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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부금 님의 서재입니다.

화약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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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부금
작품등록일 :
2013.07.16 17:49
최근연재일 :
2013.07.27 03:53
연재수 :
8 회
조회수 :
4,079
추천수 :
200
글자수 :
45,175

작성
13.07.17 14:20
조회
593
추천
26
글자
8쪽

전형적인 비극 -1-

DUMMY

한 달후의 북부 플레메스 시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분홍 노을을 맞아들이고 있었다. 도시의 하늘은 여전히 공장 굴뚝의 매캐한 연기로 뒤덮여 있었고, 건설지대의 투박한 철골들은 햇빛을 받아 온 몸이 붉게 타올랐다. 북동부의 미개발 지대-부랑자들의 오물 처리장으로 쓰이곤 했다.-에 새로운 제철 공장이 건설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 숨막히는 공업지대의 유일한 가시적 변화였다. 아직 미완성 상태인 공장은 폐수처리용 파이프들과 검댕이 묻은 공업용 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동물의 배를 갈라 내장을 긁어낸 것처럼 참혹한 외관이었다.


건설지대의 바깥으로 삐져나온 파이프관에서 폐수가 새고 있었다. 폐수는 지저분한 도로 한가운데에 움푹 패인 구덩이에 핏물같은 물웅덩이를 만들어냈다. 갑작스럽게 검은 4륜구동 승용차 한 대가 물웅덩이를 밟고 지나가며 요란한 물보라를 일으켰다.

"앗, 제기랄. 밟았다."

해거드가 운전대를 거칠게 돌리며 혀를 찼다. 그는 창문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물방울들을 안타깝게 응시했다.

"빌어먹을. 세차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더럽혀졌군. 이래서 공업도시는 싫어."

"그럼 애초에 척후병들을 풀었으면 됐잖아요. 비싼 승용차 더럽히면서 직접 행차하실 게 아니라."

조수석에 앉아있던 소녀가 해거드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녀는 조수석 창문에 뒤통수를 기댄 채 반쯤 누워있었다.

"아니지, 아리시안 양. 이번 일은 일반 척후병들이 해결할 사건이 아니야."

"제 말이 그 말이예요."

아리시안은 상체를 일으켜 다소곳이 앉으며 말했다.

"이건 우리 마법사 척후대가 맡을 일이 아니었어요. 평범한 살인사건은 평범한 경찰들에게 맡겨야죠."

아리시안은 '평범한' 이라고 발음할 때 얼굴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살인사건에 평범하다는 수식을 붙이는 건 양심에 찔리긴 했다. 해거드는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녀의 말을 받았다.

"평범한 살인사건이 아니야. 지금 내가 만나러 가는 사람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듯이."


승용차가 날렵하게 커브를 돌며 샛길로 빠졌다. 덕분에 아리시안의 머리가 휘청거리며 조수석 차창에 부딪쳤다. 샛길은 수많은 자동차들이 바쁘게 질주하는 큰 길과 합쳐졌다. 큰 길의 양쪽으로 무수히 많은 주택가들이 펼쳐져 있었고, 주택가와 주택가가 만나는 틈새가 새로운 샛길을 만들어냈다. 아리시안은 뒤통수를 손으로 매만지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면 누군데요?"

"야콥스 슈마허, 신성제국동맹 출신의 사회학자야. 젊은 시절 제국동맹을 휩쓸고 있던 급진사상에 크게 동조했고, 무신론 강의를 하다가 심문소에 들어가기도 했다고 해. 그리고 몇 달 전 이곳으로 망명왔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네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구. 바로 이 내가, 그 자의 위장신분을 벗겨냈으니까."

"...위장신분?"

"아리시안, 슈마허는 자유마법사야. 제국에서 살던 시절 자유마법 협회에 가입했던 적도 있어."


아리시안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는 신성제국동맹에서 자유마법사(국가에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마법을 행하는 마법사들)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신성제국동맹은 태생적으로 종교계와 이단심문관의 정치적 입김이 매우 강한 나라였고, 마법적 자질을 가진 모든 시민들은 의무적으로 국가마법기관에 등록되어야만 했다. 민간에서 자신의 이득을 위해 자유롭게 마법을 행하는 자유마법사들은 온갖 공식적인 법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고, 운이 안좋으면 심문관들과 대면해야만 했다. 게다가 동맹 내 자유마법사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외국으로 빠져나갈 수 없었다.


"말이 안되잖아요. 그 사람이 마법사라면 어떻게 왕국으로 올 수 있겠어요? 제국에서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텐데."

"꼭 그렇지는 않아. 적절한 뇌물만 준비해주면 자유마법사들의 행보를 어느정도 눈감아 주기도 하거든. 결국, 이 슈마허라는 남자는 부유하거나, 어딘가 돈 많은 후원자를 가지고 있는 자유마법사라는 거야. 서류상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위해 고국을 버리고 도망쳐 나온 사상가이지만 말이지."

해거드는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주택가는 너무나 복잡해서 자칫 방심했다가는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우리 나라는 절대로 사회주의자들을 반기지 않아. 귀족이나 자본가들이나 단순히 점잖아 보이려고 그 사람들을 용인하는 척 하는거지. 뒤로는 스파이들을 풀어 감시하고 있을걸."

"그럼 전혀 이득이 되는 위장신분이 아니잖아요?"

"아니지. 마법사들에게는 최고의 위장신분이야. 정부가 그를 일종의 잠재적 사상범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해 봐. 그 <일반인>들은 그 사람이 나가는 학회나 출간하는 논문, 좌파계열 신문들과의 인터뷰 정도에나 온 관심을 쏟겠지. 그 사람이 어떤 마법서를 연구하고 있는지, 어떤 마력코드를 가졌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신경을 안쓸 거야."

"그럼 당신은 슈하머가 눈에 띄는 학자이기 때문에 위험한 마법사라고 연역하는 거예요?"

아리시안의 날 선 목소리에 해거드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해거드는 나이로 보나 계급으로 보나 아리시안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소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사실을 존중해 준 적이 없다.

"연역이라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그럼 이게 귀납이예요? 이건 거꾸로도 말할 수 있다구요. 그 사람은 일부러 마법협회에 가입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각시켜서, 자신이 제국에서 왕국으로 도망쳐 올 수밖에 없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했던 거일 수도 있잖아요? 진짜 목적은 왕국에 혁명의 봉화를 지피기 위한 폭탄을 설치하러 온 건데 말이예요."

"그럴 리가 있나. 그럼 여기서 이렇게까지 열렬히 자기가 사회주의자라고 광고하고 다닐 필요가 있..."

"그리고 이 슈마허라는 사람 정보는 어디서 얻은 건데요? 설마 외국에서 이 나라로 흘러들어오는 수많은 이민자들을 모두 감시하고 있지는 않으실텐데."

아리시안이 입을 뗐을 때 승용차가 끽 소리를 내며 멈췄다. 자동차의 날렵한 검은색 보닛이 덜컹거렸다. 해거드는 차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갑자기 그가 휙 고개를 돌려 아리시안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건 말해줄 수 없다. 개인적인 정보통이니까."

"왜죠."

"알려줬다가 네가 내 정보통을 가로채면 어떻게 해? 이제 내려!"

해거드는 거칠게 문을 닫았다. 아리시안은 어이 없다는 듯 파아, 하고 한숨을 내뱉으며 차에서 내렸다. 두 사람의 앞에 거대한 주택이 놓여있었다. 사람 키의 허리까지 올라오는 회색 담을 빙 둘러친, 벽돌로 세워진 3층짜리 주택이었다. 지붕 위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각 층마다 사각형 창문이 일정한 가격을 두고 나있었다. 모더니즘의 기계적 특성을 그대로 구체화한 듯한 이 단촐한 건물에 대한 해거드의 평가는 이랬다.

"지극히 사회주의적이군."

"이제 어떡하실 건데요?"

아리시안이 해거드의 등 뒤로 다가오며 물었다.

"저 집에 처들어가서 '이 늙은 양반, 우린 다 알고 있으니까 불어. 당신이 요즘 이 구역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범인이지? 어둠 속에서 마법으로 사람들의 목을 졸라 죽였잖아!' 라고 말하실 거예요?"

"그 방법도 고려하고 있어."

해거드는 힘없이 대꾸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고동색 현관문과 마주하자 자신감이 물에 젖은 소금 주머니 마냥 오그라드는 것이 느껴졌다. 해거드는 허리춤을 더듬었다.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외투에 가려진 권총의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해거드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혼란한 마음을 정리하고, 노크를 하기 위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이번 일이 허탕이면 우린 척후대 역사상 가장 바보같은 작전을 펼친 척후병으로서 공을 인정받아 기사작위를 받을 거예요."

그리고 아리시안의 비아냥 때문에 해거드의 머릿속은 다시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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