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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P9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 속 방랑 성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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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P9
작품등록일 :
2021.02.26 22:37
최근연재일 :
2021.03.13 23:55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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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글자수 :
89,395

작성
21.03.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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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7화

DUMMY

“제법 죽여봤지.”


로드릭은 질리게도 악마를 보았다.

모니터 너머로 수백 번 넘게 잡았던 것들을, 이 세상에서 끌려와서도 자주 마주쳤다.

다행히 그가 만났던 존재들은 빌빌거리는 잔챙이들 뿐이라서 쉽게 도륙 낼 수 있었다.

악마라 부르기에도 하찮은 괴물들.

진짜 악마라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겠지.


“자네가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악마 사냥꾼이라도 된단 말인가."


악마 사냥꾼 아닌데.

성전사인데. 그것도 배교도로 몰린 성전사.

사실을 밝힐 수 없던 로드릭은 악마 사냥꾼인 척 행세했다.


“혹여나 다른 이에게 발설하고 다니지는 마시오."

“처음부터 범상치 않은 자라고 생각했건만··· 설마 악마를 사냥하는 자였을 줄이야.”


본래 악마 사냥꾼이라는 직업은 다른 이의 것.

로드릭은 오늘만 그 이름을 빌리기로 작정했다.

따지고 보면, 그도 악마 사냥꾼 캐릭터를 키워 만렙을 찍지 않았던가.

이건 정당한 행사였다.


“자네도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겠군.”


가로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로드릭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렇다면 더욱더 부탁할 사람이 자네밖에 없네."

“부탁할 사람이 마을에 아무도 없소?"

“···교회의 방침을 안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가로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자기의 딸을 온전히 살리고 싶을 터.

하지만 교회가 개입하게 된다면 그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흘러갈 것이다.


“···이 일은 조용히 끝내야 한다네. 로드릭. 자네와 나. 둘이서 말일세.”


가로스가 짐짓 굳은 얼굴로 그리 말하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할 수는 없어.”

“이단 심판관 때문이오?”

“···그렇다네.”


가로스는 마을에 있을지 모를 이단 심판관을 경계하고 있었다.

역시 전직 성직자라서 그런지 교회가 돌아가는 꼴을 잘 아는군.


이단 심판관.

교회의 눈과 귀가 되는 자들.

이단색출에 혈안이 된 그들은 곳곳에 숨어있다.


이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에도 이단 심판관 하나 없을까.

하하 호호하며 잘 지내다가도, 교회의 법리에 어긋난 행위를 목격하면 바로 목에 칼부터 꽂는 자들.

로드릭도 그놈들한테 데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놈들은 사람들 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죽을 때까지 일생을 보낸다.

양치기, 농부, 여관 주인, 사냥꾼, 심지어 거지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신분 또한 다양하다.

누가 이단 심판관인지 알 수 없었다.

이적의 행위를 발견하게 될 때만 이단 심판관의 신분으로서 서슴없이 발톱을 드러내기 때문에.


“우리 둘이 조용히 처리할 수만 있다면, 교회는 절대로 마을을 헤집고 다니지 않을 걸세. 로드릭. 악마가 나타난 마을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지옥도로 변하겠지.”


오직 악마가 나타났다는 이유로.


“잘 알고 있군.”


그의 딸은 악마를 믿은 마녀로 교회의 재판을 받게 될 터.

남은 사람들은 교회가 주시하는 상황 속에서, 서로를 의심하며 다른 이를 교회에 고발하다가 자멸할 것이 분명했다.

작은 의심만으로도 한순간에 이단으로 몰려 처형 당하는 시대.

이곳은 그런 세상이었다.


“내가 교회에 고발하면 어찌할 속셈이시오.”

“악마 사냥꾼인 자네가? 성직자도 아닌 자가 악마와 접촉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떻게 될지는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그의 말이 말았다.

당대 교황의 말을 따르는 광신도들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관계자는 다 잡아다 족쳐 죽이는 게 교회의 일방적인 방식이었으니.

발각되면 고진 고문을 당하다가 댕강하고 목이 잘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부담을 줘서 미안하네. 믿을 만한 사람이 자네밖에 없었어.”

“그게 내 본업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그래서 어떻게 악마를 죽일 거요? 앤나라는 여인의 몸에 빙의되었다면서."

“구마 의식을 통해 앤나의 몸에 깃든 악마를 강제로 끄집어낼 걸세.”

“그걸 도와달라고?”

“그렇지.”

“미안하지만 난 구마 의식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게 없는 무지렁이오.”


악마를 칼로 썰어본 적은 있어도, 말재간으로 놈을 물리칠 자신이 없는 로드릭이 난색을 표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의식은 내가 알아서 진행할 테니. 자네가 나설 일은 악마를 밖으로 끄집어 낸 뒤의 일일세.”

“가능하시겠소?”

“끌끌. 지금은 다른 이들의 주례나 보는 늙은이에 불과하지만, 과거엔 주교까지 넘보던 몸일세.”


그리 말한 가로스가 사당을 나섰다.

로드릭도 그 뒤를 쫓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하늘은 어두컴컴한 장막이 내려앉았다.


“오늘은 만월이 뜨는 밤일세. 악마가 힘을 찾기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 때지.”


가로스의 말대로 밤하늘엔 꽉 찬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다만 오늘따라 유달리 별빛들이 반짝이지 않아 불길한 밤이기도 했다.

검은 구름이 달을 스쳐 지나갈 때면, 지상엔 짙은 어둠이 사납게 드리워져 음산함을 부각시켰다.


“그렇기에 꼭 구마 의식을 성공시켜야 해. 오늘이 지나면 끝이야. 어둠의 마력에 흠뻑 취한 놈이 완전히 내 딸의 몸을 지배할 테니. 시간이 없어. 아침 해가 뜨면 지옥의 문도 닫혀 돌려보내지 못할 걸세.”


신의 심판을 받은 악마들은 빛을 향해 고개를 뻣뻣이 들지 못했다.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고 어서 빨리 어둠이 신의 눈을 가려주길 간절히 기원하기만 할 뿐.

그러다 두려움에 몸을 벌벌 떨며 제 몸뚱어리를 숨기고자 땅을 파댔다.

그렇게 파인 땅의 깊이는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깊숙하여, 그곳은 먼 훗날 지옥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것은 선금으로 미리 주는 것일세.”


그것은 돈주머니였다.

주머니의 끈을 풀어보자 반짝거리는 금화들이 보였다.

이 마을 여관에 일 년을 묵고도 남을 돈이었다.


“너무 많은 거 같은데.”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지."


로드릭은 납득한 얼굴로 품속에 목숨 값을 챙겼다.

가로스와 그의 딸, 어쩌면 이 마을 사람들의 목숨까지.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내 집으로 가세나.”


저벅저벅.


“그러고 보니 자네 사람 죽여본 적 있나?”

“그건 왜 궁금하시오.”

“허허. 제법 악마 사냥꾼으로 칼밥 좀 먹고 살았을 테니 궁금해서 말이지.”

“필요하다면야."


악의가 득실대는 세상.

이곳은 로드릭의 묫자리가 아니었다.

그 누구도 슬퍼해주지 않을 낯선 땅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긴 싫었다.


“베는 것에 망설임은 없었나?”

“안 그러면 바닥에 누워 뒤지는 것은 나였겠지.”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군.”


안심한 듯한 말투로 가로스가 다시 어둠을 헤치며 나아갔다.


"절대로 망설이지 말게."


로드릭은 등밖에 보이지 않는 왜소한 몸을 응시했다.

그는 지금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이 한밤중에 무슨 일이십니까?”


마을 주민 하나가 가로스를 붙잡았다.

로드릭도 아는 인물이었다.

주점에서 그렇게 따가운 시선을 보냈는데 모를 리가 있나.

얼굴에 흉터가 가득해서 인상에 남는 자였다.

남자는 얼굴에 기다랗게 난 흉터만큼 옆으로 째진 눈으로, 가로스의 뒤를 따라오던 로드릭을 주시했다.


몸에 구멍 뚫리겠다, 이놈아.

로드릭이 뭘 쳐다보냐는 듯이 팔짱을 끼자 그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아는 자입니까?”

“그래. 내 오랜 지인이라네. 멜킨스로 가는 길에 잠시 들렸다는군. 이보게, 로드릭. 이쪽은 클로드라고 한다네."

“···클로드다. 아까 봤지?”

“그래.”

“···말이 짧은 친구군.”

“그나저나 무슨 일인가?”

“조이가 키우는 돼지 한 마리가 사라졌습니다.”


가로스가 안색을 굳혔다.

그는 이 사태의 원인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사건의 전말을 모르는 클로드는 한숨을 푹하고 쉬었다.


“아무래도 내일 도시에 들러 도움을 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하군.”

“다치셨으니 어쩔 수 없죠. 혹시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 더 조사해보겠습니다.”

“뭔가 찾으면 나에게도 알려주게나.”

“물론이죠. 걱정마시고 집에 가서 푹 쉬세요. 팔도 다치신 분이.”


클로드가 몸을 돌렸다.

그 직전까지 로드릭을 살피는 눈은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틀림없이 녀석의 짓이야.”


황급히 발걸음을 서두르는 가로스였다.

그의 집은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밑을 내려다보면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담길 정도였다.


“앤나의 몸을 차지한 악마가 벌인 짓이야.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몸을 더 꽉 묶어났어야 하는 건데! 시간이 없네. 놈이 더 잔혹한 일들을 저지르기 전에 찾아야 해!”

“찾으러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소.”

“그게 무슨 소리인가. 로드릭?”


로드릭은 언덕 위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집 앞에는 한 여인이 우두커니 서서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을 한 갈래로 묶고, 녹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창백한 피부의 여인이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게, 마을 청년들의 마음을 꽤나 훔쳤을 것 같았다.


“다녀오셨어요. 아버지.”


악마에게 빙의했다는 사람치고는 멀쩡했다.

여인의 모습이 피투성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옷은 마치 어린아이가 흙탕물 장난을 친 것처럼 여기저기 붉게 물들었고, 손에서는 핏방울이 뚝뚝하고 떨어졌다.

입가 또한 피칠을 한 상태로 그녀가 샐쭉하게 웃었다.

가로스가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대응했다.


“···내 딸인 척 행세하지 마라. 지옥의 마귀야.”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 제가 식사를 준비했어요. 들어가셔서 식기 전에 어서 드셔 보세요. 따뜻할 때 드셔야 맛있답니다.”


앤나는 손에 묻은 피를 쪽쪽 빨며 대답했다.

마치 황홀하다는 듯이 볼짝은 상기되어 있었다.


“못 보던 손님도 같이 오셨네요?"


소름 돋는 녹색 눈동자가 뒤룩뒤룩 구르며 로드릭의 위아래를 훑었다.


“정말 탐나는 몸이네.”


등골이 서늘한 기분에 로드릭은 칼자루를 만지작거렸다.

언제든 칼을 뽑아 휘두를 수 있도록.

다행히 그녀는 공격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앤나는 치맛자락을 잡아 올리며 고개를 까닥였다.


“아버지. 오늘도 그 이상한 의식을 하실 거죠? 무의미한 행동이지만 행운을 빌어 줄게요. 그도 그럴게······."


뚜둑-

뚜두둑.


"오늘을 넘기면 딸을 영영 못 볼 테니 말이야."


미친. 공포 영화가 따로 없네.

로드릭은 질색을 표했다.

앤나의 사지가 기괴하게 뒤틀리더니 2층 창문으로 기어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새하얀 벽엔 붉은색 손바닥 자국들이 족적을 남겼다.

창문에 다다른 그녀는 목을 꺾을 수 없는 각도로 젖혀 싱긋 웃었다.

특히 로드릭을 끈적하게 바라보는 눈이 심상치 않았다.


'뒤지려고 애를 쓰는군.'


로드릭은 앤나의 몸에서 놈이 빠져나오면 끔찍한 고통을 주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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