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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파파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 살아보니, 은행장 되기 참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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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헤밍파파
작품등록일 :
2024.05.19 10:20
최근연재일 :
2024.07.05 12:25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2,651
추천수 :
75
글자수 :
175,869

작성
24.05.21 07:40
조회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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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0쪽

지옥에서 구제되다.

DUMMY

”음~ 잘 보았소. 저놈 덕택에 힘없고 딱한 할머니와 가족들이 구원받은 건 사실이군. 하지만 판결이 바뀔지는 두고 볼일. 이리 모이시오.“

염라대왕이 사자들을 불러 긴밀히 대화를 나누었다.


”어떻게 보았소? 변관사자“

”지옥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큰 보시를 베풀었으니까요. 그러지 않았으면 저 아이가 죽을 수도 있었어요.“

”판결사자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아직 저는 지옥행입니다. 무수한 악행들이 몇 건의 선행으로 덮힐 수는 없지요. 게다가 진정으로 도와준 금액은 작았어요. 로또에 당첨된 건 할머니가 평소에 베푼 공덕으로 하늘에서 도와준 겁니다. 만약 저 친구가 그대로 가지고 있었으면 1등의 행운은 비켜 갔을 겁니다.“


염라대왕은 고민이 되었다.

”판결을 바꾸려면 만장일치가 필요해. 이승에서 도착한 전갈이 아직 하나 더 있다고 했지? 그거 보고 끝내자.“

”네. 준비하겠습니다.“


스크린에는 [살신성인] 글자가 나오며 장면이 시작되었다.


아파트 놀이터에 어린아이 두 명이 모래장난에 열중하고 있다.

주변 벤치에는 부모로 보이는 네 사람이 밝은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행복해요. 저 아이가 없는 세상은 감히 상상하기도 싫어요.“

”맞아요. 그때 그분이 아니었다면..“

”그나마 장례식장에서 가족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딱하게도 기러기 아빠였다지요. 게다가 몇 개월 후 따님 결혼식도 앞두고 있었다는데.”

“얼마나 미안하고 송구한지.”

“아마 하늘에서는 평화로운 곳에 계시겠지요.”

“그럼요, 천국이 있다면 당연히 그곳에 가셔야지요. 아멘~”


대화를 듣고 있던 염라대왕이 뜨끔했다.

“천국이라고?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거지?”


어린이 집을 비추고 있다.

도로에 노란색의 스쿨버스가 멈추어 섰다.

문이 열리더니 병아리 같은 어린아이들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안녕. 얘들아. 차례차례 내리자. 영차!”

아이들은 아직 너무 어려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한 명씩 한 명씩 차에서 내리는데, 어디서 멀리 고함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위험해요. 비키세요.”

언덕에서 한 남자가 열심히 달려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왜 저러나 싶었다.

가방도 팽겨치고 뛰어오고 있었다.

경주하듯이 그를 따라오고 있는 거대한 덤프트럭.


어린이집 선생님은 이제야 위험을 알아차렸다.

“얘들아! 급해. 서둘러.”

아직 버스 안에는 몇 명의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

허겁지겁 아이들을 품에 안고 대피시켰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이라 혼자 감당하기에 벅찼다.

어느새 덤프트럭은 너무 가까이 와 버렸다.


순간 공포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안돼. 아직 아이들이 있어.‘

생각은 있지만, 발바닥이 본드에 달라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였다.

남자가 순식간에 달려와 버스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이 두 명의 등을 덮석 잡더니 밖으로 던져버렸다.


’아! 저 아저씨. 가끔 이 길을 지나면서 얘들에게 뻥튀기 과자를 주시던 분이야.‘

이런 생각이 스치는가 싶더니.


“쾅. 퍼벅”

버스는 덤프트럭에 깔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졌다.

희뿌연 먼지와 함께 잔해 틈으로 윤필수가 입고 있던 양복이 조금 보였다.


’자기 몸을 희생해 가면서 아이들을 지켜주다니 정말 의인이야.‘

’자주 아이들에게 과자도 나누어 주신 그분이 바로 천사였어.‘

아이 부모들과 어린이집 선생님의 속삭임이 들리며 화면은 종료되었다.


염라대왕과 저승사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한 살신성인의 표본이군. 지옥에서 데려와야겠어.”

“저희도 같은 생각입니다.”


“불러들인 다음 행선지는?”

염라대왕이 두 저승사자에게 의견을 물었다.


“마지막 살신성인하는 장면만 본다면 천국행이지만, 생전에 저지른 악행도 만만치 않으니, 아무래도 [회색지대]가 적당하지 않을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회색지대(灰色地代)]. 보통의 그저 그런 인간들이 죽어서 가는 곳. 아주 나쁜 놈이나, 천사 같은 사람들은 별로 없어. 대부분 누구나 살면서 착한 일도, 나쁜 일도 하게 되어있지.”


문득 염라대왕의 표정엔 근심 걱정이 있어 보였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무엇이옵니까”

“[대마왕], 이놈이 무슨 일을 꾸미지 않을까 걱정이 돼.”

“[대마왕]? 저희는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만?”

“자네 들이 여기 오기 훨씬 전. 아주 오래전 일어난 사건이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

염라대왕은 천상계를 뒤집어 놓았던 사건을 회상했다.


[대마왕]은 원래 염라대왕이 데리고 있던 저승사자의 일원이었다.

능력이 탁월한 부하였으나 힘이 강력해지자, 염라대왕을 몰아낸 후 천상계 전체를 장악하려는 계획을 꾸몄다.


다행히 사전에 음모가 발각되고 그 일당들은 지옥에 떨어져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우주에 엄청난 규모의 빅뱅이 터졌다.

수억개의 별들이 소멸되고 수천개의 태양이 생성되었다.

천상계도 그 영향으로 중심축이 흔들렸고, 혼란한 틈을 타 대마왕 무리들이 지옥을 탈출했다.


“그놈들은 회색지대로 숨어들었어. 악의 기운으로 여기를 점령하려 했지만, 치열한 싸움 끝에 우리가 이겼고 그놈들을 잡았지.”

“다행이군요.”


“그런데 다시 지옥으로 보내는 길에 대마왕과 몇 놈들이 도망쳤어.”

“잡았다가 놓쳤다구요? 저런! 누가 그런 실수를?”

“감찰사자. 아쉽게도 내가 제일 아끼는 부하였는데, 징계를 받고 회색지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갇혔어. 대마왕을 잡지 못하면 그곳에서 영원히 지내야 해.”


염라대왕은 오랜 세월 갇혀있는 자신의 부하를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천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많이 늙었을 거야. 저승사자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예쁜 아이였는데.‘


“오랜 세월 대마왕의 움직임이 없었다면, 힘을 잃고 사라진 것 아닌가요? 회색지대에서는 죽음은 없지만, 에너지가 사라지면 자연소멸 되니까요.”

“그러길 바라는데. 워낙 질긴 놈이라. 다른 영혼속에 들어가 정체를 숨길 수도 있어.”

“만약 대마왕이 살아 있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는지요?”


“[악의 에너지] 그게 문제야. 지옥에 빠져 있으면 [악의 에너지]를 흡수하게 되지. 온통 주변의 영혼 들이 악으로 똘똘 뭉친 놈들이니까. 지옥에 있는 저승사자들에게서도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질 정도니까.”


“맞아요. 그래서 우리도 마주치면 피하게 돼요.”

“윤필수가 [악의 에너지]를 가지고 온다면, 대마왕이 그것을 안다면, 분명히 노릴 거야. 영혼을 흡수해버리면 [악의 에너지]를 보충하고 다시 강력해질 수 있어.”

“휴~. 하지만 그렇다고 지옥에 그대로 둘 수는 없어요. 천상계의 원칙에 위배 되니까요.”

“음~ 그렇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위험 때문에, 가여운 영혼이 피해 볼 수는 없지. 귀환시켜라.”


저승사자들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더니 잠시 후.

까마득히 멀리 있는 태양에서 티끌만 한 무언가가 날라오더니 점점 커졌다.


“아악~”

비명과 함께 윤필수가 염라대왕 앞에 당도했다.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

잠시 눈치를 살피더니.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제가 죽을죄를 졌습니다. 지옥에 있어도 좋습니다. 제발 더 괴로운 곳으로는 보내지 마세요.”

두 손바닥을 불이 날 정도로 싹싹 빌었다.


자신이 지옥에 떨어진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더 고통이 심한 곳으로 보내어질까 걱정했다.


그의 몰골은 처참했다.

지옥에 머무른 시간은 두 시간 정도.

하지만 체감시간은 몇 년이 훌쩍 지난 것 같았다.


머리카락은 불에 거슬러졌다.

아프리카의 토인처럼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은 두피에 착 달라붙었다.

뻘겋게 달아오른 자갈밭을 걷느라 발바닥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통닭구이처럼 불에 구워졌는지 손목과 발목은 쇠꼬챙이에 찔린 상처로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안심하게나. 자네는 구원받았어. 지옥에 다시 안 갈 거야.”

저승사자가 안심을 시켰다.

“운이 좋군. 이런 경우는 드물어.”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윤필수는 아직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다.


“죽기 전에 착한 일을 했더구먼. 자네를 은인으로 여기는 사람들 덕분에 구제된 거야.”

“보여주지. 잘 감상하라고.”


윤필수의 눈앞에 스크린이 펼쳐지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꺼져가던 생명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다.]

[보시]

[살신성인]


내용을 다 본 후 윤필수는 바닥에 머리를 쳐박고 통곡했다.

끔찍한 지옥에서 구제되었다는 기쁨에 우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를 꺼내준 사람들이 고마워서 우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야 나도 꽤 쓸만한 놈이라 깨닫고 우는 것이었다.


’아~ 나는 운이 좋은 인간이었어. 죽을 때까지 나란 인간은 재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나로 인해 복을 받은 사람도 있다고.‘


“필수! 너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셨어. 재수 없는 놈.”

새엄마는 자주 윤필수에게 험한 말을 퍼부었다.


“필수는 빼. 같은 편 하면 우리가 진다고,”

동네 아이들끼리 오징어게임 하는데도 배제되었다.


“윤필수와 같이 미팅나가면, 아저씨들 같다고 여자애들이 싫어해.”

대학시절 변변한 미팅도 초대받지 못했다.


평생 사는 동안 남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던 그가 남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다니.


’왜 그토록 나 자신이 운이 없다고 자책했을까? 왜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운을 찾아 억지로 헤매었을까? 왜 다른 사람의 운을 빼았으려 했을까? 보라고. 윤필수. 너는 재수 없는 인간이 아니었어. 그냥 내가 무심코 행한 일들도 저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가져다 주었잖아? 삶을 다시 산다면 그렇게 살지는 않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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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보니, 은행장 되기 참 쉽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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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1 24.05.23 98 4 13쪽
7 [회색지대(灰色地代)]. +1 24.05.22 109 4 12쪽
» 지옥에서 구제되다. +1 24.05.21 108 4 10쪽
5 희망, 보시 +1 24.05.20 108 4 11쪽
4 판결 +1 24.05.20 113 3 10쪽
3 백투백홈런 +1 24.05.19 122 3 12쪽
2 실패한 은행원 +1 24.05.19 133 4 10쪽
1 죽음 +1 24.05.19 178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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