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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099
추천수 :
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7.06.01 22:21
조회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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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9쪽

재현

DUMMY

회의가 끝난 후 기수들은 일단 각자의 부대로 돌아갔다. 악마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있으라는 명령을 전파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메담에게 따로 이야기를 했다.

“네가 먼저 출발해줘.”

이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덴트 주민들이 모두 다 방음벽 안에 들어올 때까지 악마에게 들켜선 안 됐다. 따라서 그들의 집결지를 훨씬 넘어선 곳에서 미리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었다. 메담은 나와 마찬가지로 정령검을 활용하여 악마들의 접근을 감지할 수 있다. 더구나 공간도약의 뛰어난 기동력으로 악마들의 추격을 따돌리면서 방음벽 안으로 복귀할 수 있었고, 불가피하게 악마와 교전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시에도 가장 생존력이 뛰어난 전력이었다. 때문에 과감하게 그를 최전방에 투입한 것이다. 메담은 흔쾌히 나의 제의를 수락하고 먼저 길을 떠났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 기수들이 전부 천막에 복귀했다. 나는 그들 중에서 함께 떠날 인원을 선별해야 했다. 본진에도 지휘를 할 사람을 어느 정도 남겨둘 필요가 있었으며, 칸딘이 기척을 숨길 수 있는 사람 수에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작업을 믿을 수 있는 옐러에게 일임했고 곧 그는 열일곱 명의 기수들을 추려냈다.

이제 출발할 시각이었다. 나는 종자들을 시켜 미리 준비해두었던 말을 데려오게 하였다. 소리를 내지 않게 특별히 발굽에 천을 씌운 말들이었다. 그러나 이를 본 옐러가 즉시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어차피 말도 짐승입니다. 아무리 잘 훈련되었다 해도 악마의 기척을 눈치 채면 겁에 질려 날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차라리 걸어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인 만큼 기동성은 이번 작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번 임무 때문에 바르테인 군 본대가 악마들에게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만약 일이 잘못되면 아덴트 주민들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도보로 이동하여 바르테인 군의 주둔지를 나섰다.

“바로 여기가 경계선이에요. 저 나무와 풀의 벽이 소리가 새어나가는 걸 막아주죠.”

지나가는 길에 나는 손가락으로 가리켜 기수들에게 샤나프린이 만들어 둔 벽을 보여주었다. 내 눈에는 그 일부러 만든 듯한 조형물이 보이는데 기수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나 보다. 다중으로 펼쳐진 구조라 그런가? 하나하나 일일이 자세히 설명해준 후에야 비로소 그들을 이해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구하러 가는 겁니까?”

기수 중의 하나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역시 그들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아덴트 주민들을 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아마 이 임무에 참여한 것도 일종의 군중심리 때문이었나 보다.

“그들 또한 나의 백성이에요.”

“하지만 여왕님에게 맞선 반역자 아닙니까?”

회의 때 나왔던 이야기가 되풀이 된다. 나는 다른 접근법으로 그를 설득하기로 했다.

“렌 카디프와 노드 체스터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들은 며칠 동안 윈더민 성을 점거했었죠. 그 사이 각지의 많은 영주들이 렌에게 서신을 보냈더군요. 나는 그것들을 모두 읽어보았어요. 그 중에는 여기 있는 여러분들의 것도 있었죠.”

“....!!”

그 편지의 내용이 어땠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에요.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는 티프였고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영주에게 협력하거나 방조했을 뿐이에요. 나는 그 책임까지는 묻지 않으려 합니다.”

이 발언 때문에 분위기는 어색해졌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이윽고 옐러가 내 옆에 다가오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그 반란에서 제가 처음에 노드를 지지했던 걸 기억하십니까? 저 역시 반역자였습니다. 심지어 여왕님께 무력으로 대항하기도 했었죠.”

“그랬었죠.”

“여왕님께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이유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궁금하지 않으셨습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물어보지 않아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비록 나에게 반란을 일으켰지만 노드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부하들에게 깊은 신뢰와 존경을 받는 그를 우러러보기까지 했다. 갑작스럽게 왕이 되어 갈팡질팡하던 나에게 있어 노드는 본받고 싶은, 스승 같은 존재였다.

“혹시 여왕님은 제가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이유도 기억하십니까?”

물론 기억하고 있다. 벨포트가 끝내 나에 대한 충성을 꺾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기토에서 아들에게 패배한 옐러는 투항했고, 그의 병력은 나의 든든한 아군이 되어 주었다.

“제가 이 원정에 따라 나선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저 철부지 아들 녀석이 여왕님을 지키려다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가 여왕님께 분명히 말씀드렸던 부분입니다.”

그의 말투가 이상하게 변했다는 생각이 들 때쯤 허리춤에서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곧 나는 옐러의 손이 나의 양쪽 허리춤에 매인 정령검들을 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제 아르만시아가 나타났을 때 여왕님은 제 마지막 부탁도 저버리셨습니다. 그 자살 작전에 제 아들을 끌어들이다니....!”

마침내 옐러의 음성이 분노로 들끓는다. 다음 순간 그는 정령검들을 검집 채로 강제로 내 허리띠에서 떼어내 빼앗아 가 버렸다.

“뭐하시는 겁니까, 아버지?”

벨포트가 놀란 얼굴로 소리친다. 그러나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뭔가 해보기도 전에 기수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그를 제압해 버렸기 때문이다. 란드가 검집으로 뒤통수를 쳐버리자 벨포트는 분노한 표정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나는 털썩 주저앉아 옐러와 기수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도망칠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옐러가 배신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수들은 그런 나에게 다가오더니 주변에 있는 나무로 나를 거칠게 끌고 갔다.

“....그 잠깐 사이에 모의한 거예요....?”

마치 미리 맞춘 것처럼 일사 분란한 움직임. 이것이 즉흥적으로 벌이는 행동일 리가 없었다. 그들 모두가 한통속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옐러에게 인원선발을 맡겼던 것이다.

“여왕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하루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 일을 계획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죠.”

옐러는 차갑게 대답하며 밧줄로 나를 나무에 묶었다. 또 다시 반란이라니.... 저항할 힘도 의지도 생겨나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의 무력함과 어리석음만을 탓하며 체념하고 있었다.

“우리가 결단을 내리게 만든 건 바로 여왕님 자신입니다. 악마들은 여왕님만을 노린다고 말씀하셨죠? 그러면 우리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여왕님을 모실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옐러가 이야기하는 동안 란드가 횃불을 꺼내 내 옆에 꽂아 단단히 고정한다. 그러자 다른 기수가 거기에 불을 붙였다.

“자, 이러면 악마들이 여왕님을 쉽게 찾을 수 있겠죠. 원하는 것을 얻은 그들은 돌아갈 테고 우리는 안전해질 겁니다. 벨포트가 깨어나면 분명 저를 원망하겠죠.... 하지만 비록 절교를 하게 되더라도 아들을 잃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은데 아쉽군요. 그랬다간 악마들이 계속 추격해 올 수도 있으니....”

란드가 안타까운 얼굴로 중얼거린다. 그 말을 받아 다른 기수도 이죽거렸다.

“죽일 수는 없어도 재미는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직 날이 저물기까지 시간도 남았으니.”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시오. 하지만 악마들이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건 알고 계시죠?”

옐러가 상기시켜주자 그 역시 아쉬운 얼굴로 물러난다. 그들은 나무에 나를 묶어둔 채로 바르테인 군의 주둔지 쪽으로 천천히 돌아가 버렸다. 이윽고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 나는 손을 뒤집어 밧줄을 풀어보려 했다. 칸딘이 없으니 메담이나 샤나프린에게 나의 위기를 알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옐러가, 그가 나에게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어.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틀림없이 어떤 사정이 있었을 거야. 분명 나를 위해 매듭을 느슨하게 매어두었을 거야. 그러나 나의 기대와 달리 매듭은 잔인할 정도로 견고하기만 했다. 이를 깨달은 순간 나는 모든 걸 체념하고 축 늘어져 버렸다.

노드에 이어 두 번째의 반란이었다. 그러나 내가 받은 충격은 그 때와 비교할 수가 없다. 비록 노드는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던 사람이었지만 그리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옐러는.... 옐러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와 함께 해온 사람이었는데....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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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고) 노드 : 주인공에게 반란을 일으키다니.... 어떤 험한 꼴을 당하려고?

옐러 : 뜨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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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의 외출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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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 별 일 아냐 +6 17.06.04 503 10 10쪽
» 재현 +6 17.06.01 491 9 9쪽
355 위험한 임무 +6 17.05.31 591 11 11쪽
354 일침 +6 17.05.29 458 8 8쪽
353 척후병 +6 17.05.26 543 10 12쪽
352 인간과 드래곤 +8 17.05.24 497 12 10쪽
351 곡예 드래곤 +7 17.05.22 472 11 8쪽
350 미끼 +6 17.05.20 533 10 10쪽
349 새로운 꿈 +10 17.05.03 439 13 13쪽
348 깨진 동맹 +8 17.05.01 448 12 10쪽
347 절대신 +6 17.04.29 421 11 9쪽
346 추락 위기 +2 17.04.27 455 10 10쪽
345 밀서 +4 17.04.25 476 9 8쪽
344 물증 +6 17.04.23 441 9 8쪽
343 기적의 사나이 +4 17.04.19 449 8 9쪽
342 이별 예감 +4 17.04.18 493 10 8쪽
341 심판 +4 17.04.16 444 10 6쪽
340 진실과 거짓 +4 17.04.14 452 8 10쪽
339 내통 +4 17.04.12 475 10 10쪽
338 도발 +4 17.04.09 442 10 9쪽
337 마음에 안 드는 여자 +6 17.04.07 511 10 9쪽
336 과도한 몰입 +4 17.04.04 486 8 6쪽
335 반란 진압 +4 17.04.01 565 8 9쪽
334 최강의 실험체 +4 17.03.29 467 6 8쪽
333 결심 +4 17.03.28 453 8 11쪽
332 빗나간 예상 +6 17.03.26 436 9 9쪽
331 증인 +4 17.03.24 499 7 9쪽
330 새로운 희망 +4 17.03.21 522 9 10쪽
329 교대 +4 17.03.19 527 8 10쪽
328 진상을 찾아서 +8 17.03.17 483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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