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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과학자

이기적 과학자-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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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2.05.12 17:13
최근연재일 :
2023.07.2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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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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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1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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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7년차 -10-

DUMMY

어린 왕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비록 아직 장성하지 못하여 수렴을 거두고 친정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으나, 구중궁궐에 틀어박혀 사는 왕의 귀에도 백성들의 삶이 몹시도 고단하고 힘든 것이 들려온 것이 한 두해가 아니었다.


그런데 한낱 이양인 하나가 도래한 촌구석 작은 마을이 고작 7년여만에 강대하기 이를 데 없는 곳으로 바뀌고, 온갖 기물이 등장하여 뭇 사람들의 생활이 풍요로워졌다고 하는 것 아닌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은 왕의 덕이 미치지 않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오히려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올라 달이 이지러지고 사람들이 서로의 재물을 탐내지 않으며, 하루 앞을 걱정하지 않고 자식들에게 더 나은 삶을 살 길을 찾아볼 만큼 여유가 있는 생활을 살아가고 있다니 왕은 자신이 배워 왔던 유학과 경험해 온 세상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추위에 떨 생각을 하지 않으며, 강대한 외적의 침입을 허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며 법과 교화가 없어도 죄짓는 자가 없는 세상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비록 강대한 힘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한 이양인이 해 낸 일을 왕이 된 자로서 하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왕이었다.


그는 그래서 차분히 준비해 나갔다. 비록 그와 그의 부왕은 힘도 없고 능력도 할아버지 때보다는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왕의 피가 흐려지지는 않았을 터.


왕은 자신의 할아버지와 그 윗대들이 남긴 가르침과 지혜들이 적힌 책, 일성록과 시일록(時日錄)등을 읽고, 그 내용을 참고하여 강론에 쓸 내용들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왕이 상참(常參, 약식조회)에서 포문을 열었다.


"근래 우리 백성의 생활이 곤궁하여 초췌함이 극심하다. 내가 즉위한 이래로 감싸 보호하며 불쌍히 여기는 생각이 잊혀지지 않고 마음에 염려됨이 있어서 일찍이 잠시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무릇 백성의 힘을 소생시키고 백성의 폐막(弊瘼, 고치기 어려운 폐단)을 제거한다면 서둘러 불 속에서 구출하고 물에 빠진 것을 건져내듯이 하여 거의 자고 먹는 것을 잊으려 하였으니, 이는 내가 지난번에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게 함이 있다면 살점인들 어찌 아끼겠느냐는 하교가 있게 된 것이었다.


무뢰배가 궁과 관의 세력을 빙자하여 열읍(列邑, 여러 고을)에 횡포를 자행하며 백성에게 침학하면서 혹은 이미 묵은 땅에 강제로 징수하는가 하면 혹은 원래 액수 외에 더 거두기도 하였고, 기름진 땅은 모두 사사로이 그들에게 귀속시켰으며 백성의 목숨이 거의 차임(差任, 하급 관리 임명)에 달려 있게 되어 살점을 도려내고 골수를 치며 닭과 개에까지도 해가 미쳤다.


납세(納稅)를 독촉하는 기한은 호환보다 무섭고 뒤따라 호출하는 명령은 관청의 위엄보다 급박하여 명리(命吏, 왕이 임명한 관리)도 감히 어찌 할 수 없었고 백성들은 항소(抗訴)할 곳이 없게 되었으니, 애처로운 저 백성을 어떻게 안심하고 살아가란 말인가? 매양 한번 생각이 이에 미치매 내 자신이 처해 있는 것과 같이 슬프다.


정치를 하는 도는 개인의 가정에서 시작되어 나라에 미치는 것이니, 서정(庶政)도 오히려 그러한데, 더구나 이 백성에 무궁한 폐단이 되는 것이겠는가? 이제부터 이후로는 전지에 대한 결세는 각 읍에서 곧바로 호조(戶曹)에 바치면 호조에서는 세금을 더 받거나 함부로 거두는 폐단의 근원을 일체 혁파하고 묘당의 신하로 하여금 절목(節目, 규칙의 조항)을 강정(講定, 강론하여 결정함)하여 영구히 준행(遵行, 따라서 행하다)하게 하라.“


”전하, 각 도에 이미 감사가 있고 각 읍에 이미 수령이 있는데 이런 소소한 일을 가전(駕前, 어가 앞 또는 임금의 앞)에서 호소하니, 여기에서 기강(紀綱, 법도와 질서)의 일단을 살펴볼 수 있을 따름이옵니다.


이미 호조의 업무가 다망하옵고, 각 도와 읍의 기강이 흐려져 이러한 폐단이 무궁히 있는 것이오니 청컨대 해사(該司, 해당하는 관청)에 엄히 조사하여 올바른 법도로 처결하게 하는 것이 옳은 것으로 아뢰옵니다.“


”허나 지난 석강때도 이미 논한 바와 같이, 이미 논핵하고 헌부(憲府, 사헌부, 관리들의 감찰 기관)에서 수직하여 그 직첩을 거두고 죄를 물은 이가 한둘이 아니거늘, 그들이 지금 어찌하고 있는가? 어떤 이는 그것이 잘못된 사실을 알지 못하였으니 갑자기 죄를 줄 수 없다고 하여 풀어주고 복직시켜 주고, 다른 이는 그 처음을 캐어보면 역시 작은 일이라 하여 복직해 주었으니 이런 일들을 가리켜 어찌 기강의 일단을 살펴볼 수 있을 따름이라 하는가? 여가 사령(赦令, 죄인을 석방하라는 명령)을 내린 기억이 없거늘, 어찌하여 논핵하고 계문(啓聞, 왕에게 보고함)한 자가 다시 그 자리에 앉아 있는가 말이다.“


왕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내심 흐뭇했다.


‘이만하면 연습하고 외운 대로 잘 해냈다.’


조선의 사정이 어려운 것은 물론 이상기후와 이로 인한 흉년으로 인한 것도 있지만, 결국 삼정의 문란으로 대표되는 조선 시스템의 붕괴에 의한 것이 더 컸다.


왕이 생각하기에 삼정의 문란 중, 전정과 환곡에 대한 폐단은 결국 무뢰배와 다를 바 없는 썩은 관리들로 인해 있는 것이었다. 또한 이들에게 죄를 물어 파직한 후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으니, 아예 전정과 환곡에 대한 업무를 호조로 집중시키고 죄를 지은 관리를 복직시킨 자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세도정치가 이미 자리 잡은 지 오래인 조선에서, 안동 김문의 큰 어른이자 왕실의 큰 어른이 수렴청정을 하고 있는 중 아니었는가.


어린 왕의 말에 무게를 느끼는 자들 또한 별로 없었다.


"죄의 등급을 더하고 감하는 예가 있사오나 성교(聖敎, 임금이 덕으로 백성을 감화시키는 가르침)에 이처럼 거듭 밝히시니, 방자한 장리라도 어찌 두려워 움츠리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탐오한 수령을 금고하고 논죄하는 등의 일과 포리를 석수를 셈하여 법률을 적용하는 것은 먼저 법의 뜻을 보이지 않을 수 없으니, 비국 당상들과 과조를 의논하고 정하여 초기(草記, 정무상 그리 중요하지 아니한 사항에 관하여 사실만을 간단히 적는 문서)를 만들어 계하(啓下, 왕이 제가하여 내리는 지시나 명령)하도록 하겠사옵니다.“


말이야 그럴 듯 했으나, 결국은 비변사에서 자기들끼리 의논하여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말과 다름 없었다.


게다가 금고(禁錮)라는 것이 무엇인가. 본래 경국대전에 의하면 금고형은 주로 탐관오리를 일정한 금고연한을 두어 관직의 취임을 금지시키는 것이었는데 그 기간이 짧지 않아 비리를 저지른 당사자 뿐 아니라 그 자손까지도 벼슬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형이었다.


사실상 조선의 법도가 살아 있을 때만 하더라도 양반이라고 함은 적어도 위로 3대 안에 과거에 합격한 자가 있어야 했고, 4대째까지 과거 합격하는 자가 없다면 양반의 자격을 박탈당해었다. 그러니 금고라는 것이 몸은 편할지 몰라도 결코 가벼운 형은 아니었던 것이다.


허나 기본적인 납세와 군역, 환곡 시스템조차 붕괴된 조선에서 이제 양반의 자격 유지 따위야 과거 급제와는 상관 없는 것이 되고 말았으니, 이제 무조건 조상 중 누군가가 벼슬을 했다고 하면 양반이라고 불리거나 자칭 양반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정 양반의 자리가 필요하다면 족보를 사거나 매관매직을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 금고라는 형 또한 사실상 잠시 벼슬 자리를 내려놓는 정도로 그 처벌 수위가 약해진 지 오래였다.


결국 탐오한 관리를 적발하여 처벌한다고 한들, 잠시 자리에서 물러나는 시늉만 했다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경우가 흔했으니, 부패가 잡힐 리 없었다. 애초에 매관매직으로 자리를 산 자들이 한둘이 아니니 그들도 본전을 뽑기 위해 악착같이 짜내려 하는 자들이 많기도 했었고.


왕도 단단히 마음을 먹고 준비르 해 왔으니, 저러한 신하들의 반응에 답답해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혹 장오(贓汚)를 범한 것이 다 드러나더라도 결국 감죄(勘罪, 죄인의 죄를 다투어 처단함)하는 것은 한두 해 동안 금고(禁錮)하하고 마는 데에 지나지 않으니 본래 경국대전에 정한 법도대로라면 처벌이 훨씬 무거워야 할 것인데, 처벌이 가벼우니 탐오한 관리가 징계되어 두려워할 것이 없어서 더욱 노략질을 일삼으므로, 백성의 고통 소리가 달로 더하고 날로 심해진 것은 실로 처벌이 엄하지 않은 데서 말미암은 것 아닌가?


한(漢)나라의 구양흡은 당세의 유학의 종주로 지위가 삼사(三事, 삼정승) 에 올랐어도 장죄)로 사형을 논하게 되었을 때에 제자 1천여 인이 대궐을 지키며 불쌍히 여겨 용서하여 주기를 청하였으나 광무제가 끝내 용서하지 않아 옥중에서 죽었다.


법이 진실로 이러하다면 탐욕이 많은 자가 있더라도 또한 감히 탐학을 부릴 수 없을 것이다. 한번 장오를 범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법으로 재결하여 가벼운 자는 귀양보내고 무거운 자는 죽이되 오래도록 계속하고 조금도 느슨히 하지 않아서 사람마다 경계하고 두려워하게 해야 옳은 것이 아닌가?“


말을 마친 왕은 발을 드리우고 뒤에 앉아있는 할머니가 혹시 지원해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잠시 몸을 반쯤 돌려 뒤를 바라보았으나, 수렴청정을 하고 있는 대왕대비는 그저 한 마디만을 던졌을 따름이었다.


"아뢴 바는 마땅히 유념하겠다고 하시지요 주상.“


”...알겠습니다 그럼 그리 하도록 하라.“


그렇게 왕이 거의 처음으로 열심히 선대 왕들의 기록과 전례들을 찾아 낸 자신의 의견은 무참하게 무시되다시피 하고 말았다.


”상께서 지우학(志于學, 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 15세)이 되시더니 슬슬 친정이 하고 싶으신가 봅니다. 오늘 의견을 내시는 것은 꽤나 매섭지 아니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대왕대비께서 상에게 힘을 싣어 주셨더라면 골치 깨나 아플 일이었지요.“

”허나 대비께서도 안동 김문의 큰 어르신 아니셨습니까. 아직 상께서 직접 만기를 친람하시기에는 무리가 있겠지요.“


그렇게 어린 왕의 의견은 무시당했다.


그러나 왕의 마음이 꺾인 것은 아니었다.


작가의말

이번주에는 결국 한편 올리는군요.

일단 시간 나는대로 꾸준히 써서 올려보겠습니다.


기다려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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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7

  • 작성자
    Lv.74 ko**
    작성일
    23.02.10 19:28
    No. 1

    고생이 많으시네요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9 madscien..
    작성일
    23.02.16 17:54
    No. 2

    감사합니다.
    이직은 없던 일이 될 듯 합니다ㅎㅎ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부터 다시 한편씩 올려보기 시작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과객임당
    작성일
    23.02.10 20:44
    No. 3


    화이팅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9 madscien..
    작성일
    23.02.16 17:55
    No. 4

    기다려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부터 다시 연재 재개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lsurel
    작성일
    23.02.11 05:18
    No. 5

    이글은 사실 엄청난 인내와 끈기없이는 읽을수없지요
    거기에 글을 또 짧막합니다. 많이 웃기는 장면있어서 그나마 심심치 않아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9 madscien..
    작성일
    23.02.16 17:57
    No. 6

    사실 조선 조정 파트는 답답함을 더할 겸, 고증도 약간 첨가할 겸사겸사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의 내용과 비슷하게 써 보고는 있습니다만, 저도 힘들긴합니다. 그냥 요약본으로 짤막하게 올리고 재미있는 부분을 더 늘려야되나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비과학적
    작성일
    23.03.04 06:20
    No. 7

    어린 왕이 기특해서라도 응원해주고 싶은 포지션인데 잘 됐으면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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