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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요진 님의 서재입니다.

달의 거울-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서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피요진
작품등록일 :
2015.12.16 16:42
최근연재일 :
2018.08.18 12:19
연재수 :
10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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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글자수 :
448,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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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31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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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89. 선과악.

DUMMY

삼라만상의 이치이자, 근본인 만라를 본 적 있다고 선우는 생각했다. 블랑이 오두막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는 분명 이 세상의 목소리를, 만라의 형상을 흐릿하게나마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만라는 분명 그곳에 있었다. 불과 물이 한데 뒤섞인 곳, 바람이 나부끼는 동시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곳. 온 천지에 빛이 가득한 그곳에 만라가 서 있었다.

어디였더라······.

언제였더라······.

선우에게는 두 가지 의문이 일었다. 언제, 어디서 그, 만라를 보았는지. 멀뚱히 주인 없는 오두막에 앉아있던 원호는 선우에게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서슴없는 평소와는 달리 조심스럽게 입을 떼는 게 선우의 심사를 뒤틀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저기, 선우야.”

“응?” “있지. 오랜만에 여기 오니까 좋다, 그치?”

“응······하고 싶은 말 있어?”

원호의 눈치를 살피던 선우는 단박에 그의 의도를 알아챘다. 탯줄을 끊으면서부터 친구로, 형제로 자라온 터였다. 그 누구보다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았고, 더구나 원호는 속내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타입이었다.

“그게······.”

원호는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실은 여기 오니까 이모가 생각나서······.”

원호에게 이모라 함은 진서였다. 선우는 문득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식이상으로 엄마를 따르던 원호의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새삼스레 뭘.”

애써 무덤덤하게 말을 하곤 콧잔등을 비볐다. 이곳에 오는 처지에 엄마가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은 그녀를 그리워하는 것은 자신뿐이 아니었고, 감정을 드러내 슬퍼한다거나 함께 울적해진다는 것이 어쩐지 어색했다. 감정에 솔직한 원호는 그런 것이 쉬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무뚝뚝한 선우로서는 힘든 일이었다.

“이모 안 보고 싶어?”

정곡을 찌른다면 더욱 어색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선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고르게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 오두막 주위에는 나무들이 별로 없었다. 텅 빈 공터에 오두막을 지은 것도 같았다. 어디선가 산새소리가 끊임없이 울렸고, 구름은 한적하게 흘러갔다. 원호는 아직도 할 말이 남았는지 입을 달싹이는 기척이 났다.

“예전에 이모를 본 적 있어.”

원호는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건지, 선우는 피곤해지려했다. 그런데 원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놀라운 것이었다.

“천상계였어······.”

선우는 천천히 뒤를 돌아 원호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말갛게 선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천상계라니.”

“예전에 네가 라비스의 저택에서 라알에게 납치당한 적이 있잖아.”

“그랬지······그때 라알의 성에서 전투를 벌였지.”

“그때, 나는 약하기도 하고 무치가 필요하기도 하다고 해서 잭이 나를 천상에 보낸 적이 있어. 무치가 밀밀당에 없다고 하면서.”

“웅.”

“그때, 몸이 나른해져서는 천상이란 곳에 도착했는데, 이모를 본 거야. 하얀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 화관을 썼더라.”

“뭐?”

놀라 묻는 선우와 달리 원호의 시선은 다른 곳을 응시한 채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모, 정말 편안해보이더라. 어떤 고통도 없다는 듯이 잘 지내보였어. 더 이상 아픈 것 같지도 않고, 거기 온 모든 생명들과 다들 잘 지낸다고 했어. 다만 네가 그립다고, 그러더라. 나한테 널 잘 보살펴달라고 하더라. 그런 건 내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하는데 말이야.”

원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게 웃었다. 선우는 그의 말을 듣자 그리움이 용솟음치더니 이내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선우는 고개를 돌린 채 억지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있지, 선우야.”

“으응?”

그제야 선우는 원호를 바라봤다.

“너무 슬퍼하지 마. 이모는 언제나 널 생각하고, 행복하니까.”

“응······. 엄마가 다른 말은 안 했어?”

“했어······.”

“뭐?”

“네 아버지에 관해서······.”

속절없이 흐르던 눈물은 그제야 멈췄다. 선우는 냉정해져서는 원호를 바라봤다.

“언젠가 네가 그를 알게 된다면 분명 화가 날 거라고······하지만 그는 좋은 분이라는 걸 알아달라고······.”

그때 쾅, 하고 선우는 창틀을 내리쳤다. 주먹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정말 엄마가 나한테 전해달라는 말이 그거야? 그게 전부냐고!”

원호는 겁에 질린 채 더듬더듬 말했다.

“그, 그는 영원히 살거라면서······너를 도와 줄 거래. 그때 나는 하도 이모 만난 게 반가워서 그런 말이 뭘 말하는지 몰랐어. 그저 꼭 너한테 전해주겠다고만 하고, 왔는데, 바로 라알과 전투를 하느라 말할 겨를이 없었지 뭐야.”

“말도 안 돼······어떻게 엄마가, 라알을, 라알을!”

선우의 울부짖음이 산속을 찢어발길 듯 했다. 청각이 예민한 블랑은 문득 고개를 들어 자신의 오두막 쪽을 바라봤다.

“선우야. 분명 이모도 몰랐을 거야. 그가 라알이라는 걸. 그리고 라알이 아닐지도 모르잖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지난번 잭 이야기 못 들었어? 라알이 사랑했던 인간!”

원호는 말없이 선우를 바라봤다. 미쳐 날뛰는 그가 안쓰럽고, 자신의 입이 원망스러웠다.

“맞아······.”

포악하게 굴던 선우는 그 기세가 잠잠해지더니 나직이듯 말했다.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나 아까 전에 블랑이 말했던 이야기가 계속 남아있었어.”

“응?”

“만라가 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 말이야. 그 얘기를 듣는데 내가 어디서 만라를 만난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야.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했었는데······네 말을 듣고 깨달았어.”

“언제? 어디서?”

원호 역시 선우와 같은 의문이 드는 모양이었다. 선우는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내뱉었다.

“그때, 네가 천상계에 갔다고 했던 날, 나는 라알에게 붙잡혀 있었잖아. 그때 나 정신을 잃었었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는데, 울음소리가 들렸어. 꼭 라알의 울음소리였는데, 나를 부여잡고 우는 것 같았어. 그래서 나는 속으로 계속 왜 그러지, 이 녀석이 나를 안고 울고 있는 거지, 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몸이 붕 뜨는 것처럼 느껴졌어. 라알의 방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지. 빛들이 수런거리는 곳이었는데, 그곳에 만라가 있었어.”.“

“라알이 만라를 찾아갔다는 말이야?”

“응. 그랬던 것 같아. 아니, 그랬어. 만라와 라알이 둘이서 무슨 대화를 나눴어. 내 목숨을 놓고 둘이서 거래를 하는 것 같았어. 그때도 계속 나는 뭐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는데, 일어나보니 모든 것들이 희미해져서는 생각나지 않더라. 이제야 생각난 거야. 네 이야기를 듣고.”

“만라랑 라알이 서로 알고 있다는 거야? 아니, 둘이서 대화를 한다는 거야?”

“그런가봐.”

“어째서······.”

선우와 원호는 서로를 바라보며 의문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만라는 선(善)이고, 라알은 악(惡)인 거잖아. 근데 어째서.”

원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그들은 동시에 문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거대한 호랑이가, 백호가 서 있었다. 굉장한 기세였다. 쉭쉭 거리며 숨을 내뿜고 있었고, 커다란 바람을 일으켰다. 하얀 등줄기에서부터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블랑?”

백호는 다시 인간의 모습, 블랑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 울었는가?”

선우에 대한 물음이었다.

“예? 네······.”

블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들의 곁에 우뚝 섰다.

“너희도 알게 됐구나······.”

“뭘요?”

“네?”

“이 세상에 결코 선과 악이란 없는 걸세.”

“예?” “대체 이 세상에 누가 선과 악이겠는가. 선이란 악이 되는 법이요, 악이란 선이 되는 법이지. 절대적인 건 없어. 만라와 라알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블랑은 조용히 눈을 감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작가의말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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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90. 손님. 18.04.07 124 0 8쪽
» 89. 선과악. 18.03.31 62 1 8쪽
88 88. 어색한 기류. 18.03.24 48 1 9쪽
87 87. 산중호걸. 18.03.17 391 0 8쪽
86 86. 방랑기. 18.03.10 67 1 9쪽
85 85. 별이 빛나는 밤에. 18.03.03 41 0 10쪽
84 84. 비밀. 18.02.24 55 1 7쪽
83 83. 파문. 18.02.17 215 1 7쪽
82 82. 비밀. 18.02.10 47 1 9쪽
81 81. 돌아온 이들. 18.02.03 51 1 10쪽
80 80. 소금 과자. 18.01.27 40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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