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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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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연재수 :
1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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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4
글자수 :
645,036

작성
22.03.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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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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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3 뭐가 있는 날

DUMMY

영화 촬영 뒷풀이까지 다 끝난 후 막 집에 들어가던 진철은 뭔가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냄새를 따라 주방에 들어가자 누가 들어오는 것도 모를 정도로 온 정신을 집중해 칼로 도마 위에 놓인 뭔가를 짓이기고 있는 수희가 보였다.


[탁, 탁, 탁]


아일랜드와 그 주변이 식재료들의 파편과 쓰레기들로 지저분했다.


“수희 너 요리할 줄 알았어?”


깜짝 놀란 수희가 고개를 들며 칼까지 치켜드는 걸 본 진철이 빨리 다가가 수희의 팔을 붙잡았다.


“칼 조심해. 다쳐”

“응? 으응. 촬영은 잘 끝났어?”

“아니, 칼···어, 잘 끝났어. 그런데 왜 그렇게 봐?”

“내가 어떻게 보는데?”

“좀 능글맞은 아저씨 같은 본다고 할까?”


수희의 이마가 팍 찌푸려졌다.


“아저씨 같다니? 맛있는 음식 해줄라고 했는데 안 해줘”


아까의 이상한 냄새는 음식에서 나는 거였나 보다.

그걸 안 먹게 해준다니.


“고마워. 넌 천사야”

“야!”


수희가 칼을 든 걸 잊었는지 손을 막 휘두르려 했다.


“어허! 조심. 그런데 진짜 왜 그런 표정으로 본거야?”

“진철이 넌 촬영 끝나면 항상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정말 배우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지금까지 진철은 연기가 끝나고 나면 항상 뭔가를 해냈다는 기쁨보다는 아쉽다는 감정이 더 컸었다.

조금 더 잘 할 수 있었다는 그런 아쉬움.

그게 얼굴에도 나타났었던 것 같다.


“그러네, 이번에는 뭔가 준비한 걸 다 쏟아냈다는 기분이 들었어. 처음 경험하는 거였는데. 그래서 표정이 달랐나?”

“내가 그 마음 알지, 알지”

“너는 연기 끝나면 항상 그런 기분이 들어?”

“대부분?”

“그렇구나”


진철은 속으로 생각했다.


‘재능이란’


수희나 다른 배우들은 그가 목숨을 걸고 쌓아 올린 그런 연기적 토대를 바탕으로 겨우 느낄 수 있던 걸 시작부터 가지고 있던 거다.

약간 샘이 났지만 괜찮다.

이제는 진철도 그런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어엿한 배우가 되었다.


수희가 칼을 놓고 앞치마에 손을 닦은 후 말했다.


“촬영 어땠는지 말해봐”

“듣고 싶어?”

“응”


허탈했던 마음이 가시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둘은 거실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강진철 배우가 오기 전 김정수와 이지상은 연습실의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렇게 훔쳐보지 말고 당당하게 보지? 뭐, 궁금한 거 있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이지상이 무심하게 말하자 김정수가 흠칫했다.


“어? 아니 뭐, 너 정체가 뭐냐?”


퇴마굿을 계기로 김정수는 이지상이 그저 평범한 경호원은 아닐 것 같다 생각하게 되었다.

이지상이 부른 수상한 사람들이 난장판이 된 공터를 정리한 후 쓰러져 있던 처음보는 남자를 데리고 갔다.

절대 평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 이후로 궁금한 것을 참다가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지금 물어본 것이다.

하지만 물어보면서도 확실한 대답을 들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지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 정체를 알려줬다.

국정원 비밀조직의 직원이라고.


“쌈백엔터에서도 강진철씨와 백부장 밖에 몰라. 너도 이제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해주는 거니까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돼. 특급 비밀이거든. 우리는 국정원에서도 숨겨진 부서라”


기가 막혔다.


‘그거 007같은 스파이 아냐? 나도 강배우님 따라다니면서 이상한 일 많이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선 넘었네’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귀신이 진짜 있다는 게 더 충격적인 일이지만 기절해 있느라 악령을 자기 눈으로 보지를 못해서 – 사실 깨 있었어도 영력이 없어서 보지 못했겠지만 -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국정원 비밀조직의 에이전트라는 건 피부에 확 와 닿는 얘기다.


거기까지 생각했는데 이지상이 말했다.


“내 정체는 잊어버리고 살아. 이쪽 방면에 관심을 가지는 건 위험해”

“위험해? 누가 잡아가고 그러나?”


이지상이 김정수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그보다는 이쪽 일이 좀 수렁 같아서 한 번 발을 들이면 다시 빠져나가기 힘들거든”


그러면서 이지상은 장난꾸러기처럼 웃었다.

그 때 진철이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이지상이 일어나며 말했다.


“유현건씨 일로, 저희 사장님이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진철도 이제 그 수상한 남자 이름이 유현건이라는 걸 안다.


“조사는 다 끝났나요? 그 사람 정체는 뭐죠?”

“그건 지금 말하기 좀 그렇네요”


이지상이 슬며시 옆에 앉은 사람을 보며 말하자 김정수가 투덜거렸다.


“이제 정체를 안다고 대놓고 유세 부리네”


진철과 이지상 둘 다 못들은 척했다.


“알았어요. 몇 가지 일만 끝내고 내려 갈게요”


그 때 연습실의 인터폰이 울리고 인포메이션 경비직원이 누군가 방문해왔다는 걸 알렸다.







“왠 일이야?”


진철이 그렇게 말하자 막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혁철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안녕. 친구야. 나도 반가워. 너도 안색이 밝은 걸 보니 잘 지낸 것 같구나”

“그래, 너도 안색이 밝아 보여 좋구나. 그런데 왠 일이냐?”

“그야 당연히 오랫동안 못 본 내 친구가 보고싶어서 왔지”

“본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니까 무슨 일이냐고”


친구사이의 다정한 인사가 오간 후 혁철이 막 용건을 꺼내려 할 때 진짜 진철과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백본부장이다.

또 한차례 인사가 지나간 후 혁철이 쇼핑백에서 머그컵과 티셔츠를 하나씩 꺼냈다.

진철의 ‘그 활짝 웃는 얼굴사진’이 새겨진.


“야! 나 굿즈 사업 안 한다고 했지?”


들어보나 마나 또 사업을 같이 하자는 얘기 같아 진철이 인상을 팍 썼다.


“내가 만든 거 아니다. 이거 봐봐”


혁철이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누군가 길거리에 자리를 깔고 혁철이 가져온 티셔츠와 머그컵 등을 파는 사진이 보인다.


“나도 대전에 출장 같다가 우연히 발견했거든.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보니까 쨔잔!”


혁철이 다른 사진을 보여줬다.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 올라온 상품의 사진이다.


“강진철 굿즈? 이거 이렇게 마음대로 팔아도 되는 거냐?”

“네가 허락한 거 아니면 당연히 아니지”

“어떻게 된 건가요? 백본부장님”


백본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가 들고 온 쇼핑백에서 머그컵과 티셔츠를 꺼냈다.

혁철이 가져온 것과 모양은 다르지만 진철의 ‘그 사진’이 프린트 되어있는 건 똑 같다.


“사실 이게 오늘 할 애기였습니다. 강배우님한테 스트레스 줄까 영화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죠”


백본부장 다운 대답이다.


“처음에는 팬클럽 회원들이 개인적으로 굿즈를 만들어 서로 자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까지 막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회원들에게 굿즈를 팔라는 사람들이 생기고 점점 늘었죠. 또 팬이 아닌 사람들도 이 굿즈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또 이걸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늘어났죠”

“막아야겠네요. 어떻게 해야하죠?”


그 때 또 혁철이 끼어들었다.


“얘가, 얘가 아직 뭘 모르네. 진철아. 변하지 않는 시장의 원리가 있다면 그건 수요가 있으면 공급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야. 곧 전국에서 굿즈 만들어 파는 사람이 우후죽순으로 생길 걸?”

“설마”

“설마는 무슨 설마. 내가 이렇게 될 거라 했냐 안 했냐? 앉아서 천리를 보는 내가 예언 하나 한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외국 길거리에서도 네 얼굴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될 걸? 네가 누군지 모르는 분명히 많이 사게 될 거야”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 혁철의 말을 전처럼 또 무시할 수는 없다.


“어떻게 할까요?”


백본부장에게 말했는데 혁철이 또 끼어들었다.


“어떻게하긴 뭘 어떻게 해? 피하지 못하면 즐겨야지. 그리고, 즐기는 건 돈 버는 즐거움 만한 게 없어”

“결국 굿즈를 만들어 팔자고?”

“그래, 그리고 너도 너만 생각하지 말고 네 팬들도 생각해. ‘리얼스틸’에서 요즘 정품 굿즈를 만들어 달라고 엄청 성화라던데 못 들었어?”


‘리얼스틸’은 진철의 팬클럽 이름이다.

진철이 다시 백본부장을 봤다.


“사실입니다. 역시 오늘 애기를 하려했죠. 일단 무단으로 굿즈를 만들어 파는 건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정식 굿즈를 파는 건 강배우님 의사에 전적으로 따르겠습니다”


혁철이 계속 뭐라고 떠들었지만 진철은 그대로 생각에 잠겼다.


‘설마 혁철이 말대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사진이 들어간 굿즈를 원할까?’


진철이 생각하기에는 아니었다.

그냥 한 때의 유행일테니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거다.


‘그냥 조금만 만들어서 팬클럽 한정으로 나눠주고 끝내자. 무슨 굿즈사업이야?’


그렇게 결정을 내리려는 데 혁철이 떠드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건 진철이 너 하나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야”


진철이 갸우뚱했다.


“그럼 나 말고 또 누구? 우리 회사? 아니면 너?”

“그 사진작가! 너 한테 초상권이 있다면 이 사진을 찍은 그 사진작가님 한테는 저작권이 있지. 네가 굿즈를 안 만든다고 고집을 부리면 그 작가님에게 돌아갈 수익도 없다고”

“아!”


혁철이 머그컵과 티셔츠를 들어올리며 계속 말했다.


“생각해봐. 이 굿즈들이 전 세계로 팔려 나간다면 그 로열티만으로 그 사진작가님은 재벌이 될 수 있을 걸? 그러니까, 그 작가님 의견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혁철의 말이 옳다.


“그럼 전혜진 작가님 의견도 들어보고 결정하도록 하자”


그 때, 또 연습실의 인터폰이 울려 방문자가 있음을 알려왔다.

김상만과 김유진이었다.

그 둘이 들어와 어느새 진철의 연습실에는 사람이 일곱이나 됐다.

워낙 큰 연습실이라 비좁지는 않지만 진철의 마음이 번잡스러웠다.

진철이 한숨을 쉬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


방문자가 쉴 새 없이 몰아친다.


“너희들은 왠 일이야? 전화도 없이?”

“혁철이가 진철이 네 연습실이 좋다고 하도 많이 얘기해서 구경 좀 하려고 왔다”


슬그머니 눈을 피하며 말하는 상만.


“그리고?”

“그리고는 무슨 그리고? 너도 말야. 아파트 이사 간지가 언젠데 말이야. 집들이도 안 하고 말야”


그 때 유진이 상만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악!”

“왜 말을 못하고 횡설수설이야? 그럴거면 입 다물고 가만 있어”

“뭔 일인데 그래?”

“먼저 할 말은 김율이에 대해 장미가 알아버렸다는 거야”

“응? 어떻게? 말 안하기로 한 거 아닌가?”


그러기로 했지만 사실 진철도 언젠가 기회를 잡아서 장미에게 말을 할 생각이었다.


“이 멍청한 녀석이 술 취해서 얘기해 버렸어”


유진이 그렇게 말하며 상만의 옆구리를 또 찔렀다.


“악! 하려고 했던 건 아니야. 그냥 내가 찍고 깊은 영화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엉겁결에 얘기한 거지”


의문이다.


“네가 찍을 영화하고 율이가 무슨 관곈데?”

“김율이가 쓴 무협소설을 읽다가 빡 영감이 왔거든”

“율이가 소설 쓴다는 건 어떻게 알고?”

“수희한테 들었지”


진철은 수희한테 숨기는 것 없이 다 말한다.

그리고, 수희에게 친구들한테 말하지 말라고 한 적도 없다.


‘결국 내가 발설한 거네?’

“너 원래 다른 사람이 쓴 글에는 영감이 안 온다며?”

“그런데 율이 글을 볼 때는 영상이 눈에 그려지더라고. 걔가 연기를 했어서 그런가 표현들이 다분히 시각적이야. 스토리도 괜찮고”

“그럼 율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려고?”

“아! 그런데 다른 부분이 약해. 등장인물도 그렇고, 대사도, 그렇고 사건도 그렇고”


하기는 김율이 소설이 그리 잘 팔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

“공동작업을 하자고 하려고”


타당한 이유다.

진철은 김율의 연락처를 상만에게 알려줬다.


“그런데 장미 반응은 어때?”


진철의 물음에 죄인 상만은 입을 다물었고 유진이 대답했다.


“그걸 모르겠어. 얼굴이 싹 무표정으로 변해서 무서워 물어보지도 못했거든”


진철이 바로 장미에게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그 때 또 연습실 인터폰이 울렸다.


‘하! 오늘 진짜 정말 뭐가 있는 날인가?’


김형식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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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사죄 말씀 드립니다. 연중공지를 안했었네요. +1 23.09.08 129 1 1쪽
119 119 니들이 뭘 알아 22.08.28 271 8 12쪽
118 118 파티 22.08.25 278 7 13쪽
117 117 미혼모와 미친놈 22.08.23 273 6 13쪽
116 116 촬영은 계속되었다. 22.08.21 301 6 11쪽
115 115 태봉과 도화와 봉구 22.08.19 285 4 12쪽
114 114 내가 미친놈인 게 다행이다 22.08.17 300 5 11쪽
113 113 닮았다 22.08.16 288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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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111 휴가 가자 +1 22.04.17 839 14 12쪽
110 110 언리얼 22.04.15 858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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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107 라이벌리 22.04.09 898 9 11쪽
106 106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22.04.07 825 14 13쪽
105 105 MAPA 2차 주주총회 +1 22.04.05 877 18 15쪽
104 104 겨우 내가 되려고 그렇게 아팠던 걸까? 22.04.03 848 18 12쪽
» 103 뭐가 있는 날 22.03.31 706 17 12쪽
102 102 찌그러진 거울 +2 22.03.29 695 15 12쪽
101 101 도약을 해보자 +1 22.03.26 713 17 12쪽
100 100 굿이 끝나고 촬영이 시작됐다 22.03.24 756 20 13쪽
99 099 굿은 굿엔딩이 될 수 있을까? +3 22.03.22 707 22 13쪽
98 098 북소리와 방언 22.03.19 725 22 13쪽
97 097 너였냐? 22.03.15 734 21 12쪽
96 096 김율 +2 22.03.13 724 21 12쪽
95 095 어디 귀신 없나? +2 22.03.10 822 24 17쪽
94 094 중철무속연구소 22.03.08 805 2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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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092 온갖 긍정적인 시그널의 총합 +2 22.03.04 824 2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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