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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파파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 살아보니, 은행장 되기 참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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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헤밍파파
작품등록일 :
2024.05.19 10:20
최근연재일 :
2024.07.05 12:25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2,650
추천수 :
75
글자수 :
175,869

작성
24.05.22 08:20
조회
108
추천
4
글자
12쪽

[회색지대(灰色地代)].

DUMMY

모든 것이 회색이었다.

하늘도 회색 빛.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황량한 회색 사막.

바람이 불자 회색 모래가 온 세상을 삼킬 듯 솟아 올랐다가 사라졌다.


모래바람이 걷히고 영혼들의 기나긴 행렬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광경이 신기한 듯 모두 두리번 두리번 거리고 있다.


”서둘러요. 해지기 전에 저 앞에 보이는 성으로 들어가야 해요.“

완장을 차고 있는 덩치 큰 영혼이 안내를 하였다.

”댁은 뉘신지요?“

”[자치위원]. 이를테면 당신들 선배라 할까? 이곳에 온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어. 내가 살아 있을 때 대통령이 루스벨트였지. 지금은 누가 대통령이오?“

”오~ 대선배네.“

영혼들이 놀라며 그들을 경이로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걸어가는 길 옆에는 철조망이 처져 있고 푯말이 붙어 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


”저건 무슨 뜻이요?“

완장을 차고 있는 [자치위원]에게 물었다.


”저기 철조망 너머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소. [회색지대]에서는 마음 수양을 게을리하면 추방당해요. 그 무리들이 잔뜩 몰려 있지요. 그리고 전설 속에서 들었던 대마왕의 부하들, 영혼사냥꾼도 있다고 들었소.“

”영혼사냥꾼? 그건 대체..?“

”나도 자세히는 모르오. 본 적도 없소. 전해 들은 이야기라서. 아주 오래전 대마왕이라는 괴물이 이곳을 점령하려다 실패했다고 합니다. 잔당들이 여기로 숨어들었는데. 가끔 자기들이 좋아하는 영혼을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하여간 저쪽은 기분 나쁜 곳이니 근처에 가지도 마시오.“


윤필수도 기나긴 행렬 속에서 줄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염라대왕이 당부했던 말을 곰곰이 기억해보고 있다.

”너를 회색지대로 보낸다. 인간 세상과 별반 다름이 없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다른 영혼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곳이다. 마음을 곱게 먹어라. 화가 나도 삭힐 줄 알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너에게 묻어있는 [악의 에너지]가 표출될 것이다. 누군가 그것을 노릴 것이야.“


수수께끼 같은 말이었다.

‘내 안 어디에 [악의 에너지]가 있단 말인가?’


길어 보이기만 했던 행렬이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더니 끝에 작은 문이 보였다.

여러 개의 문이 횡으로 펼쳐져 있었고, 영혼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영혼심사대]라는 간판이 보였다.

외관은 공항의 출입국 심사대와 비슷해 보였다.


”서둘러주세요. 시간이 별로 없어요.“

[자치위원]들이 문을 통과하는 영혼들에게 모자를 씌우고 있었다.


”저 모자는 뭐야?“

”환영 기념품이라도 줄 모양인가?“

”아닌데, 문을 통과해서 다시 반납하는데?“

영혼들이 웅성웅성 거렸다.


”잘 감시해. 오늘처럼 모래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놈들이 활개를 쳐.“

저승사자를 연상케 할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영혼들은 두려움을 느꼈는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떴다. 떴어. [경비대장]이야.“

자치위원들도 동작이 빨라지고 그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영혼심사대] 뒤에 우뚝 솟아 있는 전망대.

그곳에서 덩치가 유달리 큰 [경비대장]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치위원의 지시에 따라 모자를 쓰고 [영혼심사대]를 통과하는 영혼들.

문제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싶더니.


”에에엥~에에엥~“

싸이렌이 울렸다.

한 영혼이 모자를 벗어 던지더니 냅다 성안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저놈 잡아.“

자치위원 여럿이 따라가 보지만, 워낙 재빨라 요리조리 피하기만 했다.


하지만.


”휘리릭. 척“

[경비대장]이 순식간에 공중을 날라서 투망을 던졌다.

도망가던 영혼은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다.

자치위원들은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장의 무공에 감탄하였다.


”요게. 어딜 감히 기어와. 쫓겨났으면 함부로 들어오질 못해. 여봐라. 당장 이놈을 감옥에 가두었다가 순화시킨 후 내보내.“

자치위원들은 지시에 따라 붙잡은 영혼을 어디론가 끌고 갔다.


아직 대기열에 남아있던 영혼들은 긴장하며 동작이 빨라졌다.

드디어 윤필수의 차례가 되어 모자를 쓰고 작은 문을 통과하는 순간.

”쿠궁, 쿠궁“

[영혼심사대]가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


‘억. 무슨 일이지?’

윤필수가 당황하며 자신의 몸을 발끝부터 손을 살펴보며 당황했다.


자치위원들 몇 명이 급하게 달려왔다.

”이상하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는데?“

”지진인가?“

우주의 크고 작은 빅뱅으로 지축이 흔들린 적은 있었다.


”다시 통과시켜봐.“

[경호대장]이 위협적인 목소리로 지시했다.


겁에 질린 윤필수가 조심스럽게 문을 통과하며 눈을 찔끔 감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거봐. 그냥 작은 지진이라 그랬잖아.“

”오케이. 저 길로 나가시오.“


”잠깐“

[경비대장]이 윤필수를 멈추어 세웠다.

‘좀 더 살펴봐야겠어. 수백 년 동안 이 자리에 있었지만, 이런 일은 흔치 않아.’


”이리 와보시오“

윤필수가 바짝 다가오며 서로의 눈동자가 마주치는 순간.

[경비대장]이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윽. 아이고 머리야.’

정신을 차려야 했다.

휘하에 있는 수많은 자치위원들과 신참 영혼들이 자기를 주시하고 있으니까.

이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잠시 간단한 검사를 하겠소. 팔을 벌려보시오.“

[경비대장]이 그의 몸을 스캔하듯이 더듬고 만져 보았다.


‘아악.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경비대장은 기분이 묘했다.


머릿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기억이 되살아 나는 듯했다.

누구와 싸우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시뻘건 불 속에서 도망치는 자신의 모습도 보였다.

계속 이대로 있다간 몸이 두 개로 쪼개질 것 같았다.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

”이상없소. 저들을 따라가시오.‘


윤필수가 긴장을 풀고 발걸음을 옮길찰나에.

“혹시 어려움이 있으면 나를 찾으시오. 멘토가 되어 주겠소.“

경비대장이 다시 말을 건넸다.


”네? 멘토요? 그게 무슨?“

”교육을 받으면 알게 될거요.“


자치위원들이 수근거렸다.

”[경비대장]이 멘토가 되어준다고? 흔하지 않는 일인데?”

“어차피 신입생에겐 멘토가 필요하잖아. 괜히 겁을 준 게 미안해서 그랬나?”


영혼 들이 도착한 곳은 교육장이었다.

스크린에서는 [회색지대의 역사]가 상영되고 있었다.


[회색지대의 역사]

태초에 우주가 창조되고 다른 생명체와는 다르게,

인간의 의식과 영혼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자,

천상계가 생기게 되었고, 천국, 지옥, 회색지대가 자리 잡았다.


무서운 저승사자도 없고, 기적을 선물하는 천사도 없다.

아주 위중한 일이 아니면 천상계의 신들은 관여하지 않는다.

인간세상처럼 서로 부대끼며 살아간다.


항상 깨어있고 마음속 에너지를 채워야 한다.

에너지가 소멸하면 영혼도 소멸된다.

명심해라.


마음을 잘 다스려라.

수양을 게을리하면 추방될 수 있다.

마지막 메시지를 끝으로 화면은 꺼졌다.


’마음을 잘 다스려라. 염라대왕이 나에게 해준 이야기와 똑같네. 그런데 [악의 에너지]?? 뭐라 뭐라 했는데, 여기 교육내용에는 빠져 있네?‘

윤필수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교육장을 빠져나오자 드디어 성안으로 입성했다.

입구에는 많은 선배 영혼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영혼들이 왔네요. 환영합니다.”

“고맙습니다. 반겨주셔서.”

“멘토가 되어 드립니다. 어서어서 짝을 찾으세요.”

영혼들끼리 서로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하였다.


’나는 이미 멘토가 정해졌지. 경비대장은 덩치도 크고 무서운데. 하필이면.‘

윤필수는 많이 아쉬웠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다.

영혼들은 자유로웠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살면서 해보고 싶었던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노래. 음악. 게임 등등.

하지만 분쟁과 갈등을 일으키는 행위는 금지되어있었다.

술, 도박은 물론이었고,

이성끼리의 접촉도 허락되지 않았다.


정념은 마음을 현혹시켜 판단을 흐리게 한다.

유전적으로만 보면, 사랑은 애초에 종족번식을 위해 두뇌에 새겨진 것이니, 영혼에게는 필요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새로 입성한 영혼 들은 공허했고, 지루해졌다.

이때부터 멘토의 역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오랜만입니다. 멘토님!”

“잘 지냈나요? 오늘은 새로운 곳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서로 친하게 지내는 다른 영혼들이 부러웠다.


’나도 멘토가 있지만, 왜 하필이면 덩치 크고 무서운 경비대장이지?‘

윤필수도 마음만 먹으면 경비대장을 쉽게 찾을 수는 있었다.


영혼이 북적대는 댄스홀이나, 가끔 작은 충돌이 벌어지는 축구장에는 어김없이 경비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 떴다 떴어. 싸움 그만해. 경비대장이야”

모두가 그를 무서워했다.


’쳇~ 어려울 때 자기를 찾아오라 했는데, 큰 덩치에 솥뚜껑 같은 손바닥, 부리 부리한 눈초리, 잡아먹을 듯이 카랑카랑한 목소리. 누가 찾아가겠냐고?‘

길에서 그의 모습을 발견하면 주춤주춤 먼저 도망가기 바빴다.


“멘토님! 요즘. 허전하고 살아가는 의미를 모르겠어요.”

“그러면 안 돼. 마음속 에너지가 소멸되면 영혼도 사라진다고.”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추억영화관]에 가봐. 내가 데리고 가줄게.”

“[추억영화관]? 거기는 뭐 하는 곳인가요?”

“저마다 생전에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잖아? 기억을 되살리면서 좋은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거지. 나도 마음이 울적한 때는 가끔 가.”


역시나 공허한 날을 보내고 있던 윤필수도 귀가 솔깃했다.

’이러다가 곧 나의 영혼이 소멸되고, 나란 존재는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인가?‘

가끔 걱정도 했었는데, 이제야 해결방안을 찾은 것 같았다.


[추억영화관]

광고판에 글자가 깜빡이며 어서 들어오라고 유혹을 하였다.

-힘들 때는 당신의 소중한 추억으로 충전하세요-


’어떻게 들어가는지, 들어가선 무얼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군.‘

조심스럽게 멀리서 구경만 했다.


같이 교육을 받아 친분 있는 영혼이 멘토와 들어가는 걸 발견했다.

’나도 같이 들어갈까?‘

하지만 쑥스러움에 섣불리 다가가질 못했다.


윤필수가 망설이는 것은 자신의 추억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도 좋은 추억이 있기나 한 것일까?‘


하지만 비실대던 영혼들이 모두 에너지가 충만한 모습으로 변하자 용기를 내었다.

’15명. 지금까지 15명이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모두 만족하는 표정이야.‘


“딸랑 딸랑”

영화관의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갔다.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자 누군가 다가왔다.


“여기 처음이신가요?”

“네.”

윤필수가 쑥스러운지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기 벽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읽고 오세요.”


-추억영화관 이용 안내문-

추억영화관은 당신의 기억에서만 장면을 가져옵니다.

어떠한 조작이나 각색도 없습니다.

슬픈 추억, 좋은 추억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좋은 추억만 따로 빼낼 수는 없어요.

지나고 나면 슬픈 추억도 아름다우니까요.


하루에 두 개의 추억만 선택이 가능합니다.

너무 흔하면 가치가 떨어지는 법이니까요.


*주의사항

때로는 슬픈 추억 때문에 고생할 수도 있습니다.

심사숙고해서 잘 선택하세요.

우리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숙지하셨으면 이쪽으로 오세요.”

안내원이 인도한 테이블에는 여러 개의 카드가 놓여있었다.


[엄마에 대한 추억, 아빠에 대한 추억]

[가족에 대한 추억]

[학창시절의 추억]

[첫 사랑에 대한 추억]




’어느 것으로 할까‘

윤필수는 한참을 고민했다.

들었다가 내려놓았다가 반복하더니, 두 개의 카드를 집어 안내원에게 다가갔다.

”이걸로 틀어주세요.“


그는 커튼이 처져있는 상영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에에엥,에에엥“

싸이렌이 울리고 {추억영화관}에서 붉은 연기가 치솟았다.

영혼들은 허겁지겁 탈출하기에 바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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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보니, 은행장 되기 참 쉽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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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색지대(灰色地代)]. +1 24.05.22 109 4 12쪽
6 지옥에서 구제되다. +1 24.05.21 107 4 10쪽
5 희망, 보시 +1 24.05.20 108 4 11쪽
4 판결 +1 24.05.20 113 3 10쪽
3 백투백홈런 +1 24.05.19 122 3 12쪽
2 실패한 은행원 +1 24.05.19 133 4 10쪽
1 죽음 +1 24.05.19 178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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