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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요진 님의 서재입니다.

달의 거울-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서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피요진
작품등록일 :
2015.12.1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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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8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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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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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2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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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명령.

DUMMY

그들이 천상에 도착했을 때, 만라는 뒤돌아 앉은 채 기다란 머리를 늘어트린 채 빗질을 하고 있었다. 옅은 바다색의 머리칼은 빗이 지나갈 때 마다 빛이 감돌았다. 잭과 무치 그리고 블랑은 숨을 고르는데, 만라는 여전히 같은 곳을 응시하며 물었다.

“블랑, 오랜만입니다.”

블랑은 가만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래, 귀도산은 살만 하든가요?”

역시나 만라였다. 아무리 몸을 숨기려 한다한들 만라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블랑은 그가 두렵기도 하면서 왜 그렇게나 절대적인 그가 라알과 손을 잡아야만 했는지, 주먹을 꽉 쥐며 대답했다.

“예. 많은 이치를 깨닫는 중이었습니다.”

“오호, 이치라?”

만라는 흥미로운 듯 외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무슨 이치를?”

묻는데, 수가 왔다. 수의 곁에는 진기가 함께였다.

“브, 블랑?”

먼저 놀라 물은 것은 수였다. 블랑은 수가 아닌 진기를 바라봤다.

“자네, 여기에······.”

블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돌아왔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여길 떠나지 않은 걸지도 모르지.”

끝내 블랑은 진기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진기는 그제야 죄 지은 사람의 표정에서 벗어나 가만히 발끝만 바라봤다. 수는 진기에게 잠시 나가있으라는 말을 하곤 잭의 곁에 섰다.

“블랑이 어째서.”

잭에게만 들릴 아주 작은 소리로 수는 물었다.

“그게······선우가 만난 모양이야. 귀도산에 있었어.”

“그렇군.”

입을 다물어버린 수를 제치고 황금빛 물결이 일었다. 만라의 방으로 들어온 또 한 명은 레아였다.

“레아, 왔어?”

어색한 상황에서 잭은 퍽 반갑다는 눈치로 레아에게 손을 흔들었다. 레아 역시 반갑게 웃으며 지나치다 네 명의 신임을 알았다. 그리곤 곧장 블랑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브, 블랑?” 블랑은 가만히 고개를 까딱였다.

“아니, 블랑 언제 여기에”

“회포는 다음에 풀지 그래요.”

더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만라에 의해 대화는 중지됐다. 만라는 싱긋이 웃으며 입을 뗐다.

“자, 다들 모였으니 이제 말하겠어요.”

오방신은 각기 다른 얼굴과 표정이었지만, 그 속의 비장함은 비슷했다.

“얼핏 들어서 알겠지만······지하의 악귀들이 지상으로 올라왔습니다.”

만라는 천상의 물을 담은 잔에 입술을 축였다. 그 역시 태연한 척 했지만 속내는 비장하고,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블랑은 그런 만라를 유심히 살피며, 다 짜놓은 판에 예상치 못한 수가 들어와 곤란한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설마 선우가 지하로 내려갔기 때문입니까?”

대답을 기다리며 잭은 입술을 깨물었다. 선우를 지도하고 보호하는 입장에서 잭은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타들어갈 듯 했다. 만라는 투명한 눈을 들어 그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웃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 모호함이 만라의 눈빛 속에 들어 있었다.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일은 이미 벌어졌고, 우리는 그 일을 우리답게 처리해야죠.”

“우리답게라면······.”

레아의 말이 끝나기 전에 만라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핫, 하하. 다들 오랜만이라 합이 맞을지 잘 모르겠네요.”

“전쟁을 치르자는 말씀입니까?”

한사코 입을 다물고 있던 무치가 물었다. 여전히 웃음을 뱉어내고 있던 만라는 손뼉을 짝, 치고는 팔을 뻗었다. 천상의 빛들이 수런거리던 만라의 방은 순식간에 어두운 숲의 모습이 비췄다.

“저기가 바로 만라의 성이 있는 곳입니다.”

일찍이 선우를 구하기 위해 갔던 곳이라 잭과 무치 그리고 레아는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라알이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 겁니까?”

레아의 물음에 만라는 기다리라는 듯 손을 들었다.

“저 숲에는 갖갖이 존재들이 기생하고 있죠. 세상의 낙오된 존재들이 저곳에 모여든단 말입니다. 괴물, 타락천사, 주술사, 악한 요정······대개는 이, 만라의 적이거나 혹은 라알의 적일 수도 있죠. 어쨌든 악귀들이 저곳을 향해 가고 있네. 저 모든 존재들이 힘을 합친다면, 우리는 창을 들고 방패를 들 수밖에 없을 거야. 그리고 저 곳에는 라알이 있지 않습니까. 만약 라알이 저들을 모두 자신의 수하에 둔다면······.”

“하하하하하.”

웃음소리가 나는 곳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블랑에게서였다.

“하하하하하하학 아-그것 참 우습군요.”

벙글거리며 눈물을 닦던 블랑은 말했다.

“브, 블랑 왜 이래?”

잭은 서둘러 그를 말리기 위해 팔을 뻗었지만, 블랑은 잭의 손을 뿌리칠 뿐이었다.

“라알과 힘을 합친다구요? 예, 그럴 수도 있겠지요. 악한 것들은 악한 것끼리 붙어먹는 속성이 있으니까. 그런데, 만라, 당신께서 겁을 집어먹는 이유는 뭡니까? 악한 것과 붙어먹은 선은 피차 같은 것일 텐데.”

“블랑!”

잭은 기함했고, 만라는 말없이 블랑을 응시했다. 그 고요함 속에 상대를 날카롭게 썰 것 같은 날이 번뜩이는 듯 했다.

“왜, 내 말이 틀렸습니까!”

블랑은 소리쳤다. 만라의 방이 호랑이의 포효로 가득 찼다. 신들은 모두 블랑을 쳐다봤다. 무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고, 놀란 레아, 수와 달리 잭은 거의 애원하듯 블랑을 바라봤다.

“블랑, 그만해.”

다시 한 번 더 팔을 뻗는 잭의 손을 뿌리치며 블랑은 외쳤다.

“잭, 자네도 정신 차리게!”

“뭐?”

“자네들, 정신 차리란 말이야! 저, 만라가 어떤 존재인 줄 아나? 저치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라알과 손을 잡은 이란 말일세. 세상의 절대자란 존재가 악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때였다.

“하하하, 하하하, 하핫.”

만라가 웃고 있었다. 당황한 것은 오히려 신들이었다.

“블랑, 자네 세상의 이치를 알았다고 하더니, 아직 덜 깨우친 모양일세.”

웃고 있던 만라의 눈이 번뜩였다.

“그래, 자네 말처럼 나는 세상의 절대자일세.”

집요한 시선이 블랑을 향하고 있었다. 바뀐 말투에 섬뜩함이 느껴졌다. 블랑은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자네는 왜 내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가? 내가 절대선이다, 그 말인가?”

“그, 그게 무슨.”

당황한 블랑을 향해 만라는 여유롭게 웃었다.

“나 역시 누군가 서로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결국 서로를 죽이는, 그런 행위들을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말일세, 내가 그런 마음을 인간들, 혹은 신들에게 만들지 않아도, 이 세상이 자연스럽게 굴러가는 이상, 결국 생길 수밖에 없네. 세상의 자원은 한정적이고, 가질 수 있는 자는 몇 없지. 자연히 서로를 향한 악한 감정들이 생길 수밖에 없네. 나는 이 지상의 모든 생명들이 자연스럽게 살아가기를 바랐지. 선악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이야. 블랑, 자네가 떠나기 전 나에게 그랬지. 왜, 라알과 손을 잡았냐고. 내가 만든 세계를 파괴하기 위해 라알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자네는 생각했을 거야.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선도 악도 아닌 존재. 라알 역시 마찬가지지. 우리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 허나, 내가 라알과 손을 잡은 것은······손을 잡았다기에 어감이 그렇지만, 어쨌든 우리가 거래를 한 것은 바로 균형 때문이라고 하면 될까. 어쨌든 그때, 경월 마을에 라알을 침투시킨 것은 경월 마을 사람들과 선우네 일가를 헤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 그때 역시 악귀들이 지상으로 올라왔었지. 그 아이가, 선우를 낳은 그 아이가 지하로 내려갔기 때문이지. 그렇기에 나는 라알에게 부탁했어. 아니, 명령에 가까웠어. 그 아이가 자네를 만나러 갔기에 악귀들이 경월 마을에 난리를 치고 있다고. 라알은 부대를 이끌고 경월 마을로 갔지. 물론 거기서 달의 거울을 찾을 지도 몰랐기에 라알은 친히 자신 역시 그곳으로 갔지. 그가 달의 거울을 찾는 동안 열정 넘치는 부대원들이 불을 지르고 다녔다는 군. 뭐, 그렇게 된 거야. 자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들이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 뿐. 더 이상 라알과의 거래로 지금 중요한 일들을 그르칠 수 없네. 봐봐, 악귀들이 숲으로 뛰어들고 있어. 저, 저기 검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는 숲으로······.”

“라히도.”

잭이 나직이 뇌까렸다. 만라와 신들은 동시에 잭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검푸른 빛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라히도였다.

“자, 다들 전투태세를 갖추게.”

만라는 명했고, 신들은 각자의 무기를 챙겨들었다.


작가의말

 드디어 100화 입니다. 지칠 때도 있었고, 스스로 길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도 같았지만, 지금까지 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모두의 삶이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그럼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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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104, 계획 18.07.21 44 1 7쪽
103 103. 덫. 18.07.14 35 0 7쪽
102 102. 각자의 자리. 18.07.07 34 0 6쪽
101 101. 계략. 18.06.30 25 1 8쪽
» 100. 명령. 18.06.23 33 0 9쪽
99 99. 소집명령. 18.06.09 26 1 8쪽
98 98. 호가호위. 18.06.02 39 1 7쪽
97 97. 살인귀. 18.05.26 40 0 7쪽
96 96. 지하. 18.05.19 53 0 5쪽
95 95. 깨져버린 결계. 18.05.12 208 1 11쪽
94 94.영역. 18.05.05 47 0 11쪽
93 93. 잭의 구슬. 18.04.28 30 1 9쪽
92 92. 지하의 계단. 18.04.21 63 0 7쪽
91 91. 협정. 18.04.14 39 1 10쪽
90 90. 손님. 18.04.07 124 0 8쪽
89 89. 선과악. 18.03.31 62 1 8쪽
88 88. 어색한 기류. 18.03.24 48 1 9쪽
87 87. 산중호걸. 18.03.17 391 0 8쪽
86 86. 방랑기. 18.03.10 67 1 9쪽
85 85. 별이 빛나는 밤에. 18.03.03 4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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