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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 님의 서재입니다.

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현대판타지

peacetiger
작품등록일 :
2023.07.14 22:47
최근연재일 :
2024.06.0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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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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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전후 수습 (4)

DUMMY



*


계엄령이 풀리고 사람들이 일상으로 복귀하자 커버넌트 그룹의 자회사들은 이전보다 더 분주하게 활동하였다.

며칠에 불과한 짧은 사건이었고 피해 규모가 적다고는 해도 비상 사태는 엄연히 비상 사태.

잠깐의 혼란은 경제의 질서에 큰 타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여러 도시가 폐허가 되고 사람들이 죽었던, 21년 전 임했던 삼 년의 전란에 비한다면 엄살 떨기는 민망한 수준이나, 어쨌건 능동적인 회복 과정과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은 불가피했다.


커버넌트 그룹은 지구사 유일의 테라 코프답게 기업 정신과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그들은 늘 그랬듯 피해를 원상 복구하고 경제를 재활성화하는 데 선두주자로 나섰다.

최첨단 고부가가치 사업을 다루는 회사들부터 사람들의 일상과 밀접히 맞닿은 기업들까지, 거대한 그룹 내에 포함된 각종 쟁쟁한 경쟁력의 실력자들이 팔을 걷어부치고 뛰어들었다.

그 기세에 같이 영향을 받은 것인지 그룹 외부의 대기업과 중소기업들도 대열에 합류하여 협력하였다.

새우들이 모여 고래를 돕는 격이긴 해도 그 수가 많으면 충분한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흐름을 틈타 커버넌트 그룹은 마침내 마지막 일곱째 버전의 마인드 퓨리파이어를 공격적으로 시장에 공개하였다.

그간의 일들을 요약하자면, 최초의 작품이었던 Ver 1에 연이어 지금까지 짧은 기간 안에 무려 도합 여섯 개의 버전이 만들어졌다.


각 버전 넘버의 소숫점 첫째자리 수는 해당 유형의 버전 내부에서 개량을 거친 횟수였으며, 넘버의 일의 자리 숫자는 버전의 카테고리를 나타내는 값이었다.

예를 들어서 Ver 5.3의 경우, 다섯 번째로 창작된 카테고리 내에서 총 세 번의 품질 개선을 거친 작품을 뜻한다.

소숫점 첫째자리 수의 크기는 크면 클수록 질이 훌륭함을 뜻하되, 카테고리 분류를 나타내는 일의 자리 수는 기기의 특성, 성향, 분류, 클래스를 표현할뿐, 우열 관계와는 무관했다.

이렇게 급격히 여러 차례의 개선 및 확장이 이뤄진 것은 프로토타입의 원 발명가인 나스루딘 마하리쉬 박사의 예상을 벗어난 현상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박사는 그 자신이 본격적으로 품질 개량과 추가 연구에 뛰어들게 되리라고는 미리 예견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는 프리랜서 타입이며 업무 스타일도 대기업과의 협력을 즐기지 않으며 무엇보다 인도 밖으로 나가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탓이었다.

그래도 제한적으로만 불완전하게 작동하는 자신의 발명품을 더욱 구체화하고 보편화하여 세계에 보급하고픈 욕심은 있었기에 잠시 알렉시스와 그의 동생과 더불어 손을 잡았을 뿐이었다.

전에는 그 너머를 노려볼 욕심까지는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마인드 퓨리파이어가 자신의 예측을 훨씬 웃도는 결과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던 것이 아니겠는가.

더욱이 그 규모와 파급력이 어마어마했고 이차적인 효과로 사람들도 각성하였다.

잠룡들과 숨은 천재들이 출몰하여 사회를 급속도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그에 미치지 못하는 수많은 중급 규모 인재들이 나타나 자신의 참된 재주를 높은 효율로 적재적소에 펼치기 시작했다.

만일에 이러한 현상이 거듭된다면 문명 발전 속도는 가속될 것이 분명했다.


아울러 알렉시스가 제시했던 또다른 목적, 곧 마인드 퓨리파이어를 이슬람 정신의 퇴치를 위해 사용하려던 계획이 나스루딘의 회의적 견해와는 달리 정말로 놀라운 실효성을 선보였다.

섬뜩한 일이었다.

세계의 삼분의 일을 집어삼킨 죽음의 종교가 그토록 짧은 시간에 휘청거리다니.

자신의 조상인 마하트마 인드라가 힌두교의 정수리 위에 살육의 말뚝을 박았을 때도 결코 이 정도 수준에 미치지는 못했다.

이러한 쾌거는 나스루딘 박사 속에 잠들어 있던 깊은 호기심, 야심, 흥미를 들끓게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나스루딘의 처음의 입장을 번복하고 커버넌트 그룹이 내민 손길을 일시적으로나마 받아들였다.

아예 입사하려는 생각은 물론 없었고 그저 알렉시스의 이번 계획이 마무리될 때까지 힘을 더해줄 작정이었다.


유타 브라이틀란드 황자를 필두로 퀀텀 일렉트로닉스 코퍼레이션이 먼저 나스루딘과 MOU를 체결하였다.

큰형의 친구인 나스루딘을 유타는 지극정성으로 대우하였고 기업가 특유의 자만심은 내려놓은 채 상전처럼 모셨다.

여기에 더해 이후에는 커버넌트 그룹 산하의 다른 자회사 열두 개가 추가로 합류하였다.

연구원과 연구팀도 여럿 더해졌다.

덕분에 나스루딘의 연구 확장을 도울 인력과 인프라가 배로 증폭되었다.


알렉시스 본인은 워낙 바쁜 일정 탓에 나스루딘의 연구에 직접 동참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틈틈이 짜투리 시간이 확보될 때마다 프로젝트의 전반적 흐름을 읽어낸 뒤 연구자들이 찾아내지 못한 결정적 단서 혹은 패러다임 반전의 힌트를 던져주었다.

이것은 실로 유용했는데, 수천 차례 실패하던 중에도 그의 아이디어를 흡수하면 곧장 예상치 못한 성취의 반전으로 이어지는 일이 숱하게 있었다.


그 결과 몇 개월 사이에 총 일곱 개 모델에 대한 기획안에 완성되었고 전쟁 이전까지 여섯 개의 버전이 실제로 제작되었다.

각 버전은 개발 직후 무한 개량 작업에 들어갔고 많게는 소숫점 첫째자리 수가 8 또는 9에 이르기까지 개량된 모델들이 출시되었다.


Ver 1은 알렉시스가 일차 무기로 사용한 최초 모델로 두 가지 축의 주요 기능, 곧 나스루딘의 ‘인격 교화 프로그램에’ 더해 커버넌트사 오리지널 프로그램인 ‘안티 이슬람 프로세스’를 내포하였다.

여기서 얻은 성과에서 만족치 않고 알렉시스는 기존 모델을 도와줄 베필로써의 추가 기기들을 발명케 하였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Ver 2였다.

이 모델은 Ver 1의 기능들을 소유하되 위력의 폭은 일부분 하향하고 작동의 방향성은 일부 바꾸어 Ver 1의 작동을 보조하는 베필로써 설계되었다.

아울러 안티 이슬람 기능과 뇌 정화 기능에 더해 추가적 기능도 첨가되었다.

이슬람 이외의 영적 위해들에 대한 대적 프로그램이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이슬람 정신 소멸 기능처럼 극적인 효과를 발휘하지는 않고 의심이나 회의감을 불러 일으키는 수준 정도로 설정되었다.


Ver 2부터 Ver 6까지는 모두 이런 ‘영적, 사상적, 이념적 위해 요소에 대한 반발심 생성’ 기능이 탑재되었다.

그런데 버전마다 타겟이 되는 이념이 조금씩 달랐다.

Ver 2는 하나의 세트나 마찬가지인 공산주의, 유물론, 무신론, 진화론이 타겟이었다.

Ver 3는 범신론적 종교인 힌두교나 불교나 뉴에이지 정신이 타겟이었다.

그리고 Ver 4는 모든 가치관이 옳다고 여기는 현대의 ‘다원주의’ 혹은 ‘상대주의’가 대적 대상으로 설정되었다.

여기에는 기독교계 내부의 자유주의 신학도 포함되었다.

Ver 5는 음란을 불러일으키는 성혁명 가치관이, Ver 6는 브리튼의 역사관과 언약을 무조건적으로 악마화하는 반 브리튼 사관(史觀)을 폭격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들의 실존 여부는 소비자들이나 민중이나 적들도 전혀 알지 못했고 오직 관계자인 나스루딘, 알렉시스, 커버넌트 그룹 연구원들만 알았다.

이슬람 하나를 타겟으로 삼았음에도 이 같이 심각한 수준의 봉기가 원리주의자들 사이에서 불었거늘, 만일 블랙리스트에 들어간 이념 항목들이 다 공개된다면 더 위중한 역풍이 불 것은 자명했다.

아직 그런 역풍을 감당할 준비는 되지 않았기에 알렉시스는 신중하게 기획했다.

타겟 파괴 메커니즘으로는 오직 해당 이념에 대한 의심을 심거나 고정 관념을 깨트리는 방식만을 취했다.


결과적으로 이 추가적인 이념 대적 기능들은 유용했음이 밝혀졌다.

무슬림들과의 내전 당시 무슬림 진영에서 탈출하여 일반 시민이 된 보통의 신도들이 다른 종류의 유해한 이념에 흡수되는 현상은 그다지 심각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특별히 공산주의자들이나 성혁명주의자들의 내전을 틈 타 세계를 독식하려던 야욕은 실현되지 못했다.


한편, Ver 3부터는 이러한 보조형 ‘이념 대적 능력’ 외에도 별도의 기능들이 첨가되었다.

예컨대 Ver 3 이후의 버전들은 기존의 세 가지 기본 주축 능력은 위력이 약화된 대신 ‘이성적인 사고력을 영구적으로 증폭하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이 기능은 뉴런과 시냅스 자체를 강화하고 회복시키는 기능이기에 부작용이 없었으며 수많은 보조 효과들도 포함하였다.


알렉시스의 상상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나스루딘과 커버넌트 그룹으로 하여금 더욱 진도를 나가도록 부추겼다.

Ver 4부터는 기존 네 기능에 더해 ‘도덕적인 의지력과 양심 기능의 항상성을 복구하는’ 기능이 더해졌다.

Ver 5부터는 ‘타인에 대한 교감 및 공감의 능력과 선한 행위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는 감정 능력’을 성장시키는 뇌 치료 프로세스가 추가되었다.

모두 엄청난 기능처럼 보이지만 실상 이미 나스루딘이 수년 간 닦아놓은 기초 연구를 다양한 형태로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첨가된 것이라면 단지 알렉시스의 발상 전환뿐이었다.


가장 최근에 출시된 Ver 6의 경우에는 내전 당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패시파이어’ 기능이 더해졌는데, 이 기능의 본질은 앞서 축적된 여섯 개의 주축 기능을 하나로 아우름과 동시에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본능적 영적 고찰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즉 인간을 동물과는 달리 영원을 사모하고 영원에 대한 생각을 기초로 지혜롭게 행동하게끔 만드는 것이 패시파이어 프로그램의 목적이었다.

영원을 진중하게 생각하는 자는 죽음 앞에서도 참된 도덕적 결정을 내리게 되며 생존 본능에 급급하여 패닉에 빠지지 않는 법이니까.


내전 때는 미처 출시하지 못했던 마지막 Ver 7은 이제 마침내 찬란한 모습으로 세상에 데뷔할 채비를 마쳤다.

Ver 7은 앞서 여섯 모델이 발명되는 과정에서 축적된 일곱 종류의 주축 기능을 모두 소유하였다.


다만 하드웨어 모듈이 극적인 도약을 거치기에는 확실히 시간이 충분치 못했다.

즉 일곱 종류의 버전은 각기 물리적 성능 자체로는 비등했고 따라서 담는 기능의 개수가 많아짐은 곧 하나하나의 기능은 효력이 약해짐을 의미했다.

따라서 각 버전은 오로지 ‘새로 추가된 기능’만이 주요 장점이 되었다.

나머지 기능에 있어서는 다른 버전보다 우위에 있지 못했다.

예컨대 Ver 1은 이슬람 대적 기능에 있어 가장 우월한 모델이었고, Ver 2는 기타 이념 대적 성능이 가장 우월한 모델이었으며 Ver 3는 이성적 사고 강화 능력에 있어 가장 탁월했다.


즉 모든 모델은 어느 하나가 나머지를 완전히 대체해버리지 못했으며 상호 협력을 통해서만 완전해질 수 있었다.

어느 것 하나도 버리지 못하며 다 모여 있을 때에만 상호 보완이 이뤄지는 시스템.

이러한 이유인지 소비자들도 1부터 6까지 각 버전의 기기를 최소 하나씩은 소지할 필요성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껏 마인드 퓨리파이어 소비자들, 사실상 전 세계 시민의 거의 전부는 이렇게 여섯 버전의 기기들로 구성된 세트를 소유한채 다방면에서 혜택과 도움을 받아왔다.



“마치 성령의 전신갑주 같군.”


최종 보고서를 받은 알렉시스는 문득 에베소 서신서에 기록된 영적 전투의 여섯 갑주를 떠올리며 실소하였다.

무엄한 생각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모방자에게도 원작자를 영화롭게 할 기회는 있지 않겠는가.

그 위대한 무구인 구원의 헬멧, 믿음의 실드, 복음의 부츠, 의로움의 아머, 진리의 벨트, 말씀의 검에 감히 비할 바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그 무구들을 입기 전 에피타이저로서는 쓸만할테지.



‘일곱 번째 버전에 추가될 기능이 그래서 중요하지.’


알렉시스도 영원토록 인류가 마인드 퓨리파이어의 도움에 아이처럼 의존하게끔 내버려둘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일개 발명품이 신의 영광을 훔쳐서는 곤란하다.

그는 Ver 7에 일종의 음성 되먹임을 첨가해두었다.

한 사람이 일곱 세트의 마인드 퓨리파이어로부터 충분한 도움을 얻어 성장한 뒤로는 천천히 마인드 퓨리파이어 자체에 대한 의존성을 탈피하게끔 하는 기능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마인드 퓨리파이어가 차지해버린 역할을 더 중요한 존재에 내주게끔 하는 능력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기기에 대한 의존을 성경 읽는 습관과 기도하는 습관 쪽으로 옮겨버리는 기능이었다.

만일 한 소비자가 마인드 퓨리파이어의 도움으로 성경 묵독과 기도에 대한 습성이 바로잡히면 그 즉시 뇌의 의존도가 말씀과 기도 쪽으로 옮겨지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었다.

온전한 가치관과 세계관과 영적 습관이 확보된 사람만 마인드 퓨리파이어라는 몽학교사로부터 졸업할 수 있도록 법률이 세워진 셈이다.






*


무슬림 진압 작전의 핵심인 3단계 프로세스는 수주에 걸쳐 오류나 탈락 없이 무사히 완결되었다.

걱정했던 바와 달리 자원 소비는 상당량 절감되었고 제3 세력이 훼방하거나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나오지 않았다.

전 세계의 테러리스트들, 무슬림 범죄자들, 최후까지 항전하던 원리주의자 전원, 공범자들 전원이 무탈히 한 장소로 모아졌다.


작전 수행 관계자들은 궁금해했다.

무려 5천만을 넘고 6천만에도 육박하는 엄청난 무리를 대체 어디에 구금한단 말인가?

사실상 과거 기준으로 한 국가, 현 기준으로 중상급 규모의 스테이트에 준하는 인구 아닌가.

저들을 죽이지 않고 먹여 살린다는 일은 쉽지 않을 터.

아니 그 전에 한 장소에 모아두는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일일텐데.

모두가 작전의 의의를 의심하며 의문을 품었다.


그러건 말건 진척은 차근차근 이뤄졌다.

피날레를 장식할 마지막 감옥은 인도 땅 한복판에 위치했다.

알렉시스 황태자가 자신의 세 인도 친구들과 이슬람 파괴 작전을 논의하며 최초 회의를 할 때 황태자는 이 ‘비밀스러운 요새’를 사용할 가능성을 넌지시 암시했다.


그 요새란 바로 ‘아크 프로젝트’의 산물로 이미 전대 황제 때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여 이번 세대에 이르러 극적으로 완성된 시설이었다.

요새나 시설보다는 하나의 초거대 지하 도시라고 표현하는 편이 올바르리라.

그것은 다름아닌 미연의 가능성에 의한 인류 멸망에 대비하고자 만든, 차세대 인류를 위한 최후 벙커였다.


선황이 이 무모한 프로젝트를 집행하기로 결단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라면 아무래도 대전쟁이었다.

선황은 재위 시절 3차 대전을 겪었고 그의 살아생전 2차 대전 또한 직접 목격하였다.

그는 그런 위기의 때를 살아낸 사내였다.

차수가 증가할 때마다 전쟁의 위력과 피해의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다음 전쟁이 언제 있을지는 몰라도 만일 임한다면 인류는 잘해야 석기시대, 최악의 경우에는 멸종의 위기를 겪을 판이었다.


물론 선황도 그 전대 황제들처럼 언약을 신뢰하였다.

언약 속 신의 보증 가운데는 브리튼이 적어도 내전이나 반란으로 인해 전복되지는 않으리라는, 최소한 황제들이 언약 조항을 지키는 한에는 그러하리라는 약속이 있었다.

그러므로 브리튼이 세계의 주력이 될 경우 인류가 당장 멸망할 가능성은 최소화되리라.

또한 선황은 성경에 기록된 종말론을 믿었기에 인류가 큰 고통을 겪을지언정 찬란한 신의 재림 이전에 아예 멸종하지는 않을 것을 신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일한 마음으로 인간적인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브리튼이 내전으로 망하지는 않더라도 외세와의 전쟁으로 망할 가능성은 배제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그는 인류 다음 세대를 만일의 때에 보존하기 위해 요새 건설에 착수했다.

장소는 신대륙이 아닌 구대륙의 한복판, 곧 브리튼령 중 가장 본국과의 인연이 깊은 인도 내륙으로 지정되었다.

최대한 다양한 인종을 보존하고자 내린 결정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비밀리에 꾸준히 진행되었고 막대한 비용이 오랜 시간 투자되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와중에 3차 대전이 벌어졌는데, 다행히도 이 도시급 벙커를 실제로 사용해야 할 위기에 이르지는 않았다.

종전 이후로도 프로젝트는 중단되지 않았다.

제위를 넘겨받은 알폰스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틈틈이 아크 건설을 진행하였다.

공사 규모나 예산 편성을 무리하게 늘리지는 않았지만, 대신 기존 계획에 풍성하게 추가적 아이디어를 더해 더욱 현대적인 방식으로 도약시켰다.


그리고 3차 대전 이후 10년 째가 되었을 때, 알폰스는 아크의 완성을 아들에게 위임하였다.

알렉시스는 아버지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프로젝트를 완결하였다.

때마침 시간을 기가 막히게 잘 맞춘 덕분에 아크를 ‘조금 색다른 목적’으로 사용해볼 기회도 생겼다.

알렉시스는 인도의 세 동방 박사와 협의할 때 바로 이 아크를 비장의 카드로써 꺼내보였다.

바로 악당들을 모아넣을 수용소로써.



“자, 라지크. 네 차례야 친구.”


무슬림들과의 전쟁을 마무리한 알렉시스는 마침내 칩거하던 아이언로드에서 나와 비밀요새 아크의 입구가 보이는 곳에 착륙하였다.

간만에 맡는 바깥 공기가 그의 기분을 상쾌하게 하였다.



“마인드 퓨리파이어도, 가디언엔젤도, 이미 완벽하게 내 것으로 소화했지만, 네 기술만은 그렇게 할 수 없었어. 그러니 네게는 아직 네 도움이 필요해.”


인도의 토양이 덮인 대지 위로 알렉시스의 발이 사뿐히 닿았다.

그는 마지막 세 번째 동방 박사가 최후의 임무로부터 도망치기 않기를 소원했다.

황금도 받아내었고 유향도 받아내어서 나름 요긴하게 활용했지만, 몰약만은 다르다.

그런대로 개량해서 레퀴엠을 짓긴 했으나 불완전했다.

원 저자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자, 나를 위해, 네 시민들을 위해 헌정곡을 지어줘, 라지크.”


오랜 고통의 추억이 그의 역린을 긁었다.

곧 그의 두 주먹 위로 뚜렷한 핏발이 서며 정맥이 불거졌다.

단련된 강철 같은 두 팔은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감정의 격화로 인해 굵고 각진 선이 또렷이 도드라졌다.


마에스트로를 영접할 관현악 극장은 준비되었다.

이곳 아크 요새가 한때 인류 멸망에 기여할 최대 위험요소 중 하나였던 이슬람 신앙을 향해 종말의 레퀴엠을 헌사할 무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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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라지쿠마르 (1) 24.02.03 13 0 18쪽
56 맏형의 책무 (3) 24.01.31 14 0 20쪽
55 맏형의 책무 (2) 24.01.29 10 0 12쪽
54 맏형의 책무 (1) 24.01.28 13 0 12쪽
» 전후 수습 (4) 24.01.26 12 0 18쪽
52 전후 수습 (3) 24.01.25 14 0 11쪽
51 전후 수습 (2) 24.01.23 16 0 14쪽
50 전후 수습 (1) 24.01.22 1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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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용병왕 (3) 24.01.16 12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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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하마스 (4) 23.12.27 16 1 15쪽
38 하마스 (3) 23.12.26 1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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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비밀 계엄령 (5) +1 23.12.18 14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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