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102
추천수 :
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7.03.24 02:28
조회
499
추천
7
글자
9쪽

증인

DUMMY

시저의 말을 듣고 놀란 나는 문을 살짝 열고 안을 조심스럽게 훔쳐보았다. 동굴 안은 시저가 만들어낸 괴상한 소리와 형형색색의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가운데 똑같이 생긴 두 남자가 창살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일로스....?”

쇠창살 속에 갇혀 있는 티프가 정령검을 들고 서 있는 티프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가볍게 던진 말이 결코 아니다. 그는 이미 확신을 하고 있었다.

“....?!!”

그리고 멍청한 일로스는 이 말에 당황한 표정을 보임으로써 티프의 예상이 맞았다는 걸 입증해주고 말았다.

“넌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여기에 갇힌 사람들은 전부 뭐지? 왜 하나 같이 너와 똑같이 생긴 거지?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상대가 자신의 옛 친구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 티프는 일로스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의기양양하게 그를 조롱하던 일로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 당황하고 있는 건 일로스 쪽이었고 주도권은 티프에게 있었다. 정체가 탄로난 순간 둘의 사이가 예전으로 회귀해 버린 것이다.

‘빨리 안으로 들어와요.’

나는 감옥 안에 갇힌 상대에게조차 기선을 제압당하는 일로스의 한심함에 혀를 차며 서둘러 그를 불러들였다. 일로스가 또 어떤 멍청한 실수를 저지를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일로스는 그 말을 듣자마자 즉시 티프에게 등을 돌린 후 문 쪽으로 뛰어왔다. 마치 나의 호출이 구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기다려, 일로스! 실비아는 어떻게 되었나? 설마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건 아니겠지?”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는 일로스의 등에 대고 티프가 애타게 외친다. 순간 나는 혹시 일로스가 여기서 실언을 하는 게 아닌가 걱정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마음이 급한 일로스는 이 말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마침내 방 안으로 들어온 일로스는 황급히 문을 닫아버렸고 우리는 이 사태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티프에게 최면이 통하지 않는다고?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거 아냐?”

나는 시저에게 물어 재차 확인하였다. 원래 최면이라는 것이 단기간 내에 효과를 보이지는 않는 법이니까.

“그의 정신력은 너무 강해. 파고들 틈이 보이지 않았어.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을 거야.”

시저는 내가 의문을 품는 것이 다소 불쾌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래. 이 정령검은 자존심이 무척 강한 녀석이었지. 그런 녀석이 못하겠다고 한다면 그건 정말로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티프를 죽여야겠어.”

“일로스!”

나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 티프를 질투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친구인데.... 저렇게 쉽게 죽인다는 말을 하다니.

“녀석은 우리의 진실을 알고 있어. 최면이 먹히지 않는다면 그를 통제할 수도 없고 그렇다면 죽여서 입막음을 하는 게 낫지 않아? 그래야 우리가 안전해질 수 있어.”

일로스가 한사코 티프를 죽이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티프의 대역을 맡기로 결정되었을 때 일로스는 드디어 자신의 범죄가 들킬 가능성이 없어졌다고 좋아했었다. 이 겁쟁이는 또 다시 불안으로 가득한 나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뻔히 속이 보이는 발언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말을 덮어놓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진정해, 일로스. 최면 없이 티프를 통제하는 방법도 있어.”

시저도 나처럼 티프를 간단히 죽이고 싶지 않았나 보다. 다급한 말로 일로스를 설득하려 한다.

“정말이야? 통제할 수 있다고? 어떻게?”

일로스의 방법이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이 말이 더 없이 반갑기만 했다.

“나는 아르만시아가 실험체를 통제하는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았어. 그리고 그 요령을 전부 터득했지. 충분히 흉내낼 수 있을 것 같아.”

“세뇌하지 않고도 통제할 수 있다고? 아르만시아가 하는 것처럼?”

“생각보다 간단하더군. 악마가 되면 영혼이 육체에 대한 제어력을 반쯤은 상실하니까.”

시저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한다. 워낙 엄청난 사안이라 쉽사리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아르만시아는 단 몇 초만에 우리가 정성껏 세뇌한 실험체를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었다. 악마가 된 실험체를 지배하는 건 의외로 복잡한 작업이 아닐지도 모른다. 게다가 시저는 알케니아의 마법도 제법 완성도 있게 재현해낸 전적이 있었다.

“믿지 못하겠다면 한 번 시험 해봐도 좋아. 아니 오히려 내 쪽에서 부탁하고 싶을 정도야. 과연 이 방법이 먹힐지 확인해보고 싶으니까.”

말이 나온 김에 우리는 시저가 새로 터득한 비법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기존의 실험체들은 대상에서 제외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육체는 이미 아르만시아에게 점유 당했기에, ‘비어 있지 않다’는 것이 시저의 설명이었다. 또한 자신의 흉내내기가 신의 권능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아르만시아의 지배력을 능가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다행히 매우 적당한 실험 대상이 우리의 수중에 있었다. 악마들 몰래 에산토에서 붙잡은 실험체의 세뇌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최면의 효과가 반쯤 남아 있어 시저의 시도가 실패해도 우리를 공격할 가능성이 적었고, 만약의 경우에는 우리의 명령을 듣는 아르만시아의 인형들에게서 보호받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최적의 조건이 갖추어진 것이다.

우리는 곧바로 실험체에게 마약을 투여했다. 이튿날이 되자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고 시저는 그를 악마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실험체의 육체가 서서히 검게 변해갈 무렵 나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잠깐만! 이 자는 악마가 된 후 우리의 명령을 듣는 게 맞아? 확실한 거야?”

지금 우리는 아르만시아가 실험체를 지배하는 과정을 재현하고 있는데, 이 중 우리의 명령을 따르게 만드는 단계는 들어가지 않았다. 이 실험이 이대로 진행된다면....

“시저, 네 명령을 따르는 거 아냐?”

“....결과적으로는 너희의 명령을 듣는 셈이지. 내가 너희의 명령을 따르고 있으니.”

저 비열한 자식. 왜 지금까지 저 얘기를 하지 않은 거야? 방심하고 있다가 큰일 날 뻔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일로스에게 단단히 일렀다.

“잊지 마세요. 만약에 성공해도 실험체가 우리가 아닌 시저의 명령을 듣는다는 사실을요. 결코 그를 쥔 손에 힘을 풀어선 안 돼요.”

“아아. 알았어.”

일로스가 허둥지둥 대답한다. 내가 반인반마의 상태라 정령검을 제대로 다룰 수 없는 게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이런 멍청한 녀석에게 뱀처럼 교활한 시저를 맡겨야 하다니....

“이거 섭섭하군. 그 단 한 번의 실수 때문에 여전히 나를 믿지 못하는 건가? 우리는 동업자라고 생각했는데....”

“그래, 난 너를 믿지 않아. 그리고 너와 같이 일을 도모하려면 이럴 필요가 있지.”

나의 차가운 대답에 시저는 입을 다물었다. 결국 신뢰라는 건 완벽한 통제에서 오는 것이다. 속았다는 걸 알았지만 이 실험을 기꺼이 진행하는 것도 실험체를 완벽히 통제하는 시저를 우리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성공이다....!”

이윽고 시저가 기쁨에 찬 목소리로 탄성을 질렀다. 실험체가 악마로 변신한 지 불과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정말일까? 이제 실험체를 제어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일로스를 시켜 한 번 확인해 보기로 했다.

“당신의 말을 듣는지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시저를 통해 명령하는 걸 잊지 말고요.”

“좋아, 지금 당장 엎드린 후 오른발을 들어봐.”

시저는 일로스의 지시사항을 그대로 읊었고 그러자 실험체는 이를 충실히 실행했다. 정말로 최면 없이도 통제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실험에는 그 동안의 실험과 뚜렷이 구분되는 차이가 있었다.

“여기는 어딥니까? 저는 지금 대체 뭘하고 있는 거죠?”

그것은 바로 실험체가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그는 완전히 세뇌된 상태가 아니었고, 악마로 변한 후에는 마약의 후유증에서도 벗어났다. 그 결과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판단력을 회복한 것이다.

“당신은 영주부인 아니십니까?”

그가 나의 정체를 알아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항상 자신의 범죄가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던 일로스의 심정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당신의 댓글 하나가 당신이 읽고 있는 글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왕녀의 외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7 별 일 아냐 +6 17.06.04 503 10 10쪽
356 재현 +6 17.06.01 491 9 9쪽
355 위험한 임무 +6 17.05.31 592 11 11쪽
354 일침 +6 17.05.29 458 8 8쪽
353 척후병 +6 17.05.26 543 10 12쪽
352 인간과 드래곤 +8 17.05.24 497 12 10쪽
351 곡예 드래곤 +7 17.05.22 472 11 8쪽
350 미끼 +6 17.05.20 533 10 10쪽
349 새로운 꿈 +10 17.05.03 439 13 13쪽
348 깨진 동맹 +8 17.05.01 448 12 10쪽
347 절대신 +6 17.04.29 421 11 9쪽
346 추락 위기 +2 17.04.27 455 10 10쪽
345 밀서 +4 17.04.25 476 9 8쪽
344 물증 +6 17.04.23 441 9 8쪽
343 기적의 사나이 +4 17.04.19 449 8 9쪽
342 이별 예감 +4 17.04.18 493 10 8쪽
341 심판 +4 17.04.16 444 10 6쪽
340 진실과 거짓 +4 17.04.14 452 8 10쪽
339 내통 +4 17.04.12 475 10 10쪽
338 도발 +4 17.04.09 442 10 9쪽
337 마음에 안 드는 여자 +6 17.04.07 511 10 9쪽
336 과도한 몰입 +4 17.04.04 486 8 6쪽
335 반란 진압 +4 17.04.01 565 8 9쪽
334 최강의 실험체 +4 17.03.29 467 6 8쪽
333 결심 +4 17.03.28 453 8 11쪽
332 빗나간 예상 +6 17.03.26 436 9 9쪽
» 증인 +4 17.03.24 500 7 9쪽
330 새로운 희망 +4 17.03.21 522 9 10쪽
329 교대 +4 17.03.19 527 8 10쪽
328 진상을 찾아서 +8 17.03.17 483 6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