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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파파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 살아보니, 은행장 되기 참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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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파파
작품등록일 :
2024.05.19 10:20
최근연재일 :
2024.07.02 17:20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2,216
추천수 :
42
글자수 :
162,921

작성
24.05.19 10:40
조회
118
추천
3
글자
10쪽

실패한 은행원

DUMMY

윤필수는 출근시간이 여유롭거나, 머릿속이 복잡할 때, 항상 어린이집 앞을 지나서 갔다.


굳이 10분 정도 더 걸리는 길을 애써 둘러 가는 이유가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사랑하는 딸아이와 잠시 나마 같이 있다는 환상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20대 후반으로 훌쩍 자란 딸과 아이들을 비교하는 건 무리였지만, 일찍 조기유학을 가버린 지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딸의 모습은 여전히 귀여운 아이였다.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병아리 같은 아이들과 반갑게 이벤트를 벌였다.

자주 인사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그에게 별명이 지어졌다.

“어! 안녕하세요! 뻥튀기 아저씨다.”


’그래 이 녀석들아. 덕분에 아저씨가 외롭지 않았단다. 앞으로 씩씩하게 잘 크렴.‘


어린시절 세라는 아빠가 사다 주는 뻥튀기 과자를 좋아했다.

엄마가 준비한 유기농 프랑스 고급과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아이는 커다란 뻥튀기 과자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톡’ 조각 내는 감촉을 좋아했고, 거칠고 투박한 맛을 즐겼다.


생애 마지막 날.

윤필수는 뻥튀기 과자를 아이들에게 몇 조각 나누어주고, 언덕 길을 걸어서 올라가고 있었다.


맞은 편에서 큰 덤프트럭이 조금씩 조금씩 이동하는 장면이 보였다.

그의 시선도 차를 따라 움직였다.


‘응?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는데 차가 왜 움직이지?’

트럭이 제법 슬금슬금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어린이집이 있다.


‘앗! 아이들이 아직 차에 많이 타고 있어.’


그는 딸 세라도 아이들과 같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재빨리 가방을 팽개치고 언덕 길을 급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면서 목이 터져라 외쳤다.

“선생님! 얘들아! 비켜”

계속 여러 번 외쳤으나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었다.

선생님은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에게 집중하느라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윤필수가 다행히 트럭을 따라잡았고, 문을 열어 젖혔다.

그러나 꽁꽁 잠겨서 열리지 않았다.


트럭이 아직은 완만한 언덕을 타고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윤필수는 발바닥이 브레이크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으~ 엉차! 지지지직’

구두에서 타이어가 타는 듯한 냄새가 날 정도로 힘을 썼다.

하지만 몇 톤이 넘는 트럭을 이길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경사가 급한 언덕이 나오고, 아주 빠른 속도로 아이들을 덮칠 것이다.


‘안 되겠어. 뛰어가는 게 빠르겠어.’

트럭을 내버려 두고 아래로 총알같이 튀어갔다.

그리고 소리 질렀다.


“선생님! 얘들아! 비켜”


그제서야 선생님이 사태를 알아차렸다.

봉고차에 타고 있는 아이들을 허겁지겁 데리고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차에 있는 아이들 숫자가 꽤 많았다.


윤필수와 트럭의 간격이 좁아졌다.


선생님은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있는 물체를 보았다.

어쩔 줄을 몰라 손으로 입을 가리고, 몸은 일시정지 상태가 되었다.


차에는 아직 두 명의 아이가 타고 있었다.


윤필수는 차 안으로 뛰어 들어가, 냉큼 두 아이의 몸통을 움켜쥐고 문밖으로 던졌다.


아직 그의 몸은 차 안에 있는 상태.

그다음 장면은 기억이 없었다.

“퍽” 하는 찰나의 소리만 들렸을 뿐.


윤필수는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세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오선녀.

비록 그녀를 선택한 것은 출세와 욕심 때문이었으나, 그래도 어떤 면에서는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같은 이불 밑에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잠이 들었고, 아침에 눈을 비비고 희망찬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할 때 옆에 있었던 사람.


원망스럽기도 했으나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나 아니었어도 남자들이 줄을 섰었다. 철이 없었을 뿐이지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윤세라. 그의 사랑스러운 딸.

출세를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만 했다.

밤늦게 퇴근할 때면 어김없이 딸아인 잠들어 있었다.

많이 놀아주지 못한 게 제일 후회스러웠다.


’그나마 갓난아이 시절에 목욕을 많이 시켜주었지.‘

딸아이의 포동포동한 볼태기.

볼록 나온 배.

그 감촉이 손바닥에서 생생히 숨 쉬고 있었다.


황지원.

윤필수의 연인이었으나 오선녀와 결혼하기 위해 이별을 고했다.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잘 살았으면, 미안한 마음이 덜 했을 텐데.‘

항상 마음에 걸렸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


윤필수는 인터넷을 검색하느라 잠을 설친 날이 많았다.

검색창에 입력한 글은 무언가 이상했다.


[번개탄 피우는 법, 밧 줄 올가미. 고통이 가장 적은 방법은?]


그렇다.


그는 실패한 은행원.

어차피 사고가 아니었어도, 스스로 세상을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기러기 아빠였다.

세라를 초등학교 5학년 때 처형 가족이 있는 캐나다로 보냈다.


“세라 아빠! 우리 세라 캐나다로 유학 보내는 게 어때요?”

“글쎄. 나는 그냥 한국에 있으면 좋겠어. 꼭 조기유학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난 평범한 은행원이야. 그 돈 감당 못해.”

“언니한테 부탁했어요. 우리 세라도 책임지고 맡아줄 수 있데요. 아주 싸게 유학 보낼 좋은 기회라고요.”


장인과 사업을 하던 동서의 수입이 한참 피크 치던 시절.

집안의 모든 결정권은 와이프가 쥐고 있는지라, 윤필수는 말릴 처지가 못되었다.

하지만 돈이 적게 들어간다는 장담은 2년을 넘기지 못했다.

장인의 사업이 내리막길을 타자 처형의 자금줄도 바닥이 드러났다.

윤필수의 모든 수입은 생기는 대로 캐나다로 송금되었다.

결국 처형네 식구들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오히려 오선녀는 세라를 돌보겠다는 핑계로 캐나다로 들어가 버렸다.


“여보! 빨리 돌아와요. 돈 보내기도 힘들고, 나 혼자 너무 외롭다고.”

“그 마음 안다고요. 하지만 세라가 여기 환경에 너무 적응을 잘해요. 아이가 조금만 더 있자는 데, 부모가 이 정도는 뒷받침을 해줘야지.”


조금만 더 있자는 시간이 어느새 15년이 지났다.


처음 세라를 떠나보낼 때만 하여도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아빠! 담에 캐나다 올 때는 뻥튀기 과자 꼭 사오세요.”

“오냐. 배 터지게 먹을 수 있게 많이 가져가마.”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가지고 간 트렁크 가방에는 온통 뻥튀기 과자로 채워질 정도였다.


하지만 윤세라는 한국말보다 영어가 더 편한 전형적인 교포 2세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hi daddy!”

아빠라는 단어보다 더 자주 튀어나왔다.


“음. 하우캔아이 세이.”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어든 동영상 통화 중에도 적당한 한국말을 찾지 못해 답답해 했다.


그는 허망했지만 별 뾰족한 수도 없었다.


딸은 현지에서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글로벌 제약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급여, 연봉 등 모든 조건이 한국회사보다 유리했다.

굳이 귀국할 이유가 없었고, 윤필수도 예전처럼 오선녀에게 귀국을 종용하지도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현재 그가 거주하는 곳은 10평 남짓의 오피스텔이다.

만약 식구들이 귀국한다면, 서울시내에 번듯하게 살 집을 마련해야 하나, 그럴 능력이 없었다.


물론 매년 1억에 육박하는 유학비용과 생활비를 지원하느라 저축할 여유가 없었지만, 결정적으로 본인의 투자실패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우와! 오늘도 15프로 올랐어.”

“겨우 그거 가지고 그래. 나는 40프로야.”

부하직원과 점심을 먹던 중 처음으로 코인이란 놈을 알게 되었다.


장난삼아 처음 투자한 윤필수는 6개월만에 백프로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와우~ 정말 대단하군. 자금이 없는 게 원통한 일이야. 겨우 백만원 투자해서 이백만원 벌었네. ‘


그때 누군가로부터 초특급 정보를 얻게 되었다.


“매직코인이라는 종목이 있어. 발행회사가 중소게임업체인데, 기술력이 탑이야. 대기업이 통째로 사려고 해. 쇼핑몰에서 매직코인으로 모든 거래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거야.”

“얼마나 오를까? 저번에는 백프로 먹었는데.”

“백프로? 그 정도가 수익이라 할 수 있나? 최소 5배 정도는 되지 않겠어?”


’으~ 아깝다. 5배의 수익을 눈앞에 두고도 자금이 없다니.‘

허탈한 윤필수가 대출상담중인 건설 시행사 대표 박철홍을 떠올렸다.


“박사장님! 이 물건은 어렵겠어요. 공실도 많고, 감정가액도 한참 모자라요.”

“어떻게 좀 안될까? 요즘 여기저기 판을 벌린 게 신통치 않아서.”

“난감하네요. 한 번 더 고민해 볼게요. 벌써 점심시간이네요.”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잡담을 하던 중 자연스럽게 코인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아니 윤과장이 백프로를 먹었다고?”

“백프로면 뭐해요. 겨우 백만원 투자한 것 가지고.”

“그러게 말이야, 아쉽군.”

“제가 실력은 충분한데 돈이 없어요. 돈이..”


계속 돈 타령을 하자 박사장이 눈치를 깠다.


식당 안에는 꽤 많은 사람이 있었고, 박사장은 얼굴을 바싹 당기며 속삭였다.

“자네 혹시 돈 필요하나?”

“네? 아니에요. 무슨 큰일 날 소리를. 제가 뇌물이나 받는 그런 못된 사람인 줄 아세요?”

손을 휘휘 저으며 거절하는 척했다.

“뇌물 그런 게 아니고 유능한 투자자에게 돈을 일시적으로 맡기는 거야.”


박사장의 담보대출 건은 이전의 물건보다 덩치가 훨씬 컸다.

하지만 지금까지 연체 없이 거래에 충실했던 그를 믿었다.

윤필수는 안면 있는 감정평가사에게 부탁하여 감정가를 부풀렸다.

이번에는 특별히 더 많이.


매직코인은 두 달 만에 만원이 3만원으로 튀었다.


’10만원만 되면 팔자. 그러면 10억이잖아. 이 정도면 전세 정도는 구할 수 있어. 그런 다음 와이프하고 세라를 불러서 같이 사는 거야.‘

하지만 지독하게 운이 없던 그는 이번에도 그러했다.


코인발행회사가 불법으로 시세조정 작업을 하다 적발되었다.


매직코인이 휴지가 된 후 며칠이 지나서 윤필수는 갑자기 배가 아팠다.


투자해서 피 같은 돈을 잃어버렸을 때.

친한 사람이 나보다 더 잘 되었을 때.

그때의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물리적 통증. 진짜 배가 아팠다.


외로움에 자괴감에 자주 먹은 깡소주 때문에 그런가 했는데.


“췌장암입니다. 길어야 6개월입니다. 가족분들은 있으시죠?”

의사가 속삭이듯이 담담하게 이야기했으나. 그의 귀에는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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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보니, 은행장 되기 참 쉽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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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희망, 보시 24.05.20 94 3 11쪽
4 판결 24.05.20 98 2 10쪽
3 백투백홈런 24.05.19 108 2 12쪽
» 실패한 은행원 24.05.19 119 3 10쪽
1 죽음 24.05.19 159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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