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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파파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 살아보니, 은행장 되기 참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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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파파
작품등록일 :
2024.05.19 10:20
최근연재일 :
2024.07.04 12:15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532
추천수 :
42
글자수 :
171,561

작성
24.05.20 08:10
조회
108
추천
2
글자
10쪽

판결

DUMMY

“변호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과장님! 잘 지내세요?”

윤필수가 사무실을 찾아간 건 사망보험금이 나오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서였다.


인터넷을 서치하던 중 다른 사람의 대화를 보게 되었다.


[고민이 있어요. 법률 지식이 있는 분께 물어봅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고 합니다. 근데 제가 얼마 전 들어놓은 보험이 있어요. 사망보험금을 자식에게 주고 싶은데, 보험금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서요?]


[마음을 추스르고 용기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보험가입 시기가 얼마 되지 않으면 보험금 지급사유에서 제외됩니다. 다만 심신미약의 경우 가끔 인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뭐라구? 사망하면 무조건 나오는 게 아니었어? 난 언제 가입했지?‘

황급히 보험증권을 펼쳐보았다.

지금으로부터 1년이 조금 넘었다.


“변호사님! 궁금한 내용이 있어서요. 보험에 관한 건데.”

“예. 말씀해보세요.”

“죽으면 당연히 사망보험금이 나오는 것 아닌가요? 자살하면 안 준다는 말이..”


“가입시점이 2년이 안되면, 받지 못할 확률이 높아요.”

“무조건 그런가요?”

“예외적인 경우가 있습니다만, 당사자가 입증해야 해요.”

“예를 들면 어떤 게.”.

“정신과 상담 이력이라 있다든지, 아니면 술에 너무 취해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든지.”


변호사 사무실을 나오며 윤필수는 결심을 굳혔다.

‘그래. 되든 안 되든 일단 해보는 거야. 방법이 없잖아?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보자.’


자살 싸이트에서 이 곳에 대한 추천 글들이 많았다.


[여기 한 번 가보세요. 주변 경치가 너무 좋습니다.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내려올만한 곳입니다.]


[저도 여기 가봤습니다. 절벽에서 바다를 보니 무섭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더군요. 마치 하늘을 날고 있는 새처럼 느껴졌어요. 하마터면 뛰어내릴 뻔했답니다. 전 아직 정리 안된 게 많아서 그냥 왔지만요.]


윤필수는 행동이 어딘가 부자연스럽던 젊은 여자를 만났었다.

이곳에 온 목적을 들키기가 싫었다.

핑계 삼아 그녀의 사진을 몇 장 찍어주었고 발길을 돌렸다.


뛰어내릴 정확한 포인트를 정했어야 했는데, 여자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그래도 마지막을 장식할 괜찮은 장소라 생각했다.


이제는 날짜만 정하면 되었다.

3일 후면 검찰청과 약속한 시점이니 그 전에 일을 치러야 했다.

괜히 검사 앞에서 험한 꼴 당하고 싶지 않았다.


오선녀와는 이런저런 통화는 했다.

세라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듣고 싶었다.

핸드폰을 들었다 놓았다만 30분째였다.


‘안되겠어. 도저히 마음이 아파서. 편지로 대신해야겠어.’


[세라야. 나의 딸 너무나 예쁜 세라야. 막 갓난아기에서 벗어나자마자, 내 딸이란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넌 예뻤다. 대머리에 눈이 쭉 찢어진 나와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가진 너를 누가 부녀지간이라 여기겠니? 유일하게 닳은 건 나도 왼손잡이 너도 왼손잡이. 어릴 적 나의 부주의로 엉덩이에 난 흉터 때문에 마음에 걸리는구나...]


윤필수는 밤새도록 편지를 써 내려갔다.

완성은 했으나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이 되었다.

유서형식으로 세라에게 전달되는 건 피하고 싶었다.


고민을 하며 마지막 출근길에 오르던 윤필수.

어린이집을 지나던 중,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었다.


***


상황정리가 되니 차분해졌다.

주변의 영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자신의 심장에 달려있는 건 검은색 명찰이었는데,

다른 영혼에게는 흰색, 회색도 많았다.


살아생전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각양각색이었듯이 영혼들의 모습도 제각기 달랐다.


”아이 씨! 왜 벌써 죽냐고, 이제야 금배지를 달고 주변에서 나를 받들어 모셨는데.“

정치하는 놈은 저승에 와서도 목에 힘을 주고 있었다.


”따분하군. 그동안 내 손가락 하나에 여러 목숨이 왔다 갔다 했는데. 우리 부하들은 어디 갔나? 나 혼자 죽었나?“

중남미 조폭 두목은 어슬렁거리며 다른 영혼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울지마. 아마도 남은 가족들은 어려움을 잘 헤쳐 나갈 거야.“

주변에 사랑과 용기를 주는 따뜻한 영혼들도 꽤 보였다.


”아~ 내가 없으면 그 힘없고 어린 환자들은 어떡하지?“

의사로 보이는 영혼은 한없이 안타까워했다.

맑고 순수해 보이는 영혼의 가슴엔 공통적으로 흰색 명찰이 달려 있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혹시?‘

머릿속에 불안감이 엄습하던 찰나.


콘테이너 박스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다시 더 높은 하늘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 지구는 멀어서 보이질 않았다.


마침내 당도한 곳은 이 글 이글거리는 태양 앞이었다.


”지잉~“

콘테이너 박스 천정이 활짝 열리더니, 시뻘건 한줄기 불빛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영혼들은 모두 놀라 불빛 주위에서 가급적 멀어지려고 주춤 주춤 뒤로 물러섰다.


불빛을 따라 큰 물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절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사대천왕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키는 3미터가 족히 넘어 보였다.

눈은 가재미 같이 쪽 째졌고, 눈동자는 빨간색.


헉. 눈동자가 3개였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모든 영혼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가끔씩 코를 풀 듯이 “킁”하면 연기가 품어져 나왔다.

손에는 큰 물건을 들고 있었는데,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투망과 비슷해 보였다.


무서운 사대천왕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어두운 밤 벼락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저음 영역의 폭발음과 쇠를 깍아내는듯한 마찰음이 섞여 있었다.


“지옥에 갈 영혼을 데리러 왔다. 태양에서 영원히 지내야 할 것이야. 이름을 부르면 빨리 나와. 염라대왕님 앞에서 판결을 받을 것이다.”


가여운 영혼들이 탄식하며 흐느끼고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억울해. 친구를 잘못 만나서 나쁜 일을 많이 저질렀어.”

“휴~ 주말마다 교회에 나간 보람이 있군.”

시끌시끌해졌다.



화가 난 듯 사대천왕의 코에서 붉은 연기가 쏟아졌다.

“조용히 해. 어디로 갈지는 염라대왕님과 판관만이 내릴 수 있다.”


“세 명씩 이름을 부를테니 앞으로 나와. 마르쿠스, 알카폰네, 권도영”

이들의 가슴에는 모두 검은색 명찰이 박혀 있었다.


저승사자에게 이름을 호명당한 세 영혼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뿌린 대로 거둔다”

저승사자가 한마디 말을 남기고 세 영혼을 거대한 투망에 담아 하늘 위로 올라갔다.


5분 정도 흐른 후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보니 거대한 물체가 보였다.

중세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투석기와 모양이 비슷했다.

바구니에 담긴 돌을 공중으로 날려 보내는 무기 같은 것.

하지만 지금 그 바구니에는 세 영혼이 타고 있었다.


’탁‘하는 소리가 들리고 세 영혼이 바구니에서 튕겨져 나왔고, 시뻘건 태양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 나왔다.

’아~ 역시 예감이 맞았어. 불지옥에서 지내야 하는군.‘


드디어 윤필수의 차례.

’아~ 내가 왜 그랬을까? 지옥에 떨어지는 거야 당연지사이지만, 좀 더 늦게 올걸. 매도 일찍맞는 게 낫다는 말은 여기선 안 통해.‘



염라대왕 앞에 끌려간 윤필수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눈에 보인 것이라고는 염라대왕의 발 정도였다.

발바닥 크기가 웬만한 자동차만큼이나 거대했다.

왼쪽과 오른쪽에는 무서운 얼굴의 저승사자가 버티고 있었다.


두루마리 책자를 보고 있던 저승사자가 호명을 했다.

“윤필수! 앞으로 나와.”


그는 공포에 질려 어기적 어기적 기어 나왔다.

’이제 죽었다 X발!. 아차. 이미 죽은 몸이지.‘


“나이 55세. 직업 은행원. 살던 곳은 한국 서울 맞나?”

“네.”


“살아생전 얼마나 나쁜 일과 착한 일을 했는지 어디 한 번 볼까?”

염라대왕이 말하자마자 거대한 스크린이 펼쳐졌다.


[윤필수가 행한 나쁜 일] 제목이 보이더니, 한 편의 영화처럼 과거의 행동들이 펼쳐졌다.


자신이 보기에도 민망한 장면이 계속 이어졌다.

대학 다닐 때 기발한 아이디어로 컨닝을 하는 장면.

신입행원 시절 영업 실적을 올리기 위해 편법을 쓰는 모습.


“어허 저런. 쯧쯧. 영리한 놈인데 머리를 나쁜 데만 썼군.”

염라대왕이 혀를 찼다.

“언제 끝나나? 양이 너무 많아. 뒤에 대기자가 있으니 착한 일도 돌려보게나.”


다른 스크린이 내려오며 [윤필수가 행한 착한 일] 제목이 보였다.

하지만.

“에게! 이게 다야?”

30초 만에 끝났다.


”해보나 마나이지만 그래도 무게는 달아봐야지.”

염라대왕이 손을 ’쓱‘하고 허공에 휘저었다.

두 개의 스크린이 저울의 양쪽 끝에 담겼고,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판결사자! 판결하시오.”

염라대왕이 오른쪽의 저승사자에게 이야기했다.


“당연히 지옥입니다.”

“변관사자는 달리 할 말이 없소?”

“변호할 여지가 없군요. 이렇게 간단한 건 처음입니다”


판결이 내려지자 윤필수는 거대한 숟가락 모양의 바구니에 담겼다.

팽팽한 고무줄이 당겨지듯이 시뻘건 태양을 향해 그의 몸이 뒤로 서서히 기울여졌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탁 휘리릭”

“아악~”

저 멀리 태양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차례 데리고 와.”

염라대왕은 벌떼같이 밀려오는 영혼을 처리하느라 바빴다.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오늘따라 왜 이리 많지?”

“요즘 지구에는 전쟁이 꽤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전염병 휴유증이 아직 채가시지 않은 상태라.”


그때였다.

“잠깐만요! 잠시 집행을 멈추시오.”

“무슨 일인가?”

“이승의 사건을 수집하는 저승사자가 중요한 내용을 빠트렸다 합니다.”


“왜 이제야 전달되었는가?”

“워낙 최근에 일어난 일이라..”


“사건과 관련된 영혼의 이름은?”

“대한민국 사람 윤필수라 하옵니다.”


저승사자가 두루마리에서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 있네. 한참 전에 지옥으로 보냈는걸.”

“음~ 기억나. 너무 간단했지.”


“웬만하면 판결을 되돌리기 힘든 것 알지? 어떤 내용인가?”

염라대왕은 귀찮아했다.


“사자희망(死者希望). 죽어가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래? 그놈이 그런 일을 행하였다고? 한번 봐야겠군.”


염라대왕과 저승사자들이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다.

화면에는 다음 글이 나오며 영상이 시작되었다.

[꺼져가던 생명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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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희망, 보시 24.05.20 104 3 11쪽
» 판결 24.05.20 109 2 10쪽
3 백투백홈런 24.05.19 118 2 12쪽
2 실패한 은행원 24.05.19 128 3 10쪽
1 죽음 24.05.19 171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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