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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람 님의 서재입니다.

미래를 듣는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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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람
작품등록일 :
2016.08.28 23:34
최근연재일 :
2016.09.0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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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57

작성
16.08.2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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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시공간을 넘어온 라디오 전파 - 제 1화

DUMMY

- Prolog -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난, 내 삶을 나의 방식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무한소의 확률로 태어나, 찰나를 살다 갈 텐데.

나는 왜, 나의 방식으로 나의 삶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같은 또래의 남자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교실에 앉아 같이 공부하며,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다시, 같은 남자들과 똑같이 머리 깎고,

같은 옷을 입은 채, 같이 얻어터지며 군 생활을 해야 했다.


이제 또다시, 같은 남자들과 같은 직장을 다니려고

입사를 지원했다.


만약, 백분의 일의 확률로 경쟁을 이겨내고 취직이

된다면, 다시 또 그 같음이, 나의 것이 아닌 방식으로

나를 지배할 것이다.


그렇게 소중한 찰나를 보내고 나면, 난 다시,

내 몸을 이루었던 원자의 조합을 기대하며,

무한대의 시간을 기다려야 할 텐데······.


순간, 해서는 안 될 대책 없는 기대가

기저를 퉁기며 올라온다.


“까짓것! 내식으로 한번 살아볼까?”


하지만 그것마저도 자신을 감싸고 있는

불변의 법칙들로 인해, 한낱 공상의 잔재만 남긴 채

기저의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 미래를 듣는 라디오- 제1화.


어느 한 여름 토요일 오후.


전태일은 신설동역 10번 출구를 나와, 어느 누군가가 정해 놓은 대로 , 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일이 끝나면 집으로 가야 하는 거니까.


대광 약국을 지나며 이어지는, 황학동 풍물시장은 그의 발걸음을 지체시키기에 충분했다.


가계마다 수북이 쌓아놓은 각양각색의 오래되고 낯선 물건들은, 시간의 공백을 뛰어넘어 60년대로 회기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집을 오가며 그곳을 지날 때마다, 잠재워 놓았던 호기심이 꿈틀대며 일어선다.


그는 가게를 기웃거리고,

사지도 않으면서 가격을 묻는다.


이곳에 제일 먼저 문을 열었던 가게, ‘청춘 소리사’의

최 씨는 신문을 보고 있었다.


“아저씨! 물건 많이 들어왔네요.”


그의 이웃이기도 한 최씨는, 어디서 구해오는지, 60 년대식 L. P.턴테이블과 야전, 진공관 TV등 전자제품들과, 반세기는 얼축 되어 보이는 각종 관악기, 아코디언 등을 진열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70년 된 주크박스가 들어왔는데, 너무 비싸게 주고 구한 것 같아. 팔리려나 모르겠어.”

“얼만데요?”

“50만원.”

“크! 나 같은 백수는 꿈도 꾸지 말아야 갰네요.”

이것저것 낯선 물건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건 뭐예요?”

“아! 그것도 같이 들어온 건데, 60년대식 트랜지스터 라디오. 우리나라 최초의 AM, FM 겸용 라디오야.”

최 씨는 최초란 말을 서슴없이 뱉고 있었다.


구멍이 뽕뽕 뚫린 검은 가죽 커버에 덮여있는 은색의 작은 라디오엔 ‘금성’이란 글씨가 왕관 모양의 상표와 함께 붙어 있었다.


“이거, 소리는 나요? “

“그럼. 보기엔 그래도 제법 소리가 쓸 만하다고!”

“얼만데요?”

“2만 5천원인데, 자네니까 2만원만 내.

뒤에 보면, 제조 연월일이 1961년 5월 16일이야.

박정희 군사 쿠데타가 나던 해지. “


“한번 틀어 보세요.”

태일은 손바닥만 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집어 최 씨에게 건넸다.


최 씨는 가죽커버의 똑딱 단추를 풀고 9볼트 건전지를 연결했다. 그리고 전원 스위치를 올렸다.

“쏴아......”

잡음을 쏟아내던 라디오에서, 최 씨가 다이얼을 맞추자 신기하게도 음악이 흘러나온다.


“MBC 정오의 희망곡, 김선영과 함께 하루를 꽉 채워 보세요!”


“하, 하. 요거 신기하네요. 건전지나 하나 껴주세요.”

이만 원을 최 씨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이 작은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어쩐 일이냐? 토요일인데 일찍 들어오고.”

그의 어머니는 빈집을 지키고 있다가

아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4년 전 태일의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무역업을 하던 남편이 남겨놓은 재산이 있어, 맏아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고, 딸 태인 이도 내년이면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예, 어머니, 입사원서 제출하고 오는 길이예요.”


그는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책상 앞 의자에 앉아 기지개를 켰다.


제대 후 복학해서 어렵게 졸업을 하고 세상에 나오니, 학창시절의 꿈과 이상은 현실속의 절망이 되어 자신을 옥죄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입사를 지원해 봤지만 경쟁의 결과는 패배로 돌아왔다.


백수생활이 시작된 것도 벌써 일 년이 지났다.

뻔질나게 전화를 해 대던 친구들도, 언제부터인지 연락이 뜸해져 있었다.


“하아! 아르바이트라도 찾아봐야겠는데......”


그는 최 씨에게서 사온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책상위에 올려놓고 전원 스위치를 올렸다.


빨간 파일럿램프에 불이 들어온다.

그리고 기계식 다이얼을 돌리며 주파수를 찾았다.

다이얼의 눈금이 792 Khz 에 맞춰지자 소리가 들린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경부고속도로의 6중 추돌사고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교통방송, 짜증!”


그는 표시창 옆의 딥스 스위치를 올려 FM으로 변환 시키고 다시 기계식 다이얼을 올려 보았다.


103.5 MHz. SBS. 러브 FM.

소리가 멀다.

그는 라디오 위에 붙어있는 로드 안테나를 뽑았다.

길기도 하다.

그는 손바닥만 한 라디오에 1미터가 넘는 안테나가 붙어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전파가 잡힌다.

남자의 목소리가 멀게 들린다.


“2017년 12월 13일. 러브 FM.

2시의 뮤직쇼! 김기덕입니다.

오늘 새벽에 첫눈이 내렸지요?

역시 눈이 내려야 사람들은 겨울을 실감하나 봅니다.

도시의 겨울은 왠지, 스산하고

썰렁하게만 느껴지는데요,

차가운 겨울바람에 오그라든 여러분들의 감성을

일깨워주는 곡이 있습니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곡이지요?

김시연의 ‘겨울연가’

첫 곡으로 준비했습니다. “


“이거 방송 사곤가?”

태일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가 뭔지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2017년 12월······. 첫눈이 내려?

오늘이 2016년 8월인데, 게다가 첫눈은 또 뭐야? “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농담하는 것도 아닐 테고.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김시연의 노래도 귀에 익숙지가 않았다.


노래가 끝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가기 전에도,

진행자의 겨울 얘기는 계속 되고 있었다.


“참, 알다가도 모르겠네!

시청자들 더위 식히려고 짜 맞춘 각본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러기엔 진행자의 목소리나 분위기가 너무 진지했다.


“태일아! 정수기 물통 좀 갈아주렴.”

어머니가 부르시는 소리에 태일은 라디오 스위치를 끄고 주방으로 갔다.

20 리터짜리 생수통은 나약한 여자들이 들기엔 버겁게 만들어져 있었다.

물통을 바꾸고, 냉장고에서 오렌지주스 병을 꺼내들고 방으로 왔다.


다시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전원 스위치를 올렸다.

다시 방송이 잡힌다.


도무지 감이 안 오는 얘기들뿐이다.


겨울 날씨 이야기, 크리스마스의 거리풍경, 대통령 선거 얘기······.


갑자기 노래가 중단되고,

앵커의 긴박한 목소리가 들렷다.


“방금 들어온 뉴스 속보입니다.

오늘 오후 3시에, 시청 앞 광장에서 있은 대선주자 선거유세장에서, 민주당 대선주자, 이상훈 후보가 연설도중 괴한이 쏜 총탄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총격에 쓰러진 이 후보는 즉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생명이 위독한 상태라고 합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김지석 기자 연결합니다. “


“시청 앞 광장에서 김지석입니다.

방금 전 2017년 12월 13일 오후 세시.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유세 연설을 하던 민주당 대선주자, 이상훈 후보가 연설도중 괴한이 쏜 총탄에 가슴을 맞고 쓰러지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총탄에 맞은 이 후보는 즉시 인근의 국립의료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총탄은 유세장 연단을 마주보고 있는 플라자 호텔 옥상에서 날아온 것으로 확인되었는데요.

범인은 저격직후 옥상 난간에 올라서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투신자살 했습니다.

경찰은 자살한 범인의 소지품에서 나온 유서와 신분증 등으로 미루어, 범인이 일본인이란 것 만 밝혀낸 상태입니다.

저희는 계속해서 소식이 들러오는 대로,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속보를 전해드리겠습니다.


태일은 라디오를 켜 놓은 채 거실로 나와 TV를 켰다.


JTBC에서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고, 다른 뉴스채널에서도 사사로운 얘기들만 있을 뿐, 전혀 이상 징후를 찾을 수 없었다.


태일은 다시 방으로 들어와 핸드폰을 열어 날짜를 확인했다.


2016년 8월 4일 오후 3시 31분.


“이상한데......”

순간 그의 눈 끝이 긴장했다.

“혹시!”


그는 핸드폰의 음성 녹음기를 열고 라디오의 스피커에 갖다 대었다.

이 작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선 계속해서 속보를 쏟아내고 있었다.


“네, 범인의 신원이 밝혀졌는데요,

범인은 29세 일본인, 구로다 다카하시로,

일본의 넷우익 단체인 재특회의 멤버로 확인되었습니다.

범인이 사용한 저격용 소총은 영국제 AWM338로, 고성능 조준경을 갖춘, 사거리 1,200 미터의 전문가용으로 미루어, 범행은 단순한 개인적 충동에서가 아닌 일본 극우단체의 계획된 소행인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습니다. “


태일은 녹음기의 정지버튼을 눌렀다.


그의 눈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바라보고 있었고,

라디오는 계속해서 속보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신장박동이 청각 신경을 자극하며 빠르게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런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단 말인가!”


뉴스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우선은 이런 형상에 대한 설명이라도 들어보고 싶었다.


그는 핸드폰에서 고등학교 친구 임한성의 이름을 찾아 전화번호를 눌렀다.


세 번쯤 신호가 울리자 임한성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그래, 한성이니? 나, 태일이야. 전태일.

지금 바쁘냐? “

“아니, 뭐. 그냥 도서관에 있다.”


임한성은 고교 동창이면서 대학 동문이다.

치과집 아들인 그는 물리학과를 나와 대학원에 진학해 있었다.

그래도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니, 방금 내가 겪은 황당한 현상에 대해서, 뭔가 그럴싸한 해석이라도 들을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


“그래, 잠시 만나, 물어볼 말이 있어서 그러는데,

내가 학교로 지금 갈게. 도서관에서 보자. “


잠시 후 태일은 임한성과 금잔디 광장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임한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요즈음은 어떻게 지내니?”

태일이 대답했다.

“직장 잡는 게 대학입시 저리가라야. 워낙 경기도 안 좋고.

경쟁이, 장난이 아니야. “

“근데 무슨 일 있냐? 갑자기 여기까지 오게.”

“응, 그냥.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그게 뭔데?”

“응, 전파 말이야. 라디오전파.

이게 시간을 통과할 수가 있을까?

다시 말해, 미래에서 오는 라디오 전파가 있을 수 있는 거냐고. “

한성은 뜬금없는 태일의 질문에 미소를 지어 보인다.


“글쎄, 심각한 질문은 아닌 거 같은데,

심각하지 않게 대답해볼게.


만일 아주 작은 블랙홀이 지구 주변에 존재한다면, 그 블랙홀 근처에 웜홀이란게 형성되지. 일종의 시공간의 게이트 같은 거야. 물론 이론상으로만.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인체는 웜홀을 통과 못해. 잘량을 갖고 있으니까. 하지만 전파는 질량이 없기에 통과할 수도 있겠지.


그것도 아직은 이론일 뿐이야. “


난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대충 그럴 가능성이 백만분의 일이라도 있을 수

있다는 한성의 말에 용기를 내서 말했다.


“내가 오늘 오래된 라디오를 하나 샀는데,

라디오에서 이런 뉴스를 들었어. “

난 그에게 핸드폰에 녹음 된 뉴스 속보를 들려주었다.


녹음된 뉴스를 듣고 있는 그의 눈이 치켜 올라갔다.

“설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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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권의 심장 속으로 -제 6화 +2 16.09.05 31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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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도자와의 만남 - 제 4화 +4 16.09.02 460 8 12쪽
3 벌어진 사건 -제 3화 +4 16.08.31 482 6 10쪽
2 사건의 전개 - 제 2화 +2 16.08.30 538 7 11쪽
» 시공간을 넘어온 라디오 전파 - 제 1화 +6 16.08.28 1,030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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