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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 님의 서재입니다.

병, 병, 병, 그리고 병.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김지.
작품등록일 :
2019.03.07 21:45
최근연재일 :
2019.03.18 23:25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228
추천수 :
2
글자수 :
76,339

작성
19.03.08 21:10
조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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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4쪽

제 이 병. 신병

DUMMY

「여자가 있구먼!」

“서방한테 여자가 생겼어.”


“예??”

“부부의 연이 아닌데 억지로 사니 어쩔 수 있나.”


“말도 안 돼...”

“이 부적, 이부자리 밑에 깔아. 그래봤자 잠깐이야.”


“대체 누군가요? 무당님, 그이는 그럴 위인이 아닌걸요..”




***




꽃다운 스무 살, 내게 신병이 찾아왔다.



「가야혀.」


‘응? 누구야?’



중저음의 남성 목소리가 들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나 혼자다.



「거부하지 말어.」


‘누가 장난치는 거야..’


하지만 자연과학대학 건물 뒤, 이 작은 공원엔 아무도 없었다.



「니 할미도 걸은 길이야.」


맙소사,


나의 할머님은 무당이셨다.

아주 저명한 무속인이셨고,

모든 무당들이 고개를 저을 만큼 강한 신을 모셨었다.


나는 이 목소리를 계속 들으며, 대학 근처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쓸데없는 일!」


“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증상이 심하면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의심해볼 수 있지만, 보통은 스트레스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찾아오시죠.”


“의사 선생님. 제 할머니께서도 무당이셨어요.”


“오히려 그런 기억에 집착하시다 증상이 심해지실 수 있으세요. 정신질환이시면 아마 병원까지도 못 오셨을 거에요.”



혹시나 해서 찾아온 병원, 역시나 예상했던 반응. 두 번째 도움을 받기 위해, 다시 관악구로 이동했다.





「나는 여기가 싫어!」


“신부님. 자꾸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요. 무섭고 무거워요. 남자 목소리인데 늘 꾸짖는 말투에요.”


“그런 분들이 종종 찾아오시죠. 기도합시다.”


「별로 안 친한 사이래두!」


“Sancte Michæl Archangele, defende nos in prælio,

contra nequitiam et insidias diaboli esto præsidium

Imperet illi Deus supplices deprecamur:


「이런다고 될 일 아녀.」


tuque, Princeps militiæ cælestis

Satanam aliosque spiritus malignos,

qui ad perditionem animarum pervagantur in mundo,

divina virtute, in infernum detrude. Amen.”


「거참, 서로 불편하게.」



신부님께서 구마경을 외시니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계속해서 성당을 몇 번 더 방문하고서야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 달이 지나고나니 이 불쾌했던 경험도 차츰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하지만..







“은희야, 너까지 아프면 어떡하니. 엄마 진짜 속상해.”


“오빠는? 의사가 뭐라고 해 엄마?


“병원에서는 이유를 모르겠대. 너부터 좀 일어나야지. 응?”



어느 날부턴가 오빠와 나는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렸다. 우리 남매는 처음에는 몸살이겠거니 했으나, 드러누운 날 이후로 좀처럼 일어날 수가 없었다.



「받아들여. 안 그러면 니 오빠 죽어.」


그놈. 목소리 놈.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한테.’


「니 팔자.」

‘나 물리학과야. 내가 귀신이니 신이니, 그런 거 믿을 거 같아?’


「니 할미도 그랬지.」




부모님의 병문안이 뜸해졌다. 불안한 마음에 간호사들에게 수소문하니 오빠가 많이 아프다고 한다.


「안 받고 싶다고 안 받는 거 아녀.」

‘지긋지긋한 목소리. 대체 언제까지 들릴 거야.’


「미련퉁이.」

‘신 받으면, 오빠 안 죽어?’


「그렇대두. 시간이 없어.」


계약서를 쓰는 것도 아니겠다, 까짓 거 받는다고 말한다고 달라질 거 있나. 자기 목소리와 대화하는 나, 미쳤을 수도 있고. 미쳐버린 사람이 자기 스스로와 약속하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받아. 받으면 될 거 아니야.’


「진즉에 좀,」


거짓말처럼 친오빠가 병상에서 일어났다. 나 역시 건강을 되찾고 퇴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신내림을 받은 나는, 무당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되었다.




***




‘누구야? 누구냐고 묻잖아.’

「몰러.」


‘신이 모르면 어떡하나 참.’

「갈수록 가물가물 허구먼, 기다려보아.」



“무당님. 대체 그이가 누구와 바람이 났나요?? 그이는 애들하고 가정밖에 모르는··”



「옳거니! 제자구먼.」

“제자.”


“예? 제자요?”

“그래. 서방이 선생이지?”


“아뇨. 저희 그이는 소설가인걸요. 제자면 대체 누구지..”

“소설가라고 제자 없나! 의심하지마! 신께서 보고 계셔.”


“아이고, 예 죄송합니다, 신녀님. 죄송합니다.”



‘소설가라잖아. 제자는 무슨.’

「제자 맞다.」


나의 신은 해가 갈수록 영 시원치가 않다. 처음 신내림을 받았을 때, 이 세상에서 내가 모르는 것은 없었다. 내가 모시는 신은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고 모든 모습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허나 신도 늙는 건가, 갈수록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가끔은 틀릴 때가 생긴다.



“신녀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또 찾아뵙겠습니다.”

“인연은 잡는다고 잡히는 거 아니야. 잘 생각해.”


“예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43)


연신 감사하다며 나가는 중년의 여성.

그 머리위에 떠있는 숫자 (43)


아직도 살 날이 43년이나 남았군.



신내림을 받고 난 뒤로 사람들의 머리 위에 숫자가 떠있는다. 처음에는 무슨 숫자인지 몰랐다.


시간이 흐르고, 그 숫자가 그 사람의 남은 수명인 것을 알게 되었다.


신과는 무관한 일이다. 아니, 나의 신도 이 숫자는 못 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신내림을 받은 뒤로, 나는 사람들의 남은 수명이 보인다.



「어째 저 계집은 오래 사나?」

‘천기누설이야.’


「내 말이 천기누설이지.」

‘신이 그것도 안 보이우?’


「누가 신인지 원.」



신과 티격태격하며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타인의 삶을 엿보는 삶. 원망스럽기도, 신기하기도 했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무덤덤한 삶. 그렇게 평범한 하루를 마무리하려 신방을 정리하는 데,



「또 왔구먼.」

‘누가?’


「족제비 닮은 놈!」

‘그럴 만도 하지.’




제 일 야당 원내대표 이찬영 국회의원. 대통령을 제외한다면 모든 것을 이룬 68세의 7선 의원 이찬영. 삶에 대한 집착만이 남은 노인.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대통령이 될 거라 생각하나.



“여사님 계십니까.”



족제비를 닮은 중년과 훤칠한 청년들이 신방으로 들어왔다.



“또 오셨군요.”

“예, 삼고초려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여사님.”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을 여쭈셔야지요.”

“저희 어르신께서 어렵게 오셨습니다.”



어기적거리며 뒤늦게 들어오는 노인. 입을 씰룩이며 비서관들을 흘겨본다.


「저놈은 대통령 감 아녀.」

‘당연하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나를 아시는 지?”

“요즘 TV에 자주 나오시던데요.”


“허허허, 무당께서도 TV를 보시는 세상이구려.”

“대통령은 하늘이 정해주시는 자리라, 저 같은 일개 무녀가 알 일이 아닙니다.”


“누가 될지 알고 있다고 말하는 점쟁이, 관상쟁이, 풍수쟁이가 세상에 넘쳐나는데.”

“그럼 그 쪽으로 가시지 않고 왜..”


“나 하나만 물어봅시다.”

“예.”


“내가 살 날이 얼마나 남은 거 같소.”



「니 놈, 오래도 산다.」



“그것 역시 천기누설이라 제 눈에 안보입니다.”

“그럼 대체 뭐를 보시는가?”



사람이 나이가 들면 인내심이 없어진다 하던가. 노인은 자신의 자리에 걸맞지 않는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한다.


입이 근질거리네. 니 놈 머리 위에는 숫자 (1)이 떠 있는 건 아셔?


그나저나 우리 신님. 1년 남짓 남은 노인이 오래 산다니. 이제 자기 영매보다도 앞을 못 보게 되어버렸나.



“글쎄요. 의원님께서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시든 승승장구 하실 게요.”


“거짓말은 하지 마시게.”

“정말입니다.”


“다짜고짜 찾아왔다지만 너무 섭섭하게 구는구만.”



‘뭐든 좀 찾아봐. 좀 보내자고, 저 놈의 늙은이.’

「집이 서문이여.」



“의원님 댁이 서문입니까. 문이 서방을 향해 있으면 나쁜 기운이 집안으로 들어와 그 집주인이··”


“응, 남문이라네.”




「이상허네.」

‘으휴. 증말 갈수록 왜 그래?’



“욕심 많은 노년과 앞 못 보는 점쟁이라. 같이 있자니 참 서글프구만. 그만 가봅세.”

“죄송합니다, 의원님. 더 용한 점쟁이들 수소문 해보겠습니다.”



어기적거리는 노인을 따라 양복쟁이들이 나간다. 삼고초려라더니 필요 없으면 뒤도 안 돌아본다.


너는 40년, 대머리는 25년, 안경잽이는 29년, 꺽다리는 43년, 저기 수행기사도 37년. 다들 제각각의 숫자가 달려있구나.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뭐야?

「왜 그루? 왜 그리 놀라?」


사내들의 머리 위 숫자가 변했다. 아니? 모두의 숫자가 한참을 요동치다 수많은 0으로 변했다. 이찬영 원내대표만이 여전히 (1).


가는 길에 단체 교통사고라도? 그럴 리가. 그랬으면 애초에 나를 보러 올 때 0이 달렸어야지. 이런 일은 대저 처음인데. 대체 무슨 일이지?


「뭐시여! 다 느껴지니까 말 혀!」

‘신님, 진짜 안 보여?’


「언제 내 눈에 보인 적 있나. 뭐여?」

‘아니, 진짜 아무것도 안 보여? 느껴지는 거 없어?’


「없대두! 안 그래도 요즘 가물가물 하잖여!」



의원과 비서진들이 출발한다. 숫자는 여전히 (000000000000)



대체 원내대표는 왜 여전히 (1) 인 게지?




***



“신녀님, 저희 아들을 유학을 보내려 하는데 괜찮겠지요?”



이 여자의 머리 위에도 숫자 (000000000000000000000000)



「가봤자 약쟁이 아니면 감옥이여.」



“왜 보내려 해?”

“애가 공부도 안하고 학교 적응도 못하네요. 미국이 좋을까요, 영국이 좋을까요?”


“아들이 물의 기운이 강한데 나무를 안 붙여주고 금만 붙여줬네?”

“어머, 지 아빠가 오냐오냐 한다고 중학생 때부터 용돈 백만 원 씩 주곤 했거든요. 이게 금이랑 연관이 있나요?”



「애비가 칼 찬 사람이네.」

‘칼 찬 게 뭐야 대체. 조선시대야? 그렇게 말함 어떡해.’


「보인다 보여! 장의사여!」

‘왠지 못 미더운걸.’



“자기 난 곳을 떠나면 애비 직업 따라 좌우돼.”

“네? 애 아빠는 의사에요.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에잉~ 아까워. 비슷하게 맞췄는데.」



“유학 보내지 말아. 가봤자 좋을 거 없어.”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0으로 점철된 숫자가 떠있다. 그러다 아주 가끔 제 남은 수명을 달고 오는 사람이 온다. 신은 갈수록 틀려대기만 하고.. 뭐가 어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어느 날, 나의 신께서는 풀 죽은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은희.」

‘응’


「나 안 보인다.」

‘뭐가.’


「뭐도.」

‘뭐도?’


「아무것도 안 보인단 말이여.」

‘무슨 소리야 대체.’



스무 살에 나를 찾아왔던 목소리에 겁이 나, 신부님을 찾아갔던 그 날처럼 한동안 신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척이나 힘이 없는 나의 신.



「은희.」

‘뭐야? 어디 갔었어?’


「어째 그동안 나쁘지 않았던가?」

‘나빴지. 사람들한테 거짓말만 했어. 대체 어디 갔었냐고.’


「그거 말구. 내가 찾아오고 나서 말이여.」

‘왜 그루 갑자기?’


「내가 네 몸에 들어앉아서 나쁘지 않았었다면 좋겠구먼.」

‘당신.. 어디로 떠나?’


「몰러, 근디 아무것도 안 보여.」

‘아직도 그래?’


「그려.」

‘안 보여도 돼. 또 사라지지나 마..’



신과 내가 아옹다옹 하고 있는 동안 세상에 경천지동할 일이 생겼다. 이 거대한 소란은 짧은 파도와 같이 모든 것을 바꾸고 되돌아갔다.


얼마지 않아 또 한 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연일 뉴스에서는 인공지능 발전성과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속도와 방향으로 특이점을 향해 가는 불쾌한 피조물. 나의 작은 점집과 거대한 세상은, 같지만 다른 이유로 변화해가는 환경에 당황하고 있었다.



「대충 알겠구먼.」

‘다시 보여?’


「느껴져.」

‘무엇이?’



세상은 빠른 속도로 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우리의 신방을 찾아왔다. 다시 나의 신이 절반 정도만 맞추며 우리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2042 –UN안보리 이사국, 모두 초고도 인공지능 개발 완료.


2043 -각국 인공지능 상호 교류에 관한 협정 체결.

-인류의 통제에도 불구, 인공지능 간 상호결합 시도.


2044 -한 하나의 인공 지적 초월체망 발생.


2045 -초월체의 모든 세계 정보의 데이터화 완료.

-초월체의 활동 시작.


2046 -기아, 빈곤의 완전한 해결, 질병의 완전한 정복.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류 통제를 받아들인 인공지능


2047 -생체 영구기관 개발.

-개인의 기억, 컴퓨터 서버망에 업로드 시작.


2050 –인류, 어학/백과사전에서 죽음과 수명의 개념 삭제.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우리의 신방에 찾아오지 않는다. 그들이 찾아오지 않은지 꽤 되었다. 나와 나의 신은 한때 사람들의 미래를 점쳐준 이 낡은 신방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언제부터 알게 되었어?’

「안 보이고서, 조금 있다가.」


‘그래서 이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는데?’

「그건 또 안 보이는구먼..」






「근디말여, 아주 재미난 것이 다가오는 게 느껴지는구먼.」






제 이 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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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9.03.18 10 0 7쪽
13 제 1 병. 19.03.18 7 0 13쪽
12 제 십일과 십이의 병. 19.03.17 11 0 12쪽
11 제 십과 십일의 병. 19.03.17 9 0 12쪽
10 제 십 병. 용병 19.03.16 14 0 12쪽
9 제 구 병. 고산병 19.03.15 12 0 17쪽
8 제 팔 병. 餠 19.03.14 13 0 12쪽
7 제 칠 병. 거인병 19.03.13 21 0 12쪽
6 제 오와 육의 병. 19.03.12 10 0 12쪽
5 제 오 병. 䔊(풀이름 병) 19.03.11 13 1 14쪽
4 제 삼과 사의 병. 19.03.09 18 0 13쪽
3 제 삼 병. 표절병 19.03.09 15 0 9쪽
» 제 이 병. 신병 19.03.08 26 1 14쪽
1 제 일 병 19.03.07 5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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