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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쓴것] 일기지장... 람보는 컨디션을 따지지 않았다!

일기지장... 람보는 컨디션을 따지지 않았다!

[명승부 역사 속으로③] 안양 SBS를 폭파한 람보슈터 문경은

 

문경은(서울 에스케이).jpg
사진출처: 서울 SK
 
 
다양한 능력이 고르게 필요한 프로농구에서 '일기지장(一技之長: 한 가지 특별한 재주를 가리킴)'은 자칫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농구천재' 허재처럼 이것저것 고르게 잘한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어설픈 올라운드가 될바에는 차라리 확실한 특기를 가진게 났다. 물론 다른 쪽에서도 어느 정도 능력을 갖춘 채 필살기를 갖추는 모양새가 가장 좋을 것이다.

그동안 국내농구에서는 이른바 슛이 뛰어난 슛쟁이형 선수들이 굉장히 많이 쏟아져 나왔다. 다른 능력에 비해 노력여하에 따라 가장 반등하기 쉬운게 슛이기 때문으로 신체조건-운동능력이 부족한 경우 그 의존도가 더 높은 경우가 많다. 물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된다'는 말처럼 다른 약점이 커도 장점이 워낙 대단하면 모든 것을 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대로 봐도 슛 하나를 무기로 스타급 플레이어로 거듭난 케이스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다른 단점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기존의 장점까지 제대로 쓰지 못해 묻혔다 할 수 있다.

'람보슈터' 문경은(43․190cm)은 프로농구 역사에서 손꼽힐만한 정통 슈터다. 당시로서 좋은 신체조건에 뛰어난 탄력까지 갖춘 상태에서 자신의 최대 장점인 슛을 극대화시킨 것이 성공요인이다. 문경은은 단순히 3점슛만 배포 좋게 쏘는 선수가 아니었다.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도 끊임없이 빈 공간을 찾아 움직이며 가드로부터 좋은 패스를 받을 수 있도록 주력하는 등 스스로 최적의 공격 장소를 선택했고 빠른 슛 타이밍과 안정된 자세를 통해 화력을 극대화했다. 이른바 '슈터의 조건'에 가장 알맞은 선수가 바로 문경은이었다.

그러나 문경은도 항상 잘 풀리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집중수비에 막혀 지긋지긋하게 막히며 고전한 경기도 적지 않았다. 2002년 2월 7일 정규리그 안양 SBS(현 KGC)전이 딱 그랬다. 하지만 진정한 슈터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할 역할을 해내야한다. 당시 백전노장이었던 신세기 빅스 소속 문경은 역시 그런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위해 이를 악물었다.

2002년 2월7일 프로농구 정규리그 안양 SBS(현 KGC)전

1쿼터: SBS는 은희석이 조동현을 앞에 두고 레이업을 성공시키며 산뜻하게 공격을 시작했으나 빅스는 외국인선수 조니 맥도웰이 트레블링 바이얼레이션과 터치아웃을 연거푸 범하며 첫 단추부터 삐걱거린다. 문경은은 4:4로 팽팽히 맞선 경기 초반 날렵하게 가로채기를 성공시키며 골 밑으로 질주해 들어갔으나 아쉽게도 레이업에 실패한다. 그러나 바로 이어진 다음 공격에서 홍사붕의 패스를 받아 리버스 레이업 슛으로 속공을 깔끔하게 마무리 시킨다. 문경은과 매치업된 김성철은 공격보다는 주로 문경은의 외곽슛을 저지하는 수비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외곽찬스가 호락호락하게 나지 않자 문경은은 욕심을 버리고 주로 골 밑의 맥도웰과 얼 아이크에게 볼을 투입시켜주는 방향으로 선택지를 바꾼다. 단순한 외곽 공격수가 아닌 센스를 갖춘 전천후 슈터임을 재확인시켜주는 장면이었다. 김성철의 수비에 막혀 문경은의 공격이 잘 풀리지 않자 신세기 유재학 감독은 1쿼터 막판 최병훈을 교체 투입한다. 잠시 숨을 돌리라는 배려였다.

신세기의 맥도웰과 아이크 그리고 SBS의 퍼넬 페리 등… 파워용병들이 주로 골 밑에서 경합을 벌인 끝에 SBS가 22:20으로 근소하게 앞서나가며 1쿼터가 종료되었다. 문경은은 김성철에게 많이 막혔고 공격에서 조차 밀렸다. 속공시 레이업 하나 성공한 것이 득점의 전부였다.

2쿼터: 외곽이 안 되자 드라이브인으로 2쿼터 첫 득점을 올리는 등 문경은은 최대한 영리하게 플레이하려 노력했다. 드리블에 이은 골밑 돌파로 스스로 공격의 시발점을 찾아보려 애쓰는 모습에서 노장의 책임감마저 보였다. 5살이나 어린 매치업 상대 김성철은 미들슛과 자유투로 차곡차곡 득점을 올리며 대조된 모습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은희석에게 가로채기까지 허용해 완전히 의기소침할 뻔했으나 공을 가로챈 은희석이 실책을 하는 바람에 가까스로 한숨을 돌린다.

문경은은 맥도웰에게 너무 바깥쪽으로 골밑 패스를 시도하다 서로 호흡이 맞지 않아 잘못된 패스를 주는 등 계속적으로 헤매다 이후 공격에서 겨우 레이업 슛을 하나 성공시킨다. 외곽슛이 서로 터지지 않는 가운데 미들슛을 주로 구사하는 김성철과 레이업으로만 득점을 올린 문경은 두 신구슈터가 묘하게 대비되고 있었다.

문경은은 잠시 후 골 밑에서 우물쭈물하다 은희석에게 또다시 스틸을 당하고 페리에게 속공레이업을 허용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대로 람보 슈터의 발칸포가 봉인 되는가?'싶은 순간 이어진 공격에서 바라고 바라던 문경은의 첫3점 슛이 터진다. 지켜보던 신세기 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날의 문경은은 조금 이상했다. 한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이 터지던 평소와 달리 다음 공격에서 김성철을 달고 쏜 미들슛을 에어볼로 날려버리고 말았다. 한번 부진하면 이어서 만회하고, 한번 만회하면 다음에 휘청하고(?) 알 수 없는 싸이클이 반복되고 있었다. 명콤비라는 맥도웰과도 호흡이 맞지 않았다. 37:36으로 신세기가 1점 역전시켜놓은 채 전반전이 종료됐다. 전반까지의 문경은의 득점은 총 9득점으로 장기인 3점슛은 겨우 한 개 성공에 그쳤다.

3쿼터: 문경은의 시련은 후반에서도 계속됐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은희석을 수비하다 세 번째 파울을 범하고 만 것, 주 매치업 상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날 따라 은희석에게 자주 당하는 모습이었다. 운동능력이 뛰어난 선수에게 유달리 약한 문경은의 약점이 드러난 장면이기도 했다. 문경은 입장에서는 연세대 후배 은희석이 얄밉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문경은은 경험이 많은 베테랑 슈터이자 두둑한 뱃심의 소유자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빠르고 힘 좋은 수비수들에게 수없이 시달려본 선수답게 자신의 페이스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아도 금새 리듬을 되찾아간다. 은희석에게 당한 것과는 별개로 문경은은 이어진 공격에서 두 번째 3점슛을 깔끔하게 성공시킨다. 그러나 SBS 김훈과 매치업 상대 김성철이 안정적으로 외곽슛을 성공시키는 것에 비하면 미미한 활약이었다.

신세기는 문경은만 부진한게 아니었다. 다른 선수들까지 쉬운 외곽을 놓치는 등 전체적으로 슛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홍사붕과 교체 투입된 최명도가 사이드에서 3점슛 2개를 거푸 성공시키며 자칫 SBS쪽으로 쏠릴 뻔한 분위기를 64:64 팽팽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 막판 위안거리였다.

4쿼터: 문경은은 자유투 라인 근처에서 미들슛을 던져 4쿼터 첫 득점을 올린다. 4쿼터 초 맥도웰이 4반칙으로 벤치로 물러난 상황인지라 더더욱 그의 역할이 중요했다. '디나이 디펜스(Deny Defense)'를 바탕으로 그림자처럼 자신을 따라다닌 김성철의 타이트한 수비는 끊임없이 문경은을 괴롭혔다.

그러나 문경은은 달리 람보슈터가 아니었다. 74대 74로 팽팽한 순간에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통렬한 3번째 3점슛을 성공시킨다. 집중수비 속 미세한 틈을 놓치지 않은 결과였다. 이어 매치업 상대가 순간적으로 김훈으로 바뀌자 골 밑을 들어가는 척하면서 자유투를 얻어내 깨끗하게 성공시킨다. 드디어 문경은이 부활하는 듯 싶었다.

그러나 문경은은 3점차로 아슬아슬하게 앞서나간 종료 1분 30여초전 은희석에게 공격자 파울을 범하고 막 달아오르려던 팀의 분위기를 자신의 4파울로 냉각시켜 버린다. 결국 시소게임은 종료직전까지 이어졌고 경기는 83대 82 신세기의 한점차 승리로 끝이 난다. 문경은은 분명 이날 경기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악의 난조 속에서도 3점슛 3개 포함 총 21득점을 성공시키며 왜 문경은을 조심해야하는가를 상대팀들에게 또 한번 보여줬다.

 

-문피아 독자 윈드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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