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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부금 님의 서재입니다.

화약의 마법사

웹소설 > 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판타지

할부금
작품등록일 :
2013.07.16 17:49
최근연재일 :
2013.07.27 03:53
연재수 :
8 회
조회수 :
4,069
추천수 :
200
글자수 :
45,175

작성
13.07.17 19:27
조회
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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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글자
11쪽

전형적인 비극 -2-

DUMMY

해거드는 정확히 문을 세 번 두드렸고, 잠시 후 삐그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살짝 열렸다. 그 소리들간의 간격이 너무나 절묘해 아리시안은 이 일련의 소리들이 화음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열린 문의 틈새로 한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노을빛으로 불그스레해진 노인의 회색 눈동자는 노골적인 불신의 감정을 담고 있었다. 해거드와 노인은 잠시 그렇게 서로를 응시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노인이었다.


"누구시오?"

"플레메스 루푸스랜드야드 소속 형사 해롤드 그레이엄입니다. 야콥스 슈마허씨 맞으십니까?"


해거드는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 했다. 그림자 속에 묻힌 노인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노인의 눈동자가 해거드 옆에 서있는 아리시안에게로 향했다. 노인은 해거드의 질문을 무시한 채 말했다.


"그럼 그쪽은?"

"제 부관이죠."

"당신네들 경찰은 부관으로 스무 살도 안된 어린 애를 데리고 다니나?"

"이 아이는 견습생입니다."

"형사가 견습생을 데리고 다닌다고?"

"우리는 그렇습니다. '외국인'씨, 이제 저희를 집 안으로 들여보내 주시든지, 아님 친절히 서에서 얘기하시든지 결정해 주시죠."

해거드는 씩 웃으며 협박조로 말했다. 노인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현명하군. 해거드는 마음 속으로 쾌제를 불렀다. 확실히 노인은 학자였다. 그는 자신이 내놓을 패가 얼마 없다는 것을 깨닫자, 별다른 반항 없이 방어선을 뒤쪽으로 물렀다. 학자 부류의 사람들은 지극히 이성적이었기 때문에 포기도 빨랐다.


해거드와 아리시안은 코코넛 그림이 그려진 붉은 카펫이 깔린 방으로 안내 받았다. 사실상 그 방은 화장실과 부엌이 마련된 두 개의 작은 방을 제외하면, 이 주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방 안에는 침대와 책장, 그리고 오크나무로 만든 값진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벽에 난 사각형 창문을 통해 지평선 밑으로 침몰하는 태양의 단말마같은 노을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고, 그 빛이 방 안에 얼룩덜룩한 그림자가 지게 만들었다.


"소박한 집이군요."

해거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을 하기 위해 내 집에 침입한 건 아니라고 믿겠소."

노인, 야콥스 슈마허가 천천히 의자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슈마허는 자신을 형사라 주장하는 청년과, 그 옆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있는 소녀를 훑어내듯이 탐색했다.

청년, 아니 '형사 해롤드' 는 짧은 갈색 머리카락과 녹색 눈동자를 가진 전형적인 연합왕국식 백인이었다. 헐렁한 갈색 외투를 몸에 걸치고 있었는데, 그와는 대조적으로 흰 셔츠는 말끔히 다림질되어 있었다. 몸은 날렵해 보였고, 건조한 느낌의 눈초리는 보는 이의 마음을 긁어내는 묘한 공격성이 담겨져 있었다.

한편, 그 옆의 여자아이는 매우 이국적, 아니 '이색적'이었다. 그녀는 만년설처럼 하얀 피부와, 그보다 더 하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인상깊은 머리카락은 허리 밑으로까지 내려왔으며, 그녀가 머리를 흔들 때마다 은빛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둥글고 큰 눈은 석류열매처럼 붉었고, 아주 아름다웠다. 볼에는 젖살이 올라 있었지만 이목구비는 명확해 막 여인이 되려는 소녀의 불완전한 매력을 또렷이 발산했다. 소녀는 머리에 붉은 베레모를 쓰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붉은 코트를 몸에 망토처럼 두르고 있었다. 그것들은 옷이라기 보다는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갑옷에 가깝다는 느낌을 주었다.


한편, 해거드 역시 슈마허를 염탐했다. 잘 빗어넘긴 잿빛 머리카락과 단정한 콧수염은 신사적이었다. 해거드를 쏘아보던 회색 눈동자는 노인의 그것답지 않은 생명력을 담고 있었다. 깔끔한 회색 정장은 예복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해거드는 슈마허에게서 일종의 광기를 발견하길 고대하고 있었다. 그의 억측에 가까운 연역을 증명해 줄 살인자의 충동적인 폭력성을. 그러나 슈마허는 백지처럼 깨끗해 보였고, 해거드에게 주어진 시간은 별로 없었다. 해거드는 다음 전략을 추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최근 이 주택가 인근 지역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물론 알고 있소."

해거드의 어깨가 움찔했다. 슈마허는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말을 이었다.

"나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몸이에요. 학생들도 근래 갑자기 일어난 살인사건 때문에 놀란 눈치더군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거기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소."

"물론 그러시겠죠. 하지만 이 연쇄 살인사건은 당신이 이 도시에 정착한 지 불과 3일도 안되서 갑작스럽게 일어났습니다."

"그것 참 공교롭군.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시오. 내가 알기로 그 연쇄 살인범은 1달 동안 5명의 사람을 죽였다는데, 그 동안 경찰의 추적을 교묘히 피해다녔소. 즉 이 도시의 상황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란 것 아니겠소? 나는 이 마을에 온 지 얼마 안되는 늙은이지."

"정확한 지적이네요."

아리시안이 끼어들었다. 해거드는 아리시안을 향해 눈총을 주었다.

"자네에게 말하라고 한 적은 없네 미스 코넬. 어쨌든 슈마허씨..."


해거드는 말을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당신의 기록을 좀 살펴봤었습니다. 당신은 신성제국동맹에서 왔죠. 그렇죠? 그리고 당신은 그 곳에서 자유마법협회의 협회원으로 활동한 바 있고, 갑작스럽게 경력을 끊고 이 나라로 망명왔습니다."

"그렇소. 사실 난 내가 자유마법사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다닌 적은 없으니 그렇게 비밀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되오, 젊은 양반. 그리고 내가 제국동맹에서 '탈출한' 이유는...마법보다는 학문적인 이유 때문이오."

"물론 그러시겠죠. 하지만..."

"그것보다는 자칭 형사 양반, 이번에는 내가 묻고싶군."

"뭘요?"

슈마허는 잠시 입을 다문 채 물끄러미 해거드와 아리시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내가 마법협회에 몸담고 있던 시절에, 난 썩 훌륭한 마법사는 되지 못했소. 마력코드가 그리 많지 않았거든. 하지만 다른 재능이 하나 있었지. 다른 마법사들의 마력코드를 파악하는 재능이었소. 난 당신과, 그리고 당신 옆에 있는 그 소녀의 몸에 들끓는 마력코드를 볼 수 있소."


해거드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는 반사적으로 아리시안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리시안 역시 경악스러운 표정인 건 마찬가지였다. 해거드는 애써 침착한 척 하며 천천히 슈마허를 바라보았다.

"역시 당신은 마법사였군."

"사실이오."

슈마허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당신들은 경찰이 아닐거요. 일개 경찰서가 당신들처럼 훌륭한 마법사들을 대동할 여유는 거의 없으니까. 아마 자유마법사인 나를 감시할 목적으로 온 왕국 요원들이겠지."

해거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슈마허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난 기꺼히 당신들을 이해하겠소. 자동차에 장착된 내연기관 하나에도 마력코드가 입력되는 요즘같은 세상에도 자유마법사들은 그리 환영받는 존재들이 아니니까."


그 한 마디로 슈마허는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비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오로지 승자만이 베풀 수 있는, 오만함과 동정심으로 가득 찬 자비였다. 그는 왕국 요원들이 다시는 그의 뒤를 밟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고 해거드들을 보내주었다. 해거드는 호주머니에 두 손을 푹 넣은 채 승용차 주위를 맴돌았다.

"그래. 네 말대로 됐구나. 우린 아마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척후 작전으로 왕국군 역사에 길이 남게 될거야."

그는 자동차의 트렁크 위에 앉아 두 다리를 교차시키며 흔들고 있는 아리시안을 향해 체념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근거가 너무 막연했어요."

"그래, 그래도 일종의 감이 있었거든."

해거드는 자동차의 매끄러운 보닛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가 끌고 다니는 검은 승용차, <앨비스>라는 모델명을 가진 이 고급 자동차의 보닛은 여인의 허리통같은 매끈한 디자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내 정보통은 절대로 선무당이 아니야. 그 녀석은 내가 슈마허에 대한 정보를 받기 훨씬 전부터 제국동맹 자유마법 협회를 감시하고 있었거든."

"왜요?"

"다른 의뢰자한테 부탁받은 일이었나봐. 뭐, 고객이 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이 자유마법 협회는 갑작스러운 이단심문관들의 습격으로 폐쇄됐고, 관련된 마법사들은 전부 감옥에 끌려가거나 숙청 당했어."

"겨우 마법을 연구했다는 이유로요?"

"국가의 허락을 받지 않은 마법 연구였어. 그 나라에선 그게 아주 중요해. 하지만 제국동맹의 이단심문관이라는 걸 감안해도 지나치게 잔혹한 처사였지. 제국동맹도 영원히 과거에 갇혀 살만한 배짱은 없는 놈들이야. 자유마법사들을 무작정 배척하는 것처럼 보여도, 자국에 도움이 되는 연구는 눈감아 준다구."

"그렇다면, 그 자유마법협회는..."

아리시안이 트렁크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래. 제국 이단심문관이 맛이 간 놈들이긴 해도, 아무 자유마법사나 잡아다가 목을 벨 정도로 인륜을 저버린 놈들은 아니야. 분명 자유마법협회는 뭔가 끔찍한 일을 도모했었다. 그리고 제국 정부에 걸려 공중분해됐다. 하지만 야콥스 슈마허는, 자유마법협회의 회원인 그 사람은 절묘하게 감시망을 피해 왕국으로 도피하는데 성공했다, 그런 거지."

"그래도 뭔가 이상한 걸요. 슈마허 씨는 자신이 자유마법사인 걸 당당히 밝히고 다녔다고 했어요. 만약 정말로 자유마법협회가 그 사람의 경력에 흠집을 낼만한 곳이었다면, 그걸 당당히 밝히고 다닐 필요가 있어요?"

"나는 자유마법협회의 존재를 정보통에게서 처음 들었어."


해거드는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고, 주택가의 창문들에서 하나 둘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제국 심문관들은 자신들이 숙청한 자유마법사들과 관련 단체 정보들을 전부 분쇄해 버리지. 그래서 그 누구도 심문관들이 얼마나 많은 제국동맹 내 자유마법사들을 학살해 왔는지 몰라. 자유마법협회 역시 지금은 그냥 이름뿐인 조직이고, 아무도 그 내막을 알아내지 못하겠지. 내 정보통처럼 처음부터 그 녀석들을 감시하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면야."

"그럼 왜 자기가 그 협회의 협회원이라고 스스럼없이 밝힌 걸까요?"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의심을 덜어내려 한 게 아닐까. 해박한 마법사들이라 해도 자유마법협회가 뭔 일을 하는 곳이었는지 알아내기는 힘들테고, 그냥 제국 내의 소박한 마법사 진흥 위원회에서 일 하다가 사악한 심문관들에게 쫓겨나온 순박한 마법사일 뿐이라고 지레짐작하게 되겠지."

말을 마친 해거드는 쩝, 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는 아리시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돌아갈까?"

"아뇨, 아직이요."

아리시안은 고개를 내저었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저녁이나 먹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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