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드라마, 퓨전

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연재수 :
120 회
조회수 :
167,931
추천수 :
3,574
글자수 :
645,036

작성
22.04.03 12:00
조회
847
추천
18
글자
12쪽

104 겨우 내가 되려고 그렇게 아팠던 걸까?

DUMMY

“여기서 좀 기다리면 강배우님이 올 거야”


김정수 실장의 지시에 따라 전용수는 김형식을 쌈백엔터의 회의실로 안내했다.


“이거 마시고”

“네”


형식이 엉거주춤 의자에 앉으며 손바닥을 무릎에 비비는 게 전용수의 눈에는 상당히 많이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전용수는 형식과 강진철 배우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

다만 어느날 형식이 나타나 사정사정하다가 강배우님에게 뭔가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만 안다.


‘연기제자 아닐까?’


배우에게 배울게 연기 말고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그러다가 둘 사이가 틀어졌는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가 오늘 느닷없이 다시 찾아왔다.


‘재능이 모자라서 쫒겨난 걸까? 그래도 연기의 꿈을 버리지 못해서 다시 찾아온 거고?’


새삼스럽게 눈 앞의 김형식을 눈여겨 보았다.

전용수도 강진철 배우의 로드매니저 일를 하면서 많은 배우를 봤고 그들이 연기하는 것도 봤다.

이제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정도는 판단할 눈이 생겼다고 자부하지만 매니저로 성공하려면 그 정도로는 모자라다.

스타성이 있는 재목을 알아볼 눈이 있어야 한다.

전용수가 볼 때 이 김형식이라는 애는 그게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


옆 건물 로비에서 뒷통수를 딱 보자마자 누군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개성적이면서도 잘 생겼다.


‘부장님과 실장님이 얘를 왜 회사에 출입하게 해줬는지 알 것 같아’


자기도 드디어 매니저의 눈을 가지게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 히죽 웃었다.

그리고 전에 김정수 매니저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백부장님은 맡겨진 일만 하는 사람에게는 큰 일을 주지 않는다고 했지?’


혹시 이게 기회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긴장하지 마. 강배우님 그렇게 무서운 분 아니야. 나도 강배우님에게 널 다시 받아 달라고 말을 해 볼게”

“고마워요. 전용수 매니저님”

“딱딱하게 그러지 말고 형이라고 해”


조금 더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지만 전용수는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나가봐야 했다.


“오늘 퇴짜 맞아도 실망하지 말고 나중에 내가 강배우님 기분 좋을 때 알려 줄 테니까 그 때 다시 찾아와 봐”


내내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까지 흘리던 형식의 얼굴에 홍조가 나타났다.


“네. 이제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전용수는 빙긋 웃으며 회의실을 나갔다.







회의실을 나가는 매니저형의 뒷모습을 보며 형식은 마음속으로 다시 되뇌었다.


‘이제 정말 다시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형식도 자기가 잘생긴 편인 건 알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진짜 잘생긴 배우들 빼고는 자기도 그리 빠지는 얼굴이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뭐, 남자들은 다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다고 하지만 결정적으로 형식은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런 걸 보면 매력도 있는 게 확실해’


그래도 예체능계 학교로 진학하려면 돈이 많이 들고 또 자기가 끼가 많은 건 아니라 연예인이 되는 건 지레 포기했었다.

하지만 쌈백엔터 사람들과 만나고 난 후 자기도 좀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형식도 바보가 아닌데 백현수 부장이라는 쌈백엔터의 높은 사람과 김정수라는 스타 강진철의 매니저가 자기를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모를리 없었다.


‘없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만들어 주면서 유심히 관찰하는 게 보였으니까’


결정적으로 강진철 배우가 그에게 재능이 있다고 무술을 배울 생각이 없냐고 했을 때는 짧은 생애 한 번도 겪어 본적 없는 희열을 느꼈다.


‘어쩌면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닐까?’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에게 그런 생각은 마약과도 같다.

자동으로 머리속에서 상상이 펼쳐졌다.

무협소설에 나오는 것 같은 강력한 무술을 배우고 또 유명한 스타도 되어 돈도 많이 벌어 화려하게 사는 인생이 눈 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단 하루 무술훈련으로 그 환상이 박살났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니야’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무술을 배우지 않는다고 연예인을 하는 것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지만 아직 어려서 세파에 단련된 어른만큼 낯이 두껍지 않은 형식은 그 둘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었다.

무술배우는 걸 포기해놓고 뻔뻔하게 쌈백엔터에 가서 자기를 연예인으로 키워 달라 하다니.


‘그럴 수는 없어’


형식은 포기했다.

그리고, 이후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집과 학교를 오가며 겉으로는 평소 같은 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형식의 마음은 괴로웠다.

고작 고통 하나 못 참았다는 자책과 생각하기만 해도 이마에 식은땀이 나는 그 고통은 절대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속에서 충돌했다.

그리고, 어쨌거나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마음까지.


시간이 흘러갔다.


그런데 형식의 마음을 돌리게 하는 계기가 생겼다.

김정수 매니저 형이 찾아온 거다.

휴가기간이라고 하는데 다 죽어가는 모습을 하고 찾아와서는 강진철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 때부터 형식의 마음 속에는 또 다른 갈등이 생겼다.


‘부끄럽지만 다시 돌아가서 기회를 한 번 더 달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받아주면, 내가 정말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그런 갈등으로 형식은 하루하루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 걸 끝내 준 건 뜻 밖에도 형인 형철이었다.


형식은 형과 그리 친하지 않다.

집에서 한 방에서 살기는 하지만 형이 집에 돌아왔을 때도 강진철씨가 형의 점혈을 풀어주고 나서도 대화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어느날 자려고 방에 나란히 누웠을 때 형이 말했다.


“나 전에 야구했다는 거 아냐?”

“응?”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그 때 성질 참고 야구 계속 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내 재능에 프로선수가 되지는 못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 참고 꾸준히 야구를 했으면 그래도 깡패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고”

“그런 얘기를 왜 하는데?”


형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너도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무슨 소리야?”


형식은 부모님에게도 형에게도 자기 일에 대해 말을 한적이 없다.

부모님은 걱정할 까봐, 형은 어차피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너 잘 때 계속 중얼거리는 거 아냐?”

“내가?”

“응. 내가 무슨 일인지는 모르고, 또 도와줄 능력도 없지만 매일 잠꼬대를 할 정도로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면 뭐든 해보는 게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다. 설마 네가 나처럼 나쁜 짓 할건 아니잖아”


그리고 다음날 형은 대구에서 만두가게 하는 선배한테 장사를 배워보겠다고 집을 떠났다.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말도 더듬더듬 했지만 그래도 소년은 최선을 다해 자기 생각을 전달하려 했다.


“형이 떠난 날 밤에 음악을 듣는데 한 구절이 마음에 콱 박혀서 계속 생각이 났어요”


뜬금없는 말이다.

묵묵히 형식의 두서없는 말을 듣고 있던 진철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응? 어떤 노래?”

“유희의 [아이와 바다]라는 노랜데요. 거기 그런 가사가 있어요. [아이는 겨우 내가 되려고 그렇게 아팠던 걸까]라는”

“그래?”

“네. 이대로 시간이 가면 나중에 내가 뭐가 될지는 몰라도 한가지 분명한 건 평생 후회를 할 것 같다는 거예요. 나중에 후회하기 싫어요. 그러니까 정말 죄송하지만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면 다시는 도망가지 않을게요”


진철은 사실 근래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형식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솔직이 진철이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늦게 돌아오기도 했고.


‘하지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었지’


진철은 좌우를 돌아봤다.

백부장과 김정수, 이지상까지 왠지는 모르지만 다들 굳이 따라와서 형식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다들 형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저 말이 이해가 되나?’


어쨌든 진철은 다시 형식을 유심히 봤다.

겉모습은 그리 달라진 게 없었지만 여리여리하고 어린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훌쩍 커버린 게 보였다.


‘애들은 돌아서면 훌쩍 커있다더니’


그렇게 노인네 같은 생각을 하다 문득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노래 가사가 마음에 박혔다고?’


진철은 청소년기에도 그렇게 감성적이지 못했으니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래도 진심인 건 알겠다.


“좋아.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 하지만 두 번은 없다. 오늘부터 다시 훈련을 시작하자”

“오늘부터요?”

“왜?”


형식이 벌떡 일어나 크게 소리쳤다.


“아닙니다! 오늘 좋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가사하고 네가 결심을 하게 된 거 하고 어떻게 연결되는 거지?”


형식은 그렇게 말하는 진철이 이상한지 되물었다.


“예?”

“솔직히 그렇잖아. [아이는 겨우 내가 되려고 그렇게 아팠던 걸까?]를 풀이하면 [고생을 바가지로 하고 나서도 이룬 게 없다]는 걸 한탄하는 거 아냐? 다시 말하면 애초에 애쓰지 말 걸 하고 후회하는 내용 아닌가?”


형식은 충격적인 가사 해석에 입을 딱 벌리고 진철을 봤다.

그런데 이번에는 백부장이 말한다.


“아니죠. 강배우님. 인생은 어차피 고해[苦海] 아니겠습니까?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좋아 보이는 인생도 자기 생은 고달픈 법입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고생할 거 나중에 그래서 내가 이정도 성취를 이뤄냈다 생각할 수 있는 삶이 더 낫다는 거 아닐까요? 돈도 많이 벌고 스타도 되고”


그러자 이지상도 말했다.


“아니, 백본부장님. 그건 너무 물질적인 해석이죠. 나중에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인생을 사는게 중요하다는 그런 가사 아닙니까”


김성수도 한마디 한다.


“인생의 그 깊은 고뇌와 방황이 함축된 훌륭한 가사를 왜 그렇게 삭막하게 해석합니까? 가사의 전체적인 맥락을 봐야죠. 그 가사는 그렇게 번민했지만 아직도 자라지 못한 내가 슬프다는 그런 뜻이죠”


그 뒤로도 어른들의 가사에 대한 갑론을박을 보며 소년은 생각했다.


‘그냥 감성을 느끼면 되는데 무슨 해석?’








노래가사에 대한 심오한 토론이 끝나고 백현수는 강진철 배우를 데리고 자기 사무실로 갔다.


“KBC에서 강배우님을 콕 짚어서 보내온 책입니다”


꽤나 많이 진행이 됐는지 4부까지의 책이 한꺼번에 왔다.


“도화꽃 필 무렵?”

“내용은 좋아요. 하루에도 몇 번씩 독촉 전화가 오니까 빨리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강진철 배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책을 집어든다.


“백대표님과 형들이 좀 보자고 해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 일 끝나면 바로 읽어보고 대답을 해드릴게요”

“그렇게 하시죠”


강진철 배우가 일어서는데 교대하듯 사무실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어! 원동연 피디님. 안녕하세요. 별일 없으시죠?”


강배우의 인사에 원동연 피디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어···네. 별일 없습니다”

“그럼 일 보세요”


강진철 배우가 떠나자 원동연 피디가 백현수의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강진철씨는 제 사건에 대해 모르나 보네요?”


백현수는 웃음이 나왔다.


“강배우님은 원래 연기 외에는 연예 쪽으로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최근 원동연 피디의 예능 [그랜드 에스케이프] 4시즌이 종영되었다.

그리고, 흑막의 정체 때문에 시즌 말미부터 아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얘기거리가 되었다.

그 안에 여러가지 사정이 있지만 결국 원동연 피디는 사표를 냈고 백현수는 영입을 제안했으며 오늘은 그 제안의 답변을 듣는 자리였다.


“어쨌든 오늘은 우리 얘기를 하도록 하죠. 결심은 하셨나요?”

“그런데 정말 저 따라오겠다는 스텝들은 다 받아주는 건가요?”

“이번에 자회사로 영상 제작사를 세울 예정입니다. 아무런 기반이 없는 저희 입장에서는 오히려 베테랑 스텝들이 가능한 많이 오셨으면 합니다”


백현수는 빙긋 웃었다.


“이번에 우리 회사가 돈을 좀 많이 벌었습니다. 사옥도 스튜디오도 새로 만들 예정입니다, 또 스텝들 대우도 업계 최고로 해드리겠습니다”


작가의말

[아이는 겨우 이런 내가 되려고 그렇게 아팠던 걸까]


아이유님의 가사는 때로 정말 가슴을 후벼 팔 때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잘생김을 연기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글 올리는 시간은 12시입니다. 22.08.15 150 0 -
120 사죄 말씀 드립니다. 연중공지를 안했었네요. +1 23.09.08 129 1 1쪽
119 119 니들이 뭘 알아 22.08.28 271 8 12쪽
118 118 파티 22.08.25 278 7 13쪽
117 117 미혼모와 미친놈 22.08.23 273 6 13쪽
116 116 촬영은 계속되었다. 22.08.21 301 6 11쪽
115 115 태봉과 도화와 봉구 22.08.19 285 4 12쪽
114 114 내가 미친놈인 게 다행이다 22.08.17 300 5 11쪽
113 113 닮았다 22.08.16 288 7 12쪽
112 112 괜찮아 안 괜찮아 22.04.19 688 14 12쪽
111 111 휴가 가자 +1 22.04.17 839 14 12쪽
110 110 언리얼 22.04.15 858 13 12쪽
109 109 드라마 작가 22.04.13 898 9 11쪽
108 108 사투리 연습 22.04.11 894 11 13쪽
107 107 라이벌리 22.04.09 898 9 11쪽
106 106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22.04.07 825 14 13쪽
105 105 MAPA 2차 주주총회 +1 22.04.05 877 18 15쪽
» 104 겨우 내가 되려고 그렇게 아팠던 걸까? 22.04.03 848 18 12쪽
103 103 뭐가 있는 날 22.03.31 705 17 12쪽
102 102 찌그러진 거울 +2 22.03.29 695 15 12쪽
101 101 도약을 해보자 +1 22.03.26 713 17 12쪽
100 100 굿이 끝나고 촬영이 시작됐다 22.03.24 756 20 13쪽
99 099 굿은 굿엔딩이 될 수 있을까? +3 22.03.22 707 22 13쪽
98 098 북소리와 방언 22.03.19 725 22 13쪽
97 097 너였냐? 22.03.15 734 21 12쪽
96 096 김율 +2 22.03.13 724 21 12쪽
95 095 어디 귀신 없나? +2 22.03.10 822 24 17쪽
94 094 중철무속연구소 22.03.08 805 26 17쪽
93 093 지옥에서의 초대 +1 22.03.06 840 22 13쪽
92 092 온갖 긍정적인 시그널의 총합 +2 22.03.04 824 2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