 씨. 오전에 그 남자 얼굴 기억나?”

[그 남자요?]

“오전에 온 경찰.”

[네.. 니요? 오늘 기자들도 오고해서 기억이 안나요.]

“그런 거 말고, 얼굴이 아~~~~예 기억이 안나 지 않아?”

[음,, 그런 거 같아요. 왜요?]


나는 액자로 달려가 명함을 집어 들었다. 빌어먹을 자식. 명함에는 아무것도 써져있지 않았다.


「쉬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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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 오와 육의 병. 19.03.12 10 0 12쪽
5 제 오 병. 䔊(풀이름 병) 19.03.11 13 1 14쪽
4 제 삼과 사의 병. 19.03.09 17 0 13쪽
3 제 삼 병. 표절병 19.03.09 15 0 9쪽
2 제 이 병. 신병 19.03.08 25 1 14쪽
1 제 일 병 19.03.07 5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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