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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공 문고전

추리무협(追利無俠)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토공공
작품등록일 :
2022.05.11 11:06
최근연재일 :
2022.06.29 00:10
연재수 :
71 회
조회수 :
17,651
추천수 :
803
글자수 :
388,926

작성
22.05.22 19:34
조회
218
추천
11
글자
11쪽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1

DUMMY

남정욱은 일찍 부모를 잃고 졸지에 떠안게 된 두 어린 동생을 부양하며 자랐다. 힘든 생활이었지만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보겠다는 일념하에 그는 최선을 다해 동생들을 보살폈다.


그러나 그런 남정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어린 두 동생은 흉년을 넘기지 못하고 차례로 아사(餓死)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그에게 하늘이란 불행만을 안겨주는 끔찍한 존재였고 미신과 운명같은 불확실한 것들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산에 올라 나무 뿌리와 먹을 수 있는 풀을 닥치는 대로 캐던 남정욱은 평소보다 많은 수확에 들뜬 나머지 발 밑을 지나는 뱀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밟아버리고 말았다. 유난히도 빨간 대가리를 가진 그 뱀은 물리게 되면 열 걸음을 걷지도 못하고 그대로 사람을 죽인다 하여 십보사(十步巳) 또는 십보사(十步死)라고 불리는 독사였다.


극심한 고통에 남정욱은 자리에 굳은 채 바구니에 들은 풀들을 허겁지겁 씹어대었다. 어떤 풀들이 독이 있고 또 효능이 있는 풀인지는 몰랐으나 아무거나 먹으면 그 중 하나는 해독 작용을 하지 않을까하는 희망이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의 바구니 안에는 독사의 독을 해독하는 성분을 지닌 풀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참을 붉으락 푸르락 피부의 색이 바뀌며 마비된 사람처럼 부들거리던 그는 그 자리에서 이틀이 지난 뒤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독사에게 물린 발은 언제 물렸냐는둥 통증 하나 없었고 다행히 해독이 된거라 생각한 그는 얼른 짐을 챙겨 마을로 내려왔다.


그 후로 그는 모든 일을 함에 있어 전보다 수월해짐을 느꼈다. 제 아무리 무거운 물건이라도 조금만 배에 힘을 꽉 주면 거짓말처럼 알 수 없는 힘이 생겨나 쉽게 나를 수 있었다. 고작 열 다섯살의 아이가 마을의 장사보다도 힘이 세졌으니 그의 이름은 근방에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힘을 얻게 된 사건의 진상은 뱀에 물린 그가 닥치는대로 주워먹었던 풀중에 만년빙설화(萬年氷雪花)라는 극음의 기운을 띈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년빙설화는 천천히 땅에 내린 음기를 빨아들이는 데 그것이 만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꽃을 피운다. 음기의 무공을 연마하는 자가 그 꽃의 음기를 흡수하게 되면 천하의 어떤 자도 감히 당할 수 없는 지고한 내공을 얻게 된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음기의 무공을 쓰지 않는 자들이 그 기운을 흡수하게 되면 즉시 단전에서부터 냉기가 퍼지기 시작하여 온몸이 꽁꽁 얼어 붙게 만들기 때문에 극음의 무공을 쓰는 이들에겐 천고의 영약, 그렇지 않은 자들에겐 지독한 독약이었다.


다행히도 남정욱이 물린 칠보사의 독은 극양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고 냉기를 띤 만년빙설화가 그것을 중화시켜준 것이다. 거기에 아직 만년이라는 시간이 되지 못해 꽃을 피우지 못한 봉우리 상태였기에 그 냉기가 덜하여 칠보사의 독과 어우러져 그의 몸에 극양과 극음의 조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연유는 알지 못한 채 그저 온 몸에 넘치는 힘을 주체 못한 남정욱은 그 힘을 밖으로 돌려 근방의 왈패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규합해 하나의 세력을 만들었다. 스물이 되기 전에 그는 마침내 한 개의 현을 넘어 다섯 개의 현을 아우르는 왈패 조직의 수장이 되었다.


비록 무공을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나 남정욱이 가진 신력(神力)은 어줍잖은 무공을 배운 하급 무사들은 감당해내기가 힘들어 번번히 그에게 혼쭐이나고 돌아가기 일쑤였다. 그렇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살던 남정욱은 어느날 한 비쩍 마른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마을의 상인들을 순회하며 보호세를 징수하던 그를 본 외지에서 온 노인이 그를 크게 꾸짖었다.


"젊은 놈이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소상인(小商人)들을 핍박하여 고혈(膏血)을 빨아먹느냐, 인생을 똑바로 살거라!"


"아이고, 어르신 그냥 조용히 드시다 가십시오. 후환은 우리가 당하게 됩니다."


"주인장은 걱정할 필요 없소. 내 오늘 저 놈들의 버릇을 고쳐줄터이니."


자기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작은 노인이 팔뚝을 걷어붙이고 씩씩거리는 것에 남정욱은 코웃음을 치며 주변의 부하들에게 그를 처리할 것을 명령했다.


"얘들아, 저 어르신이 북망산(北邙山) 가는 길을 여쭙신다. 길 안내 해드려라."


"예잇!"


노인의 작은 몸은 금새 커다란 덩치의 왈패들에게 둘러쌓여 가리워졌다. 좋지 않은 꼴이 일어날 것이라 눈을 가린 시장 상인들은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거구의 사내들이 거짓말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을 보게되었다.


"무...무림인이다!"


"와아! 와아아!"


작은 체구의 노인이 어찌 젊은 장사들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그것은 노인이 무공을 쓸 줄 아는 무림인이기에 가능했다. 노인은 하나 둘 걸리적 거리는 왈패들을 날려보낸 뒤 마지막 홀로 남아있는 남정욱에게 다가갔다. 남정욱은 노인의 기세에 눌리지 않으려 악을 쓰며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제...제길! 어디 내가 무림인을 한 두놈 상대해 본 줄 알아? 무공 좀 쓴다고 깝짝거리다 이 손에 짜부라진 놈이 한 둘이 아니다 이말이야!"


"나도 너처럼 힘 좀 쓴다고 깝짝거리는 놈들 한 두번 짜부라트린게 아니니 걱정말거라."


후우웅-


남정욱이 무섭게 날린 주먹은 금방이라도 노인의 어깨를 으스러트릴 것만 같았으나 노인은 살짝 피한 뒤 발을 걸어 그를 가뿐히 넘어트렸다. 노인에게 들이닥치던 기세를 못 이긴 남정욱은 팽이처럼 빙그르 돌며 바닥에 얼굴을 쳐박았다. 그 모습을 본 시장통의 상인들은 저마다 얼굴을 가린채 쿡쿡대고 웃었다.


"웃지마! 이 씨발!"


얼굴이 진흙 투성이가 된 남정욱은 상인들을 번갈아 훑어보며 누가 웃고 웃지 않았는 지를 파악하려했다. 살벌한 그의 눈빛에 상인들은 언제 웃었냐는듯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노인은 더욱 분기탱천(憤氣撐天)하여 고함을 질렀다.


"할! 머리에 핏기도 안 마른 놈이 벌써부터 사람들을 윽박지르는 데에 도가 텄구나! 내 오늘 네 놈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마."


노인은 바닥에 널부러진 젓가락을 집어 회초리처럼 남정욱의 전신을 때리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도 충분히 부러트릴 수 있는 가느다란 젓가락이건만 두드려 맞는 남정욱은 그것에서 천근만근 같은 거압(巨壓)이 느껴졌다.


"억! 억!"


"요놈! 요놈!"


노인의 젓가락이 몸에 닿을때마다 남정욱의 몸은 활처럼 크게 휘어졌다. 동생들을 키우기 위해 구걸, 절도를 하면서 수많은 구타와 폭력을 당했지만 이렇게 눈물이 찔끔 날때까지 아픈 적은 처음이었다. 남정욱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있었다.


반면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노인 역시 내심 남정욱의 맷집에 대해서 놀라고 있었다. 비록 검과 같은 살상 무기는 아니었지만 내력을 가득 담은 젓가락으로 수십, 수백 번을 두들겨 팼는데도 아직도 혼절하지 않고 버티는 그를 보며 경탄했다.


'허허, 이 놈 타고난 신력이 어떻길래 내공도 없는 놈이 이리 잘 버틸 수가 있단 말이냐?'


노인은 남정욱을 의식을 잃을 때까지 적당히 혼쭐을 내 준 뒤 정신이 들고 나면 크게 호통쳐 잘못을 뉘우쳐 개심(改心)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계획과 달리 남정욱이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텨내는 바람에 오히려 노인의 팔 힘이 먼저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매를 맞던 남정욱이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리게 되었다.


'어? 갑자기 매가 약해진 걸 보니 드디어 이 늙은이의 힘이 빠졌나보다.'


"으리야압!"


노인의 공격이 견딜만해진 남정욱은 남은 힘을 긁어 모아 괴성을 지르며 노인에게 머리를 갖다 박았다.


퍽-


"윽!"


예상치못한 남정욱의 강력한 박치기에 노인은 코가 깨져 뒤로 나자빠졌다. 뒷골목에서 배운 막싸움에 익숙한 남정욱은 그의 위에 올라타 꽉 쥔 주먹으로 노인의 안면을 흠씬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당한 고통을 되돌려 주려 신이 난 그는 자신의 밑에 깔린 노인의 몸에서 상상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의해 튕겨져 나뒹굴었다.


남정욱을 튕겨낸 노인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소매를 들어 코를 쓰윽 훔쳤다. 힘이 장사인 남정욱에게 두들겨 맞은 노인의 얼굴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무림인이 아닌 일반 왈패 따위에게 구타를 당했다는 분노에 노인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결국 남정욱의 가슴팍에 전력이 가득 담긴 일장을 날렸다.


펑-


"우왁!"


"앗차!"


내공이 없는 일반인에 내공이 실린 격공장을 날렸다는 실수에 크게 놀란 노인은 손을 접어 내력을 회수하려 들었지만 이미 날아간 공력은 남정욱의 몸에 적중하고 말았다.


'내가 아직 수양이 부족하구나...일반인에게 살수를 쓰고야 말았어!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노인은 자신의 감정 조절 실패로 애꿎은 목숨 하나를 거두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노인의 걱정과 달리 남정욱은 죽지 않고 꼿꼿이 제 자리에 서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 그는 욕설을 중얼거리다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이 빌어먹을 노인네, 이게 대체 뭐야..."


털썩-


쓰러진 남정욱에게 한 달음에 다가간 노인은 손으로 맥을 짚어 그의 생사를 알아보려 했다. 다행히 남정욱은 죽지 않고 숨이 붙어있었고 그의 몸을 진찰한 노인은 그가 살아 있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제대로 단전이 형성되지도 않은 일반인의 혈맥속에 역동적으로 빠르게 흐르는 움직이는 기운을느낀 노인은 그가 움직이는 영약 덩어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의 몸 한 구석에서 온 몸을 태울 듯한 기운이 한 차례 스쳐 지나가고 나면 곧바로 차가운 기운이 그것을 싸늘하게 식혀주었다. 마치 대장간에서 검을 만들 듯 그의 체내에선 그도 알지 못하는 기운의 담금질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무림인인 자신의 내공이 담긴 장력을 정통으로 맞고도 숨이 붙어있을 수 있었으리라.


정신을 잃고 축 눌어진 남정욱의 앞섶을 틀어 쥔 노인은 시장의 상인 한 명을 불러 세웠다.


"이보시오, 주인장."


"넵, 어르신!"


"이놈의 패거리들이 깨어나면 너희 두목의 목은 내가 받아간다 일러주시오. 그리고 또 말썽을 부리게 되면 다음엔 너희의 차례라고도."


"네, 알겠습니다. 어르신."


그렇게 남정욱의 패거리에게 으름장을 놓은 노인은 자신보다 훨씬 큰 남정욱을 어깨에 들쳐메고 복잡한 시장통 사이로 걸어가 사라졌다.


그 날 이후로 다섯 현을 아우르는 큰 세력을 이루었던 남정욱의 패거리는 예전처럼 갈가리 찢겨져 저들끼리의 다툼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리고 다시는 남정욱이 수장이었던 그 때의 그 성세를 이루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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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9 정원교
    작성일
    22.05.22 21:42
    No. 1

    작가님 제목에 무공 무자를 쓰지 않고 없을 무자를 쓰셨네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토공공
    작성일
    22.05.23 00:16
    No. 2

    네, 이 작품의 제목에 들어가는 무협의 무 자는 정원교 님이 보신 대로 없을 무가 맞습니다.

    작중 무림 세계의 세태가 이젠 모두가 이득(利)이 되는 것만을 쫓기에(追) 더이상 협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황폐한 무협(無俠)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하나의 언어유희입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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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귀서역로( 歸西域路)-1 +3 22.05.29 180 7 9쪽
39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10 +3 22.05.28 172 7 9쪽
38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9 +2 22.05.28 174 5 10쪽
37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8 +2 22.05.27 170 8 10쪽
36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7 +2 22.05.27 184 8 11쪽
35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6 +2 22.05.26 183 10 17쪽
34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5 +2 22.05.26 194 10 13쪽
33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4 +2 22.05.25 202 10 13쪽
32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3 +1 22.05.25 201 11 13쪽
31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2 +1 22.05.24 201 11 13쪽
30 백발검귀 토벌전(白髮劍鬼 討伐戰)-1 +2 22.05.24 236 12 11쪽
29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2 +2 22.05.23 214 11 13쪽
»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1 +2 22.05.22 219 11 11쪽
27 망자회향(忘子回鄕)-7 +2 22.05.22 233 11 17쪽
26 망자회향(忘子回鄕)-6 22.05.21 223 9 11쪽
25 망자회향(忘子回鄕)-5 +2 22.05.21 241 9 12쪽
24 망자회향(忘子回鄕)-4 +3 22.05.20 239 11 12쪽
23 망자회향(忘子回鄕)-3 +5 22.05.20 251 11 17쪽
22 망자회향(忘子回鄕)-2 +3 22.05.19 254 11 14쪽
21 망자회향(忘子回鄕)-1 +4 22.05.19 297 1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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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사제지연(師弟之緣)-7 +3 22.05.18 282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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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사제지연(師弟之緣)-4 +1 22.05.16 303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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