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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과학자

이기적 과학자-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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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2.05.1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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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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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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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년 3개월차

DUMMY

축축하고 음습한 겨울,


군대에서 맞이하는 겨울.


군대에서 전쟁중에 맞이하는 겨울.


하나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썩 유쾌할 수 없는 단어들이었는데, 그것들이 모여 있었다.


한 겨울, 남의 땅까지 와서 참호전을 벌이고 있는 영국군에게 오늘도 좆같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금방 끝난다더니 더럽게도 오래 가네 이번 전쟁은.”

“죽인 숫자도 어마어마한 것 같은데...”

“우리가 갖고 있는 총알보다 쟤들 숫자가 더 많을거야.”

“그럼 우린 다 죽겠군.”


인도에서 온 병력이 대부분이던 청국 원정대는 이렇게 추운 날씨를 겪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청진이나 철원만큼 극한 추위는 아니었으나, 이 정도 추위라도 인도 출신 병사들에게는 혹한기에 다름없었다.


그렇게 무기력하고 비관적이던 대화가 어느 날인가부터 조금씩 희망이 보이는 대화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게 죽였는데도 또 한 무더기가 있네.”

“우리 총알보다 쟤들이 더 많을 거라면서.”

“...그래도 이 짓거리가 끝나긴 하겠네.”

“누가? 우리가?”

“아니 쟤들이.”

“우리 총알보다 쟤들 숫자가 더 많다며.”

“총알은 찍어낼 수 있지만, 사람은 찍어낼 수 없잖아.”

“...그러네?”


예상보다 잘 싸우는 청국과 길어지는 전투, 그리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삽질과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수직낙하하기만 하던 사기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추위에 맞서 싸우며 최전선 참호에서 근무를 서고 있으면 돌아오면, 손끝과 발끝, 코 끝과 귀가 춥다 못해 아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잘라버리는 쪽이 덜 아프지 않을까 고민할 때쯤 되면, 4시간에 걸친 경계근무가 끝나고 마침내 4백 야드쯤 떨어진 뒤쪽 분침호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분침호 입구로 가까이 가면, 희미하지만 고소하기도 하고 시큼하기도 하면서 매콤하기도 한 냄새가 슬슬 풍겨오기 시작했다.


“어으..좋다.”


바로 통조림이 전선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조선제 정어리 통조림을 뜯어 보면, 잘 익은 정어리들이 기름에 잠겨 있었다. 그 기름을 따라내어 역시 통조림 깡통을 잘라 만든 간이 스토브에 붓고 심지에 불을 붙이면, 그래도 미약한 온기가 도는 것이었다. 그 위에 기름을 따라 낸 정어리 통조림을 올리고, 역시 조선에서 오는 매운 무와 조선 캐비지, 야채 피클이라는 것을 적당히 넣고 끓이면 기존 참호 스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맛있고 따뜻한 요깃거리가 되는 것이었다.


“어우 이것 없이 어떻게 밤에 근무를 서고 왔나 모르겠네.”

“그 전에는 차를 한 잔 마시고 잤었잖아.”

“차도 좋지. 좋은데 이것 먹고 자는 것 하고는 또 비교가 안 되지.”


심지어 저 저주받은 방탄 쉽비스킷조자도 이것에 푹 담궈두었다 먹으면 꽤나 먹을 만한 음식이 되는 것이었다. 은근히 짭짤하고 매운 국물에 담겨져 있던 쉽비스킷은 적당히 먹을 만큼 풀어졌고, 그 짠 맛을 어느정도 중화시켜주는 쉽비스킷은 역시 국물 안에 들어있던 야채나 무, 정어리와 함께 씹으면 든든한 한 끼가 되어주기도 했다.


여기에 연료나 소독용으로 쓰라고 장교들이 직접 조금씩 분배해주는 알콜을 적당히 물에 섞어 한잔 들이키면, 아침에 딱 좋은 기분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번에 새로 도입된 포상 휴가제도와 더불어, 새로 보급되기 시작한 조선제 정어리 스튜는 평이 썩 괜찮았고 사기를 유지하는 데에도 큰 성과를 내고 있었다.


게다가 참호에서는 먹고 남은 깡통도 꽤 쓸만한 곳이 많았다. 물론 철제이니 녹이 슬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일단 주석으로 도금이 된 것이라 일반적인 철판보다는 참호의 눅눅하고 습한 환경에서도 어느정도는 버텨주었고, 상대적으로 나무통보다는 가볍고 적절한 크기인 깡통은 여러모로 쓸 곳이 많았다.


요강이나 스토브, 간이 취사용 솥이나 물을 끓이는 주전자 대용, 혹은 적당히 잘라 내어 지향성 램프를 만들 수도 있었으며, 안에 잡철과 돌조각, 화약을 채우고 심지를 박으면 급조 유탄이나 폭발물로도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참호전에서 산탄총이나 기관총만큼이나 유용했던 것이 수류탄이었던만큼, 급조 유탄도 여러모로 잘 써먹히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회복된 영국군의 사기와 청국군의 누적된 피해는 처음에는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자 큰 결과도 돌아왔다.


막혀 있던 운하를 뚫어가면서 영국 해군 선박을 중심으로 한 진지를 구축해가며 영국군은 전선을 밀어올렸고, 청국군은 이를 막으려 어떻게는 애를 썼다.


“운하를 파괴한다!”


청국은 운하 상류에서 물을 공급하는 수로를 막고, 중간중간에 있는 운하 둑을 터뜨리려 애를 써보았으나 하루에도 여서일곱번씩 수로를 왕복하는 영국군의 보급선과 초계함의 눈을 피하기란 어려웠다. 결국 상류는 어떻게든 틀어막는데 성공했으나, 이미 천진과 황하, 장강을 이어주면서 여기저기로 물길을 내 두었던 운하의 모든 물줄기를 막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이다.


“모든 물길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운하와 황하, 장강 주변에 저수지와 수로가 너무 많아 다 폐쇄할 수 없습니다.”

결국 청국군은 운하의 수위를 어느 정도 낮추는 선에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거대한 포위망을 만들어서 주간에 덮친다. 적의 기관총도 모든 방향을 동시에 방어할 수는 없을 것이니...”

“적 포병이 건재한데 사방을 포위하고 달린다 한들, 평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더욱 사방에서 일시에 돌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어차피 붙으면 적의 포병은 무력화 될 것이고, 기관총도 사방을 동시에 타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산탄총은 화전진천뢰로 맞서 싸운다. 그렇다면 병력 수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는 우리가 해볼 만하다!”


저번 야습때 지휘체계가 붕괴되어 생각보다 큰 피해를 입긴 했었으나, 어차피 백병전 위주의 난전으로 맞붙는다면 지휘체계는 저쪽도 붕괴되는 것이 마찬가지. 머릿수가 많은 쪽이 훨씬 유리하다.“


”포격? 사방에서 달려들면 표적을 관찰해서 사격 제원을 계산하는데만 하더라도 10분은 거릴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계산이 끝날 때 쯤에는 우리 병력들은 이미 10분만큼 적진에 더 가까이 붙어 있을 것이고, 그들은 코앞에서 직접 포격을 하기 전까지는 많아야 한두번 포격을 하는 것에 그칠 것이다!“


”포탄이 많아봐야 몇 발이나 있겠는가?“


”비행선이라고 천년만년 떠 있을 수 있겠는가? 비행선이 빠지는 날, 포위섬멸한다.“


그러나 셋 다 틀렸다.


비행선은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 같았으나,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다시 복귀하고는 했다.

운하를 끊임없이 왕복하며 보급선들은 짐을 내리고 있었는데, 포탄이 담겨 있는 것이 분명한 나무 상자들도 끊임없이 목격되었다.


결국 기다리다 지친 청국군이 먼저 나섰다.


청국군은 영국군의 관측을 피해 수십km밖에서부터 병력을 야간에 우회시켜 약 20만명으로 포위망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영국군 또한 물길 끝에 있는 배들을 중심으로 약 1000야드 밖까지 철조망과 날카롭게 잘라둔 깡통, 급조 폭발물 등등으로 방어선을 쳐 두었고, 청국군의 움직임은 비행선에서 어느 정도 관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포격 제원을 계산하는데 10분은 더 걸릴 것이라던 청국군의 예측도 틀렸다.


”포격이다!“

”숨어!“

”돌진!“


포탄이 낙하하는 것을 본 청국군들은 각자 숨거나, 아니면 좀 더 빠르게 달리거나 했다.


”어차피 이곳만 벗어나면 그 다음부터는 눈먼 포탄이다! 달려!“


숨은 자들의 머리 위에서 포탄이 터지고, 사방에 불과 철로 된 비가 쏟아져 사람을 고깃조각과 뼛조각, 혹은 피안개로 바꾸는 것을 본 자들은 죽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달렸다.


”살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마침내 눈 앞에 포탄에 패인 구덩이가 보이자 그 곳에 뛰어든 청국 노농적군 병사 하나가 숨을 고르며 누웠다. 곧 그 주변으로 하나 둘, 다른 병사들도 뛰어들기 시작했다.


”...!!, !!!“

”...?“


그들이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은데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귀가 막혔나싶어 귀를 파보러던 병사는, 손을 들어 귀를 후비는데도 귀에 아무런 느낌이 없자 이상함에 자신의 손을 보았다.


손은 없었다.


팔꿈치 근처에서 무엇에 짓이긴 듯 거칠게 잡아 뜯겨진 팔을 본 그 병사는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그 병사는 더 이상 아무 생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포탄이 머리 위에서 터진 것이다.


”아니, 무슨 포격이...“


북경 외성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청 황제는 충격에 빠졌다.


거의 실시간으로 포탄이 가장 선두 대열 위로 날아들어 터지고 있는 것이었다.


”...졌군.“


그렇게 초반에 이미 기세가 꺾인 청국군은, 10배에 가까운 병력 우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병력을 잃고 결국 뒤로 빠질 수 밖에 없었고, 적진에 달려드는데 성공한 인원들도 뒤에서 더 이상 들어오는 아군이 없자 그대로 소멸하고 말았다.


물론 청국군에게도 화전진천뢰라는 당시 기준으로는 걸출한 짝퉁 판쩌파우스트가 있었으나, 문제는 이 무기에는 후폭풍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소수의 적을 포위해서 달려들게 되면 결국 다수인 청국군은 뭉칠 수 밖에 없었는데, 이 경우에 발사한 화전진천뢰는 적도 잡았지만 아군도 잡아내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그 위력에도 불구하고 쓰기를 주저하는 병사들이 늘어났던 것이다.


그렇다고 청국군이 거리를 벌리고 영국군과 화력전을 벌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천상 전투는 야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청국군은 의도한 바와 다르게 인명을 갈아넣으며 국토를 방어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 이후, 다시 북경성 근처는 영국군이 조금씩 전진하고 청국군이 피로 이것을 막아내는 나날이 이어졌다.


참호전이 시작되고 반년, 영국군은 비행선과 장갑함의 지원을 통해 북경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적 참호선을 점령해 들어갔고 마침내 북경 외성을 포격할 수 있는 위치까지 진입했다.


그동안 영국군도 많이 업그레이드되어, 청국군의 야습도 처음 당했을 때처럼 피해가 크지는 않았다.


낮 시간, 더 우수한 화력을 앞세우고 비행선 관측 지원을 받는 포격으로 청국군을 참호 밖으로 나오지 못 하게 하는 동안, 영국군은 차곡차곡 철조망을 치고, 몇십여 미터씩 앞으로 전진하는 참호선을 새로 구축하고, 밤이 오면 그 방어진지를 지키는 식으로 전선을 조금씩 앞으로 밀고 있었다.


동시에 청국이 막아 둔 운하도 삽과 기계를 이용하여 파 나가는 식으로 해서, 영국 해군선들 중 폭 6미터 전후의 200톤급 증기선과 박격포함들이 앞으로 나서고, 그 물길을 따라 보급도 받는 식으로 전선을 미는 중이었다.


청국군도 이것을 뻔히 보고 있을 리는 없어서, 무언가 해보려고 시도는 열심히 했다.


애초에 황제의 계획이

“적을 깊숙이 끌어들여 인민의 바다에 빠트려 죽인다.”

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일부러 북경의 방비를 허술한 것처럼 노출시키고, 어느 정도 깊숙이 적들이 들어왔을 때를 노려 압도적인 숫자의 노농적군을 동원해 사방에서 이를 포위 섬멸한다는 계획이 있었다.


문제는, 적의 화력이 생각보다 너무나 강했던 것이다.


적을 빠트려 죽이려 했던 인민의 바다는, 화력에 그대로 끓어 증발해버린 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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