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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P9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 속 방랑 성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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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P9
작품등록일 :
2021.02.26 22:37
최근연재일 :
2021.03.13 23:55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1,987
추천수 :
130
글자수 :
89,395

작성
21.03.04 21:00
조회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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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1쪽

8화

DUMMY

가로스가 얼굴을 처참하게 일그러뜨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찌나 세게 깨문 것인지 피가 흘러나왔다.


“빌어먹을 악마 같으니.”


악마라 불리는 것들은 태생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좋아했다.

인간이 절망에 빠진 모습을, 인간이 광기에 찬 모습을, 인간이 타락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저지르는 놈들이었다.

악마는 제 아버지의 절규에 찬 모습을 즐기기 위해 앤나를 행세하고 있었다.


“서둘러 움직여야 할 것 같네.”


아침 해가 뜨면 앤나는 악마의 노리개로 전락할 터.

시간은 악마의 편이었다.

가로스가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돌렸다.


그때, 로드릭의 솜털이 쭈뼛하고 서기 시작했다.

그의 능력치 중 하나인 감각이 위험을 감지하고 알려왔다.

몇 번이나 죽을 경험을 넘긴 로드릭은 본인의 능력치를 신뢰했다.

허투루 볼 일이 아니었기에, 그는 가로스의 뒷덜미를 잡아채 거리를 벌렸다.


“갑자기 왜······.”


그 행동으로 인해 가로스가 살았다.

벌컥 하고 문이 열리면서 정체불명의 상대가 습격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괴물이었다.

갑작스러운 방해로 목표물을 잃은 괴물이 로드릭에게 시선을 돌렸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놈은 로드릭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는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로, 재빨리 손을 뻗어 놈의 목덜미를 잡았다.

괴물은 머리를 이리저리 비틀어 그의 손목을 물어뜯으려 했다.

로드릭은 놈을 내리꽂으면서 자유로운 다른 손으로 칼을 잡았다.


푸욱!


흙바닥에 고정된 놈이 헐떡거리는 숨소리를 내다 축하고 늘어졌다.

로드릭은 괴물의 목을 쑤신 칼을 뽑았다.


“맙소사. 이 녀석은······.”


정체불명의 괴물은 개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금일 아침 로이스란 자가 손수 묻어줬다는 놈이었다.

피부는 썩어 문드러져 있었고, 무덤을 기어 나왔는지 흙투성이였다.


로드릭은 놈에게서 눈을 뗐다.

놈은 혼자가 아니었다.

오감을 극한까지 확장하자 집에서 돌아다니는 놈들의 움직임이 그려졌다.


“아무래도 악마가 우릴 방해하려는 모양이오.”


바깥에서 열린 문틈으로 본 집안은 어두컴컴했다.

로드릭은 암흑 속에서 숨죽여 노려보는 시선을 느꼈다.

가로스 또한 마른침을 삼키며 넘실거리는 붉은 안광들을 마주했다.

악마의 목소리에 홀려 죽은 것들이 그들의 진입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미 저 집은 악마의 소굴이오.”

“제길.”


계획이 무산으로 돌아가자 가로스는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대로 있으면 악마에게서 딸을 구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구마 의식을 행하기도 어려웠다.

오히려 저곳에 난입하려 한다면 목숨을 내놔야 할 판이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하는 상황.

가로스는 발을 동동 구르며 절박한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방법은 하나뿐이오.”

“뭔가 방법이 있는 건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가로스는 화색을 띤 얼굴로 의견을 물었다.


“뭐긴 뭐겠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지.”


결국 악마를 잡으려면 놈의 던전이나 다름없는 저곳을 통과해야 했다.

가로스 또한 암담한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네, 로드릭.”

“그러려고 의뢰를 받은 거 아니겠소?”

“자넨 정말 용맹한 전사로군. 겁이 없어.”

“받은 만큼 일할 뿐이오.”


로드릭이 픽하고 웃으며 앞장섰다.

사지로 들어가는 발걸음엔 두려움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는 공포가 없는 걸까.

가로스는 로드릭을 등을 따라 걸으며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자들에게 빛을 밝혀주는 등불과도 같았다.

그는 로드릭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느끼며 모든 걸 걸어보자 마음먹었다.


뚜벅뚜벅.


집으로 들어서자 암흑이 로드릭을 반겨줬다.

낡은 나무판자가 삐거덕거리며 걸음걸이를 대신했다.

놈들은 침입하자마자 달려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로드릭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느꼈으리라.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시오.”

“알겠네.”


가로스가 목소리를 죽이며 그에게 바짝 붙었다.

그도 살기 어린 기세를 피부를 느낀 것이다.

로드릭은 눈을 사방팔방으로 굴리며 놈들의 숫자를 파악해 나갔다.

탁자 밑에 하나, 구석에 둘, 창문 쪽에 셋······.


숨소리만 울려 퍼지는 공간.

로드릭은 날카롭게 기세를 가다듬으며 차근히 앞으로 나아갔다.

목적지는 2층에 있을 앤나의 방이었다.


크아악!


팽팽한 분위기 속에서 인내심에 극에 다른 놈이 로드릭에게 덮쳐들었다.


촤악!


로드릭이 칼을 휘둘러 어둠을 갈랐다.

비명을 지른 놈의 목이 바닥에 툭 하고 굴렀다.

그것을 시작으로 숨어있던 놈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가로스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길을 열겠소. 바짝 따라오시오!”


로드릭이 어둠을 헤치며 전진했다.

어둠 속에서 윤곽이 확연히 그려질 때면 시퍼런 날이 반짝였다.

칼을 휘두를 때마다 무언가 갈려 나갔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그가 할 일은 어서 빨리 가로스를 위층으로 보내 구마 의식을 진행하게 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놈들을 상대하며 전진하다 보니 계단이 보였다.


“먼저 가시오!”

“고맙네, 로드릭!”


가로스는 로드릭에게 뒷일을 맡기고, 황급히 계단을 뛰쳐 올라갔다.

로드릭은 등을 돌려 코앞까지 다가온 놈을 베었다.

위층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단 하나. 아마도 앤나가 분명하리라.


로드릭은 한 손에 칼을, 다른 한 손에 손도끼를 잡았다.

계단을 등진 그는 남은 놈들을 살폈다.

놈들의 수는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예민해진 감각이 그 수는 족히 열을 넘어갈 거라고 확신을 시켜줬다.

감각 능력치를 더 올렸다면 정확한 수도 알 수 있었을 텐데.

로드릭은 아쉬워하면서도 눈앞의 일에 집중했다.


꺄아악-!


위층에서 여성의 비명이 들려오자 놈들의 움직임이 격해졌다.

구마 의식이 진행된 모양.

로드릭은 칼이 잔상을 남기며 두 놈의 목을 고꾸라뜨렸다.


그러자 빈틈을 노리던 놈이 재빨리 달라붙었다.

그보다 더 미리 놈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로드릭은 목덜미를 잡아 저 멀리 집어던졌다.

짐승의 울음과 함께 몸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로드릭은 암전 속에서 거침없이 놈들을 베고 찌르고 찍었다.

그럴수록 그의 몸엔 훈장을 새기는 것처럼 검은 핏물이 뿌려졌다.

썩 유쾌하지 않은 감각이었다.


손도끼의 날이 점점 무뎌지고, 칼날의 이가 손상되기 시작했다.

그러면 로드릭은 손아귀에 더욱 힘을 줘서 놈들을 고기처럼 다지거나 찢어버렸다.


암흑 속에서 괴성이 줄어들고, 위층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비명이 점점 격해졌다.

놈들은 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그는 한 놈도 놓치지 않고 놈들을 무참히 도륙 내었다.


뚫으려는 놈들과 뚫리지 않으려는 자.

로드릭은 온몸을 이용하여 놈들을 막았다.

무릎으로 놈의 턱을 부수고, 발로 꾸역꾸역 올라오는 놈을 걷어 차내고, 검과 손도끼로 숨통을 끊었다.

난전도 이런 난전이 없었다.


끼아악!


닭의 형상을 한 괴물이 허공을 비행해 로드릭의 옆구리를 빠져나갔다.


“어딜.”


로드릭은 왼손에 들린 손도끼를 던졌다.

쏜살같이 날아간 손도끼가 닭 모가지를 비틀었다.

깃털들을 흩날리며 추락한 몸뚱어리가 계단 중간 사이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어느새 덤벼드는 적들이 사라지자 로드릭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침 해가 밝아오면 이곳은 가축의 피와 살점들로 가득하리라.


“로드릭!”


다급한 가로스의 외침에 반응한 로드릭이 위층으로 향했다.

그의 침입을 방해하려는 듯 방문이 저절로 닫혔다.

틈새 사이로 새까만 피를 토하며 허공에 뜬 앤나가 보인다.


로드릭은 닫힌 방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돌렸다.

무형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인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물러섰다가 문짝에 어깨를 들이박았다.


쿠웅-!


문짝이 박살나며 앞으로 구른 로드릭이 신속하게 전황을 살폈다.

방 안에서 자연적이지 않은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제대로 눈을 뜨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로드릭은 한쪽 팔로 얼굴을 가리며, 얕게 실눈을 떴다.


“이 몸은 내 것이다. 내 거라고!”


앤나의 뒤로 검은 그림자가 펼쳐졌다.

여덟 개의 다리와 여섯 개의 눈동자.

거미 형태를 한 그림자가 즐거운 비명을 내질렀다.

구마 의식은 실패하고 말았다.


“어떠냐. 신을 믿는 종자야. 부인에 이어 딸까지 잃은 기분은 어떻지?”


가로스의 얼굴이 망연자실한 사람처럼 변했다.

악마는 절망에 빠진 모습을 감상하며 히죽하고 웃었다.


“네 딸은 끝없는 어둠 속에서 영원히 헤맬 것이다.”

“아니.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다. 유르케.”


가로스가 악마의 이름을 부르며 비장하게 대답했다.


“기적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유르케, 그 몸에서 나와 차라리 내 몸을 탐하거라.”


유르케란 불린 악마는 환호성을 내지르며 앤나의 육신에서 빠져나와 가로스에게 달라붙었다.

악마의 진정한 목적은 수컷의 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컷, 수컷의 육체!


가로스의 그림자가 뒤틀린 거미처럼 변해갔다.

악마에게 몸을 강탈 당한 그는 창백한 낯짝으로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손을 뻗었다.

확고한 결심이 눈 눈동자가 로드릭을 향했다.


“로드릭. 자네 차례일세.”


악마가 정한 법칙.

하나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선 하나의 영혼을 바쳐야 했다.


“나를 이 악마와 함께 죽여주게.”

-뭐? 어리석은 인간아. 대신 희생이라도 할 셈이냐!


사람을 죽여본 적 있냐는 물음은 최악의 상황을 산정한 질문이었다.

가로스는 악령과 함께 자기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


“어서!”


그의 육체는 반쯤 이미 악마에게 먹혀버렸을 터.


로드릭은 과거를 회상했다.

게임 속에선 이렇게 선택지가 떴었지.


1. 가로스를 죽인다.

2. 가로스를 죽이지 않는다.


1번을 선택하면, 깨어난 앤나가 플레이어에게 죽은 가로스를 부여잡고 슬피 울었다.

그 뒤부턴 아비를 죽인 플레이어의 앞길을 방해하는 적으로 거듭났다.

플레이어에 대한 복수심은 자신의 영혼까지 제물로 바칠 정도였다.


2번을 선택하면, 가로스의 육체를 완전히 지배한 악마가 플레이어와 싸우다 도망간다.

앤나는 악마 사냥꾼이 되어 그 뒤를 쫓았다.

먼 훗날, 가로스의 모습을 한 악마와 재회하여 복수를 성공시키지만.

아비를 제 손으로 죽였다는 슬픔과 절망에 빠져 방랑하다 괴물이 되어버린다.

그런 앤나를 발견한 플레이어가 처치를 하고, 어느 악마 사냥꾼의 일기장을 획득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맞이했다.


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그들은 행복한 결말에 도달할 수 없었다.

다른 직업으로 플레이해도 마찬가지였다.

예정된 결말.

다크 판타지한 배경답게 암울하기 짝이 없는 세상.

그러나 제3의 선택지도 존재했다.


“기적의 이름으로 말한다. 유르케, 내 몸을 주마.”


로드릭은 그 해결책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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