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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요진 님의 서재입니다.

달의 거울-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서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피요진
작품등록일 :
2015.12.16 16:42
최근연재일 :
2018.08.18 12:19
연재수 :
108 회
조회수 :
15,448
추천수 :
83
글자수 :
448,426

작성
15.12.16 16:54
조회
461
추천
5
글자
8쪽

1.엄마의 죽음

DUMMY

드르륵 드르륵. 탁자 위에 올려 놓은 휴대폰이 낮은 진동을 울리며 그의 잠을 깨웠다. 전화는 참을성 없이 곧 끊기고 말았다. 좁은 방구석의 옷장에 기대어 얼마나 졸았던 것일까. 무릎을 가슴 쪽으로 당겨 안고 그 사이로 고개를 파묻은 자세로 얼마나 잠을 잤던 것일까. 목이 뻐근하게 아파왔고,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목 언저리와 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 배어있었다.

'하......하.......'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꿈 속에서 다시 만난 어머니라니. 자신의 손을 붙잡고 희미한 숨을 내뱉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꼭 닷새가 되었다. 어머니가 죽은 것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옅어지는 숨을 놓치 않으려는 마지막 발악인건지, 어머니는 그의 눈동자를 보며 끊임없이 가픈 숨을 몰아쉬며 자꾸만 힘이 없어지는 떨어지는 눈의 초점을 그의 눈동자에 맞추려 애를 썼다. 자신과 꼭 닮은 아들의 검은 눈동자를 향해. 그는 꿈 속의 어머니를 한 번 더 떠올리며 눈자위가 뜨거워 지는 것을 느꼈다. 꿈 속에 나온 어머니는 자신에게 자꾸만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왜그리도 애처로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봤을까. 병원에서의 마지막 순간, 자신의 아들에게 못 다한 말이라도 있는 것일까. 정말로 어머니가 죽은 것일까. 그는 갑작스레 밀려오는 허무함과 공허함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못했던 그는 왜 이제와서, 어머니의 쓸쓸한 빈 방에서 유품을 정리하며 눈물이 나는 것일까. 눈물이 고이더니 마침내 흐르려던 찰나 누군가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선우야. 밥 먹고 하자."


선우라는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들어온 것은 어머니의 가장 친한 친구, 진서였다. 선우 역시 어린시절 부터 곧잘 진서를 보며 곧잘 이모라 불렀다. 어머니, 정은과 진서는 유년시절부터 강원도와 가까운 고향 마을에서 함께 나고 자란 둘도 없는 친구였다. 정은은 외동이었기에 진서에게 의지를 많이 했고, 진서 역시 남자 형제들은 있었어도 여자 형제가 띠동갑으로 나이 차이가 나는 큰 언니 하나 뿐이었기에 정은과 자매처럼 지내는 게 좋았다. 머리를 땋으며 놀 때에도, 서로 교복 카라를 정리해주며 벚꽃길을 걸을 때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서로를 축하해주던 때에도 두 사람은 평생 함께 할 것 이라 맹세했다. 나중에는 진서가 먼저 도시로 나오자 정은 역시 그녀를 따라 도시로 와버렸다. 진서의 오빠들은 진서와 정은의 우정이 유별나다며 혀를 내둘렀지만 여자들의 우정은 그 또한 사랑만큼이나 모호하고 진한 것이었다. 언젠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자식들이 어른이 되면 꼭 부부가 함께 혹은 두 사람이서라도 좋으니 함께 세계를 일주하며 여행을 하자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그 약속은 정은이 진서를 놔두고 오십의 나이에 속절없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이루어 질 수 없게 되었다.

진서는 함께 했던 약속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지었으나 곧 이내 정은의 아들, 선우를 보며 눈물을 감췄다. 정은이 죽기 얼마 전, 진서의 부탁을 위해서였다. 그 날은 유난히도 정은의 기분은 좋았고,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2년의 투병 속에서 힘들어했던 정은이 안타까웠던 진서는 정은의 밝은 얼굴을 보며 함께 기뻐하고 있었다.

"진서야, 혹시, 혹시나 해서 그러는데. 내가 떠나면, 우리 선우 좀 잘 부탁해."

"어머, 정은아. 무슨 그런 소리를 하니. 얼른 나아서 선우 장가 가고 손주 낳는 것 까지 봐야지."

"그러니까 혹시나 말이야. 그렇게 되면, 네가 나 대신 선우한테 엄마 해 줘야돼. 알았지? 나 대신 선우 장가 가는 것도 봐주고, 손주도 예뻐해주고."

"정은아. 네가 선우 엄마야. 그리고 네가 살아있어도 나는 선우 엄마나 다름 없어. 너도 우리 희선이 엄마나 다름 없고. 그러니까, 얼른 힘이나 내. 나, 너 약한 소리하는 것 싫어. 기집애. 다시는 약한 소리 하기만 해봐."

"왜 울어. 그냥 한 소리야. 진서야. 고맙다."

그 봄날은 제법 날이 차가웠다.


"예, 이모. 이것만 마저 정리하고요."

"그래, 식으니까, 금방 나와야 된다."

"예."


선우는 손을 들어 마른 세수를 하며 어머니의 옷장을 열었다. 딱 5일 전. 어머니는 급히 병원에 가기 위해 이 옷장을 열고 가장 좋아하는 옷을 꺼내 입었었다. 평생 속만 썩힌 아들이 처음으로 선물이라며 사준 빨간 등산용 점퍼였다. 늘 그 옷이 걸려 있던 옷걸이는 텅 비어있었다. 병원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입고 갔던 옷들은 대충 구겨서 비닐봉지에 넣어놨었다. 비닐봉지는 아무래도 거실 한 켠 어딘가에 정신없이 놓여있을 터였다. 선우는 거실로 나가 어머니의 마지막 옷가지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찾았다. 역시나 현관 타일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선우는 옷들을 꺼낸 뒤 다시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지금 손에 들려 있는 이 옷들은 태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니의 마지막 체향이 남은 옷들이었다. 어머니가 즐겨 뿌리던 향수의 장미향과 어머니의 따스한 살 냄새가 섞여 남아있었다. 선우는 옷들을 잘 편 뒤 하나 하나 옷걸이에 걸었다. 특별히 자신이 선물했던 점퍼는 더욱더 반듯하게 폈다. 어머니와의 기억을 따라 점퍼를 살살 손으로 어루만졌다. 그리 고급스럽지도 않은 소재의 옷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고작 이런 것만 받고 떠났단 말인가. 고작 스무살이 넘은 아들에게 이런 선물만 받기 위해 그 갖은 고생을 하며 아팠던 건가. 선우는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터져나왔다.

어머니가 떠났다.

주인을 잃은 점퍼를 보자 검은 파도 처럼 어머니의 죽음이 살갗으로 밀려왔다. 애써 모른 체 하고 있던 어머니의 죽음이 믿기지 않게도 현실이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속에서 이제 더 이상 살아있는 어머니는 없었다. 어머니의 다정한 손길, 어머니의 따스한 온기, 어머니의 그리운 목소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선우는 점퍼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어댔다. 어머니가 떠난 뒤에야 어머니를 위해 울고 있었다. 더욱 얼굴 가까이로 점퍼를 당기자 옷 속에서 무언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울음이 그치지 않는 와중에도 소리는 선명하게 들렸다. 아무래도 점퍼 안 주머니에 영수증 같은 종이 쪼가리가 있는 듯 했다. 선우는 그게 무엇이건 간에 어머니의 물건을 간직하기 위해 점퍼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역시나 손 끝에는 종이가 닿였다. 선우는 종이를 꺼내 바라보았다.

종이는 엄청나게 오래 된 것 마냥 누런 빛을 띠었다.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은 종이가 어떻게 사분의 일의 조각으로 접혀 있었던 걸까. 그리고 그런 것이 어머니의 점퍼에 들어가 있는 것일까. 선우는 천천히 종이를 펼쳤다. A4용지 만한 종이엔 선우에게, 라는 시작의 편지가 적혀있었다. 어머니의 편지였다. 선우는 또 다시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한 자 한 자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특이하게 좌에서 우로 가로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오른쪽에서 왼쪽 편으로 세로로 글이 적혀있었다. 꼭 마치 옛날 조선시대의 친서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우는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소등을 하고 암전이 되기라도 한 것 마냥 머릿속이 캄캄해 질 수 밖에 없었다. 편지를 읽은 순간 선우는 느낄 수 있었다. 그를 둘러싼 세계가 또 다른 곳으로 펼쳐질 것임을.


작가의말

상실과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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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6.11.30 00:52
    No. 1

    느낌이 좋네요. 재밌게 읽어볼게요. 건필하세요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7 피요진
    작성일
    16.12.01 23:35
    No. 2

    감사합니다^^ 제 생애 첫 댓글. 눈물 나게 감사하며, 또 감사합니다.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게 감동 받았습니다. 한 분의 독자라도 감사히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쓰겠습니다. 앞으로 격려와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루하루 행복하시고, 좋은 밤 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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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98. 호가호위. 18.06.02 39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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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92. 지하의 계단. 18.04.21 63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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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 방랑기. 18.03.10 67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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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 파문. 18.02.17 215 1 7쪽
82 82. 비밀. 18.02.10 48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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