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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공 문고전

추리무협(追利無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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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공
작품등록일 :
2022.05.11 11:06
최근연재일 :
2022.06.29 00:10
연재수 :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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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55
추천수 :
803
글자수 :
388,926

작성
22.05.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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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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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7쪽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6

DUMMY

"딸아이의 등에 꽂혀있는 검에는 대성파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지."


"말도 안되는 소리에요!"


무고한 양민 학살의 현장에 대성파도 끼어 있었다는 백완섭의 말에 공완정은 크게 놀라 소리질렀다. 대성파가 어떠한 문파인가? 수백 년에 달하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강호에 이름을 남긴 숱한 고수들을 배출했으며 만검기원(萬劍技元)이라 불릴 정도로 검이라면 정사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으뜸으로 인정하는 명문 정파가 아닌가.


거기에 현 장문인인 나열 또한 강호에 이름이 정평이 나있는 최고의 검객 중 한명이지만 작금의 강호에서 대성파를 설명하는데에는 단 네 글자면 충분하다.


백검선녀(白劍仙女)!


아직까지도 무림의 전설로 남아 있는 무림삼선 중 일인인 검선 호연이 몸담고 있는 문파라는 것 만으로도 정파 내에서 대성파의 위상은 굳이 말로 하면 입이 아픈 수준이었다. 그러한 명문 정파에서 그리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니? 공완정은 백완섭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대성파와 같은 명문대파(名門大派)에서 그럴리가요?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다면 검선 어르신께서 가만히 계실리가 없어요!"


"내 눈으로 직접 똑똑히 보고 겪은 일들이오."


그러나 백완섭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단호하게 공완정의 말을 일축했다. 그리고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눈을 질끈 감고 말을 이어나갔다.


"태양이 아무리 크고 밝다해도 세상 모든 곳을 비출 수 없기에 그늘과 그림자가 존재하는 법, 백검선녀가 아무리 대단한 위인이라 하더라도 대성파의 모든 대소사를 꿰고 있지는 않는 법이오."


어느새 눈을 다시 뜬 백완섭은 공완정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촉촉히 젖은 채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되려 그 명문대파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소. 실제로 내가 소위 명문 정파라는 곳에서 받은 의뢰 중에는 차마 입으로 담을 수 없는 것들도 수 차례 있었고 그런 의뢰일수록 더욱 비쌌소."


실제로 그가 받았던 의뢰는 문파간 항쟁에 참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게중에는 요인의 암살과 같은 살인이나 납치, 폭행 사주와 같은 궂은 일 또한 있었고 그것의 의뢰인 중에는 정파의 인물 또한 적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내용의 의뢰더라도 그 금액은 정파의 것이 배는 더 비쌌고 뛰어난 낭인 무사인 그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그것이 입막음 비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믿을 수 없어요. 그렇다면 정파와 사파가 대체 뭐가 다르겠어요?"


"그럼 내, 소저에게 묻겠소. 정파와 사파는 과연 무엇으로 구분짓는 것이오?"


공완정은 갑작스런 백완섭의 질문에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답변하려 입을 열었다.


"저...정파는 무림의 질서를 바로 잡고 사마외도(邪魔外道)의 종횡(縱橫)을 막아 무림동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개방귀 같은 소리."


"!!!"


공완정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건만 백완섭은 다짜고자 뱉어낸 욕지거리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한층 거칠어진 음조로 그녀의 말을 반박해갔다.


"낭자가 생각하는 정파가 그렇다면 정파와 대칭을 이루는 사파의 정의란 그와는 정 반대인게 분명하겠구려. 사파는 무림의 질서를 흐트리는 사마외도들의 무리를 지어 무림동도의 안전을 위협하는 괴뢰 집단이라는게로군."


"으음...딱히 그런 뜻은..."


"그렇다면 왜 나라에서는 사파의 존재를 묵인하는 것이오? 그렇게 위험한 존재라면 나라에서는 응당 백성의 안위를 위해 한시라도 빨리 군대를 동원해 소탕해야하는 것 아니오?"


"..."


공완정은 다짜고짜 쏘아붙이는 백완섭의 기세에 눌린 면도 있었다만 의표를 찌르는 그의 말에 딱히 대답을 찾을 수 없기에 그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앞선 질문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대답을 듣고자 물어본 것이 아닌 말이기에 백완섭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비록 패금파란 흑도 문파의 장문인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엔 명문 정파라는 조씨 세가에 몸을 담기도 했었소. 그리고 패금파를 해산시킨 뒤엔 낭인 무사로 살며 정사를 가리지 않고 맡은 의뢰에 충실히 검을 휘둘렀소. 낭자가 보기엔 어떻소. 과연 나는 정파의 인물에 속하오, 아니면 사파의 인물에 속하오?"


"당신은..."


비록 검을 처음 잡은 곳은 정파였으나 두각을 드러낸 것은 사파였고 무명을 떨친 것은 정도 사도 아닌 떠돌이 낭인 무사 시절이었으니 그녀에게 백완섭이란 대체로 종잡을 수 없는 세력의 인물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당신은...정(正)도 사(邪)도 아닌 중도(中道)의 인물이에요."


"절반만 맞았군."


공완정이 시간을 들여 짜내놓은 답변에도 백완섭은 아깝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답은 먼젓번의 질문에 대한 답과 같소. 위험한 괴뢰 집단인 사파를 나라에서 방치하는 이유는 단 하나요. 그들이 보기에는 정파나 사파나 매한가지로 위험한 무장 괴뢰 집단이기 때문이오. 즉 정파와 사파를 구분짓고 나누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오. 왜냐하면 그 둘이 하는 일은 피차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지."


"그것은 궤변에 불과해요. 예로부터 무림은 정과 사로 나뉘어 수백 년을 서로 싸워왔고 실제로 수 년전엔 정사대전까지 일으킬 정도 정과 사는 극명하게 갈려 있다는 것이 현실이에요."


"이리와 승냥이는 서로 외양만 갈릴 뿐 온순한 초식 동물에게 있어 맹수인 것은 마찬가지. 우리는 모두 맹수요, 보호와 관리라는 이름으로 일반인들의 고혈을 빨아먹을 뿐 스스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존재들이지!"


'엄청난 기운! 이자의 내력은 아버님 이상일 수도 있겠구나!'


일장연설을 토해내는 가운데 감정이 격앙됨에 따라 백완섭의 내재된 기운은 사방으로 뻗쳐가기 시작했고 그 기세에 압도된 공완정은 그의 무위를 추측할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인 공단은 무림맹의 부맹주로서 맹의 실질적 이인자였지만 그것은 맹주의 최측근이어서 얻어낸 자리일 뿐 그가 무림맹 내에서 맹주 다음가는 실력자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오직 실력만으로 무림맹의 핵심세력인 감찰단의 우두머리를 얻어낼 정도로 뛰어난 고수였으며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강호 오십 대 고수 안에는 너끈히 들 정도의 무공의 진보를 얻어냈으나 그녀는 백완섭에게서 부친에게 필적하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커져가는 그 기운에 갑갑함을 느낀 공완정은 목소리를 짜내어 불편함을 호소했다.


"알겠으니... 제발 고정하고 기운을 진정시키세요. 더이상은 버티기 힘드니..."


"아! 미안하오, 내가 잠시 흥분을 한 모양이구려."


자신의 실수를 알아챈 백완섭은 내력을 거두어 기운을 갈무리했고 자신을 옥죄던 압박에서 벗어난 공완정은 연신 캑캑대며 기침을 내뱉었다.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정을 취한 공완정은 자신에게 감정의 변화만으로 견디기 힘든 위압감을 안겨줄 정도의 고수가 검 앞에만 서면 발작하며 공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거기에 그렇게 두려워하는 검을 허리에 차고 다닌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본인이 직접 검을 쓰시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신가요? 검을 가지고 다니시는 걸 보니."


"이거 말이오?"


그녀의 손가락이 자신의 허릿춤의 장검을 가리키자 백완섭은 아무렇지도 않게 검을 들어보였다.


"상대가 들고 있는 것만 봐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데 어찌 내가 직접 칼을 손에 쥘 수 있겠소. 이렇게 검집에 얌전히 들어가 있으면 그냥 쇠막대기에 불과하니 이것이 익숙해지면 언젠가 검집에서 나올 날도 있으리라 믿고 있는게지."


"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인 셈이군요."


"그런 셈이오..."


공완정은 검이 주는 공포를 극복하고 나면 향후 어찌할 것이냐 묻고 싶었지만 혹시나 그것 또한 그에게 부담이 될 것임을 알기에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산 아래로부터 쩌렁쩌렁 울리는 사내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공 소저! 어디쯤 있는게요? 내가 왔소!"


한참을 멀리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소리는 거듭할수록 마치 옆에서 들린 소리만큼이나 깨끗하고 우렁차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은 목소리의 주인이 가진 내공이 그만큼 정순하고 심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초조해진 두영모는 한층 기운을 끌어올려 내공을 실어 크게 소리쳤다.


"완매, 나요! 이 두영모가 왔으니 있다면 어서 대답하시오!"


그 소리는 산 정상 위의 두 사람에게도 전달되었고 당사자인 공완정은 부끄러움에 낯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백완섭은 그런 공완정을 보고 빙긋이 미소를 띄웠다.


"저 자가 찾는 사람이 낭자인가보군. 정인이오?"


"아, 아니에요! 아니...저 사람은 제 일행이 맞지만 저의 정인은 아니에요."


두영모가 자신의 정인이냐는 백완섭의 질문에 공완정은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히며 필사적으로 그것을 부인했다. 허나 백완섭은 그 모습에 더욱 그녀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아직은 아니라는거군."


"그런게 아니라 저와 두 오라버니는 그런 관계가..."


발을 동동구르며 난처해하는 공완정을 보며 백완섭은 자신의 딸이 생각이 났다. 딸이 시집갈 때의 나이가 아마 눈 앞의 그녀 정도 됐었을 것이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는 혹여나 공완전이 볼 새라 재빨리 등을 돌렸다.


"더 이상 같이 있다간 낭자가 난처해질 수 있으니 난 이만 물러가겠소."


"아!"


발을 한 차례 놀려 정상 위에 남은 자신의 흔적을 지워낸 뒤 몸을 날리려는 백완섭을 공완정이 불러세웠다.


"제가 이 곳에 오면 또 만날 수 있을까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에요."


공완정에게 있어 백완섭은 이대로 보내기엔 너무 아쉬운 사람이었다. 정사를 초월한 인물임과 동시에 한 문파의 장문인 급 무위를 지녔으면서도 공황으로 인해 그것을 쓸 수 없는 기이한 인물.


유년시절 겪었던 백화혈사에서 자신의 아비가 보인 이중적인 면모에 환멸을 느낀 그녀에게 있어 백완섭은 그동안 자신이 가진 정파에 대한 의구심과 상실한 부정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부탁을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언제든지."


말을 마친 백완섭은 뿌연 안개 속으로 몸을 날려 그녀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홀로 남은 공완정은 소리를 내어 두영모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렸고 머지 않아 땀에 흠뻑 젖은 두영모가 그녀가 있는 정상으로 도착했다.


"헉헉. 완매, 별 일 없었소? 대답이 없기에 내 어찌나 걱정했는지 아시오?"


"미안해요, 오라버니. 잠시 생각에 잠겨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용서라 할 게 무어가 있소. 완매만 무사하다면 그것으로 됐소."





두영모는 자신이 원하는 천하인이 되기 위해 성품을 고치려 무던히 노력해왔다. 그러나 본디 타고난 성품인 오만함은 쉽게 고쳐지지 않아 그는 다소 자기 중심적인 면이 있었지만 그러한 성격도 공완정 앞에 서면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에게 있어 공완정은 그가 꿈꾸던 이상형에 딱 맞는 환상의 여인이었다. 무림맹의 이인자인 부맹주의 여식이라는 뛰어난 바탕에 여인의 몸으로 육신성으로 꼽힐만한 뛰어난 무의 재능, 거기에 나지안만 못하지만 눈에 띄게 아름다운 외모까지 갖춰 그야말로 재색겸비라는 말이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그렇기때문에 공완정에게 한눈에 반한 두영모는 정사대전이 마무리 된 뒤 조심스레 청혼을 하며 구애했지만 이에 부담스러움을 느낀 공완정은 그것을 거절했다.


그럼에도 두영모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렇다면 오누이처럼 가까이라도 남길 원했고 공완정은 그것마저 거절할 수 없기에 둘은 지켜보는 눈이 없을때는 서로를 오누이처럼 부르며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된 것이다.


"오라버니..."


"응?"


"과연 우리가 잘 하고 있는 걸까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요?"


"백발검귀 말이에요. 그 사람도 무언가 말하지 못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게 아닐까요? 무차별 살인귀가 아니라 정파나 무림맹의 인물만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해서요."


"쓸 데 없는 소리."


백완섭과의 대화 이후 생각이 많아진 공완정은 자신이 느끼는 의구심을 두영모에게 넌지시 내비쳤으나 그는 단칼에 잘라 말했다.


"이미 그의 손에 죽은 이가 수십이 넘었고 그 대상으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데서 그는 한낱 살인귀에 불과하오. 설령 그가 피치 못할 사정을 지녔대두 그의 벌인 살인 행각은 그 명분을 잃기에 충분히 끔찍하오.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게요."


"그냥...머릿 속이 복잡하네요."


"분명 피곤해서 드는 잡념일거요. 몸을 씻고 따뜻한 차를 한 잔하면 말끔히 씻겨내려갈 터이니 얼른 내려갑시다."


두영모는 혼란스러워하는 공완정을 다독이며 하산을 권유했고 그녀는 그를 따라 산을 내려갔다. 그녀는 하산 도중에도 혹시 백완섭이 보일까 이따금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곳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덜컹덜컹


"지미럴, 싸구려 수레라 그런지 엄청나게 흔들리는구만."


"허허. 조금만 참으시오. 저 들판만 넘으면 복수촌이 보일테니."


흔들리는 수레 위에서 투덜거리는 봉태산을 노새 위의 노인이 진정시키고 있었다. 수레에는 양대청과 같은 봉씨 세가의 가로인 홍제수와 그가 사모하는 나지안이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에선 귀공자에 맞지 않는 걸쭉한 욕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지금 그만큼 봉태산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바였고 그의 투정이 익숙한 홍제수는 애써 그를 달래며 말했다.


"백마차는 가주님께서 가져가시고 흑마차는 소가주님이 가져가셔서 세가에 남아 있는 마차가 없으니 어쩔 수 없지요. 그래도 올때는 흑마차를 타고 오실 수 있으니 이만 화를 푸시지요."


봉태산은 화가 온전히 풀리지 않은 듯 여전히 씩씩대고 있었으나 더이상 그의 입에선 욕설이 튀어 나오지 않아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음을 알 수 있었다.


이에 안심한 홍제수(洪提洙)는 수레의 앞을 바라보며 숨을 길게 내쉬었고 그와 밀접하게 붙어 있던 노새를 모는 노인은 홍제수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주인이 제법 까탈스러운 분인가보오."


"무공을 익히기 시작할 여섯 살이 될 때까지 제 발을 땅에 디디고 산 적이 없던 분이니 오죽 까탈스럽겠소?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홍제수는 제 주인인 봉태산에 들릴세라 마찬가지로 속삭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 대답을 들은 노인은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홍제수를 바라보았다.


"행색을 보아 꽤나 있는 집 자제일거라 생각했다만 무림인들이셨소?"


"암, 이 분이 바로 봉씨 세가의 차남이신 무림맹의 육신성 봉태산 소협이시고 저 분은 그 유명한 대성파 장문인의 여식이며 마찬가지로 육신성인 나지안 소저일세."


"그럼 댁은 뉘시우. 같이 다니는 당신도 보통 사람은 아니겠구려."


"큼큼, 나는 봉씨 세가에서 가로를 맡고 있는 홍제수란 사람일세. 부족하지만 대해수(大海手) 라는 별호로 조금 알려져 있지."


제 입으로 자신의 별호를 들먹이며 소개하는 것에 조금 민망한지 홍제수는 연신 헛기침을 했으나 노인은 이에 유념치 않고 멍하니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봉씨 세가에 대성파라...모두 정파 무림맹의 인물들이군."


덜컹!


부지런히 수레를 끌며 길을 걷던 노새들은 노인의 채근질에 맞춰 일제히 발을 멈추었고 덕분에 뒤따라 오던 수레 또한 갑작스레 멈추게 되어 그 반동으로 일행은 한바탕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한동안 얌전해졌던 봉태산의 성질을 돋구었고 그는 다시 패악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에이, 씨발! 손바닥만한 수레 하나도 제대로 못 모는 노인네를 믿고 탄 내가 병신이지. 영감, 수레 똑바로 안 몰아?"


"이보시오, 노인장.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오? 앞에 무슨 일이 생겼소?"


어린 소주인이 다시 날뛰는 것을 막으려 홍제수는 다급히 노인에게 수레를 멈춘 이유를 물었지만 그는 아무런 대꾸없이 노새에서 내려 안장에 매여진 짐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노새에서 내린 호리호리한 노인의 체형은 생각보다 키가 컸다. 아마도 키에 비해 팔과 다리가 길어 노새 위에 앉았을 때는 티가 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배꼽까지 늘어진 긴 팔꿈치와 웬만한 성인 남자의 명치 언저리에 닿을 법한 긴 다리. 노인은 검을 쓰기에 최적의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인이 짐가방에서 꺼낸 것 또한 기다란 장검이었다.


"정파와 무림맹의 인물들이라면 내 이대로 곱게 살려보낼 수야 없지..."


호인(好人)의 상을 가진 구부정한 노인이 허리를 곧추 세우고 검을 겨누자 돌연 일대 검호(劍豪)의 기도가 풍겨왔다. 검날에 반사된 서늘한 달빛은 노인의 은발 머리를 비추었고 그러자 노인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나지안은 조그맣게, 그러나 장내의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되내었다.


"백발검귀(白髮劍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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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귀서역로( 歸西域路)-2 +2 22.05.29 176 7 9쪽
40 귀서역로( 歸西域路)-1 +3 22.05.29 180 7 9쪽
39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10 +3 22.05.28 172 7 9쪽
38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9 +2 22.05.28 175 5 10쪽
37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8 +2 22.05.27 170 8 10쪽
36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7 +2 22.05.27 184 8 11쪽
»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6 +2 22.05.26 184 10 17쪽
34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5 +2 22.05.26 194 10 13쪽
33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4 +2 22.05.25 202 10 13쪽
32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3 +1 22.05.25 201 11 13쪽
31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2 +1 22.05.24 201 11 13쪽
30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1 +2 22.05.24 236 12 11쪽
29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2 +2 22.05.23 214 11 13쪽
28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1 +2 22.05.22 219 11 11쪽
27 망자회향(忘子回鄕)-7 +2 22.05.22 233 11 17쪽
26 망자회향(忘子回鄕)-6 22.05.21 223 9 11쪽
25 망자회향(忘子回鄕)-5 +2 22.05.21 241 9 12쪽
24 망자회향(忘子回鄕)-4 +3 22.05.20 239 11 12쪽
23 망자회향(忘子回鄕)-3 +5 22.05.20 251 11 17쪽
22 망자회향(忘子回鄕)-2 +3 22.05.19 254 11 14쪽
21 망자회향(忘子回鄕)-1 +4 22.05.19 297 1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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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사제지연(師弟之緣)-6 +2 22.05.17 283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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