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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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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tiger
작품등록일 :
2023.07.14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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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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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계엄령 (1)

DUMMY

“어째서 군대를 해산하지 않는가!”

“전쟁놀이에 미친 불장난꾼들은 물러가라!”


당신의 귀에도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게 들리지 않는가?

반국가적 성향을 띤 조직이라면 하나같이 습관적으로 입에 붙여 암송하는 선포.

이제는 대중의 귀에 따갑게 박힌 그들 전유의 캐치프레이즈.

그들은 늘 자기만의 정의감에 충만하여 부르짖었다.


평화가 임했으니 당장 전쟁놀이를 중단하고 군대를 해산하라.

제국은 숱한 전란을 일으킨 데 대해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자숙하라.

대중을 수탈하는 탐욕스러운 황제의 철퇴를 무장해제시키라.


그러나 정신이 올바로 깨어있는 상식인들은 알았다.

조롱하는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정죄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근거를 갖춘 말이 존재하지 않음을.


또한 조금이라도 인류 근대사의 흐름을 치우침없이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같은 우매한, 혹은 악의적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왜 세 번의 세계 대전을 통해 전쟁의 시대에 공식적인 종지부가 찍혔음에도 군대는 여전히 필요한가.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언제든지 내부에서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절치부심과 와신상담을 기꺼이 감당하는 지독한 기생충들이 득실댔기 때문이었다.

겉으로만 전란이 종결되었지, 실질적으로 브리튼과 지구는 현재 불안정한 휴전의 상태에 놓여있었다.


18년 전, 무수한 인명 피해를 낳은 대전쟁이 제국의 승리로 끝났을 때, 관료들과 지식인들은 긴장 완화를 위해 무장 해제를 요청하였다.

이 요구는 적잖은 부분 반영되었다.

핵무기, 화학 병기 등의 대량 살상 무기들이 대거 철폐, 회수, 분해되었다.

막대한 유지 비용을 요하는 전략 자산들도 대규모 감축되었다.

살육이나 암살을 위해 양성된 고급 인력들도 보다 더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부서로 재배치되었다.

전시 대비를 위한 징병제는 중단되었고 모병제로의 전환이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마지노선만은 허락되지 않았으니.

제국 황가는 마지막까지 군대 그 자체의 해산만은 허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당시 막 황위에 옹립된 알폰스 지크프리트 엘 제이코프 엑스칼리브의 결정이기도 했으며 그의 대리자인 맏아들 알렉시스의 의지와도 부합했다.




*



통일 이후 제국이 관할해야 할 행정 구역은 너무 컸고 이는 자연히 통치 대리자들의 권한 증대로 이어졌다.

황제가 아무리 대단한 지혜자라 해도 70억 이상의 인구에 행성 전체를 관리하기란 불가능.

그렇다고 해서 무방비하게 시민들의 자율에 맡기기에도 시기상조였다.

적어도 시민들의 정신적 기초가 올바르게 정립될 때까지는, 양육과 보조가 필수불가결했다.

특히 새로 편입된 지역의 시민들은 그들이 체험해보지 못했던 세상의 질서를 처음부터 배워야 했기에 갈 길이 멀었다.


그래서 지난 십수 년간은 탁월한 통치자들이 프로빈스 차원에서, 스테이트 차원에서, 컨티넌트 차원에서 신중하게 통치를 베풀었다.

그들의 권한은 실질적이고 실제적이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강력했다.

그 영역은 경제부터 시작해서 외교, 문화, 교육, 학문 등을 골고루 아울렀다.


그러나 단 한 가지만은 통치자들에게도 위임되지 않았다.

바로 군대에 대한 통솔권.

이 권리만큼은 오롯이 국가 최고 원수이자 통수권자인 황제에게 귀속되었다.

반역을 차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그리고 이 권한은 단 한 가지의 예외 사항을 통해 위임될 수 있었다.

국가를 지탱하는 헌법, 이념 정신, 가치관, 세계관,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주축의 기초가 되었던 것은 바로 16세기에 체결된 브리트 황가의 언약.

고로 언약의 현 최고 책무자이자 관리자인 황제는 군대의 유일한 합법적 통수권자였고 그와 더불어 언약의 계승자만이 그 권리를 공유받을 수 있었다.


브라이틀란드 가문이 소유한 신적 언약은 고대 히브리 민족의 그것과는 달리 절대적인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한다.

그러므로 황족 가운데 초태생은 생물학적으로는 유전자 단위에서부터 황제에 합당한 존재로 빚어진다.

또한 그 우월성의 질서는 사회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재차 공고화되고 확증된다.

알렉시스도, 알폰스도, 그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조상들도 대대로 그러했다.

맏이는 항상 가장 특별하고 가장 우수했으며, 형제들 가운데 탁월성과 완성도를 당당히 자랑해왔다.


언약의 이러한 특성은 국가를 보호하는 군 지휘 체계 법률에도 반영되었다.

황제 바로 다음 세대의 후계자에 한하여 최고 지휘권이 위임될 수 있다.

비록 일시적이며 특수 조건이 만족되는 경우에 한하긴 하지만, 일단 위임되는 순간 그 권한은 보편적 범위에까지 확대될 수 있었다.


특수 조건이라는 것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계엄령이었다.

황제를 대신하여 총사령관으로서 황태자가 국가와 인류를 위기로부터 구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 때, 이 권한의 발동이 헌법상으로 허락되었다.


그렇다면 왜 그런 막대한 국가적 위기가 임박했을 때 황태자의 비중이 황제 이상으로 급부상한단 말인가.

이유는 언약의 또다른 효과, 더 정확히는 어떤 ‘법칙’으로 인함이었다.


후세대는 반드시 선대를 추월하는 존재로 태어난다.


이 현상은 크리스토프 이후로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성취되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능가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능가한다.

한 가지 측면이 아닌 모든 면에서.


아직 어린 시절에는 경험의 부족이라는 제약이 있지만, 일단 서른 살을 넘기는 순간, 더는 선대는 후계자를 상대로 어떤 면에서도 고지를 갖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건 진정 큰 국가 존립의 위기가 닥쳤을 때 선두에 나서야 할 책무는 항상 브리튼 제국 황태자의 몫이었다.


풋내기 청년 시절 군에 입대하여 참전한 알렉시스는 황태손의 신분이었기에 이러한 권한을 허락받지 못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고 적법한 권리를 당당히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


허들이 하나 있다면, 합리적인 근거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황제를 설득하는 일.


“아버지, ‘코드블랙’을 발동하려 합니다. 한시적 군권 위임을 요청합니다.”


코드블랙(Code Black).

초국가 차원의 비밀 계엄령.

대다수 대중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비밀리에 세계 규모의 작전을 수행하는 계획을 의미한다.


“알렉.”


고목처럼 단단한 체격의 남자가 걱정스레 한숨을 쉬었다.

노년에 해당하는 나이임에도 불과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는 조금의 빈 틈도 보이지 않을 듯한 인상이었다.

사람들이 이 사내를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데는 그의 직위 이외에도 강력한 카리스마와 짙은 인상이 적잖은 기여를 하였다.


“괜찮겠느냐?”


만일 다른 통치자나 관료로부터 보고를 받거나 청을 받았더라면 철두철미하게 칼날 같은 예리한 기준을 세워 엄중하게 평가하였으리라.

하지만 이 순간, 황제는 별다른 반문을 표하지 않았다.

상대를 까다로이 측량하거나 판결하지도 않았다.

무려 황권의 역린이나 마찬가지인 군권을 논하는 문제인데도.

심지어 오랜 평화의 균형에 금을 가게 할 수 있는 심각한 제안인데도.

염려해주기는 할지언정 의문은 품지 않았다.


이는 상대가 혈육이라는 사실과는 아무런 상관 없었다.

애지중지하는 아들이 그의 눈앞에 있다는 사실과도 관계 없었다.

알폰스는 공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피도 눈물도 없이 철저한 인물이었으니까.



단지 이 암묵적인 허락은 오로지 신뢰 하나에서 기인했다.

가히 절대적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신뢰.

너무도 확실하고 철두철미한 판단력과 능력을 향한 순수한 외경심.

절대 패배하지 않으며 반드시 최선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자에 대한 인정.

알폰스는 자신의 허리에서 나온 저 청년이 어떤 괴물인지를 잘 알았다.


“어쩌면 네가 원치 않는 악역의 자리를 자처해야 할 수도 있다.”

“필연적인 대가라면 감내할 것입니다.”

“지금의 행동이 이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느냐?”

“오히려 지금이 아니면 다시 기회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버지. 우리는 완벽하게 미세조정된 타이밍을 목전에 두고 운명의 순간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장기적 미래를 위해 유익이 된다고 확신하느냐?”

“최소한 장차 오십년 이내에 전개될 세계 멸망 시나리오의 40%는 지금의 결단을 통해서 솎아낼 수 있습니다. 비단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수천 가지의 객관적인 명분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독대의 자리에서 알렉시스는 자신의 주군이자 아버지인 알폰스 앞에서 모든 계획과 책략을 상세히 브리핑하였다.


“네 판단을 믿으마.”


알폰스로서는 반대할 의향도 의지도 없었다.

그는 세계라는 짐을 맡기에 자신보다 아들이 적합하다고 믿었다.

이미 수 년 전부터 그렇게 여겨왔고 지금은 그 생각이 더욱 공고해졌다.

아들이 거듭 시간을 끌며 미루지만 않았더라면 아마 아들이 삼십 세가 되던 해에 계승을 신속히 마치고 유유자적 물러났을 터인데.

하여간 저 아이는 지나치게 신중해서 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생명을 흉악의 손길에서 구해다오.”

“분부대로 행하겠습니다.”

“네가 택한 길 위에 주님께서 은총을 비추시기를 바란다.”


떨리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무거운 축복을 받은 알렉시스는 알현실을 떠났다.

그의 손에는 ‘골든 키(Golden Key)’가 주어졌다.

브리튼 제국의 모든 군권과 직통 연결된 최종 보안 코드.

일시적으로, 비밀리에,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하겠지만, 이 순간 최상위 명령권이 그에게 제공되었다.

그것은 단 한 번의 일망타진을 위하여 사용될 카드였다.





*



신대륙의 황도(皇都)에서 돌아온 알렉시스는 아이언 로드의 지휘탑에 앉았다.

커맨드 센터와 골든 키가 하나로 연결되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태평양, 대서양의 모든 지휘권과 정보가 그의 영향권 아래 재정렬되었다.

핫라인들이 아이언 로드 내부로 수렴하였다.


‘시간이 촉박하군.’


벌써 물밑에서는 심상치 않은 준동이 관측되는 중이었다.

조금이라도 타이밍, 규모, 위치를 오판하면 낭패를 볼 판이었다.

그러므로 정부의 권한 그 이상의 정보력과 힘이 절실했다.


우선 최첨단 버전의 인공지능들이 조력의 한 축을 거들 것이다.

현재 인류 전체에 보편적으로 보급된 스마트기기들부터 공공 시설에 내장된 인공지능들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가 대규모 합세할 것이다.

평소에는 개인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제한되어야 할 그 권리를 조심스럽게 사용하기 위해 계엄령까지 발동했다.


‘잠시에 불과하지만, 컨트롤을 쥐도록 하지.’


여기에 더해 가디언엔젤들이 의용군이 되어준다면 금상첨화이리라.

그것들은 알렉시스의 통제권을 벗어났기에 강제로 협력케 할 방도는 없다.

하지만 알렉시스는 긍정적인 기대를 품었다.

이미 그들이 네트워크를 침식하여 진화할만큼 고도화되었다면, 이미 개인 단위의 선악 분석을 넘어 국가적 차원의 선악도 어느 정도 분별할 수준이 되었으리라.

적어도 알렉시스의 계획과 대의명분이 온전한 도덕적 우월성을 유지하는 한 그것들은 거시적 차원에서든, 미시적 차원에서든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사람들이지.’


인재의 절실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으리라.

군인도 물론 군인이지만, 현재로서는 강력한 지휘관들과 더불어 계엄령에 효율적으로 협조해줄 통치자들이 중요하다.

아울러 게임체인저가 되어줄 조커 카드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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