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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 님의 서재입니다.

능력자는 도태되면 멸종당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여담이
작품등록일 :
2022.02.14 22:33
최근연재일 :
2022.02.28 18:28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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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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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수 :
101,227

작성
22.02.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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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능력자물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설정 (7)

DUMMY

8


그런 그들 가족의 집 앞으로 묵주를 손에 감아쥔 남사제가 지나갔다.

뜬 듯 감은 듯 눈은 정면을 향하고 있으나 피사체를 보고 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무슨 신을 섬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장례식에나 어울릴 법한 검은 예복은 바닥에 끌렸다.


“참으로 좋은 실력입니다, 소월.”


혼잣말에서 나온 것은 소월의 이름이었다.


“역시 인간사냥꾼의 딸, 자취를 숨기는 것도 탁월합니다.”

“이 도시에 있는 건 분명한데.”


살과 살을 꿰맨 듯 누더기 같은 피부의 소년이 사제의 말을 받았다.


“구하는 자에게 길을 주시겠죠.”


어딘가 이질적인 분위기의 두 남자는 서서히 주택가를 벗어났다.


“주로 막다른 길을 주십니다만.”


사제는 묵주알을 하나씩 세면서 마음을 고르게 했다.










9


잘 시간이 되었을 때, 달과 별이 그려진 남색 잠옷을 입은 수애.

푹신한 베개로 침대 위 아지트를 만들었다.

그 위에 파묻혀 막 씻고 나와 머릴 말리는 소월을 봤다.


“오늘은 같이 자?”

“어? 맨날 같이 자잖아.”

“밤에 사라지잖아, 자꾸.”

“어, 그랬나?”


소월은 물기를 탈탈 털면서 수애를 돌아보고 멋쩍게 웃었다.

요즘 지나치긴 했다.

어디든 무작정 박아대면 느는 게 실력이라는데.

이 명언, 꽤 야한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머리를 모두 말리고, 넓은 박스티를 입고 수애 옆에 누웠을 때 문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도 되겠나?”

“네, 괜찮아요.”


문틀에 영 맞지 않는 몸 크기, 머리를 숙이고 옆으로 우겨넣듯 방에 들어온 순동 씨.

침대 맡에 놓인 앉은뱅이 의자에 몸을 꼬깃하게 접어 앉았다.


“할아버지, 또 얘기해주세요.”

“무슨 얘길 또 해줄까. 산타였을 때 얘길 해줄까, 하늘이 열렸을 때 얘길 해줄까.”

“‘우물’ 이야기요.”


아, 그게 참 명작이지.

순동 씨의 머릿속엔 수천수만, 어쩌면 수억 가지 이야기가 쌓여 있었다.

여전히 명료한 기억력은 꺼내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냈다.


“우물에서 수애가 태어났지.”


우물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었어.

깊디깊은 우물 밑바닥엔 쓰고 버려진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헤맸단다.

그 우물을 판 남자는 자기 이름도 먹어치운 괴물이었단다.


“이름을 어떻게 먹어요?”


자길 불러주는 이들을 모두 해하면 그렇게 잊힌단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게 된 다음엔, 자기 이름조차 까먹게 되지.

남자는 괴물이라서 우물을 만들고, 사람들이 그 우물에 빠지게 만들었지.

그 속에서 사람들을 잡아먹고, 괴롭혔단다.


“사제 얘기 해주세요. 묵주 사제.”


어떤 꼬마가 있었단다.

꼬마는 산타를 믿었지.

이번 크리스마스엔 산타클로스가 선물로 자길 우물에서 꺼내줄 거라고 기다렸어.

하지만 걱정이 하나 있었지.

꼬마는 괴물에게 너무 괴롭힘을 당해서, 울어버리고 말았거든.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는다는 말에, 아이는 주저앉았어.


“‘정말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으시나요?’”


그래, 맞아, 아이가 내게 물었지.

저를 보세요, 괴물은 저를 당신처럼 만들려고 해요.

하지만 뭔가 잘못되었어요.

저는 이쪽 어깨만 부풀었고, 가슴 근육은 뒤틀렸어요.

열심히 걷던 다리를 절게 됐다고 사람들이 놀려요.

이제 모두가 날 괴물이라고 불러요.


“‘아니야, 아니야. 그런 산타는 없어.’”


난 우는 아이한테 두 개 준단다.


“‘그럼 다른 아이한테 줄 것이 하나 부족하지 않나요?’”


사실 모든 아이가 울어버린 탓에, 늘 두 배로 준비한다는 사실을 난 말하지 않았어.

그리고 실은, 나도 그 우물에 빠져버렸던 터라 딱히 선물이랄 것도 없었지.


“‘제 몸, 흉측하죠?’”


나는 잘 살펴봤단다.

가슴 근육은 왼쪽 가슴을 벌크 업하다 보면 균형이 맞을 것이고.

저는 다리는 부목을 대서 매일 걸으면 괜찮아질 거다.

어깨 운동 열심히 하고, 매일 턱걸이를 하면.

여전히 보기 좋은 몸이란다.


아이는 매일같이 뛰고, 단련했단다.

언제 괴물에게 뜯어 먹힐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그런 아이를 두고 우물 사람들은 고행하는 사제 같다고 했단다.

섬기는 신은 없지만, 어느새 아이는 사제처럼 경건해졌지.

난 가지고 있던 묵주를 선물로 줬단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하나씩 세면 심심하지 않게 해주던 물건이었어.


“탈출했을까요, 우물에서?”


수애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거기엔 해피엔딩을 바라는 마음이 묻어나서 간절했다.


“글쎄다, 그러길 바라고 있단다.”

“할아버지가 구해주시지 그랬어요.”

“그러게나 말이다. 하필 그때 갓난아이를 하나 구했어야 해서 말이지.”


순동 씨는 수애의 마늘쪽 같은 코를 가볍게 흔들었다.

이 모든 이야기를 겪어 알고 있는 듯한 소월은 수애 쪽으로 돌아누웠다.

조금은 다른 버전으로 이야기를 추억하는 소월의 눈은 슬펐다.


“이제, 자자. 내일 일어나서 또 놀게.”


작은 등을 토닥이며 소월은 꼬순내가 풍기는 아이의 정수리에 코를 박았다.









10


서울 시내 한복판, 옛 인사동 자리를 따라 재건한 삼거리.

고개만 들면 보탬 본사 빌딩이 보이는 목 좋은 자리에 순동 씨의 공예점이 있다.

빵집이나 카페가 들어서면 딱 좋을 만큼 사람들의 시선이 자주 닿는 곳.

어느 신호등을 기다리더라도 순동 씨의 가게는 잘 보였다.


“예에, 주문제작은 저한테 말씀하시면 되요.”

“언니 번호를 주문하고 싶은데.”


학교를 마치고나서 별 다르게 할 일이 없는 소월은 카운터에서 점원을 봤다.

가끔씩 추근대는 남자들 때문에 성가시긴 하지만, 여자가 작업을 거는 건 또 처음이었다.

한쪽 귀에만 화려한 귀걸이를 건 단발머리는, 보이시한 스타일이었다.


“그건 시간이 좀 걸려요.”

“그럼 다 되면, 연락 줘요. 직접 와서 챙겨갈라니까.”


젠틀한 거절에도 기죽지 않고 자기 명함을 손가락에 끼워 멋스럽게 넘겼다.

소월은 예, 또 오세요, 하고 건성과 예의 사이 어딘가의 대답을 했다.

사람이 붐벼도 이렇게 붐빌 수가 없었다.

이래서야 숨어 사는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을까 싶기까지 했다.


“소월이, 이리 와보게!”

“가마에 불 피우는 거면 사람 하나 쓰라니까요.”

“잠깐, 잠깐이면 되지 않겠나.”

“아이, 진짜.”


카운터 안쪽, 커튼으로 차폐된 쇠문 뒤엔 순동 씨의 공방이 따로 있었다.

공방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쇠를 녹이고 두들기는 대장간에 가까웠다.

소월이 자리를 비우자 테이블 아래에 가려져 있던 수애가 올라와 대신 계산대를 맡았다.


“고양이 애착 인형, 완전 부드러운 버전, 35500원입니다.”

“가격 태그에는 35000원이라고 붙어 있는데요, 꼬마 아가씨.”

“500원은 귀여운 저를 위한 용돈.”


무표정하게 자기 볼에 손을 대며 마케팅에 힘쓰는 모습이 나름 히트였다.


“아니, 아오.”


투덜거리면서 커튼 밖으로 도망쳐 나온 소월의 코엔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점원 유니폼에선 안쪽의 열기가 그대로 묻어 있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적당히, 모양만 내시라니까, 좀.”

“고맙네!”


소월이 등장하자마자 짤짤이를 주머니에 숨기며 수애는 의자를 내줬다.

소일거리로 시작한 것이 이렇게까지 대박을 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수애를 안전하게 기르기 위해 숨는 것을 선택했지만.

세상 빛을 아예 보지 않고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실 순동 씨는 꽤 부자다.

여생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인간 세상이 끝날 때까지는 돈이 궁할 걱정이 없을 정도.

2만 년을 여러 가지 이름으로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얻은 고대 유물부터.

졸지에 차명 계좌가 되어버린 자기 명의의 수많은 계좌들.

순동에게 생명의 빚을 진 자의 자손이 해주는 후원까지.


그럼에도 이 21세기 산타클로스는 사람에게 뭔가를 해줘야만 하는 중병을 앓는 사람이었다.


“저, 여기 혹시 아령도 주문 제작 됩니까?”


자기 차례가 된 ‘건장한 남성’이 소월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변에서 그를 알아본 사람들은 속닥거리면서 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그 관심이 싫지 않은 듯 소녀알통은 안 그래도 우람한 등빨을 더욱 웅장하게 부풀렸다.


“예, 안 되는 게 없습니다. 무게, 성함, 주소 적어주세요.”


소월은 빈 종이쪽지와 볼펜을 공손히 건네며 말했다.


“예, 예.”


그때 커튼을 젖히고 순동 씨가 고개를 내밀었다.

혹시 이 목소리는, 소녀알통?

하는 표정이었다.


거대한 몸집에, 나이가 무색하게 건강하게 갈라진 상반신.

그리스 신화의 헤파이스토스가 호남이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소녀알통의 실물을 확인하자마자, 그 넙대대한 얼굴에서 풍부한 표정이 피어났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200만 유튜버, 소녀알통 아니신가?”

“아아, 혹시 여기 사장님?”

“그래요, 그래요. 내가 소녀알통 씨 구독도 하고 영상에 좋아요도 맨날 눌러요. 후원도 잔뜩하고, 멤버십도 가입했는데. 열혈이야, 열혈.”

“아, 혹시, 혹시, 회장님? ‘버찌동애아범’님?”

“어어, 그래요, 그래. 아, 참 보기 드물게 자세가 좋은 사람이라서 내가 참 아껴요.”


순동 씨가 청한 악수를 소녀알통은 넙죽 허리를 숙이며 받았다.

소녀알통의 손도 절대 작은 편이 아니건만, 순동 씨의 손에 가볍게 가려졌다.

그리고는 소월에게 소녀알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만 년 전에 나무 잘 타던 녀석이랑 똑닮았어, 이 친구. 그 놈 핏줄인가 봐.”

“하하, 유인원 닮았다는 말 많이 듣습니다!”


무슨 추억이 떠오른 것인지 만족스럽게 웃던 순동 씨는 갑자기 정신이 든 것인지,

소녀알통에게 물었다.


“아령을 주문제작하고 싶으시다고?”

“예, 아주 무거운 것으로.”

“아, 그것이라면. 내가 쓰던 것이 있는데 공짜로 드리겠네.”


무언가 떠올린 것인지 순동 씨는 잠시 기다리라고 당부하고는 커튼 뒤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에 거대한 아령 두 개를 가지고 와 소녀알통 앞에 내려놓았다.

웬만한 덤프트럭 타이어는 저리 가라할 정도의 크기.


너무도 가볍게 아령을 다루는 모습에 소녀알통은 보기보다 가벼운 소재인가 싶어 들어봤다.

쉽게 들리지 않자, 풀 파워를 동원해 하나라도 들어보려 애를 썼다.

꿈쩍도 않았다.

오히려 소녀알통이 디딘 바닥이 파이며 쑥 들어갔다.


만족스럽게 웃던 순동은 말했다.


“만 년 전에 그 녀석도 고집이 참 셌어. 덕분에 많이들 살았지.”


만 년.

이상한 농담을 하시는 분이신가, 연세 많으신 분들은 짓궂으시니까.

소녀알통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순동 씨의 얼굴에서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기운을 느꼈다.


“요즘엔 어딜 가도 아는 얼굴이 보여서, 오래 산 보람이 있어.”


소녀알통으로서는 해석하기가 어려웠다.

일단 당장은,


“혹시 이거 택배 됩니까?”


이것 좀 옮겨주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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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작가도 도태되면 멸종당해? 22.02.17 26 0 -
18 아이 엠 그라운드 자기 약점 대기 (2) 22.02.28 8 0 10쪽
17 아이 엠 그라운드 자기 약점 대기 (1) 22.02.28 7 0 15쪽
16 그놈의 흑막 여주 코스프레 (8) 22.02.27 12 0 13쪽
15 그놈의 흑막 여주 코스프레 (7) 22.02.25 15 0 10쪽
14 그놈의 흑막 여주 코스프레 (6) 22.02.22 11 0 10쪽
13 그놈의 흑막 여주 코스프레 (5) 22.02.22 10 0 14쪽
12 그놈의 흑막 여주 코스프레 (4) 22.02.18 29 0 11쪽
11 그놈의 흑막 여주 코스프레 (3) 22.02.16 23 1 14쪽
10 그놈의 흑막 여주 코스프레 (2) 22.02.16 18 0 13쪽
9 그놈의 흑막 여주 코스프레 (1) 22.02.16 18 0 14쪽
8 능력자물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설정 (8) 22.02.16 10 0 9쪽
» 능력자물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설정 (7) 22.02.16 10 0 11쪽
6 능력자물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설정 (6) 22.02.16 18 0 14쪽
5 능력자물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설정 (5) 22.02.16 18 0 16쪽
4 능력자물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설정 (4) 22.02.15 20 0 14쪽
3 능력자물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설정 (3) 22.02.15 25 0 12쪽
2 능력자물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설정 (2) +2 22.02.15 43 0 13쪽
1 능력자물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설정 (1) +2 22.02.14 9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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