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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 님의 서재입니다.

능력자는 도태되면 멸종당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여담이
작품등록일 :
2022.02.14 22:33
최근연재일 :
2022.02.28 18:28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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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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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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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능력자물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설정 (2)

DUMMY

1


지석은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서울 한복판의 출근길.

지나다니는 차가 별로 없어 한산했다.

그럼에도 신호등은 느즈막하게 자기 템포를 지켰다.

이어폰을 꽂고 개인방송을 라디오삼아 틀었다.

보챈다고 신호등이 말 들어주는 것도 아니니깐.


“한국 멸종전쟁이 끝난 지 4주년을 맞았는데요.”

“예, 며칠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4년이 지났네요.”


종종 듣는 시사방송.

여성 진행자가 운을 떼자, 게스트인 남자가 감회를 밝혔다.


“먼저 소개부터 할까요? 「新 종의 기원」을 출간하신 문석일 박사님 모셨습니다.”

“넵, 반갑습니다. 청취자분들께 인사 올립니다.”

“아직은 이탈자를 바라보는 사회 시선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데, 박사님께서, 소위 학계의 정설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셨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더라고요. 어떻게, 짧게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라디오에 열중하고 있는 지석.

반대편 횡단보도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가닿았다.


순록 뿔에 커플 뿔링을 단 아가씨, 흔하다.

큰 날개를 달고 등교하다가 날갯죽지가 너무 피로해 잠시 보도에 내려온 남학생, 흔하다.

둥둥 떠다니는 두꺼운 서적에 열중하며 손대지 않고 필기를 써내려가는 고시생, 역시 흔해.

쬐깐한 나무토막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밟히지 않고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아주머니.

연신 킁킁대면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혀를 내밀고 방긋 웃는 강아지귀 소년, 저건 좀 귀엽네.

슥슥 맨발로 스케이트를 타듯 경사로를 미끄러져 올라가는 여중생.

준비물을 깜빡한 유치원생은 똑 닮은 병아리옷 꼬맹이분신을 만들어 집으로 보내고 있었다.


“소위 인종이라는 것은 오개념입니다.”

“아, 인종을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뜻인가요?”

“바로 그렇지요. 강아지와 고양이는 다른 종이지만, 흑인과 백인, 황인은 다른 종이 아닌 것처럼요. 우린 모두 하나의 종입니다.”


빨간불이 바뀌지도 않았는데 횡단보도 페인트에 스며든 남자는 길을 건넜다.

지석은 페인트에서 나온 남자의 가슴팍을 가볍게 막아서며 말했다.

무단횡단하시면 안 됩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얼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아휴, 계신 줄 몰랐네.

없어도 하지 마세요, 애들이 보고 배워요.

넵, 미안합니다.


“이탈자. 일반 상식에서 벗어난 사피엔스계 능력자들을 총칭하는 말이죠. 그런데 박사님께서는 이 이탈자라는 말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신다고.”

“일반 상식의 사피엔스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키는 170cm에, 체중은 75kg 정도, 이목구비는 코와 입의 거리가 4cm, 눈 사이 간격이 7cm. 이런 식으로 규격이 정해진 것이 아니잖습니까? 사람은 모두 다릅니다. 모든 개체는 서로 달라요. 다만 어떤 종에 속할 수 있는 특징만 있다면 같은 종으로 묶는다는 겁니다.”


그때 두 남자의 대화를 비집고 누군가 껴들었다.

비켜요, 비켜.

아직 다 자라진 못한 성대에서 나오는 여학생의 앳된 목소리.


“우린 모두 이탈자입니다.”


학생에게 밀려난 지석의 시간은 순간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았다.

위험을 알리는 신호등 붉은 빛.

설마 영화처럼 그렇고 그런 일은 없겠지, 하며 돌아본 차선엔 거대한 트럭이.

귀에서 뽑혀져나간 이어폰.

반사적으로 뛰쳐나가는 몸과 쭉 뻗어나간 손.


“아이 씨, 왜 밀어요.”


등을 밀어내는 누군가의 손길에 자빠질 뻔한 여학생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끼익, 탁하고 뭔가를 들이받은 트럭과 핸들에 머리를 파묻고 고개를 들지 못하는 운전수.

저만치 굴러나간, 남자는 멈추지도 않고 구르고 굴러 사거리 한가운데에 나자빠졌다.

상황이 파악되자 학생은 얼이 빠졌다.


“하아, 하아.”


놀란 심장을 움켜쥐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운전수는 차에서 떨어지듯이 내렸다.

멀어지는 현실감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여학생과 운전수는 일그러진 형체를 향해 다가갔다.

도로 위 한가득 쏟아진 것은 피일까.

피라기엔 검다.

진한 검은색 액체가 한가득.

여학생은 쇼크로 숨을 몰아쉬었다.


“아, 잠깐. 잠깐. 괜찮아요. 몰입하지마세요.”


비틀거리며 벌떡 일어선 지석은 다리를 절뚝이며 중심을 잡으려 애썼다.

엉망이 된 외투 안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낸 지석은 높이 들어 시민들을 안심시켰다.


“대리치안회사 「보탬」의 과장 양지석입니다. 안심하세요.”


누가 봐도 괜찮지 않아 보였다.

머리가 깨졌는지 검은 타르 같은 것이 범벅이었고, 양 어깨는 높낮이가 달랐다.

아이 엄마처럼 보이는 여자가 발을 동동거리며 119에 통화를 걸었다.


“아휴, 이 사람 어떡해. 119가 금방 올 거예요.”

“아이,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금방 낫습니다.”


비틀거리는 그를 부축하러 남자들이 다가왔다.

제일 먼저 달려온 운전수는 죄짓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수십 번을 조용히 되뇌었다.

잠깐 앉으라는 만류에도 지석은 얼른 손수건을 꺼내 검은 액체를 닦아냈다.

흉한 몰골을 보이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죽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다쳐도 이 정체모를 검은 살점이 금방 낫게 한다는 것.

분명 이 험한 세상 살아남는데 큰 도움이 되는 능력이지만,

이런 중상을 필터나 모자이크도 없이 지켜볼 사람들은 고역이었다.

그걸 잘 아는 지석은 어떻게든 상처를 가리려고 애썼다.


“숨 쉬어, 숨.”


횡단보도 위에 뿌리박힌 듯 선 여학생에게 다가가 말했다.

상처 입은 것을 아이가 놀랄까 최대한 가리지만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여학생은 가늘게 떨었다.

지석은 아이의 팔을 세게 쓸어내려 피가 돌게 도왔다.

온기가 닿자 아이는 지석의 얼굴을 응시했다.


“아저씨, 죽은 거 아니죠?”

“어, 그건 아닌 거 같아.”

“아, 아파요?”

“아프지, 엄청 아프지.”


새하얗게 질렸던 아이의 얼굴은 지석의 호흡 유도로 조금씩 핏기가 돌아왔다.

지석은 살이 찢긴 부상 중 가장 가벼운 것을 학생에게만 살짝 보이게 했다.


“이게 너였다고 생각해라.”

“......”

“이탈자고 나발이고 차에 치이면 죽고, 총 맞으면 죽어. 빨간불엔 멈추고, 파란불에만 가라.”

“여긴 신호가 너무 길어요.”


변명 같지도 않은 말이지만 아이는 뱉어야 했다.

굳었던 몸이 살짝 풀리자 뚝, 고인 눈물이 떨어졌다.


“그렇긴 해. 차도 별로 없는 세상인데.”


지석은 119가 오면 여학생 몸에 이상은 없는지 살피게 해달라고 아이 엄마에게 부탁했다.

운전수는 대기하다가 보탬 쪽에서 사람이 오면 조서를 써달라고 말했다.


“아저씨, 진짜 괜찮아요?”


급한 출근길이다.

사실 아무리 불사라도 길에서 차 사고가 나면 출근이고 나발이고 미루는 게 정상.

하지만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을 하는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버틸 만하면 움직이게 되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었다.


대충 뼈를 움직여 어깨 높이를 맞출 때쯤 머리에서 흐르던 검은 액체도 따라 멈췄다.

아이의 물음에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지석은 대답했다.


“몰라, 나도.”


8시도 절반쯤 지났으니 걸음이 바빴다.

지석은 몇 걸음 절뚝이다 깽깽이발로 뛰었다.

그러다 저만치쯤 더 나아가자 멀쩡하게 걷기 시작했다.


저주라기엔 너무 훌륭한 회복력이 아닐 수 없었다.


“저 친구가, 그 친구죠? 유명한.”

“예, 경찰이 해체되고 대신 치안을 맡은 회사의 최연소 과장. 대단하다던데.”

“아무리 안 죽는다고는 해도, 차에 뛰어드는 게 쉽지가 않을 텐데. 안 아픈가?”

“아프겠죠, 당연히. 일이니까 하는 거겠지.”

“아아, 대단하네.”


사람들은 그가 사라진 자리를 보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인신매매에 가담한 조직을 소탕했다느니.

신체가 개조된 악당을 무찔렀다느니.

인간을 사냥하는 강원도 사냥꾼들과 싸우는 걸 봤다느니.


그 중 몇 개나 사실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오늘 이 사고가 SNS에 무지막지하게 업로드되고 퍼다 날라질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2


책상도 의자도 작았다.

초등학교의 모든 것은 전부 초등스러웠다.

제일 뒷자리, 라디에이터가 따뜻한 창가에 앉은 소월은 아직 학교가 낯설었다.

초등학교 2학년의 학기 첫 날.

제법 자기들끼리는 아는 사이인지 떠들 것이 많아 보였다.

이게 겉돈다는 감정인가.

23년이나 살았는데 왕따라니, 좀 그래.


“처음엔 다 그래.”


소월이 외로울까봐 짝꿍을 호탕하게 자처한 아홉 살 수애가 작게 속닥거렸다.

거기에 또 위안 받는 소월이었다.

그때 앞자리 짱구머리 꼬맹이가 자길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곳의 법도나 규칙을 모르니 어떻게 대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소월이 살던 곳에서는 일단 다이떠서 서열부터 정리하고 시작했었는데.


“누나도 2학년 올라왔어요?”


대뜸 묻는 꼬맹이.

말 걸어준 것이 고마워서 웃어줄 뻔.

하지만 쉽사리 미소 짓지 않는 것이 야생의 규칙.


“아니, 2학년으로 바로 들어왔어.”

“우와, 머리 엄청 좋은가보다!”

“뭐, 그런 칭찬 많이 듣지. 가르치면 바로바로 배우니까.”


아직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기 전, 묘한 탐색의 분위기.

소월이라는 어른의 존재는 껄끄러울 수도 있었다.

애써 외면하던 꼬맹이들은 소월이 입을 열자마자 그녀에게 집중이 쏠렸다.

뭐지, 왜 어른이 여기 있지.

눈치를 담당하는 기관에 아주 작은 결함이 있나.


“어어, 누나는, 몇 살이지?”


테가 동그란 뽀로로 안경을 쓴 꼬마가 질문도 혼잣말도 아닌 어중간한 말투로 말했다.

나이 먹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소월은 잔뜩 우쭐하며 대답했다.


“스물셋.”

“우와, 스물셋.”

“근데, 어, 근데에. 스물셋이면은, 대학교 가는 거 아닌가?”


뽀로로 녀석 보통 놈이 아니었다.


“갈 거야.”


소월은 눈을 가늘게 떴다.

까짓것 일도 아니지 식이었다.


“어, 근데, 중학교도 가고오, 고등학교도 가야 되는데. 헤.”


방금 헤, 는 비웃음이었다.

그것도 완전한 형태의 비웃음이었다.

초등학생 상대로 발끈하기도 살짝 이상했다.

근데 또 서열 정리는 나이고하 불문하고 언제나 미리 해두면 편한 것이었다.

물론 밑에 깔릴 것도 걱정해야 되지만, 설마 이 어린 녀석에게 지기야 하겠어.


“누나, 두 자리 뺄셈할 줄 알아요?”


짱구머리는 책상에 지우개똥을 문질러 뭉치며 헤실헤실 웃었다.


“아니. 난 직접 하나씩 세. 빼먹으면 안 되니까.”

“우와, 나도 덧셈할 때 하나씩 세는데.”


예쁜 누나가 좋았는지 짱구머리는 묻지도 않은 자기 이야길 조곤조곤 해주었다.


“근데, 근데, 어. 나는 세 자리 곱셈 할 줄 아는데.”


뽀로로 녀석, 이 날을 위해 수학을 연마한 것이 틀림없었다.

세 자리 곱셈이라니.

미리 손봐두지 않으면 네 자리도 거뜬한 괴물이 되어버릴지도.

경계 대상을 만난 고양이처럼 소월은 목을 움츠리고 아기 펭귄 닮은 꼬마를 주시했다.

그때 누군가 어깨까지 자란 머리칼을 건드렸다.

놀란 소월은 뒤를 돌아보는데 꼬마 아가씨 둘이 장난감 머리빗을 들고 있었다.


“언니, 머리 몇 살 때부터 길렀어요?”


여자애들의 말씨는 또래 남자애들에 비해 또렷한 느낌이었다.


“엄청 푸석해, 이러면 엄마한테 혼나는데.”

“우리 엄마는 머리 잘 빨아야한다고 그러는데.”


빨래하듯 빤다는 표현이 자기들 딴에는 웃겼는지 꼬마 아가씨들은 웃어버렸다.

삽시간에 몰려든 꼬마들은 소월을 둘러싸고 말 주머니를 풀기 시작했다.

알아듣기는 영 어렵지만, 난 이런 목소리로 말이란 걸 해, 하고 자랑하는 듯했다.

그런 관심이 정신을 쏙 빼놓지만 싫지는 않았다.

순수한 호감 뭉치들.


“언니는 이런 걸 좋아해.”


언니 다루는 법을 몸소 가르쳐주겠다는 듯 수애가 갑자기 나섰다.

대뜸 소월의 목을 핥는 것이었다.

힉, 수애의 혀가 닿은 목덜미를 감싸 쥐고 소월은 경직됐다.

뭐지, 내가 이런 걸 가르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대담한 애정행각을.


“오빠가 이러는 거 봤어.”


뺨에 붉은 물감이 풀렸다.

얘가 언제 봤지, 문 잠가뒀는데, 에서부터.

어디까지 본 거지 설마, 까지.

점점 짙게 물들어가는 붉은 생각들.


다행히 아이들은 사람을 핥는 행위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당황한 예쁜 어른만큼 재미있는 것이 흔하지 않았기에,

작은 혀들이 낼름낼름거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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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작가도 도태되면 멸종당해? 22.02.17 26 0 -
18 아이 엠 그라운드 자기 약점 대기 (2) 22.02.28 8 0 10쪽
17 아이 엠 그라운드 자기 약점 대기 (1) 22.02.28 6 0 15쪽
16 그놈의 흑막 여주 코스프레 (8) 22.02.27 11 0 13쪽
15 그놈의 흑막 여주 코스프레 (7) 22.02.25 15 0 10쪽
14 그놈의 흑막 여주 코스프레 (6) 22.02.22 11 0 10쪽
13 그놈의 흑막 여주 코스프레 (5) 22.02.22 9 0 14쪽
12 그놈의 흑막 여주 코스프레 (4) 22.02.18 29 0 11쪽
11 그놈의 흑막 여주 코스프레 (3) 22.02.16 22 1 14쪽
10 그놈의 흑막 여주 코스프레 (2) 22.02.16 18 0 13쪽
9 그놈의 흑막 여주 코스프레 (1) 22.02.16 18 0 14쪽
8 능력자물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설정 (8) 22.02.16 10 0 9쪽
7 능력자물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설정 (7) 22.02.16 9 0 11쪽
6 능력자물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설정 (6) 22.02.16 18 0 14쪽
5 능력자물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설정 (5) 22.02.16 17 0 16쪽
4 능력자물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설정 (4) 22.02.15 20 0 14쪽
3 능력자물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설정 (3) 22.02.15 25 0 12쪽
» 능력자물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설정 (2) +2 22.02.15 43 0 13쪽
1 능력자물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설정 (1) +2 22.02.14 9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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