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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P9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 속 방랑 성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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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P9
작품등록일 :
2021.02.26 22:37
최근연재일 :
2021.03.13 23:55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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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추천수 :
130
글자수 :
89,395

작성
21.02.28 23:00
조회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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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2쪽

4화

DUMMY

마르고스가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짐승 같은 울음소리였다.

옆에 있던 고블린이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로드릭은 심드렁한 얼굴로 놈과의 거리를 가늠해봤다.

아쉽게도 단번에 놈의 목을 벨 수 없을 만큼 멀었다.

거리를 좁히는 순간 놈의 주문이 쇄도하리라.


“살아 돌아갈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거다. 오만한 전사야.”

“그런가?”

“그래. 네놈이 아무리 강인한 전사라 해도 그분의 권능으로 강해진 나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너 같이 말하는 녀석들을 제법 만났지.”


로드릭의 눈이 한층 깊게 가라앉았다.

눈을 마주친 마르고스가 몸을 흠칫거렸다.

로드릭의 회색 눈동자는 아무런 감정도 엿보이지 않을 만큼 무덤덤했다.

너무 고요하고 잠잠한 눈동자였다.


“결국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어버버하다가 죽더라. 내 경험치가 되어서 말이지.”

“괴상한 단어들을 쓰는구나. 도대체 어디의 언어지?”

“지옥에 가서 나한테 죽은 놈들에게 물어봐.”


로드릭이 칼을 고쳐잡았다.

마르고스는 그 기세에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몸의 세포들이 강렬히 거부 반응을 일으키며 경종을 울려댔다.

내가 저 인간한테 위축되었다고?

그분의 선택을 받은 내가?


화가 나면서도 조금씩 피어오르는 원인 모를 불안감이 고블린 주술사의 감정을 증폭시켰다.

어서 빨리 저 존재를 눈앞에서 치우라고.

안 그러면 죽게 될 것이라고.

이 자는 위험하다고.

어서 죽이라고.

마치 누군가가 쉴 새 없이 마르고스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마르고스는 본능에 몸을 맡기기로 결심했다.

그래, 이 세상에 저 자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려 불안함을 떨쳐내자.

그는 애써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


마르고스가 주문을 읊자 지팡이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키륵?”


검붉은 빛이 마르고스의 옆에 있던 고블린을 휘감았다.

고블린은 빛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윽고 빛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고블린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기 몸을 살폈다.

그리고 잠시 후 놈의 외관이 비이상적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근육이 징그럽게 부풀어 오르고, 기골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크아악!”


그렇게 비명을 지르던 놈은 점점 몸을 부풀렸다.

그 크기는 로드릭의 체구와 맞먹을 정도로 작은 굴속을 꽉 채웠다.


“메가 진화냐?”

“크르르르.”


놈의 입에선 침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한 쌍의 붉은 눈동자는 흰자만이 보였다.

주술로 강화된 놈은 이지를 상실한 채 마르고스의 명령을 기다렸다.


“죽여라!”


주술로 강화된 놈이 괴성을 내질렀다.

그 기세는 어마어마했다.

놈은 세상 두려울 게 없다는 듯, 눈앞의 적을 두 손으로 찢어발기기 위해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로드릭은 지금껏 한 손으로 쥐고 있던 칼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힘을 주자 팔뚝에 힘줄이 솟구치며 근육이 붉게 달아올랐다.

로드릭은 반걸음 앞으로 나아가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어느새 놈은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후웅-!


시퍼런 칼날이 풍압을 일으키며 벼락처럼 떨어졌다.

어찌나 속도가 빠른지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찌지직.


휘둘러진 칼이 놈을 종잇장처럼 찢어버렸다.

정수리 끝에서 사타구니까지 선명한 일자가 새겨졌다.

선을 따라 뒤틀려진 놈의 몸이 이등분으로 갈라졌다.

육체를 붙이던 피가 줄다리기처럼 팽팽하게 이어지다 허무하게 끊어졌다.

로드릭의 눈은 이미 고블린 주술사를 좇고 있었다.


“----.”


갈라지는 육체 사이로 마르고스가 주문을 외우는 모습이 보였다.

로드릭은 땅을 박차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이미 늦었다!”


벌써?

생각보다 빠른 주문 캐스팅에 로드릭은 살짝 당황했다.

마르고스의 지팡이가 번쩍거렸다.

반응할 틈도 없이 사악한 저주가 로드릭을 휩쓸었다.


“너의 오만함이 명줄을 재촉했구나!”


고블린 주술사는 승리를 장담했다.

아무리 강한 전사라도 신비에는 당해낼 수 없는 법.

놈은 모든 구멍에서 피를 토하며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죽으리라.

그러나 마르고스가 그린 미래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무슨?”


로드릭의 전신을 감싸려던 빛이 외부로 튕겨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목적을 잃은 빛이 픽하고 꺼져버렸다.


“말도 안 돼!”

“성능 확실하구만.”


애석하게도 그는 로드릭과 상성이 나빴다.

로드릭이 지닌 [저주 내성 스킬]과 [어둠 속성 저항 스킬]이 마르고스의 주술을 상쇄한 탓이었다.

놈이 조금 더 강했더라면 어느 정도 먹혔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마르고스의 수준을 보자 하니 과한 기대였다.

하긴, 흡혈귀를 신으로 모시는 놈의 수준이야 뻔하지.


“이게 어찌 된······.”


당황한 표정이 마르고스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노련한 주술사는 주문이 통하든 통하지 않든 다음 주문을 외어야 하는 법.

놈은 다른 고블린들과 마찬가지로 멍청이에 불과했다.

그저 주술을 쓸 줄 아는 고블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로드릭은 성큼성큼 걸어가 칼을 휘둘렀다.


“아악!”


팔 한 짝과 함께 반 토막 난 지팡이가 땅을 굴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마르고스가 다시 주문을 읊었다.

검붉은 빛이 로드릭에게 쇄도했다.

그가 날벌레를 쫓아내듯 손을 휘젓자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 사이 고블린 주술사는 꽁지 빠지게 도망치고 있었다.

짧은 팔다리로 열심히도 뒤뚱거렸다.


“빌어먹을!”


마르고스는 죽는다는 공포를 느꼈다.

한낱 인간이 자신의 주술을 맞고도 멀쩡히 서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눈앞의 인간은 달랐다.

주문이 먹히지 않았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 마르고스는 침착함을 잃었다.


“나, 나는 아직 할 일이 많다. 그분의 이름을 높이 알려야 한다!”


쟨 또 뭐라는 거야?

로드릭은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손도끼를 잡아 던졌다.

손도끼가 바람 소리를 내며 팽그르르 돌았다.

그 속도는 저 멀리 뛰고 있는 고블린보다 빨랐다.


“커헉!”


마르고스가 꼴사납게 땅바닥을 굴렀다.


“겁나 약하네.”

“이, 이노옴!”


지척까지 다가온 로드릭이 옆에서 어깨를 으쓱였다.

주술로 강화된 고블린이 더 강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마르고스가 피를 토하며 몸을 움찔거렸다.

흡혈귀의 권능 탓에 죽음은 면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조치가 늦어지면 살아날 확률도 점점 줄어들 터.

놈은 고블린이었지 흡혈귀가 아니었다.


로드릭은 고블린 주술사의 등에 꽂힌 손도끼를 뽑았다.

마르고스가 신음을 흘렸다.

로드릭이 뭐 챙길 만한 물품이 없나 기우뚱거렸다.

마침내 놈의 손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손가락이 보였다.


“이건 내 거.”

“아악!”


로드릭은 마르고스의 손가락을 손도끼로 찍었다.

피가 윤활유 역할을 하며 반지가 쑤욱하고 빠져나왔다.


[고블린 주술사의 반지]

[고블린이 모시는 신을 위해 조잡한 손재주로 만든 반지다. 신앙 능력치가 4 상승한다.]


“개꿀.”


로드릭은 피가 묻은 부분을 고블린 주술사의 옷자락에 스윽스윽 닦았다.

그분의 사도가 된 이후, 이런 치욕을 당해본 적 없던 마르고스가 부들부들 떨어댔다.

로드릭이 알 바는 아니었다.

피로 얼룩진 반지가 깨끗하게 번쩍였다.

그는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고블린 주술사를 지나쳤다.


놈도 놈이지만.

또 처리해야 할 놈이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고블린 주술사가 관리했을 제단이 보였다.

그 위에는 비쩍 마른 고블린 시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로드릭은 제단을 부수기 위해 칼을 높이 들어 올렸다.


[잠깐 기다려라. 용맹한 전사야.]


로드릭의 눈썹이 팔자로 휘었다.


“왜?”


[용케도 나를 섬기는 사도를 이기고 이곳까지 도달했구나.]


제단에서 뭉게뭉게 핏빛 연기가 흘러나오더니 사람의 형태를 취했다.

붉은 기체로 이루어진 몸은 겉으로 보기에도 굉장한 미남이었다.


[내 이름은 아카이럼. 고귀하고 위대한 밤의 혈통을 잇는 귀족이다.]


“그런데?”


피의 남작 아카이럼.

과거 한 교단의 주교로 성장할 수 있을 만큼 유능한 인재였다.

그러나 범해서는 안 될 중죄를 저지르고 타락해버렸다.


[전사야. 나는 너의 용맹함을 보았고, 들었고, 느꼈노라. 그리고 그 용맹함에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알아냈지.]


그는 악마에게 홀려 흡혈귀처럼 변해버렸다.

인간의 피를 탐하는 식인귀로 말이다.

수십의 인간을 죽여 그 피로 목욕을 하는 등.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다가 신의 천벌로 제단에 봉인되었다.

그러나 묵시록의 예언이 실현되면서 봉인은 서서히 깨지고 말았다.


[전사야, 너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탐욕을 나는 알 수 있다. 나를 섬겨라. 나를 섬기면 너에게 무한한 영광과 권세가 찾······.]


“꼴값 떠네.”


어디서 개수작이야?

로드릭은 정신을 지배하는 놈의 사악한 술수에서 벗어났다.


스걱-!


제단과 함께 핏빛 연기가 쪼개졌다.

위아래로 어긋난 아카이럼이 뒤틀린 입술로 물었다.


[어떻게 한낱 인간이 나의 매혹을 뿌리칠 수······!]


두 짝이 된 제단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아카이럼 또한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보잘것없는 최후였다.

로드릭은 반쪽이 된 제단을 발로 차서 계단 밑에 떨궜다.

제단이 부서지면서 그 파편들이 자욱한 연기를 일궈냈다.

경험치는 제법 쏠쏠하게 들어왔다.


[레벨이 상승했다.]


로드릭은 레벨 보상으로 받은 포인트를 신앙 능력치에 투자했다.

이 몸뚱어리는 신앙을 먹고 살았으니까.

사실상 주 스텟이나 다름없었다.


“주, 주인님?”


죽음 힘을 다해 기어 온 마르고스는 부서진 제단을 보며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로드릭은 마침 잘 됐다는 듯이 그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귓가에 속삭였다.


“너네 주인님 경험치 쩔더라.”


마르고스의 눈빛에서 희망의 불꽃이 꺼져나갔다.

놈이 주는 경험치는 아키이럼만도 못했다.

그냥 한 마리의 고블린을 잡으면 얻을 수 있는 경험치였다.

고블린 주술사는 페이크 네임드 몬스터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아이템도 얻고 레벨업도 했겠다, 로드릭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어둠 속에서 작은 무리들이 쌓인 시체들을 보며 군침을 흘렸다.

그가 사라지면 만찬을 벌일 것이 자명했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로드릭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느덧 이 게임 속에 갇힌 지 반년이 흘렀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였던가.


작은 벌레조차 죽이지 못하던 로드릭은 게임 캐릭터에 걸맞은 훌륭한 전사가 되었다.

직장 상사의 잔소리만큼 늘어진 뱃살은 다부진 근육으로 변했다.

게임기를 쥐던 손은 살기 위해 무기를 집었다.

그는 이 엿 같은 세상에 잘 적응하였다.


로드릭은 살아남아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이고,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했다.

멸망을 향해 달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 말이다.


굴 밖으로 나오자, 나무 사이로 쏟아져 나오는 빛살에 로드릭은 눈살을 찌푸렸다.

입구를 지키던 시체들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로드릭은 태양을 등진 채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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