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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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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연재수 :
120 회
조회수 :
168,237
추천수 :
3,574
글자수 :
645,036

작성
22.04.17 13:30
조회
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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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2쪽

111 휴가 가자

DUMMY

수희가 슬그머니 진철의 팔짱을 끼자 그 순간 요란한 소음과 동시에 무수한 불빛이 그들을 덮쳤다.


[촤라라라락~~~~]

“이쪽을 보고 한 번 웃어 주세요”

“이쪽, 이쪽도 부탁드립니다”

“여기요. 여기”


사방에서 기자들의 요청이 쏟아지는데 서로 먼저 사진을 찍으려 다투다 보니 말소리가 다 섞여서 웅성거리는 걸로 들린다.

방송국 문 앞에선 진철과 수희 두사람은 한동안 기자들의 요청을 들어줬고 김정수와 오윤희가 적절할 때 끼어들어 상황을 정리했다.


“재미있었다. 그지?”


차에 올라탄 수희가 그렇게 말했다.


“응. 재미있었어”


대답을 하던 진철은 문득 수희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다 생각했다.

옆을 돌아보니 얼굴에 생기가 돌고 눈이 반짝거려 평소보다 훨씬 더 예뻐보인다.


‘놀아라 토요일 팬이라더니 정말 재미있었나 보네’


그들은 예전, 진철의 바람둥이설이 생겼을 때 백본부장이 잡겠다고 했던 예능프로그램에 출연을 끝내고 나오는 길이었다.

기왕이면 수희가 좋아하는 프로에 나가려 했는데 진철이 [지옥에서의 초대] 때문에 집중했어야 해서 출연이 연기되었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 바람둥이설도 좀 가라앉아 굳이 출연할 필요는 없지만 약속을 했으니 당연히 지켜야 한다.


‘그리고, 수희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출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제 연습실로 갈 거야?’

“응? 그래야지”


무심하게 대답을 한 진철은 ‘수희 너는?’하고 물어보려다 멈칫했다.

순간적으로 수희의 얼굴이 약간 굳었기 때문이다.


‘오랫만에 같이 나와서 빨리 돌아가기 싫은가?’


속으로 중얼거리다 문득 생각했다.


‘오랜만에? 아!’


진철은 깨달았다.


‘수희와 이렇게 나온 게 정말 오랜만이구나’


여전히 둘은 매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다.

하지만 그건 수희가 매일 진철의 연습실에 찾아오기 때문이지 진철이 그걸 위해 딱히 어떤 노력을 해서는 아니다.


‘아!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어’


수희는 털털하고 직설적인 성격이다.

말은 많지 않지만 좋은 건 좋다 싫은 건 싫다 딱 부러지게 말하기 때문에 자기와의 관계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에게 원하는 게 있으면 말을 할 거라고.

그런데 지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연기에 집중하는 걸 방해할까 그러지 못하는 게 아닐까?’


진철은 연습에 집중하는 게 좋다.

그런데 수희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수희도 당연히 애인과 둘이 경치 좋은데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데이트도 하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진철의 연기연습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꾹 참고 있는 것 같다.


‘에휴! 나는 여전히 바보구나’


돌아보면 진철도 연애를 시작하고 많이 바뀌었는데 수희라고 바뀌지 말란 법은 없다.

직설적이지만 그만큼 배려심도 크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지’


갑자기 생각해 내려니 좋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먼저 연습실에 올라가 있을래? 나는 형들 좀 보고 갈게”


잠시 머리를 비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진철은 형들을 보며 생각을 환기하기로 했다.

오늘 스케쥴 나가기 전에 급한 일이 있다고 했기도 했고.


“나 돌아왔어. 무슨 일이야?”


진철이 두꺼운 보안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사무실 안은 소란스러웠다.

세 형들이 사무실 가운데에 모여 마구 소리를 지르며 이상한 춤을 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저게 춤인가?’

“야호! 역시 우리는 쩔어”

“이거지. 이거지”

“빰빰빠빠빠빠밤. 뚜루루루루루”


관절을 요상하게 꺾으며 움직이는 게 좀비가 걷는 것 같기도 하고 미국 원주민이 모닥불 주변을 돌며 춤추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건 배가 불룩 튀어나오고 이발도 안 하고 수염도 안 깎아 꾀죄죄한 남자들이 몸부림 치는 걸 보는 건 정신건강에 심하게 좋지 않다.

그런데도 백대표와 영공인터네셔널 최사장은 사무실 한 켠에서 그런 형들을 흐뭇하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참 비위도 좋은 사람들이다.


“강진철씨 왔습니까?”

“우리 이사님 마침 잘 왔어요. 할 얘기가 있었는데”


형들은 내버려두고 백대표와 최사장에게 다가가 마주 인사를 하다가 우연히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에 떠 있는 사진을 보게 됐다.


“어? 저 여자”


그러자 최사장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강진철씨 왜 그러세요? 혹시 저 사진에서 아는 사람이라도 발견했나요?”

“잠깐만요”


진철이 모니터 앞으로 가 자세하게 본 후 말했다.


“이 여자요. 미국에서 본 그 중국여자예요. 그 스파이 같던”


진철이 사진 속 노년의 남자 옆에 서 있는 젊은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확실합니까?”

“네. 확실해요”


최사장이 신음하듯 말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옆에 이 남자는 누구죠?”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국회의원이죠”


발음을 잘못했는지 ‘국개의원’이라고 들린다.

그 때 몸부림을 잠시 멈춘 성철형과 두 형이 진철을 둘러쌌다.


“진철이 너도 이리 와! 같이 춤을 추자”

“내가 왜?”


진철이 반문했지만 성철형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다.

급기야 세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진철 주위를 뱅뱅 돌며 떠든다.


“우리를 찬양해. 우리는 세계 제일의 천재야”

“그럼 세상 어떤 장벽도 우리의 천재적인 재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지”

“삼정이든 아플이든 다 꺼지라 그래. 우리가 최고야”


말에 이상한 박자까지 섞인 게 주문 같기도 하고 노래 같기도 하다.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


“알았어. 알았어. 형들 잘난 거 아니까 그만해. 귀 아파”

“진철이 너는 형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

“나도”

“나도”


뭐가 위대한지 자랑하고 싶으니 물어봐 달라는 건데 이럴 때는 원하는대로 해 줘야 멈춘다.


“그래, 형들 또 어떤 이상한 짓을 했길래 이렇게 자랑질을 하고 싶어 안달이야?”

“우리가 새로운 차원의 해킹 프로그램을 만들었어. 봐봐. 그 사진은 경찰 CCTV를 해킹해서 가져온 사진이라고”


뭐가 대단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정도는 전에 미국에서도 했던 거 아냐?”


세 형은 ‘이런 바보가 있나’ 하는 눈으로 진철을 보다가 화를 냈다.


“그거랑 이게 어떻게 똑같아? 기술적 난이도가 몇 백배는 차이 나는데”

“맞아. 전에는 하드웨어를 해킹하고 스파이 프로그램을 심어 이용했으니까. 그런데 이건 그런 것 하나 없이 쌩으로 통신 네트워크만을 이용해서 해킹 한 거야”


다시 기세가 등등해져 또 자화자찬을 시작했다.


“이제 우리가 세상의 왕이야”

“말만 해. 어디를 해킹해 줄까? 펜타곤? 백악관? 아니면 비트코인의 블록체인?”


신내림이라도 받은 것 같이 형들의 얼굴은 온통 환희에 차 있다.

그래봐야 진철은 뭐가 대단한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아는 것 같다.


“정말 백악관도 해킹할 수 있어요?”


최상철사장이 갑자기 끼어들어 한 말에 세 형들이 잠시 주춤했다.


“어···아직은 좀 힘들지만”

“그래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번에 들여올 양자컴퓨터와 슈퍼컴퓨터만 있으면 조만간이지”


성철형의 말에 세 사람이 다시 흥분의 상태로 진입했다.


“양자 컴퓨터, 슈퍼 컴퓨터!”

“양자, 양자, 슈퍼, 슈퍼”


이번에는 서로 양손을 맞잡고 진철을 가운데 두고 강강수월래를 한다.


“정신 사납다니까! 그 컴퓨터가 뭐길래 그러는 거야? 컴퓨터라면 이 밑에 층에 수십대도 더 있잖아”


움직임이 딱 멈춘 형들은 또 ‘이런 멍청한 놈을 봤나’ 하는 눈빛을 발사했다.

진철은 그런 눈길을 받는 게 억울했다.


“왜? 나는 배우라고 컴퓨터는 잘 몰라도 돼”


그래도 형들은 자기들 동생이 이렇게 무식하다는 걸 용납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인간으로써 기본적인 소양은 있어야지”

“우리 동생이 이런 무식충이라니”

“세상에. 그걸 모르다니 말이 돼?”


진철이 슬슬 열을 받으려고 할 때 백대표가 끼어들었다.


“이번에 번 돈으로 세 이사님들을 위해 슈퍼컴퓨터를 샀습니다. 그리고, 여기 최사장님이 힘을 써 주셔서 한국표준연구원과 과학기술원에서 개발중인 양자 컴퓨터를 또 한대씩 살 수 있었죠”


양자컴퓨터와 슈퍼 컴퓨터라는 말에 무슨 각성효과라도 있는 것처럼 형들은 또 흥분상태에 빠져 ’양자, 양자, 슈퍼, 슈퍼’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최사장을 보며 구십도로 인사를 한다.


“최사장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최사장은 기분좋게 웃는다.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필요하면 말 하세요. 우리가 양자컴퓨터를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기만 하면 정말 백악관도 해킹해 줄 수 있으니까”

“하하! 기대하겠습니다”


다시 접신 상태로 빠진 형들이 이번에는 양손을 들고 진철 주변을 돌았다.


“양자. 양자”

“슈퍼, 슈퍼”

“양자, 양자”


이제 시끄럽다 하기 지쳤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있다.

형들은 지금 몹시 행복한 상태라는 거다.


‘그래, 행복하면 됐지. 그래도 역시 형들과 나는 좀 달라’


형들은 정말 다른 것 필요 없이 그들이 연구하고 싶은 걸 연구하고 성취를 할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한 것 같다.

진철도 얼마전까지는 그랬다.

연기를 계속할 수 있고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으면 행복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로는 모자라다.

뭔가 더 있었으면 한다.


‘아니, 이미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거기까지 생각하던 진철은 생각을 멈추고 다시 좀비춤을 추기 시작한 형들에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왜 보자고 한 거야?”

“”어! 진철이 너 한 한달정도 후에 시간 좀 내 줘”

“왜?”

“이번에 컴퓨터 외에 여러가지 검사장비들도 같이 샀거든”

“그런데 왜?”

“그걸로 네 몸부터 검사 해 보자고”

“응? 나? 날 왜?”

“왜기는 왜야? 세상에 기[氣]를 다루는 사람이 너 하나밖에 더 있냐? 아니, 뭐 더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 주변에는 너 밖에 없잖아. 이런 신기한 상황을 그냥 넘길 수 있어?”


성철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두형이 합창을 했다.


“연구해야지”

“연구해야지”


연구를 위해 신체검사 몇 번 해주는 건 대수로울 것 없지만 지금 형들 상태를 보니 좀 오싹하기는 하다.


‘해부라도 하자고 하는 건 아니겠지?’


형들이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아 보이기도 한다.


‘아니, 형들은 과학자가 아니라 그냥 공돌이잖아.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연습실에는 수희와 주리누나가 소파에 앉아 얘기를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형식도 이지상대리도 정수와 전용수까지 있다.

진철이 다가가 말했다.


“수희야. 우리 휴가 가자”


생각났으면 실행하는 거다.


“응? 언제? 어디로?”


수희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저기 포항 근처는 어떨 것 같아?”

“포항? 거기 [도화꽃 필 무렵] 촬영지 아니야?”

“응. 생각 같아서는 어디 좀 먼 외국으로 가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으니까. 그 쪽 경치 좋은 바닷가에 집 하나 얻어서 휴가 겸해서 가자. 나 연기 연습하는 틈틈이 주변 관광도 하자고. 너도 바닷가에서 좀 쉬고”


진철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수희가 대답했다.


“좋아!”


그런데 주리누나도 대답했다.


“나도 좋아!”


다른 사람들도.


“저도 좋습니다”

“휴가를 겸한다지만 연습도 해야 하니까 매니저인 저도 가야 겠네요”

“저, 저도”


진철이 어이가 없어 훑어보자 다들 눈을 피하지만 그래도 말을 번복하는 사람은 없다.


“에휴~! 그래. 다들 같이 가자. 하지만 숙소는 따로 잡아”

“야호!”


주리누나가 팔짝 뛸 때 진철이 유일하게 같이 가겠다 말을 하지 않은 형식을 보며 말했다.


“방학인데 형식이 너는 집에서 어디 가기로 했니?”

“아뇨”

“그럼 너도 같이 가자.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수련이니까. 네 수련이 요즘 고비야. 여기서 멈추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된다”

“그···그럼 저도 갈게요”


그렇게 정리가 되었다.


작가의말

우리나라에도 양자 컴퓨터가 개발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은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물리학 쪽에서 만든 것과 공학 쪽에서 만든 것 두 개가 이미 제품으로 만들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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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119 니들이 뭘 알아 22.08.28 275 8 12쪽
118 118 파티 22.08.25 284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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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116 촬영은 계속되었다. 22.08.21 305 6 11쪽
115 115 태봉과 도화와 봉구 22.08.19 290 4 12쪽
114 114 내가 미친놈인 게 다행이다 22.08.17 303 5 11쪽
113 113 닮았다 22.08.16 292 7 12쪽
112 112 괜찮아 안 괜찮아 22.04.19 693 14 12쪽
» 111 휴가 가자 +1 22.04.17 843 14 12쪽
110 110 언리얼 22.04.15 866 13 12쪽
109 109 드라마 작가 22.04.13 901 9 11쪽
108 108 사투리 연습 22.04.11 897 11 13쪽
107 107 라이벌리 22.04.09 901 9 11쪽
106 106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22.04.07 829 14 13쪽
105 105 MAPA 2차 주주총회 +1 22.04.05 882 18 15쪽
104 104 겨우 내가 되려고 그렇게 아팠던 걸까? 22.04.03 852 18 12쪽
103 103 뭐가 있는 날 22.03.31 712 17 12쪽
102 102 찌그러진 거울 +2 22.03.29 699 15 12쪽
101 101 도약을 해보자 +1 22.03.26 717 17 12쪽
100 100 굿이 끝나고 촬영이 시작됐다 22.03.24 759 2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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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097 너였냐? 22.03.15 738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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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095 어디 귀신 없나? +2 22.03.10 826 24 17쪽
94 094 중철무속연구소 22.03.08 811 26 17쪽
93 093 지옥에서의 초대 +1 22.03.06 846 22 13쪽
92 092 온갖 긍정적인 시그널의 총합 +2 22.03.04 827 2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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