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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요진 님의 서재입니다.

달의 거울-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서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피요진
작품등록일 :
2015.12.16 16:42
최근연재일 :
2018.08.18 12:19
연재수 :
108 회
조회수 :
15,452
추천수 :
83
글자수 :
448,426

작성
18.03.24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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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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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88. 어색한 기류.

DUMMY

백호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그들의 몸은 차가운 것에 얼어붙은 게 아니었다. 마치 뜨거운 것에 덴 듯 온몸이 활활 타올랐다. 그 강렬한 기운. 선우와 원호는 그를 보자말자 움츠려들었다.

“어허허. 자네들 나를 보고 놀랐구만.”

다시금 붕대를 감으며 백호, 블랑이 말했다. 호쾌한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오두막을 울렸다.

“그게 아니라······다들 걱정하고 계세요.” 용기를 낸 건 선우였다. 선우는 블랑을 보자 그와 싸웠다던 수가 떠올랐고, 수가 떠오르자 잭이 떠올랐다. 도도하게 굴지만 언제나 중립이 되어 사방신들의 우애를 걱정하고 평화를 유지하려던 잭이었다. 그의 걱정을 알 까, 하고 블랑에게 말을 슬쩍 꺼냈다. 눈이 보이지 않기에 블랑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는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두껍고 강한 턱이 단단하게 다물렸다.

“잭과 함께 살고 있어요.” 사실대로 말한 선우에 꾹 다물고 있던 입이 커지며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잭, 그 귀염둥이 잭과 함께 살고 있단 말이군. 으하학.” 꺽꺽 소리를 내면서까지 웃는 블랑을 선우와 원호는 의문스럽게 바라봤다.

“왜, 왜 그러세요?”

원호의 물음에 블랑은 눈물을 훔쳐내며 말했다.

“그 까다로운 성격을 어떻게 버티는 거야. 아주 대단한 걸?”

블랑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함박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너희들 밀밀당에서 공부를 하는 게로구나.”

“네. 저는 무치에게서 수학하고 있습니다.”

“그래? 물의 기운을 타고 났구나. 너는?”

블랑은 원호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는 사실 금의 기운을 받았는데, 블랑이 없어서 잭이랑 수룡 선생님께 무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흐음, 그렇구나. 이거 미안하게 됐어.”

“아닙니다.”

말을 줄이던 원호는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손바닥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중얼거리더니 이내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검 하나가 생겨났다.

“아니, 이건 백호의 검 아니야?”

반가운 옛 친우를 만났다는 듯 블랑은 붕대를 벗어들고 검을 잡았다. 마침내 제 주인을 만난 검은 빛을 뿜어내며 빛났다.

“이걸 네가 들고 있었구나.”

“예전에 레아가 줬어요. 전투를 치르러 간다고 헤헤. 이제 주인을 만났으니까 돌려드릴 게요.”

“아니다. 이건 나한테 굳이 필요한 것도 아니야. 실은······인간 아이를 위해 만든 것이니까.”

순간이지만 블랑의 얼굴은 먹먹하게 젖어들었다. 그리움 혹은 야속함이 한데 섞인 표정을 선우와 원호는 알아챘다.

“혹시 그 인간이라는 게······.”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거냐?”

블랑은 선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백색 눈동자는 젖어들고 있었다.

“삼촌이에요.”

“조카구나.”

“네.”

선우는 자신과 닮은 눈을 가진 진기를 떠올렸다. 진기는 지금 수와 함께 수의 집에서 밥을 먹거나 비기를 공부 중일 것이다. 그 진기를 구해 오고, 사랑해준 것이 바로 블랑이라는 사실을 선우는 물론이거니와 원호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블랑이라면 자신을 외면한 인간, 진기와 그런 진기를 옆에 두고도 인간을 믿지 않던, 오히려 미워하던 수, 그 둘 모두를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녔는지도 모른다. 선우는 입술을 달싹이며 블랑을 바라봤다. 혹시나 블랑이 자신을 오두막에서 쫓아낸다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구나······그래. 그 아이의 조카였던 거야.”

블랑은 홀로 중얼거리며 우뚝 일어섰다. 그리곤 부엌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힘이 빠진 듯 축 처진 뒷모습을 바라보던 선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 이거 받아라.”

블랑은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게······.”

그것은 바로 작은 호랑이 인형이었다.

“하하하. 그 녀석, 손가락이 길쭉길쭉 한 게 손재주가 좋았지. 뭐든 잘 만들어냈어. 무언가를 조물거리고 있으면 금방 꽃을 수놓거나 인형을 만들기도 했지. 대단했어.”

블랑은 흡족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레아 그녀도 그 녀석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진기가 지닌 손재주는 아끼고 사랑했거든. 그녀가 평소 좋아하던 치자를 수놓은 손수건을 매우 기쁘게 받기도 했어.”

선우와 원호는 레아가 풍기던 치자 향을 떠올리며 따라 미소 지었다.

“참 예쁜 아이였어······.”

미소는 어느새 서서히 굳어졌다. 선우와 원호는 걱정스레 그를 바라봤다. 블랑의 눈이 또 다시 눈물로 번들거렸다. 어쩌면 하얀 눈동자가 빛에 따라 달라 보인 것일지도 몰랐지만 그가 슬퍼한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왜 그러세요?”

선우의 물음에 블랑은 얼굴을 한 번 문지르더니 붕대를 들어올렸다. 재바르게 손을 움직여 눈을 감싼 뒤 애써 밝게 말했다.

“오래 전에 외국에 불도를 전파하러 간 스님 한 분을 뵌 적이 있어. 그 스님께서 그곳 사람에게 들은 말을 내게 해주시더군. 한 동양 남자와 같이 다니는 하늘색 머리의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을 봤다고.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었는데, 이 세상의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는 거야. 스님께 그 이야기를 듣는데, 머릿속에 진기가 떠오르더군. 진기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사람, 하늘색 머리의 사람을 듣자 수가 떠올랐기 때문이지. 그들도 세계를 다니는 모양이야.”

“네. 블랑이 떠난 뒤로 밀밀당을 떠났다고······어쩌다 알게 됐어요.”

“그랬군. 슬픈 일이야. 모두들 뿔뿔이 흩어져서 산다는 건. 비록 수와 나는 매번 첨예한 대립을 했었지만, 나는 그를 존중하고, 좋아했어. 레아가 그를 사랑할 때도 나는 수를 좋은 친구로 생각 했어······이 땅의 만물들을 수호해야할 신으로서 인간을 싫어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고, 그러면서 진기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더욱 이해 못해 미칠 지경이었지······그래도 그런 녀석이 인기는 많은 가봐.”

블랑은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둘이 함께 다닌다는 걸 보면. 뭐, 그래도 수가 함께 있다면 안전하겠지. 언제라도 좋으니까 한 번 꼭 다시 만나고 싶구만”

그의 따스하게 감겨드는 목소리에서 선우는 알아차렸다. 아직도 블랑은 삼촌, 진기를 무척이나 걱정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그것은 유별히 진기가 잘나서도, 블랑이 마음이 약해서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블랑의 성품이었다. 의(義)를 알기 때문이었다. 인간에 대한 사랑, 의리가 그로 하여금 자신을 버린 인간을 용서한 것이다. 수에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세월이 흘렀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많은 미물들을 접하며 깨우친 진리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성품, 의리를 중요시 하는 성격이 어느새 수에 대한 미움이 그리움으로 변하게 만든 것이었다.

“사실 얼마 전에 그 둘을 찾았어요. 라히도와의 싸움이 있었는데 그 때 그들을 구했다고 하긴 뭣하지만, 그들을 다시 밀밀당으로 데리고 왔어요.”

선우는 쑥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래? 그거 다행이구만.”

방금 전의 보고 싶다는 말과 달리 얼굴은 어색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랜 시간을 용서와 그리움의 반복으로 보냈는데, 막상 그 꿈이 현실이 된다는 생각에 얼떨떨한 것이다. 어색한 공기를 읽어낸 원호는 눈치를 살폈다. 블랑은 입을 다물었고, 선우는 가만히 시선을 아래로 깔고 있을 뿐이었다. 그 분위기가 싫었던지 원호는 밝게 말했다.

“언제 한 번 놀러오세요.”

그제야 얼음에서 녹아내린 듯 블랑은 호방한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어허허. 그래, 그래야지. 언제 한 번 우리 친구들을 만나러 가보지. 근데 자네들은 오늘 여기서 묵고 갈 거지?”

“그럼 감사하고요······.”

“그래······.”

또 다시 어색한 공기가 어슬렁거리며 번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원호 역시 어떻게 해 볼 겨를도 없이 블랑은 재빨리 일어섰다.

“나는 아직 볼일이 덜 끝나서.”

선우와 원호는 따라 일어서며 말했다.

“네. 저희는 그럼.”

“자네들은 여기서 쉬게. 금방 다녀올 테니까.”

멋쩍게 웃는 블랑은 어딘지 불편해보였다. 그는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왜, 왜요?”

어렵사리 선우가 물었다. 블랑은 화들짝 놀라며 손을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내 블랑은 나서려는 듯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선우와 원호는 그제야 어색한 기류에서 벗어나겠거니 하고 다시 자리에 앉는데, 블랑이 뒤를 돌아봤다.

“저기.”

“네?”

두 사람은 동시에 외쳤다. 블랑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은 어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잭이나 그 녀석한테나 다른 이들에게 나를 봤다고 말하지 말게들. 그러니까······나는 그가, 그······만라가 보고 싶지 않거든.”

선우와 원호는 의문에 가득 잠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색한 기운이 그들 모두를 휘감았다.


작가의말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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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102. 각자의 자리. 18.07.07 34 0 6쪽
101 101. 계략. 18.06.30 25 1 8쪽
100 100. 명령. 18.06.23 33 0 9쪽
99 99. 소집명령. 18.06.09 26 1 8쪽
98 98. 호가호위. 18.06.02 40 1 7쪽
97 97. 살인귀. 18.05.26 40 0 7쪽
96 96. 지하. 18.05.19 53 0 5쪽
95 95. 깨져버린 결계. 18.05.12 208 1 11쪽
94 94.영역. 18.05.05 47 0 11쪽
93 93. 잭의 구슬. 18.04.28 30 1 9쪽
92 92. 지하의 계단. 18.04.21 63 0 7쪽
91 91. 협정. 18.04.14 39 1 10쪽
90 90. 손님. 18.04.07 124 0 8쪽
89 89. 선과악. 18.03.31 62 1 8쪽
» 88. 어색한 기류. 18.03.24 49 1 9쪽
87 87. 산중호걸. 18.03.17 391 0 8쪽
86 86. 방랑기. 18.03.10 67 1 9쪽
85 85. 별이 빛나는 밤에. 18.03.03 41 0 10쪽
84 84. 비밀. 18.02.24 56 1 7쪽
83 83. 파문. 18.02.17 215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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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80. 소금 과자. 18.01.27 40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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