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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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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연재수 :
120 회
조회수 :
168,236
추천수 :
3,574
글자수 :
645,036

작성
22.08.21 12:00
조회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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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1쪽

116 촬영은 계속되었다.

DUMMY

촬영은 계속되었다.

그러면서 진철은 왠지 이전의 다른 드라마나 영화를 찍을 때 보다는 자유롭다는 기분을 느꼈다.

촬영이 루즈하다는 건 아니었다.

촬영시간은 곧 예산, 당연히 도화꽃 필 무렵의 촬영 자체도 어느 현장과 마찬가지로 치열하고 타이트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주변의 환경이라고 할까?


‘보면 마음이 탁 트이는 바닷가라 그렇기도 하겠지’


아니면 주요 배우들의 쉴 때의 자세 때문일까?

그런 것에서 다른 현장과는 다른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조금전에는 동네 이발소 세트를 지나다가 소파에 둘러 앉아 어젯밤 낚시에서 누가 더 큰 물고기를 낚았나 언성을 높여 떠들고 있는 동네 주민들 역의 중년 남자배우들에게 인사를 했다.

지금은 먹자골목 끝 정자에 오순도순 모여 앉아 웃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는 동네 아줌마 역 배우들과 고이심 배우를 만났다.

모두 이삼십년의 연기경력을 가진 베테랑들인 그들은 쉴 때조차 마치 진짜 이곳 홍산의 주민인 듯 보였다.

그렇게 편하게 보였다.

그 선배 배우들을 보면서 진철은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매시간 긴장하고 있는 것 보다는 좀 릴렉스하는 게 좋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는 게 좋은 연기를 가져다주는 게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진철은 이번 씬을 찍을 곳으로 걸어갔다.

늦은 밤.

태봉과 도화의 첫 만남을 찍을 차례다.


‘공하윤 선배와 연기합이 잘 맞을까?’


이전에는 하지 않던 생각을 하면서 진철은 촬영스텝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갔다.







도화는 먹자골목을 벗어나 밤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아니, 전화를 안 받으면 뭔가 할 일이 있는 거겠지. 다 큰 어른이 뭐 그렇게 걱정되서 소장님은 바쁜 사람보고 가보라고 난리야?”


궁시렁 대면서.


“안 그래도 미친놈 찾느라 바빠 죽겠는데”


그러다가 갑자기 바짝 긴장해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지, 뭔 소리야?”

[콱! 콱!]


뭔가 때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저리가! 저리가! 저리 가라고!”


소리치는 남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귀를 기울이다 가로등 불빛을 벗어나 어두컴컴한 곳을 보니 어떤 남자가 막 움직이고 있다.

언뜻 보면 혼자 발광을 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게 아니었다.

한 손에 작은 털뭉치 같은 걸 들고 발로는 검은색 작은 뭔가를 걷어차고 있다.


“저 놈이구나!”


보자마자 딱 느낌이 왔다.

드디어 고양이나 개 같은 작은 동물들을 죽여 여기저기 널어놓아 동네를 떠들썩하게 만든 미친놈을 발견한 거다.

도화는 한달음에 어둠속으로 달려가 육갑하고 있는 미친놈의 뒷통수를 주먹으로 있는 힘껏 때렸다.


[빡!]

“악!”


제법 큰 소리가 났는데 남자는 쓰러지지 않았다.

대신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뒤로 돌아보며 소리쳤다.


“뭐야! 누구야?”


그 남자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고 눈은 마치 야생짐승이라도 되는 것처럼 날카로웠다.


“경찰?”

“미친놈은 기절시키기 힘들다고 하더니 진짜였네?”


그러다가 도화는 다시 깜짝 놀라버렸다.

남자가 갑자기 도화를 향해 환하게 웃었던 거다.

어찌나 환하게 웃는지 오랫동안 헤어졌던 연인을 다시 만난 사람이라면 저렇게 웃을 것 같다고 도화는 생각했다.


“진짜 미친놈”


그리고 도화는 뒤돌려차기로 남자의 턱을 날려 버렸다.

남자는 화려하게 쓰러져 기절해버렸다.

한 손에는 작은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고.







촬영 현장에는 언제나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오기로 했던 장비나 소품이 도착하지 못하기도 하고, 세트가 제때 만들어지지 않기도 하고, 촬영허가를 받아 두었던 장소의 날짜가 잘못되기도 한다.

도화꽃 필 무렵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만 문제가 아주 없을 수는 없다.

오늘도 그런 일이 발생했다.

봉구가 속한 어린이 축구팀이 경기하는 장면과 응원하러 온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찍어야 하는데 축구장 대관 시간이 겹친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촬영은 기약없이 늘어지기 마련이다.


스텝들이야 똥줄이 타서 이리저리 전화하고 뛰어다녔지만 출연 배우들은 축구장 펜스 밖 그늘에 모여서 있었고 축구팀 아역들은 쉬라는 말에 신이 나서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장난을 치고 있다.


학교 선생이자 축구팀 감독 역할인 김병찬은 진철과 나란히 앉아 있었고 반대편에는 공하윤도 앉아있다.

공하윤은 아들 시합을 응원하는 연기를 해야 해서 거기 있어야 하지만 진철은 사실 김병찬이 정훈이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반 강제로 끌고 왔다.

그래놓고 소개는 안 시켜주고 이상한 소리만 하고 있다.


“훈아.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선물보다 좋은 게 없어요”


정훈이는 멀뚱한 눈으로 김병찬을 봤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김병찬은 팔로 정훈이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에이, 우리 사이에 왜 그래? 다 티 나는데. 너 저기 혜은이 좋아하지?”


정훈이의 작은 몸이 움찔했다.

진철은 슬쩍 고개를 돌려 김병찬이 가리킨 곳을 보니 예쁘게 생긴 여자애가 공을 차고 있다.

동네 아이, 그리고 홍산초 축구부원 중 하나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예요”


정훈이는 딱 부러지게 부인했지만 진철이 보기에 그건 거짓말이었다.

확 붉어진 뺨과 귀는 다른 말을 하고 있으니까.


“에이, 정말? 내가 혜은이 마음을 단번에 확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려고 했는데. 안되겠네”


일부러 천천히 몸을 돌리는 김병찬의 옷자락을 정훈이 잡았다.


“그래도 궁금하기는 하니까. 그게 뭔데요?”


‘걸렸다’라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로 김병찬이 ‘씩’ 웃었다.


“자, 정훈아. 이 사진 봐. 예쁘지?”


그는 스마트폰을 정훈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이수희 선배님이잖아요. 여배우니까 당연히 예쁘죠”


진철이 고개를 내밀어 슬쩍 보니 예전에 같이 출연했던 예능에서의 수희 사진이다.

공하윤도 고개를 내밀어 그 사진을 봤다.


“아니, 누가 사람 보랬니? 차고 있는 액세서리들 보란 말이지”


사진속의 수희는 머리 위에 사뿐히 올려져 있는 티아라와 목걸이, 귀걸이, 반지와 팔찌, 발찌 등의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공통적으로 박혀있는 붉은 보석이 그것들이 모두 하나의 세트라는 걸 말해준다.

김병찬 선배가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자들은 이런 보석에 깜빡 넘어간다는 말이지”


정훈이가 머뭇머뭇 말했다.


“혜은이도 그럴까요?”

“어른이나 애나 상관없어. 여자라면 직방이야. 물론 혜은이도 엄청 좋아할 거야. 내 장담해”

“그런데 이런 건 엄청나게 비싸다고 하던데. 제 용돈으로 살 수 있을까요?”


아무리 조숙해도 애는 애다.

정훈이는 아까 혜은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말은 다 잊어버리고 김병찬의 말에 완전히 혹해버리고 말았다.

아예 김병찬에게서 스마트폰을 받아 사진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건 D사의 제품 중에서도 최고가 라인인 3000시리즈란 말이야. 가장 비싸”


정훈이의 커다란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그럼···그중에 하나만 사도 되는 건가요?”

“어허! 남자애들은 모르지만 이거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엄청나게 유명한 제품이야. 혜은이도 이게 전부 다 세트라는 거 뻔히 알텐데. 그 중에 달랑 하나만 선물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요. 안 주는 것 보다 못하다는 말이야”


그 때 공하윤이 김병찬의 뒤통수를 때렸다.


[딱!]

“악! 왜 때려?”

“야! 애 한테 이상한 것 가르치고 잘 하는 짓이다. 애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런 걸 선물해? 아니 돈이 있어도 그러면 안 되지”


김병찬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야! 넌 여자가 이게 뭔지도 모르냐?”

“몰라! 모르지만 애 데리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건 안다. 애 한테 무슨 보석 세트를 사라고 해? 안 되겠다 너 한 대 더 맞자”


그러면서 다가가자 김병찬은 잽싸게 진철의 뒤로 숨어 버렸다.


“진철아. 네가 쟤 한테 해명 좀 해줘라. 이거 얼마 안 한다고”


김병찬과 공하윤은 진철을 가운데 두고 술래잡기 하는 것처럼 왔다갔다 했다.


“안 하긴 뭐가 얼마 안 해? 그거 D사 거라며. 그거 디올 아니야? 거기다 3000라인이라며? 그러면 하나당 3천만원 하는 거 아니야?”


이번에는 정훈이가 깜짝 놀랐다.


“삼천만원! 나는 그런 돈 없는데!”

“진철이 네가 설명 좀 하라니까! 네 애인이 차고 있는 거잖아. 네가 선물한 거 아니야?”


진철은 웃음이 나와서 참을 수 없었다.


“큭큭큭! 제가 선물한 건 아니예요. 그 날 볼 때까지 저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야! 강진철 비켜. 내가 오늘 저녀석 정신머리를 고쳐줄 거야”


그 때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어! 프린세스 쥬쥬다”


김병찬과 공하윤이 소란을 일으키자 뭐하나 궁금해 다가온 아이들이 어느새 그들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혜은이라는 애가 정훈이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의 사진을 보고 한 말이었다.


“혜은이 너, 이게 뭔지 알아?”


정훈이 한 말이다.


“알아. 우리 집에도 있어. 1000시리즈, 이건 새로 나온 최고급 제품인데 개당 삼천원씩이나 한데”


정훈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이건 없다는 말이지? 그럼 내가 사줄까?”


말을 한 정훈이는 아차하는 표정을 했다.


“오올~~! 정훈이, 은혜한테 고백하는 거야?”


기쁜 마음에 주변을 둘러싼 다른 아이들의 시선을 잊고 있었던 거다.


“이야! 정훈이가 은혜 좋아한다”


애들이라고 친구 놀리는 재미가 어른보다 떨어지지는 않는다.

아니, 어찌보면 순수하게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어른들보다 더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다.

둘러싼 친구들의 놀림에 은혜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몰라! 바보야. 이런 건 애들이나 가지고 노는 거란 말야!”


그리고, 돌아서 멀리 달려가 버렸다.

같이 있던 다른 여자애들도 기회는 떠들어대는 남자애들에게 ‘베에’하고 혀를 내밀고 은혜의 뒤를 따라 가버렸다.

공하윤이 슬며시 잡고 있던 김병찬의 멱살을 놓고 말했다.


“저거 애들 장난감이었어?”


김병찬은 빙긋 웃으며 옷차림을 정리했다.


“응. DOLL’S 사 2022년 SS 제품 중 최고가인 3000원 라인이지”

“요새는 무슨 애들 장난감이 저렇게 정교하게 나온다니? 사진으로 보니까 전혀 모르겠잖아?”

“하윤이 너 정말 몰랐어? 일단은 너도 여자잖아”


공하윤은 ‘빽’ 소리를 질렀다.


“나 때는 저런 거 없었다고”

“하긴 너 때는 지푸라기로 속 채운 인형이나 들고 놀았겠지”

“뭐야?”


하윤의 눈이 뾰족해지자 김병찬은 찔끔했다.

그 때 정훈이 끼어들었다.


“아저씨”

“응?”

“그거 어디 가야 살 수 있어요?”

“프린세스 쥬쥬?”

“네”

“그래, 남자가 한번 마음을 먹었으면 반드시 실행을 해야지. 저기 [다리소]에 가면 살 수 있어. 한 개만 찔끔 사지 말고 세트를 다 사서 선물해 줘”


작가의말

전에 [놀라운 토요일]에 나온 태연씨의 장신구가 화재가 된 적이 있었죠. 

씨크릿 쥬쥬 최고가 3000라인 시리즈가 잘 어울린다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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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119 니들이 뭘 알아 22.08.28 275 8 12쪽
118 118 파티 22.08.25 284 7 13쪽
117 117 미혼모와 미친놈 22.08.23 281 6 13쪽
» 116 촬영은 계속되었다. 22.08.21 305 6 11쪽
115 115 태봉과 도화와 봉구 22.08.19 290 4 12쪽
114 114 내가 미친놈인 게 다행이다 22.08.17 303 5 11쪽
113 113 닮았다 22.08.16 292 7 12쪽
112 112 괜찮아 안 괜찮아 22.04.19 693 14 12쪽
111 111 휴가 가자 +1 22.04.17 842 14 12쪽
110 110 언리얼 22.04.15 866 13 12쪽
109 109 드라마 작가 22.04.13 901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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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107 라이벌리 22.04.09 901 9 11쪽
106 106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22.04.07 829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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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101 도약을 해보자 +1 22.03.26 717 17 12쪽
100 100 굿이 끝나고 촬영이 시작됐다 22.03.24 759 2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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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097 너였냐? 22.03.15 738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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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094 중철무속연구소 22.03.08 811 2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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