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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파파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 살아보니, 은행장 되기 참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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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파파
작품등록일 :
2024.05.19 10:20
최근연재일 :
2024.07.04 12:15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530
추천수 :
42
글자수 :
171,561

작성
24.05.20 12:25
조회
103
추천
3
글자
11쪽

희망, 보시

DUMMY

[꺼져가던 생명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다.]


어떤 여자가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벽지를 열심히 바르고 있다.

아직 험한 일이 손에 익지 않았는지 서툴러 보였다.


“어이 임씨! 그렇게 하면 벽지가 부풀어 오른다고. 중간에서 시작해야 잘 붙어. 몇 번이나 이야기했는데 말을 못 알아먹어.”

“넷. 주의하겠습니다.”

작업반장으로 보이는 사람에게서 거친 꾸중을 들어도, 위축되거나 주저함이 없었다.

오히려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흘렀다.


장면이 바뀌어 엄마로 보이는 사람과 밥을 먹고 있다.


“우리 딸! 오늘도 수고했어. 힘들지?”

“이 정도쯤이야. 몸을 많이 썼더니 밥맛이 꿀맛이야. 근데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 다이어트가 저절로 된다고.”


엄마는 딸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지? 며칠 동안 집에 안 들어온 후로 완전히 바뀌었어.‘


여자는 엄마가 자기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했다.

’그때 그분이 아니었으면 바다에 몸을 던졌을 거야. 얼마나 다행인 줄 몰라. 지금의 나는 무 슨 일이든지 다 해낼 수 있어. 감히 계란으로 바위를 깨트릴 수 있는 기분이라고.‘


윤필수는 사고로 죽기 바로 직전, 강원도 도솔봉에 다녀간 적이 있었다.

자신의 몸을 내던질 적합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

그곳에서 한 여자의 사진을 여러 장 찍어주었다.


“좀 자세히 알려주면 좋겠는데,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지?”

염라대왕이 저승사자에게 물어보았다.


“이 여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사람입니다. 운영하던 카페가 코로나 때문에 망하게 되었죠. 게다가 남자친구가 몇 푼 남지 않은 그녀의 돈마저 훔쳐 달아나 버렸습니다.”

“음~ 그래. 사정이 딱하군.”


“이 여자는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고, 자신이 초라하고 능력 없는 존재라 여겼습니다. 결국 절벽에서 몸을 던지기로 마음먹었으나, 이 남자 때문에 심경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흥미롭군. 과거 행적을 보면 별 도움이 안 되었을 것 같은데,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으로 가보자고.”


절벽 아래 낭떠러지에는 철썩철썩 파도가 치고 있다.


’왜 이리 난 못난 걸까?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은 없고, 그 새끼는 홀라당 나를 벗겨 먹고 도망가버리고. 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여자가 절벽 위로 올라가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눈 찔끔 감고, 그냥 계단에서 내려오듯이 가볍게 살짝 점프만 하면 돼.‘

무릎을 구부리고 몸이 잠시 앞으로 기울어지는가 싶더니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아~ 무서워, 그리고 내가 가면 엄마는 어떡하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절벽에서 내려왔다.

주변을 서성거리며 배회하고 있을 때, 윤필수와 얼굴이 마주쳤다.


’앗! 깜짝이야. 귀신인가? 이 남자 뭐야?‘


두 사람은 동시에 당황하는 듯했으나, 정신을 차린 후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잠시 대화가 이루어지더니 윤필수가 그녀의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자는 모든 것이 귀찮았다.


’아~씨~ 그냥 가주시면 안 되겠어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사진 찍는 거예요. 더구나 내가 지금 이 마당에 그럴 기분이냐구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지금 자신의 상황과 속마음을 최대한 숨겨야 했다.


’괜히 이상한 행동을 하면 의심할 거야. 소문난 곳이다 보니 공무원들이 가끔 순찰을 돈다고했어. 이 사람은 아니겠지? 대충 하자는 대로 하자.‘


윤필수가 뭐라 뭐라 말하면서 손짓을 하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여자가 억지로 가슴을 펴고 포즈를 취했다.


잠시 몇 장의 촬영이 이루어지고, 그녀가 핸드폰을 건네받자 사진을 확인했다.


’그냥 예의상 보는 척이라도 해야지.‘


’어! 이 게 나라고? 생각보다 괜찮은데.‘

여자는 황급히 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오~ 이것도 좋아. 배경에 일출이 보이니까 내가 더욱 빛나는 걸.‘

사진 속 자신의 얼굴을 큼지막하게 확대해서 보았다.

’야~ 내가 이런 존재였나?‘


다시 윤필수에게 핸드폰을 건네었다.


“잠시만요. 머리 손질 다시 할게요.”

외모에 자신이 없어 항상 얼굴을 어둡게 덮고 있던 머리카락을 확 뒤로 넘겼다.

감추어져 있던 반들반들한 이마가 환하게 빛이 났다.


이제는 여자가 촬영을 주도했다.

“저곳에서 하늘로 뛰는 장면 어떨까요?”


윤필수가 허겁지겁 따라다닐 정도로 여자는 신이 났다.


편견과 멸시를 일삼는 사람들에게 펀치를 날리듯 주먹을 뻗는 장면.

그놈을 포함하여 여자를 등쳐먹고, 나쁜 일을 일삼는 남자들을 향한 발길질.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두 팔 벌린 모습.

이 모든 것이 카메라에 담겼다.



’이토록 당당하고 멋있는 사람인데, 내가 왜 그런 약해빠진 생각을 했을까?‘

이 여자는 그길로 당장 집으로 돌아와 엄마의 품에 안겼다.


’아~ 그분이 나의 사진을 찍어준 덕택에 삶다운 삶을 살게 되었어.‘

고마운 감정이 담긴 목소리가 전해지며 장면은 끝을 맺었다.


염라대왕이 저승사자 두 명을 불러 모았다.

“음~ 중한 일을 한 건 사실이군. 희망과 용기를 주어서 고귀한 목숨 하나를 살렸어. 하지만 이것 하나로는 부족해. 어떻게 생각하나?”

“동의합니다.”

“저도요.”

“판결에 변함은 없다.”


”잠시만요. 아직 두 개가 더 있습니다.“

늦게 소식을 가져왔던 저승사자가 소리쳤다.

”오~ 그래. 어서 돌려보게.“


[보시]라는 글자가 나타나며 화면이 시작되었다.


아이 세 명과 할머니가 옹기종기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다.

제일 어린아이의 팔에는 가느다란 주사줄이 연결되어있었다.


‘다행이야.’

할머니가 아이의 밥먹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했다.

‘그분이 이 아이를 살렸어. 덕분에 손주새끼들도 이제 굶지 않아도 된다고.’

역시 윤필수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도 아이들도.


”배경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저승사자가 염라대왕 앞에서 차분히 이야기를 풀었다.


”저 아이들은 할머니의 외손주입니다. 일찍 사위와 딸이 세상을 일찍 뜨는 바람에, 아이들을 홀로 책임지고 있죠.“

”음~ 사정이 딱하군.“

”폐지를 수집하고, 해가 지면 식당가에서 껌을 팔아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만, 아이 한 명이 심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겨우 입에 풀칠하는 정도인데 말이죠.“


”아이들 모두 지금은 건강해 보이는데?“

”네. 그렇습니다. 무사히 수술을 받고 지금은 거의 완쾌되었습니다.“

”저자가 돈을 대주었는가?“

”그건 아닙니다만, 원인제공자입니다.“

”원인제공자라? 궁금하구나.“


화면에서는 시끌벅적한 먹자골목 식당가가 보여지고 있다.

할머니가 이 식당 저 식당을 부지런히 다닌다.

요즘은 불경기라 그런지 껌 사주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막걸리 총각]이라는 간판이 보였고 할머니는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윤필수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가장 먹고 싶은 것.

파전과 막걸리가 생각났다.

신입행원시절 자주 들렀던 종로 근처 막걸리 집.

재개발로 큰 건물이 들어서고, 모습이 많이 바뀌어 찾기가 어려웠다.

이 골목 저 골목 다녀보았고 드디어 익숙한 간판을 발견했다.


’앗! 저기 있어.‘

30년 넘은 세월이 흘러도 아직 그 집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시원한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 파전을 크게 쭉 찢어 입속에 넣었다.

’으적 으적‘ 씹히는 대파의 질감이 계속 막걸리를 불렀다.


식당 벽지에 여기저기 빼곡히 갈겨져 있는 낙서.

[사랑해. 개똥아! 앞으로도 우리 사랑 변치말자]

[2011.5.23. xx대학 디자인과 2010학번 다녀가다]


’그대로야. 황지원이와 데이트할 때 여기 자주 왔었지. 저기 저 벽에 같이 글을 쓴 기억이.. 아직도 있을까?‘

윤필수가 일어서서 여러 남자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잠시만요. 제가 실례 좀 하겠습니다.“

남자의 등 뒤에 있는 벽에서 낙서를 살피기 시작했다.

불쾌하다는 듯이 노려보는 남자들의 눈초리.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을 서 있더니, 자리로 돌아왔다.


’없군. 없네. 없어. 쯥쯥‘

옛 추억을 회상하며 연속으로 몇 잔 들이켜니 취기가 올라왔다.


식당 문이 열리더니 어린 아가씨가 치어리더 복장을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이번에 저희가 새로운 제품 출시했어요. 홍보차 나왔습니다. 이름이 [천국]이예요. [천국]“

”술 이름이 [천국]이라고? 잘 지었네. 이거 많이 먹으면 [천국]가는 건가요?“

”네. 그럼요. 많이 사랑해주시라고 선물도 드려요.“

어린 아가씨가 테이블에 작은 흰색종이를 내려놓고 자리를 떴다.


’이게 뭐지?‘

술에 취해 잘 보이지 않았다.


안경을 벗고 테이블에 눈을 가까이 대보니, 흰색종이는 로또였다.

’로또네?‘


반사적으로 로또의 추첨일을 보았다.

[제 350회. 4월 15일(토)]

’음~ 4월15일이면, 이미 난 세상에 없는 사람이야.‘


남아있는 막걸리의 병을 비우니 한 잔이 남았다.

’어~ 취한다. 이거 한잔 먹고 가야지.‘


”선생님! 껌하나 사주세요.“

갑자기 거친 손이 눈앞에 불쑥 튀어나왔다.

어떤 할머니가 바구니에 껌을 가득 담고 식당에 들어왔다.


”껌이요?“

막걸리의 텁텁함 때문에 껌을 씹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주세요, 할머니“

돈을 주려고 윤필수가 지갑을 꺼내 들었다.

앗! 그런데 잔돈이 없었다. 5만 원짜리만 몇 장 있었다.


’어~ 에이. 어떡하지?‘

평소라면 당연히 껌 사는 걸 취소했겠지만, 오늘이 거의 마지막 날이 아닌가?


’나도 살아있을 때 착한 일 한번 하자‘

”여기요.“


5만원을 받은 할머니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잔돈을 꺼내서 세고 있다.

”안 주셔도 됩니다.“

”아니요, 아니요.“

눈이 휘둥 그려진 할머니가 다시 거스럼 돈을 세고 있다.


”할머니! 제가 기분이 좋아서 그래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너무 많은데.“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돈 거슬러주시면 제가 화낼 거예요.“

”그래요? 허 참! 그러면 늙은이가 염치없이 가질게요.“


할머니가 인사를 하고 식당 문을 나섰다.

윤필수는 마지막 남은 막걸리 잔을 삼키고 테이블에 내려 놓았다.

다소곳이 놓여있는 로또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도 줄까? 어차피 난 필요 없잖아.‘


로또를 집고는 식당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 잠시만요. 이거도 드릴게요.“


장면이 바뀌고 할머니가 세 아이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방안에 켜져 있는 TV에서는 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네. 축하드립니다. 이번 350회 1등 당첨번호를 알려드립니다. 번호는 xxxx....]

화면에는 온통 숫자로 가득 채워졌다.

2,120,000,000


’그 분에게 꼭 사례를 해야 되는데. 찾을 길이 없어. 식당에 여러 번 가서 찾아보았지만. 관세음보살. 부처님의 자비가 가득하길.‘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며 화면은 종료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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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옥에서 구제되다. 24.05.21 103 3 10쪽
» 희망, 보시 24.05.20 104 3 11쪽
4 판결 24.05.20 108 2 10쪽
3 백투백홈런 24.05.19 118 2 12쪽
2 실패한 은행원 24.05.19 128 3 10쪽
1 죽음 24.05.19 170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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