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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 님의 서재입니다.

병, 병, 병, 그리고 병.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김지.
작품등록일 :
2019.03.07 21:45
최근연재일 :
2019.03.18 23:2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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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39

작성
19.03.0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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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제 삼과 사의 병.

DUMMY

“자 그럼, 두 조센징, 아니지 미안하므니다. 두 분께서 말씀들 나누십쇼.”


저 비열한 입. 찢어버리고 싶다.



“이상이라 하오.”

“파쿠리입니다.”

“어쩌다 오셨는지,”

“나카무라상과 친분이 있어서,”

“그거 말고.”


그거 말고?


“돌아가는 법은 아오?”

“어딜 돌아간단 말이요.”

“왔으면 돌아가야지.”

“집에 가긴 이른 시간 아니오?”


박제된 천재가 한숨을 쉰다.


“파쿠리 상은 글을 쓴다 하였소?”

“그렇소만.”

“내 시를 좀 봐주겠소?”

“좋소.”



『林檎一個ガ墜チタ。地球ハ壞レル程迄痛ンダ。最後

最早如何ナル精神モ發芽シナイ

사과한알이떨어졌다. 지구는부서질정도로아팠다. 최후.

이미여하한정신도발아하지아니한다.』

- 이상, <최후>



“뭐요?”

“혹시나 말이 통할 줄 알았거늘.”

“이 무슨 말장난이야?”

“내 지병이 있어 먼저 일어서오. 헌데.”

“헌데?”


“돌아가고 싶으면 거울과 말해보시오.”



*



미츠코를 두 번 안고 나서야 머리가 조금은 맑아졌다. 동이 터 오른다. 박제된 천재는 무슨. 그냥 정신 나간 건축기사..


..설마?

말도 안 되지.


이상은 1937년에 사망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은 1945년. 이상이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다.


하지만..

이미 여하한 정신..

일본에 떨어진 폭탄 한 발에, 조선에 발아했던 친일정신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건 맞다.


사과 한 알이 떨어졌다. 지구는 부서질 정도로 아팠다.

지구로 떨어진 사과는 뉴턴에게 세상의 페러다임을 전환시킬 힘을 주었다. 원자폭탄은 아시아에 만연한 제국주의를 종식시켰다. 뉴턴의 사과와 같은 원자폭탄, 그것이 투하된 지구의 지점은 참으로 부서졌었다.


이상이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었다고? 아니면 나처럼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



다음날을 고심하며 보낸 후, 그 다음날에야 이상을 만나보고자 했다. 내 명성 덕에 그가 일한다는 공관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이상 씨, 나요.”

“누구시오?”

“아아. 이상은 당신 필명이지. 김해경 씨 나요. 이제 겨우 이틀뿐이 안 지났는데.”

“..저를 아시오?”


이상이 나를 모르는 척 하는 건 필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연기라기에는 그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사과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옘병할 친일파 자식.”

“조용하게.. 자네 목소리가 너무 크네.”



저잣거리에 나서면 조선인들이 욕하는 소리가 들린다. 예전 세계에서는 악플이, 지금 세계에서는 악담을 받는 인생.



“요시미츠야.”

“하잇!”

“방금 욕한 놈들 잡아와.”

“하아잇!”



이게 누구야. 조선인 마름 김팔석! 충직한 하인 요시미츠를 시켜 녀석을 흠씬 두들겨 팼다.



“아이고,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예전처럼 말해 봐?”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김팔석이 울면서 기어온다. 아직은 이세계가 마음에 든다. 그런데 아랫배가 화끈하다.


피,



“죽어. 이 친일파 놈!”


김팔석이 내 배에 칼을 꼽고, 또 다른 사내들이 군중 속에서 튀어나와 달려든다.


“주인님!!”


요시미츠가 검을 뽑자 낙엽이 진다. 조선인을 위해 검을 휘두르는 충직한 일본인, 순혈 일본인도 가난 앞에서는 똑같은 사람이다. 요시미츠의 검이 춤을 추자 사내들의 피가 흩날린다. 아름다운 검무, 이내 눈이 감겼다.




**



눈을 뜨니 하얀 병실. 그리고 이상.


“정신이 좀 드오?”

“배가 아프네. 아직 난 살아 있는 건가.”

“어째 거울하고 이야기는 해보았소?”

“당신은 왜 여기 있지.”

“폐병이 있소. 병원에 오니 유명인사가 왔다 해서 그만.”

“아까는 왜 모른 척 한 거지?”

“...”

“비밀리에 독립운동 중인가? 그렇다면 난 빼줘.”


“나카무라상이 왜 나를 소개시킨 것 같소?”

“몰라.”

“거울과 이야기는 해보았소?”

“난 당신처럼 오락가락하지 않아.”

“이곳에 오기 전에, 당신 필명은 뭐였소?”


이곳. 전. 필명.



“이상? 이상??”


잠시 그의 말을 곱씹는 사이에 이상이 사라졌다. 필명. 내 필명은..



퇴원 후 다시 나의 삶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을 선동했고 일제의 만행을 옹호했다. 아니, 그런 글들을 베껴 쓰고 또 썼다. 재산은 충분히 모아갔고 사회적 명성도 얻어갔다.


그런 나와 달리, 이상은 1933년 10월. 그 유명한 『거울』을 발표한다.


‘어째 거울하고 이야기는 해보았소?’

그의 말이 맴돌아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 나는 나와 같은 듯 다르다. 내가 왼손을 들면 거울 놈은 오른손을 든다. 거울 속에 내게도 귀가 있다. 왜 거울하고 이야기를 하라는지 모르겠다.



**



“파쿠리 상. 어째 새로운 정보는 없습니까?”

“이미 일본 황국의 은혜가 넘쳐나고, 그 힘이 강대하니 더 이상의 저항 운동은 없을거요.”


그렇게 열심히 일제를 찬양하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글을 써왔건만, 최근에 나카무라는 나를 보고 잘 웃지 않는다.


“황국에 협조하는 조선인들을 전반적으로 조사하고 감시하라는 상부의 결정이 곧 날겁니다.”


걱정을 가장한 협박.

갈등된다. 진주만 공습과 태평양 전쟁을 말해주면, 나는 평생을 부와 권력을 누리고 살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아니, 그렇게 원하던 작가로서의 성공, 부와 명예를 쥘 수 있는 기회인 걸?


내가 고민하는 동안 이상은 1934년. 또 한번 『오감도』를 발표한다. 예전 세계에서는 시 『거울』만 알았는데, 거울에 관한 시가 또 있었다.




『오감도 시제15호』


1.

나는거울없는실내에있다.거울속의나는역시외출중이다.나는지금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있다.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음모를하는중일까.



‘거울’의 거울 속 이상과 너무도 다른 ‘오감도’ 거울 속 이상.

거울.

필명 이상에 대한 수많은 설.

하지만 그는 시에도 숫자를 즐겨 쓴 자.

2상, 두 개의 상.

그것 또한 거울.


박제된 천재 때문에 나 역시 유쾌한 정신병에 걸릴 지경이다. 지금까지 이상이 발표한 작품들을 모조리 찾아 훑는다. 내가 그를 알게 될 즈음 발표된 시. 건축무한육면각체.





『建築無限六面角體』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나는 무엇에 홀린 듯 집에 있는 커다란 사각의 전신거울 두 개를 가져와 마주보게 했다. 서로의 상이 맺히고, 맺히고, 또 맺혀간다.


사각형의 거울 속에 좀 더 작은 사각형의 거울이 생기고, 그 속의 사각형의 거울 안에 생기는 또 좀 더 작은 거울, 또 그 속의 사각형의 거울..


내 눈에 보이는 비쳐진 거울들의 숫자는 대충 12개. 그 이상의 거울상은 너무 작아서 보이질 않는다.


거울 앞에 섰다. 양 쪽으로 각각, 12명의 내가 보인다.




『오감도 시제1호』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


거울 속 12인의 나. 그런데, 그 중 하나가 웃고 있다. 겁이 났다. 나를 따라 거울 속 11인의 나 들이 함께 겁먹은 표정을 해간다. 하지만 그 하나는 여전히 웃고 있다.


나와 거울 속 11명의 아해들.

혼자 웃고 있는 그 1의 아해가 무섭다고, 내가 표정으로 말하자 거울 속 두 번째가 무섭다고, 세 번째가 무섭다고, 네 번째, 다섯 번째들이 순차적으로 무섭다는 표정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무서운 한명의 거울 속의 내가, 거울 밖의 진짜인 나를 노려본다. 그리곤 끝없이 펼쳐진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울 속들로 달려가 사라진다.


두려움에 이성을 잃고 그 녀석을 쫒아 달렸다. 거울 속 11인의 나 들이, 나를 따라 겁을 먹고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거울로 막힌 골목을 질주했다.


하지만 거울 밖의 진짜인 나는 그래봤자 막혀있는 거울에 부딪혀 쓰러질 뿐이다. 넘어진 거울이 깨지며 우리의 질주도 멈추었다.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내 방안에서 거울을 깨뜨리며 미친 짓을 하고 있는데, 하인 요시미츠가 찾아왔다.


“주인님. 이상 어르신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어서 올라오라고 그래.”


다행히 내가 아는 이상이 왔다.


“이상! 필명을 십삼상으로 하지 그랬어?”

“...”

“진짜인 너, 그리고 가짜들. 그렇게 둘로 나눠 이상인가?”

“두 번째 상.”

“두 번째?”

“나는 두 번째 아해요.”

“무슨 말이야?”

“나는 진짜가 아니란 소리요.”



이 미친 작자. 너는 박제된 천재가 아니다.



“오감도는 13인의 아해 각자의 이야기. 시제4호와 시제5호는 13인의 아해를 만날 수 있는 길.”

“4호는 거울, 5호는 거울을 마주 보게 세운다고?”

“나에 관한 이야기, 시제2호를 보았소?”

“나의 아버지가 어쩌고저쩌고..”


“거울 밖 진짜인 제 1의 아해가 거울 앞에 서면, 나는 가장 먼저 비치는 제2의 아해요.”

“...”

“내가 있음으로 제3의, 제4의, 제5의 아해들이 생겨나오.”

“무슨 소리야.”

“나는 제3의, 제4의, 제5의 아해들의 아버지요.”

“그러니까 너는 진짜 이상이 아니라고?


“거울이 깨지면 나는 제1의 아해, 내 아버지를 껑충 뛰어 넘어야하지.”

“당신 제정신이야?”



간신히 대화를 이어가며 소름이 돋는다. 현기증이 난다. 다리가 떨리는 것을 내 앞의 이자에게 들킬까 두렵다.


“부디 제11의 아해를 조심하오. 다른 아해들은 나처럼 두려워하는 아해요.”


그래서 공관에 찾아간 날, 이상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인가. 그는 몇 번째 아해였을까. 오감도가 생각나지 않는다. 제13의 아해. 오감도 제15호의 내용이..




「쾅쾅- 와장창-」


정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창문이 깨지는 소리.



“요시미츠!!!”

“늦었소. 나는 이만.”





「쿵쿵- 쿵쿵-」


마룻바닥이 울리고, 내가 있는 이층 서재로 올라오는 계단 역시 울린다.


“요시미츠! 어딨는게야 요시미츠!!”


나는 겁이나 울부짖으며 나의 하인을 찾는다.



「쾅쾅- 쾅쾅쾅-」


얇은 나무문을 사이에 두고 나와 소음의 주인이 대치하고 있다. 소음의 주인은 하나가 아니다.


‘돌아가려거든 거울과 이야기 해 보시오.’

나는 회귀자야. 다시 돌아갈 수 있어. 돌아갈 방법이 시에 적혀 있을거야. 시간이 없어.


떨리는 손으로 탁자 위에 흩어져있는 이상의 시들을 뒤적인다. 뒤적이다 그만 파란 잉크병을 쳐 넘어뜨려, 평소 커피에 즐겨 타먹던 각설탕에 쏟아 버린다.





『오감도 시제15호』


3.

나는거울속에있는실내로몰래들어간다.나를거울에서해방하려고. 그러나거울속의나는침울한얼굴로동시에꼭들어온다. 거울속의나는내게미안한뜻을전한다.내가그때문에령어되어있드키그도나때문에령어되어떨고 있다.



거울 속.

정말 이게 가능하다고..?


깨지지 않은 남은 하나의 거울 앞에다, 장롱에서 뜯어낸 둥근형태의 전신거울을 세웠다. 작게나마 다시금 생겨나버린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다만 둥근 거울 모서리에 의해 ‘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 한참 갈등하는데 건축무한육면각체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쾌청의공중에붕유하는Z백호.’


우리말에 없는 붕유. 그나마 가장 발음이 비슷한 일본어

ぶんゆう [분유 : 나누어 가짐]



거울 속 너희 가짜들과 내 존재를 나누어 가질 마음 없다.




「콰지지직-」


간신히 버티던 얇은 나무문이 기어이 부서지고 성난 열두 명의 아해가 성난 얼굴로 달려온다. 눈을 감고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의.. 내부로 몸을 집어 던진다. 거울 속의 무한육면각체로 떨어진다.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아니 떨어지는 것인지 올라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저 위에서 열두 명의 아해가 따라 들어온다.


‘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사람.’




표절만 일삼았던 내가, 드디어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다만 그 끝이 불우한 것이 참으로 애석하도다. 나는 거울 속으로 사라지지만,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알아주기를. 파쿠리 상, 아니 이붕진이 이곳에 있었다고.







『오감도 시제15호』


6.

모형심장에서에서붉은잉크가엎질러졌다.내가지각한내꿈에서나는극형을받았다.내꿈을지배하는자는내가아니다.악수할수조차없는두사람을봉쇄한거대한죄가있다.









[GOD : 신이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GOD : 신이 표절은 나쁘다고 말합니다.]

[어워즈 : 동기화 비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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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워즈 : 로딩 73%]






제 삼과 사의 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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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병, 병, 그리고 병.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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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9.03.18 9 0 7쪽
13 제 1 병. 19.03.18 7 0 13쪽
12 제 십일과 십이의 병. 19.03.17 11 0 12쪽
11 제 십과 십일의 병. 19.03.17 8 0 12쪽
10 제 십 병. 용병 19.03.16 13 0 12쪽
9 제 구 병. 고산병 19.03.15 12 0 17쪽
8 제 팔 병. 餠 19.03.14 13 0 12쪽
7 제 칠 병. 거인병 19.03.13 21 0 12쪽
6 제 오와 육의 병. 19.03.12 10 0 12쪽
5 제 오 병. 䔊(풀이름 병) 19.03.11 13 1 14쪽
» 제 삼과 사의 병. 19.03.09 18 0 13쪽
3 제 삼 병. 표절병 19.03.09 15 0 9쪽
2 제 이 병. 신병 19.03.08 25 1 14쪽
1 제 일 병 19.03.07 5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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