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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빗 님의 서재입니다.

거울 속 유사인외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완결

솔빗
작품등록일 :
2023.01.14 01:10
최근연재일 :
2023.04.10 00:04
연재수 :
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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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0
추천수 :
1
글자수 :
486,607

작성
23.01.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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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 요정수저

DUMMY

해묵은 금제가 있음을 알고 있다.


회귀를 탐욕스럽게 반복한 이는 요정으로, 빙의로 분노를 토해낸 이는 인격신으로, 환생에 어리석음을 더한 이는 마귀로 추락한다.


그리하여 뭇 지혜롭다 자부하던 이들은 쇠락을 면치 못했으니, 지성과 사회성, 종교성이 동시에 남은 것은 사람뿐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저 금제에 걸렸음에도 사람의 형상에 오감과 자아가 유지되는 지 알 수 없었다.


거울 속에 다소 특이한 몰골이 보인다. 마귀가 될 뻔한 얼굴에, 인격신 화신체로 착각할 만한 병색, 놋쇠 요정이 아닌 지 의심되는 작은 키.


거울을 보며 손을 뻗어 진흙 주무르듯 외형을 주물렀다. 부푼 심해어 같은 얼굴을 젖살이 남은 다람쥐 같은 얼굴로, 누렇고 짧은 팔다리를 사람다운 수준으로 늘려본다.


목의 아가미를 짓뭉개고 있는 동안 마귀들이 내 귓가에 몇 마디 속삭임을 전했다.


“주인님께서 부르십니다.”


거울 너머 현실로 돌아가니 내 방구석을 청소 중인 요정들이 보였다. 그리고 요정들 중 닭의 모습을 한 것이 내 안내를 하겠다며 나섰다.


시궁창 냄새가 진해지는 방까지 발걸음을 옮기니 닭 같은 요정이 머리를 떨며 말했다.


“약속하신 대로 제 가족들이 다음 생엔 사람이 되게 해주십쇼.”


바들바들 떠는 닭 요정의 목을 뒤트는 건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촌구석 토박이답게 닭 목을 화장실에서 쉽게 비틀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기억을 묻어두며 시궁창 냄새 나는 방문을 열었다.


얼룩덜룩한 방에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고치가 보였다. 고치에 연결된 금속관들을 닦던 요정들이 내게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곧 고치가 울리며 말을 내뱉었다.


“이번 네 회귀는 몇 번째냐. 아들아.”


“2번째입니다.”


거짓말이다. 저 고치 모양의 종양 덩어리가 아버지이긴 하지만 정해진 답이 아니면 흉포해지는 요정 출신 악신이기도 하다. 던전 속 인격신 몇을 쓰러뜨린 회귀자다운 말년이다.


“정말이지?”


고치가 울룩불룩해지며 검게 물들었다.


“정말이니까 진지나 잡수세요.”


손에 있던 닭 요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 아버지는 한동안 조용히 지내시겠지. 아버지가 완전히 조용해지기 전에 몇 마디 더 말했다.


“제가 부모 등골 빨아먹는 히키코모리인 건 기억하시죠?”


“정신적 충격은 그만 줘라. 치매 심해진다. 그리고 이 아비도 잘 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집 밖으로 몸을 옮겼다. 기억 속에서 찾아야 할 것들의 목록을 끄집어내며.


대부분의 소시민들이 작은 동굴 수준의 폐던전에서 폐품들을 주워 먹고 사는 시대다.


학자들이 과연 이런 미래를 상상했을까? 내 윗세대 사람들 중 몇몇은 평행세계와 이계에서 폐던전들이 쏟아졌을 때 상태창을 외치며 환호했다지.


다만 그 상태창은 회귀, 빙의, 환생을 제시하더니 그 결과로 인간을 다양한 종으로 나누고 사라졌다. 요정에 가깝게 변이한 내 가족이 그나마 행복해서 요정수저나 귀쟁이수저로 불렸던 걸 기억한다.


인격신이 된 이들은 대부분 봉인된 채 제사장의 비위를 맞추며 제사음식을 맛보는 거 외엔 아무 것도 못하게 되었고, 마귀가 된 이들은 듣고 속삭이는 것 밖에 못해서 대부분 통신, 감청 도구로 부려 먹히는 형국이다.


개개인들이 그러하자 나라나 권력도 엉망이 된 걸로 안다. 그래도 많은 회귀자들의 희생으로 던전들과 기존 세계질서는 빠르게 수습되었다. 기존의 자본주의 질서가 폭력 위주의 질서에 많이 잡아먹힌 것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잡생각을 하다 보니 집 근처의 저수지형 폐던전이 눈앞에 보였다. 심해처럼 변질되어 폐품 수거가 번거로운 곳이다. 거기에 기계문명의 혜택을 볼 수 없는 유형의 폐던전이라, 특이한 상황을 제외하면 경쟁자가 없다시피 했다.


폐던전의 출입구에는 어설픈 사람 행세를 하는 관리자 골렘이 대기하고 있었다. 골렘은 경직된 음성을 내뱉었다.


“한반도 출신 유사요정 관료의 자제분으로 기억합니다만. 마법대학 0교시일 시간인데 왜 여기에?”


“20년 전 얘기를 또 하시는군요. 아버지는 퇴직했고, 전 폐품 수거꾼이 된지 오랩니다.”


“기억 누락 건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던전의 탐사 권한을 보여주십시오.”


고물 스마트폰의 검은 표면 너머에서 자격증 하나를 꺼내 골렘에게 건네었다. 골렘은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 거울 주술은 아무리 봐도 신기하군요. 빛이 반사되는 단면만 있으면 뭐든 보관했다가 꺼내 쓸 수 있다죠?”


“결국 이것도 폐던전과 다를 바 없는 겁니다. 꺼낸 게 해방 대기 중인 이계의 악마일 때도 있어요.”


골렘에게의 답변이 사실이긴 하지만 나의 거울 주술은 좀 다른 경우였다. 여러 왜곡된 회귀를 겪으며 나 자신과 거울 주술, 악마, 마귀들이 전부 뒤섞여 합쳐진 것이었다. 그래서 해방된 악마들이 내 행세를 하는 것과 다름없는 처지였다.


내 본체는 인격신들이 던전 등에 갇혀있듯이 거울 주술 그 자체로 박제된 신세다. 그나마 그 악마들이 나를 구성하는 부속품이자 자아 없는 꼭두각시인 점은 비교적 낫다고 생각한다.


골렘이 이계 금속으로 된 자격증을 느릿하게 살피더니 출입구를 열어주었다. 출입구 너머로 짙은 물비린내가 훅 풍겼다. 뒤이어 무수한 늪요정들이 떠드는 소리가 돌 구르는 소리나 물 흐르는 소리처럼 울려왔다.


옛 유럽의 설화와 폐던전들이 섞이며 쏟아낸 외래종이다. 이야기와 이계 쓰레기가 합쳐지는 일이 예전부터 꽤 생겼는데 이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달랐다. 어쨌든 지금 상황에 그 견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여러 나라를 거쳐 한반도에 대량 정착한 이 늪요정들은 유독 독하고 추했다.


중부 유럽 국가들에서 내전을 일으키다 도망치고, 결국 중국이나 러시아, 한국, 일본 등에서 부유층의 별미로 전락하고도 살아남아서일까? 아니면 늪요정들의 새 고향인 한반도의 기후가 제법 악독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늪요정들의 시끄러운 목소리를 쫓아 손을 뻗으니 제법 여러 늪요정의 머리채가 잡혔다. 그 질긴 머릿가죽을 벗겨내니 피투성이 머리 안쪽에서 마력이 느껴졌다.


그 마력이 익사 마법으로 이어지기 전에 그 작고 무른 두개골들을 짓이기고 던전의 마력석 파편들을 끄집어내 삼켰다.


그 맛의 청량감이 대단했다. 수많은 회귀 끝에야 이 맛을 제대로 느낀다.


이 맛과 향은 섭취자의 심리적 불쾌감에 따라 없어지기도 했기에, 사람의 뇌를 파먹는다는 인식이 있는 대부분의 폐품 수거자들은 무미무취의 역겨움만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마력석으로부터 마력뿐만 아니라 미식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나는 그 동시에 스스로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보편적인 사람의 기준, 기본이라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선을 넘으면 나 역시도 저 추한 요정이나 종양이 된 아버지, 닭 요정 같은 게 될 수 있었다.


선을 넘고 금제들을 무시하고도 아직 사람 형태인 이유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 집구석엔 오직 노예 본능으로만 이루어진, 요정노예들로 전락한, 참담한 이들이 많았으니까. 아버지는 동료 직원들이 요정노예로 변하자 처음엔 각종 보호책과 자유를 주었지만 그들의 더 비참한 최후를 보고 그 결정을 후회했다.


다시 잡생각을 반복하며 40명 정도의 늪요정 마석을 흡수하고 있으려니, 그 냄새를 맡고 온 이 던전의 간수가 저 너머로 보였다.


물 위로 슬쩍 내민 간수의 머리만 보면 과연 유혹으로 익사시킨다는 요정 설화가 이해가 갈 정도다.


하지만 서서히 드러나는 아래턱부터는 흉물 그 자체였다. 남성기의 포르말린 절임을 연상케 하는 첫 번째 머리와 사족보행형의 도롱뇽 몸, 꼬리 끝에서 익사해 썩어가는 세 번째 머리가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역겨운 잡종은 다행히 전신을 전부 드러내기도 전에 거울주술에 속박 당했다. 마석과 주술이라는 비현실을 매개로 악마들이 자유롭게 날뛰었기 때문이었다.


내 왼쪽 새끼손가락 하나의 영구적 손실과 40명 이상의 마석은 속박에 더해 물 표면을 거울로 삼아 일시적 형상을 빚어냈다.


그 형상은 황소상어의 머리를 만들더니 첫 번째 머리를 물어뜯고, 여성 얼굴 형태의 두 번째 머리를 뽑아내 내 쪽으로 던졌다.


사람보다는 진흙덩어리 질감인 두 번째 머리는 무척 약하다 못해 녹아내릴 정도였다. 그리고 난 그 안쪽에 세차게 고물 스마트폰을 꽂아 넣었다.


그 충격에 스마트폰 화면에 금이 갔지만 매끄러운 화면이 남아있어 괜찮을 거라 여기며 두 번째 머릿속 마석과 그 화면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 순간, 폐던전은 간수의 죽음을 인식하고, 숨어있던 다른 늪요정을 간수로 재조정하는 마법을 물속으로 우겨넣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깨진 화면에 핏빛 손가락들이 비치며 투박한 글씨들을 그려냈다 지워내기를 반복했다.


「이게 대체 뭐야.」


「여긴 어디고 난 왜 갇혀 있어?」


「혹시 치안과 범죄를 관할하는 인격신이십니까?」


「여긴 이계가 아니라 연좌제 적용 안 된다고.」


「인격신이라면 날 여기서 내보내.」


「날 가둔 게 범죄 행위라고!」


「나 용 아니라고 했잖아요!」


「가축 아니라고!」


나는 마지막 글씨를 보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당신은 가축이 맞아. 서로 다른 이계 출신의 생물 사이에서 태어난 용 잡종이지. 인격신 노덴스의 늪요정 사생아가 수간을 하는 바람에 태어난 성욕부산물.”


「가축 아니라고!」


“당신을 도축용으로 잡긴 했지만, 그 전에 당신 어머니의 스승과 연락하고 싶어.”


「가축 아니라고! 내겐 천부인권이 있어!」


“인권 개념은 무의미해진 지 꽤 됐어. 이번엔 폐던전의 세뇌 때문에 많은 기억이 휘발된 것 같네. 악신의 환생 시스템을 빌려 언젠가 멀쩡한 새 몸을 만들어 줄게.”


「새 몸에 대한 대가는 그 스승과의 연락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아니. 부족해.”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던전 출입구로 나아갔다.


고물 스마트폰이 멀쩡해진 것처럼 계속 진동했지만 나는 무시했다. 그녀는 받아낼 것이 많은 가축이었다.


환생할 그녀의 척추 뼈는 내가 다시 사람의 몸을 되찾게 해줄 핵심 부품이기도 했다. 앞으로 있을 그 만행들에 굳이 변명하자면, 사람의 피가 지나치게 옅고, 폭급하고 본능적인 걸 어찌 사람이라 하겠는가.

230104.png


작가의말

2023.02.21 16:43

마귀들의 속삭임에 대한 내용들이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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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어설픈 글을 완결한 이후의 짤막한 후기 23.04.10 41 0 1쪽
81 81. 한 회귀의 끝 (1/1) 【완】 23.04.10 26 0 13쪽
80 80. 젊은 신들 (4/4) 23.04.07 27 0 8쪽
79 79. 젊은 신들 (3/4) 23.04.07 51 0 20쪽
78 78. 젊은 신들 (2/4) 23.04.05 31 0 13쪽
77 77. 젊은 신들 (1/4) 23.04.05 22 0 12쪽
76 76. 우화 (2/2) 23.04.03 32 0 12쪽
75 75. 우화 (1/2) 23.04.03 31 0 15쪽
74 74. 옛 요정의 최후 (2/2) 23.03.31 41 0 14쪽
73 73. 옛 요정의 최후 (1/2) 23.03.31 34 0 14쪽
72 72. 잘린 꼬리들 (2/2) 23.03.29 21 0 17쪽
71 71. 잘린 꼬리들 (1/2) 23.03.29 27 0 9쪽
70 70. 미완성품 (2/2) 23.03.27 39 0 17쪽
69 69. 미완성품 (1/2) 23.03.27 18 0 7쪽
68 68. 일꾼들 (2/2) 23.03.24 20 0 12쪽
67 67. 일꾼들 (1/2) 23.03.24 16 0 13쪽
66 66. 거머리의 비의 (2/2) 23.03.22 80 0 14쪽
65 65. 거머리의 비의 (1/2) 23.03.22 28 0 12쪽
64 64. 불사자 (2/2) 23.03.20 15 0 15쪽
63 63. 불사자 (1/2) 23.03.20 18 0 10쪽
62 62. 합일 (4/4) 23.03.17 16 0 9쪽
61 61. 합일 (3/4) 23.03.17 14 0 15쪽
60 60. 합일 (2/4) 23.03.17 18 0 11쪽
59 59. 합일 (1/4) 23.03.17 16 0 15쪽
58 58. 치유 (2/2) 23.03.15 14 0 12쪽
57 57. 치유 (1/2) 23.03.15 16 0 13쪽
56 56. 홍수 (2/2) 23.03.13 18 0 13쪽
55 55. 홍수 (1/2) 23.03.13 16 0 12쪽
54 54. 기억 편집 (2/2) 23.03.13 18 0 11쪽
53 53. 기억 편집 (1/2) 23.03.13 15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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