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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P9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 속 방랑 성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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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P9
작품등록일 :
2021.02.26 22:37
최근연재일 :
2021.03.13 23:55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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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추천수 :
130
글자수 :
89,395

작성
21.03.08 20:00
조회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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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2쪽

12화

DUMMY

하나였을 몸이 둘로 쪼개져 고꾸라졌다.

그 광경을 목격한 이들은 누구나 할 거 없이 경악의 눈초리를 하였다.

사람의 몸이 말 그대로 장작 패듯 세로로 쪼개진 것이다.


갈라진 틈 사이로 인간의 형체를 이루는 것들이 드러났다.

내부의 장기들이 바깥으로 철퍽하고 쏟아져 땅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비위가 약한 자들은 헛구역질을 하며 토사물을 삼켰다.


두 짝으로 나뉜 시신의 눈동자들은 의문으로 가득했다.

고통이라는 말초신경이 뇌에 전달하기도 전에, 로드릭의 칼이 놈을 절단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제리!”


로드릭은 칼에 묻은 피를 훌훌 털어냈다.

클로드라는 이단 심판관한테 얻은 롱소드는 제법 명검이다.

대충 휘둘렀을 뿐인데 사람의 몸이 반 토막 났다.

검날이 햇빛에 반사되어 존재감을 과시했다.


검도 검이었지만.

레벨이 오르면서 상승한 능력치들.

높은 근력과 민첩, 기교가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낸 결과물이기 했다.

로드릭은 한층 더 강해져 있었다.

자신의 변화에 만족스러웠던 그는 흡족만 미소를 띠었다.


“미친! 저 새끼 뭐야!”


도적들은 경악하며 뒷걸음질 쳤다.

사람의 육체가 두부처럼 반으로 갈라지는 건 살아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을 테니.


수하들의 약탈을 지시하던 바론은 눈을 비비며 제가 본 것을 의심했다.

수많은 전장을 거쳐왔다고 자부한 바론도 할 수 없는 기교였다.

사지 한 짝을 단번에 자르는 건 가능하지만.

사람의 몸통을 머리끝에서 사타구니까지 가르는 것은 불가능한 기행이었다.

무지막지한 괴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바론은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오싹함에 전율을 느꼈다.

용병 생활로 다져진 감각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나도 너희들한테 제안하지.”


로드릭의 무기질적인 눈동자가 도적들을 훑었다.

아무런 감정조차 엿보이지 않는 눈이었다.


“목만 놓고 가면 조용히 보내주마.”


사실상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 의미를 깨달은 놈들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 새끼가!”

“우리가 만만해 보이냐!”

“두목! 어떻게 할 깝쇼!”


성난 수하들이 도적의 우두머리에게 의견을 물었다.

바론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될 대로 대라 하는 심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시발! 놈은 한 놈이다!”


도적들이 각기 무기를 꺼내 들어 포위망을 좁혀왔다.

그러나 그뿐.

모두가 살살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리기만 했다.

로드릭이 만만하지 않는 상대란 걸 뼈저리게 느낀 탓이었다.

그들의 머릿속엔 아까 반으로 쪼개진 동료의 모습이 떠올랐다.


“놈의 머리를 가져와라! 놈의 머리를 가지고 온 녀석에게, 저놈이 가진 것들을 모두 전리품으로 주겠다!”


바론이 외치자 미적거리던 도적들의 태도가 눈에 띄게 변화했다.

망설이던 도적들의 눈빛에 탐욕이 어렸다.

날이 바짝 선 명검과 값져 보이는 장비.

로드릭은 더 이상 껄끄러운 상대가 아니라, 임자가 정해지지 않은 보물 상자였다.


“한꺼번에 덮쳐!”


도적들이 경쟁 상대가 될 제 옆의 동료를 견제하며 달려들었다.

불나방 같은 놈들.

언제 달려드나 하고 무료함을 달래던 로드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끄아악!”


살벌한 바람 소리가 나며 선두로 달리던 놈의 목이 허공에 솟구쳤다.

도적들의 눈이 무의식적으로 잘려 나간 머리를 한순간 좇았다.

그 동안 로드릭의 칼이 두 놈의 몸통을 더 썰었다.

쓰러지는 몸체 너머로 놀란 도적들의 얼굴이 보였다.

로드릭은 거리를 좁혀 도적들 틈 안으로 들어갔다.


“으윽.”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파이몬이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그를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도적들의 눈은 로드릭에게 쏠려 있었으니까.

파이몬은 두리번거리며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맙소사.”


파이몬은 도적들에게 둘러싸인 로드릭을 보며, 경외심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사람 분량의 생명이 꺼져갔다.

제법 눈썰미가 좋은 놈들은 한 번 막아보고자 기를 썼으나, 쥐고 있던 무기와 같이 썰려버렸다.

마치 짚단 베이듯 쓰러진 놈들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무언가 찢어지는 피육음이 들리고 사방에 유혈이 낭자했다.

로드릭의 검격이 닿은 범위에선 지속적으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사람의 육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숭덩숭덩 잘려 나갔다.


“저도 돕겠습니다!”


파이몬이 도적들을 상대하는 로드릭에게 가세하기 위해 바닥에 꽂힌 검을 잡았다.


“물러서시오.”

“예?”

“스틸 하지 마시라고.”


로드릭이 파이몬을 돌아봤다.

게임 속에서도 스틸 하던 놈들을 경멸하던 로드릭이 살벌하게 웃었다.

온전히 가져가야 할 경험치가 꼽사리 때문에 줄어드는 건 사양이었기에.

부모님 안부를 물어봐도 합당한 처사였다.


그는 파이몬을 지나쳐 적진으로 침입해 도적들을 썰어 재꼈다.

칼자루를 쥔 손은 아까보다 더 힘이 들어갔다.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놈이 없도록 확인 사살도 잊지 않았다.

파이몬이 막타를 치지 못하게 만들 속셈이었다.


“자신의 안위보다 남을 더 걱정하다니.”


파이몬은 인자하게(?) 미소 짓는 로드릭의 뜻을 다르게 이해하고 말았다.

자신은 이미 도적들의 우두머리에게 패배했다.

죽지는 않았으나 일격을 맞고 쓰러졌다.

아마 그는 자신의 몸 상태를 우려하여 휴식을 취하라고 권한 것이리라.


“기사도를 섬기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구나.”


용병을 업신여기던 파이몬은 지금껏 쌓아 올린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그는 선망 가득한 눈빛으로 적들을 도륙 내는 로드릭을 바라봤다.

자신을 불사 질러 다른 이들을 구하고자 하는 의지.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남들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가짐.

파이몬이 꼭 배워 가야 할 기사도 정신이었다.

이미 그에게 있어 로드릭은 먼저 기사의 길을 걷는 선배나 다름없었다.


“은인을 홀로 사지에 보내는 건 기사의 도리로서 어긋나는 행위! 방해하지 않을 테니 정의를 집행하여 보탬이 되게 해주십시오!”


저 새끼 뭐라는 거야? 무슨 정의를 집행해?

지금 스틸 하겠다고 선언하는 건가?

로드릭은 눈을 부라리며 입술을 달싹였으나 그냥 내버려 뒀다.

선량하고 혈기 왕성한 젊은 기사의 목을 칠 수도 없는 노릇.

스틸 했다고 죽일 수는 없잖은가?

게임에선 가능해도 여기는 현실이었다.

로드릭은 도적들의 숨통이 끊겼는지 꼼꼼히 확인하며 전진했다.


파이몬은 로드릭이 말이 없자,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합류하였다.

그러나 그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도적들의 시체만 즐비했으니까.


'마치 임페리움님의 재림을 보는 것 같다.'


파이몬은 감탄을 흘리며 눈을 반짝였다.

신전의 기둥을 뽑아 용들에게서 도시를 지켜냈다는 성인.

그 무지막지한 힘은 가히 고대의 거인과 비교될 정도라고 들었다.

그는 로드릭이 임페리움의 후예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했다.


“오, 순례자의 안위를 보살펴주시는 자비로운 기적이시여. 우리를 굽어살펴주시는 겁니까.”


순례자들은 무릎을 꿇고 기적을 울부짖었다.

탐욕에 눈이 먼 도적들은 그제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차를 포위하던 도적들의 수는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한 남자의 손에 의해서 자그마치 스무 명이 당한 것이다.


“괴물······.”


살아남은 도적들은 공포에 젖은 눈으로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진짜 포식자는 숨죽이며 발톱을 숨기고 있었다.

약탈을 일삼던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슬그머니 등을 돌렸다.

잠자는 사자의 심기를 건드린 죄를 죽음으로 갚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지 말고 싸워! 싸우라고!”


바론이 달아나는 수하들에게 고함을 내질렀다.

날 선 목소리에도 도적들은 겁에 질린 창백한 낯짝으로 꽁지 빠지게 도망칠 뿐이었다.

어느새 마차를 틀어막고 있는 이는 바론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겁쟁이 녀석들!”


그러다가 갈색 망토에 고스란히 도적들의 피를 뒤집어쓴 로드릭하고 눈이 마주쳤다.


“너도 도망가려고? 넌 안 돼.”


도시로 가는 가도에 일정 확률로 출현하는 도적 떼.

그 도적들 중 바론은 현상수배가 걸린 놈이었다.

멜킨스를 지키는 경비대장에게 가면 퀘스트를 받아 클리어할 수 있다.


로드릭은 도시 밖으로 다시 나갈 귀찮은 일이 줄었다며 좋아했다.

뭐든지 선행으로 클리어하면 몸이 편한 법이니까.

놈의 머리를 들고 가져간다면 제법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을 터.


바론은 척추를 타고 흘러 내려오는 식은땀을 느끼고 있었다.

일정한 호흡과 나른한 눈빛.

그 많은 인원을 학살하고도 전혀 지치지 않은 얼굴.

전혀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무력.

그의 눈빛 또한 스멀스멀 공포가 피어올랐다.


“제, 젠장!”

“앗! 비겁하게 도망가는 것이냐!”


황급히 등을 돌린 바론이 부리나케 도망쳤다.

어찌나 발이 빠른지 벌써 언덕 위를 오르고 있었다.

파이몬이 그 뒤를 쫓으려고 하자 로드릭이 어깨를 부여잡았다.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합니다!”

“나한테 맡기시오.”


놈은 덩치와 맞지 않게 발이 빨랐다.

도망을 치면 추격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로드릭은 앞발을 길게 뻗어 투창 자세를 취했다.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고 상체를 꼿꼿이 세웠다.

그 사이에도 바론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파이몬은 발을 동동 굴리며, 언덕을 오르는 바론의 등을 초조하게 응시했다.

놈과의 거리를 눈대중으로 가늠한 로드릭이 일정한 보폭으로 도움닫기를 하였다.

다섯 걸음이면 충분했다.

하반신의 체중이 쏠리면서 허벅지에 힘줄이 튀어 올랐다.

로드릭은 어깨 뒤로 당긴 팔을 날숨과 함께 일직선으로 쭉 뻗었다.

한손으로 쥐기도 벅찬 롱소드가 창공을 가로질렀다.


“무슨.”


범인은 불가능한 그 기행에 파이몬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나아가던 롱소드가 서서히 추락 지점을 찾아 헤맸다.

바론은 땅 밑으로 드리우는 그림자에 고개를 돌렸다.

목표물을 향해 시퍼런 칼날이 귀신같이 떨어져 내렸다.


“카학!”


바론의 목을 정확히 관통한 칼이 바닥에 박혔다.

머리 없는 몸이 몇 번 휘청거리다가 언덕 중턱에 걸터앉았다.

바론의 머리가 가파른 언덕에 피를 흩뿌리며 데구루루 굴렀다.


툭.


로드릭은 제 발치 앞에 멈춘 머리를 집어 들어 올렸다.


“어찌하여 목만 오셨소.”


아쉽게도 레벨은 오르지 않았다.

놈은 꽤나 억울한 모양인지 부릅 뜬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게 왜 오늘 같은 화창한 날씨에 남들 삥이나 뜯으려고 들어?

집에서 발 닦고 잤으면 아무 일도 안 생겼잖아?


로드릭은 바론의 머리를 천주머니에 감싼 뒤 마차에 올라탔다.

죽인 도적놈들의 냄새 나는 몸을 뒤적여봤자 쓸데없는 시간만 소비하고 말 것이다.

저들이 왜 도적이 되었겠는가.

남을 약탈하며 살았을 비렁뱅이 출신들.

무장도 썩 좋지 않았는데 가진 거라고 많을까.


로드릭은 시간이 지나도 승객들이 타지 않자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얼빠진 표정을 짓는 마부, 동경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파이몬, 기적을 목격했다며 궁상떠는 순례자들.

아주 가관들이군.

로드릭은 마차를 탕탕 두드리며 그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안 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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