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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방랑 성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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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P9
작품등록일 :
2021.02.26 22:37
최근연재일 :
2021.03.1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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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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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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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글자수 :
89,395

작성
21.03.09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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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3화

DUMMY

마차는 도적들의 시체를 짓밟으며 도시 ‘멜킨스’에 도착했다.

검문소는 신성 국가 ‘유토피아’ 전역에서 찾아온 순례자들로 북적거렸다.

줄줄이 이어진 인파는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시간이 꽤 흘렀다.

중천에 걸린 해가 서서히 고개를 떨구기 시작했다.

마침내 로드릭이 탄 마차도 검문소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따분함에 몸부림치던 경비병들은 피를 뒤집어쓴 로드릭을 보고 경악했다.

약간의 소란이 벌어졌지만.

다행히 마차에 같이 타고 있던 순례자들의 증언 덕분에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다.


멜킨스에 입성하자 순례자들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마부는 받았던 금액을 두 배로 돌려줬다.

로드릭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피 묻은 망토를 버렸다.

동행인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로드릭은 경비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벌컥.


문을 열자 병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로드릭에게 쏠렸다.

낯선 이의 방문에 움찔하고 놀란 그들은 경계의 눈빛을 띠었다.

몇몇 병사는 손을 더듬거리며 무기를 매만졌다.


로드릭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들이 저리 경계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도 그럴 것이, 로드릭의 덩치는 워낙 어마어마했으니까.


성인 남성보다 한 뼘은 더 큰 키와 어깨 뒤로 걸린 커다란 칼.

다부진 체격과 단단한 근육들.

아무런 짓을 하지 않아도 위험인물로 찍히기 딱 좋은 외관이었다.


그의 외형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든 감내해야 할 수준의 불편함이었다.

게임에선 플레이어의 모습에 신경 쓰던 NPC들이 없었으니까.

누가 봐도 남자인 캐릭터가 여성 옷을 입고 말을 걸든, 보라색 피부의 괴생물체가 도시를 들쑤시던 말이다.

그 정도에 비하면 로드릭은 매우 준수한 편에 속했다.

만약 괴상한 커스터마이징을 설정하고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끔찍한 생각을 저 멀리 치워버렸다.


“무슨 볼 일로 이곳까지 오셨는··· 지?”


나름대로 짬을 먹은 병사가 로드릭의 행색을 살피며 물었다.


“현상금을 수령하고 싶은데.”

“현상금이요?”


병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로드릭은 무심한 태도로 허리에 찬 가죽 주머니를 건넸다.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자루를 풀어보던 병사가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보자기가 떨어지며 내용물이 튀어나왔다.


툭.

데구루루-


잘린 머리를 본 병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시발. 저 얼굴. 바론 아니야?”

“홉슨이랑 비버를 죽인 새끼잖아!”

“이 빌어먹을 개새끼!”


그들은 굉장히 광분한 태도로 몸통 잃은 머리를 맞이했다.

침을 뱉거나 발로 차는 등 거침없는 행동이 이어졌다.

쌓인 게 많나 보군.

로드릭은 팔짱을 끼며 병사들의 행동을 관망했다.

그러자 격양된 병사들의 목소리에 이끌린 남자가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


“무슨 일이냐!”

“로버트 님!”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멜킨스를 지키는 병사로서 절도 있게 행동하도록.”


평소 그의 고지식함을 아는 병사들은 문책을 받을까 눈치를 살폈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경비대장 로버트는 병사들을 질책한 뒤, 소란을 피운 이유를 물었다.

한 병사가 원흉을 지목했다.

짓이겨진 바론의 머리를 발견한 그의 동공이 심하게 요동쳤다.


“이건··· 당신이 한 일이오?”

“그렇소.”


로버트는 복잡한 심경의 눈빛으로 로드릭을 바라봤다.


“어디서 잡으셨소?”

“도시 동쪽에서 오는 길에.”


로버트는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그것도 모르고 서쪽만 뒤지고 있었군.”

“이 녀석 현상 수배가 걸린 거 같은데.”


로드릭은 벽에 걸린 현상 수배 전단지를 턱 끝으로 가리켰다.

덕지덕지 종이 쪼가리가 붙은 게시판엔 바론의 얼굴이 있었다.


“맞소. 현상금 수령 때문에 찾아오셨소?”

“그렇지.”

“놈을 잡다니. 실력이 꽤 좋나 보군. 이쪽으로 오시오.”


병사들에게 도적 우두머리의 수급을 인계한 로버트는 경비대 안쪽으로 안내했다.

방에 들어서자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그는 바깥으로 나갔다.

로드릭은 손님용 의자에 풀썩 주저앉아 시간을 죽였다.


“기다려줘서 고맙소. 내 이름은 로버트요. 멜킨스의 경비 대장을 맡고 있지.”

“로드릭이오.”


로버트가 다시 나타나 차를 대접했다.

산뜻한 녹색 빛이 감도는 비싸 보이는 차였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와 감미로운 향기를 뿜어냈다.


“맨드라 허브를 우려낸 차요. 마셔보시오.”


로드릭이 찻잔을 들이켰다.


[육체에 활력이 샘솟는다. 효과가 지속될 동안 스태미나 상승률이 증가한다.]


“좋은 차로군.”

“아는 지인에게 선물로 받았소.”


로버트도 후루룩 차를 마셨다.

그 말을 끝으로 방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차 마시는 소리만 들려 지겨울 무렵에 로버트가 입술을 달싹였다.


“···일단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소.”

“바론과 아는 사이오?”

“눈썰미가 좋군. 어떻게 알았소?”

“병사들의 눈치가 놈과 아는 사이 같던데.”

“맞소. 그 녀석은 경비대 소속이었소. 그리고 나의 오랜 지기 친우이기도 했지.”


로버트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친우가 현상 수배에 걸렸군.”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십 년 전 도시를 떠난 녀석은 꽤 이름있는 용병이 되어 돌아왔소. 난 녀석을 축하해 줬지. 그런데······.”


로버트는 연신 차를 마시며 목을 축였다.

본인의 사정을 남에게 고하기란 쉽지 않았을 테니.


“거친 용병 생활을 보내서 그런지 굉장히 안하무인 하게 변했소. 또 눈은 탐욕으로 번들거렸지. 허구한 날 도박장에 들러 방탕한 생활을 보냈소. 말려도 소용이 없었지. 내가 예전에 알고 지낸 착실했던 친우는 사라졌소.”


로버트가 찻잔을 내려놨다.

찻잔의 밑바닥은 어느새 비어 있었다.


“그러다 돈이 떨어졌는지 나에게 의탁해 왔소. 혹시 경비대에 남는 자리가 없냐면서 말이오. 나는 그가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하며 흔쾌히 들어줬지. 그렇지만 그건 명백히 내 실수였소.”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순찰 중 처녀를 희롱하거나, 근무 장소에서 무단으로 이탈해 도박장을 가는 등 달라진 게 없었지. 그러던 어느 날, 바론의 만행을 참다못한 내 수하들과 시비가 붙었소.”


그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달라질 거라고 믿던 친우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칼부림이 일어났지. 놈은 내가 아끼던 부하 둘을 죽이고 달아났소. 경비대의 재산을 횡령해서 말이야. 도시에서 사람을 죽인 죄로 현상 수배가 걸렸지. 나도 내 부하들의 복수를 위해 움직였소. 그러나 잡기가 쉽지 않더군.”

“······.”

“어떻게 잡았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운이 좋았지.”

“소문을 듣자 하니 바론을 따르는 놈들이 쉰은 넘었다 들었소. 그 인원들을 혼자 처리했다지?”


하, 벌써 도시 내부에 소문이 퍼진 것인가.

하여튼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깃거리들을 떠들기 좋아했다.

어떤 이들은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과장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정확히는 바론을 포함해 스무 명이오. 몇몇은 놓쳤지.”

“그래도 대단한 거지. 당신의 괴력을 본 이들은 임페리움의 후예가 나타난 게 아닌가 떠들어댔소.”

“낯간지럽군.”

“기적의 사랑이라도 받는 것이오? 혼자서 그 많은 인원을 상대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기적의 사랑이라······.”


로드릭은 피식하고 웃었다.

기적이 나를 사랑한다고?

그런 이 염병할 세상에서 꺼내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내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겠지.

처음 낯선 땅에 떨어져 벌벌 떨며 신을 찾던 그 시절에서부터,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현상금은?”

“여기 있소.”


로버트가 금화 두 닢을 탁자 위에 올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도시에 사람이 많군.”

“모르시오? 니콜라스 주교님께서 오늘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오셨소.”


뜻밖의 소식에 로드릭의 눈썹이 팔자로 휘었다.

구원의 교단 니콜라스 주교.

기적을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머나먼 여정을 떠난 이가 돌아왔단다.

그놈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거지?


“안 그래도 통고의 성모님을 뵈러 매일같이 인파가 몰리는데. 이 소식이 퍼지면서 두 배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멜킨스로 찾아왔소. 우리도 골치 아픈 참이오.”


도시의 치안을 감당하기에 벅찬 상황.

로버트는 이마를 쓸어올리며 짜증 섞인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눈 밑은 거뭇거뭇했다.

피로감에 찌든 얼굴의 주름은 푸석푸석하기 짝이 없었다.


“힘들겠군.”

“그렇지. 그래도 어쩌겠소.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니 말이오.”


로버트가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 일로 봉급을 금화 두 닢이나 받기에 은퇴할 수도 없는 노릇.

요즘은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어 꿋꿋이 버텨야 했다.


“통고의 성모님을 뵈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오?”

“당신도 순례를 위해 찾아오셨소?”


로드릭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흠. 아무래도 니콜라스 주교님께서 돌아오셨으니 이 주일은 넘게 기다려야 할 거요. 순차적으로 순례가 진행하는데 예약이 꽉 차서 말이오.”


이 주일이면 너무 긴데.

로드릭은 이곳에서 사흘 이상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시간을 앞당길 수는 없나? 내가 좀 급해서 말이오.”


도시의 치안과 순례자들의 인솔을 담당하는 로버트.

그에게 부탁하면 예약석 하나 만드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로버트는 인상을 찌푸리며 침음을 흘렸다.

이는 자신의 정의로운 가치관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로드릭이 말했다.


“사실 이 현상금은 그리 필요하진 않소.”

“그게 무슨 소리요?”

“그저 순례자들을 핍박하고 약탈하려 들기에, 기적을 모시는 자로써 단죄를 내렸을 뿐이오.”

“그래서 현상금을 받지 않겠다고?”

“그렇소.”

“자그마치 금화 두 닢이오. 두 닢.”

“차라리 당신이 좋은 곳에 써주시오. 보아하니 병사들 무장도 변변치 않던데 말이지.”

“무슨······.”


로버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경비대의 재산을 가지고 튄 바론.

그 일 때문에 경비대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고 있다.

지금도 변변찮은 무장 탓에 다치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유동 인구가 많다 보니 도시에서 난동을 부리는 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다.

로버트가 사비를 탈탈 털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그의 눈에 망설임이 어리자 로드릭이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난 신경 쓰지 마시오. 그저 멜킨스를 위해 밤낮으로 힘쓰는 이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싶을 따름이니.”


금화 두 닢을 테이블 반대편으로 밀어 넣자 로버트가 성호를 그었다.


“허··· 기적께서 당신의 선행을 기억할 것이오.”


로드릭은 기꺼이 금화 두 닢을 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계산이 깔린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

그의 의중을 모르는 로버트는 눈에 호의가 가득했다.


“고맙소. 이런 은인의 부탁을 저버리는 것도 실례겠지. 잘하면 내일이라도 순례를 할 수 있게 도와주겠소.”

“그거 참으로 다행이군.”

“내일 해가 뜨는 대로 여기로 찾아오시오. 그러면 내가 안내해 드리리다.”


로드릭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간단하군.’


로버트의 호의를 사로잡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병사들의 귀감이 되는 경비대장 로버트.

그는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다하는 투철하고 고지식한 인물이었으니까.

오히려 뇌물을 주려 하면, 호감도가 깎여 적대적인 사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론에게 죽은 수하들의 복수를 대신해 줬다는 것.

뇌물이 아닌, 병사들을 아끼는 로버트의 마음을 파고들어 금화를 기부한 것.

그 둘이 맞물려 이런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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