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헤밍파파 님의 서재입니다.

설전-신의 혓바닥을 강탈당했다.(부제: 페르페투스 에타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헤밍파파
작품등록일 :
2023.05.14 12:46
최근연재일 :
2024.04.10 07:31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587
추천수 :
40
글자수 :
146,725

작성
23.05.22 06:00
조회
20
추천
3
글자
10쪽

바리스타의 사연

DUMMY

장철웅은 자기의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영감과 볼카노프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탈출부터 해야 했고, 바리스타의 경험담을 들어보고 싶었다. 그의 귀환을 기다리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중 궁금한 게 생겼다.

‘바리스타선배와 내가 있는 방은 완전히 차단되어 있어. 철문은 단단한 강철이고 벽은 아주 두꺼운 콘크리이트 재질이야. 그래서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잘 들리지 않지. 그런데 변기는 어떤 구조이길래 옆방 바리스타선배와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그가 변기뚜껑을 열고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옛날 시골의 재래식 화장실과 수세식 변기가 혼합된 형태였다. 그의 방에서 시작된 배수관이 다른 방들의 변기 밑을 지나 통과하는 구조이며 끝에서는 급경사를 이루며 아래로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 공간으로 모일수만 있다면 서로 얼굴도 보고 대화도 가능할 건데. 크 크! 너무 거시기한가?’


장철웅이 탈출에 대한 여러가지 상상을 하던 중, 만약 성공한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도 살짝 고민하게 되었다. 당연히 처음엔 경찰서부터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없어졌다. 지금까지 겪은 일들을 털어 놓으면 과연 그들이 믿어줄지 의문이었다. 진실여부를 떠나 어찌되었든 세상은 그를 마약사범으로 알고 있고, 여자도 숨을 거두었으며, 법의 심판도 받기 전에 도망친 몸이었다.

‘일단 인호부터 찾아야 되겠어. 어디에 있는지는 대충 알겠고.’


어린 시절 이인호가 동네아이들로부터 구박받을 때, 장철웅 홀로 지켜준 인연으로 인호는 그를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인호가 아니었다면 그는 이미 저 세상으로 갔을 것이다. 학생시절 주방에서 요리연구에 열중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고 가스는 누출되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지 않던 그를 찾아낸 인호 덕분에 목숨을 구한 것이다.


‘내겐 그토록 소중한 존재인 인호를 떠나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리석었어. 볼카노프를 멀리 하라는 친구 말만 잘 들었다면 영감의 꼬임에도 빠지지 않았을 텐데. 그나저나 인호도 내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을 건데, 나를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서해안 변산반도 근처에 작은 돈까스 집. 육즙을 간직하면서 바싹 튀겨내는 기술과 신비로운 맛을 간직한 소스 때문에 블로거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다. 식당에 들리기 위해 이 지역을 일부러 찾는 사람도 있으니까. 이인호는 여기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저녁 손님도 다 돌아가고 우두커니 앉아있다.

‘오늘도 바쁜 하루가 다 끝났군. 장사는 이 정도면 성공적인데 혼자 있으니 외로워. 철웅이 그 놈. 나하고 여기에서 식당 열자고 약속해놓고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끝까지 옆에서 자리를 지켜주고 응원을 해주었어야 했는데. 많이 보고싶구나.’

인호의 눈가에 촉촉히 눈물이 고인다.


###


복도에서 여러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고 시끄러운 걸 보니 이제서야 바리스타가 돌아온 것 같다. 경비원 놈들이 축 늘어진 그의 몸을 옮기느라 힘든 모양인지 계속 재촉하였다.

“이봐, 정신차려! 집에 다왔다고.”

“왜 이렇게 힘이 없나? 일어서질 못하는 군.”

철문이 닫힌 후 침묵만 흘렀다.


장철웅은 그의 사연 모두가 궁금해졌다. 탈출을 결심한 이상 바리스타로부터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야 했고, 끌려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궁금하였다. 밤이 깊어 지자 그를 불렀다.

“선~배님! 힘드셨죠?”

“---”

대답이 없다. 한번 더 불러본다.

“괜찮으신가요?”

“끄~응”

‘신음소리로 답을 하는 것 보니 어지간히 괴로운 모양이야. 먼저 연락이 올때까지 기다리자.’


일주일정도 지나서야 바리스타에게서 호출이 왔다.

“후배! 그동안 잘 있었나?”

“고생많으셨죠. 선배님!”

“이번에는 특히 더 힘들었네. 나 혼자이기도 했고, 영감도 아직 자네 혀가 익숙하지 않았는지 몸을 아끼더라고.”

“저번에 하시려고 했던 이야기해주세요. 이젠 들을 준비가 되었어요.”

“어떤 이야기부터 할까.”


“그냥. 선배님의 모든 이야기. 여기 오기전과 여기와서 이야기 모두 다요.”

“그래? 순서대로 이야기하는 게 편하겠지? 말했다시피 나는 바리스타야. 그냥 평범하진 않았고 재능이 아주 특별했지. 커피 맛을 결정 짓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어. 사람마다 의견이 갈리지만 나는 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맞아요. 요리에서도 그렇죠. 재료에 수분이 전혀 없으면 맛을 느낄 수 없어요. 침속에도 수분이 가득하고요."


"모든 물에는 저마다 독특한 미네랄과 미생물이 들어가 있어. 그래서 각자의 물에 어울리는 커피가 따로 있는 거야. 나만큼 그 조합을 정확히 알고 있는 바리스타는 없었지. 그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승부욕이 발동했어. 장안에서 유명하다는 바리스타를 하나씩 찾아가서 ‘도장깨기’에 열중했다네."


바리스타도 천부적인 미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미각만큼이나 승부욕도 남달랐고, 자기가 최고라는 사실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증명하고 싶어했다. 그는 블로그에 글을 게시해서 커피 애호가들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자기소개 후 어느 지역의 유명한 바리스타를 호명하고 같이 테스트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지목받은 사람은 대부분은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대결을 피하면 실력에 자신이 없어 그랬다는 소문이 퍼지고, 그 다음엔 영업에 지장이 있으니까.


바리스타가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열을 올리고 있다.

"시합날이 정해지고 애호가들이 소장하고 있는 커피와 물을 가져와. 어떤 것이 재료로 쓰일지는 아무도 몰라. 현장에서 랜덤으로 정하거든. 커피 산지는 참 다양하지. 탄자니아, 이디오피아, 심지어 동남아까지."

"물도 마찬가지야. 생수, 수돗물, 해양심층수, 광천수 등등 많아. 준비된 물과 가장 적합한 커피를 골라 블렌딩하여 테스트를 받는거지. 평소 다루던 커피와 물이 아닌 전혀 생소한 재료를 가지고 최고의 조합을 찾아야 하는 거니까 매우 어려운 작업이야. 그것도 10분내로 빨리 해치워야 하니 도저히 나를 따라올 수 없었지."


국내에서 유명하다고 소문난 바리스타는 그와의 대결에서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졌고, 더 이상 누구도 그와 상대를 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는 미각을 탐구한 것이 아니라 그가 최고임을 증명하고 싶어했고, 상대를 이기는 짜릿함과 스릴을 탐닉한 것이었다. 장철웅도 그 상황은 이해가 되었다. 자기도 그러했으니까.


“시합이 없자 너무 무료했어. 커피에 대한 애착도 희미해지고. 그러다가 새로운 것에 흥미를 가지고 되었어. 내가 지존(至尊)임을 증명하고 승부, 짜릿함, 스릴의 조건을 갖춘 것”

“러시안 룰렛게임인가요?”

“그건 너무 섬찟해. 아무리 그래도 내가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하지는 않아. 정답은 포커게임이야.”

“아~ 포커. 나도 잘했어요. 유학시절 그걸로 용돈 충당한 적도 있었어요.”


“포커게임에서 이길려면 운도 따라야하지만 상대방의 수를 잘 읽어야지. 맛을 찾는 과정은 온 몸의 피부까지도 촉수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해. 우리만큼 촉감이 뛰어난 사람들이 어디 있겠나? 상대방의 눈 깜빡임, 손 떨림, 숨소리에서도 우린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지.”

그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최고의 프로 도박사로 자리 잡는데 성공했다. 세계 포커대회에서도 몇 번 우승을 하여 신문에서도 그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한국 최고의 바리스타. 이제는 커피를 볶는 게 아니라 테이블의 갬블러를 들들 볶다. 세계포커대회 석권]. 그런데, 누가 그에게 포커게임을 하자고 연락을 한 것이다. 프로 도박사도 아니고 감히 일반인이. 일주일에 한번씩 마카오로 날아갔고, 당연히 많은 돈을 따게 되었다.


"너무 많은 돈을 땄으니까 당연히 미안했지. 그런데 그렇게 돈을 많이 잃고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더라고. 주위에서 그가 올리가르히라고 수근대더군.”

“올리가르히? 아~ 러시아 재벌을 통칭하는 말이죠.”

“어느 날 이 러시아재벌이 마카오 도박장 말고 다른 장소에서 게임을 하자는 거야. 친한 사람이 보트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도박장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사진을 보여주는데 휘황찬란하더구만. 돈을 많이 따서 미안하기도 했고, 웬만한 VIP가 아니면 접근이 안되는 곳이니, 구경도 할 겸 초대에 응했어.”

“러시아 사람이라는게 마음에 걸리는 군요. 별로 좋지 않는 기억이 있어서요.”

“빙고! 감 잡았군. 그 러시아 놈이 바로 볼카노프야.”


초대받은 보트는 홍콩에서 출발했다. 바리스타도 사람인자라 조금 불안했지만 여러 명이 같이 초대된 것을 보고 긴장을 풀어버렸다. 볼카노프와 단둘이 특별히 마련된 방에서 게임이 시작되었고, 처음에는 이전처럼 바리스타가 원싸이드하게 이겼지만, 시간이 갈수록 돈을 잃게 되었다.


"카드가 나쁜 패가 들어왔는가 봐요?"

"아니야. 그건 아니었어. 그런데 좋은 패가 들어오면 상대가 죽어버리고. 안되겠다 싶어서 페이크를 하면 끝까지 따라오고.”

“그런 날은 일찌감치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인데.”

“그랬어야 되는데 한참 도파민이 생성되는 와중이어서 도저히 중도에 그만둘 수 없었지. 1시간이 지나자 가진 돈을 몽땅 털렸네. 항상 돈을 따니까 시드머니를 조금 준비했거든. 내가 당황해 하면서 미안하지만 자금이 없다. 그만해야겠다 하니까, 볼카노프가 자기가 돈을 빌려줄 테니 계속 하자는거야.”


바리스타는 거절하기 어려웠다. 아니 거절하기 싫었다. 그때까지 볼카노프의 정체를 전혀 몰랐으며, 상대가 모처럼 상승세라고 프로도박사인 자기가 피하는 모습을 보이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도박판에서는 냉정함을 잃으면 안되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돈을 빌리면 한 시간 내로 상대를 박살낼 수 있다고 자만했다. 게다가 볼카노프가 판돈을 세배로 올리자고 도발을 하였으니 그는 흥분했다. 곧 자금을 빌려 후반전에 돌입하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설전-신의 혓바닥을 강탈당했다.(부제: 페르페투스 에타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3 완결 (선약은 허무하게 사라졌다) 24.04.10 2 0 5쪽
32 또 다른 배신자 24.04.08 3 0 9쪽
31 최후의 결전 24.04.07 5 0 11쪽
30 방송국에 날아든 의문의 파일 24.04.06 5 0 10쪽
29 여자를 구해야 한다. 24.04.05 5 0 11쪽
28 영감이 정신을 차렸다. 24.04.04 4 0 11쪽
27 드디어 신비한 동굴을 찾았다 24.04.03 4 0 11쪽
26 서복의 두번째 출정 24.04.02 4 0 10쪽
25 아주 오래전 황제의 이야기 24.04.01 6 0 10쪽
24 작전실패 23.09.26 9 0 9쪽
23 영감의 뒤통수를 치다. 23.09.26 5 0 10쪽
22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23.09.26 4 0 10쪽
21 의사의 목숨을 구하다. 23.09.26 3 0 10쪽
20 악당들의 다툼 23.09.26 3 0 9쪽
19 스파이 침투성공 23.09.26 3 0 9쪽
18 페르페투스 에타스의 정체 23.09.26 3 0 11쪽
17 늙어버린 그 여자 23.05.30 8 0 10쪽
16 한여름밤의 할로윈파티 23.05.29 8 0 10쪽
15 영감에게 발각되다. 23.05.27 10 0 9쪽
14 그리웠다. 친구야! +1 23.05.26 12 1 9쪽
13 두더지가 되었다. +1 23.05.25 16 2 10쪽
12 어디서 들어보았던 단어-페르페투스 에타스 +1 23.05.24 17 2 11쪽
11 탈출할 수 있을까? +1 23.05.23 17 2 10쪽
» 바리스타의 사연 +1 23.05.22 21 3 10쪽
9 대나무책자의비밀 +1 23.05.20 21 3 10쪽
8 동굴에서 벌어진 일 +3 23.05.19 25 2 10쪽
7 이상한 섬 +2 23.05.17 28 3 10쪽
6 영감은 천사의 얼굴로 다가왔다. +1 23.05.17 27 2 10쪽
5 감옥에 갇힌 또 다른 사람 +2 23.05.14 41 3 9쪽
4 수수께끼의 영감 23.05.14 45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