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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파고 님의 서재입니다.

파파스 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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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파고
작품등록일 :
2020.01.16 22:32
최근연재일 :
2020.02.12 20:56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333
추천수 :
24
글자수 :
78,080

작성
20.01.16 22:38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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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화-요르문간드

DUMMY

바다 멀리 검푸른 빛을 발하는 폭풍우가 밀려 온다. 아직은 거리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멀지만 가끔씩 크고 작은 섬광으로 반짝거린다.

울퉁불퉁한 암반 위에는 대륙의 모든 종류의 꽃들이 모두 피어있었다. 한동안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 땅은 한동안 토르의 땅이었으며 토르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토르의 땅이었다. 토르 말고도 많은 신들 역시 토르의 땅을 지켰다. 그들의 영원한 숙적인 요르문간드 때문이었다.


행색이 묘한 두 남자가 나무 한 그루 없는 너른 평원 위를 걷는다. 그 뒤로 윤기가 자르르한 말 두 마리가 따른다.

그들이 걸어온 땅 위에는 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 발이 닿은 곳이 길이나 마찬가지다.

등 뒤로 놓인 산들은 하늘을 찌를 듯한 느낌이 강해 높이나 크기를 알 수 없다. 그들이 선 자리에서 산 아래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 지도 가늠이 불가능하다. 만약 산에서부터 걸어서 왔다면 지금 속도로 족히 하루 이상 거리지만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바이킹의 땅인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빠른 말을 타고 달려왔다.


두 남자는 모두 2미터 가까운 거대한 몸집이다. 왼쪽 남자의 몸은 호리호리하고 오른쪽 남자는 그보다 좀 더 단단해 보인다.

나이는 엇비슷해 보이지만 호리호리한 체구의 남자가 좀 더 어른스럽다. 어깨까지 내려온 홍당무 같이 빨간 머리카락이 누런 피부에 이질적으로 어울려 보인다.

가슴을 보호하는 갑옷 외에는 다리나 팔 쪽을 보호하는 장비 같은 건 없다. 망토라고는 할 수 없는 무릎까지 간신히 닿는 헐렁한 바람막이용 천으로 몸을 가폈다. 결코 추위를 막거나 하는 용도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강풍에 몸의 일부가 살짝 살짝 드러났다. 물개와 곰의 가죽으로 만든 시커먼 옷 위에 회색 순록의 털로 감싼 복장은 바이킹족이 즐겨 입는 옷이다. 가슴에 걸친 갑옷을 제외하면 바이킹이라 해도 의심할 사람이 없다. 자세히 보면 바이킹 복장 안에 받쳐 입은 옷은 물론 거기에 달린 금속들이 예사롭지 않다. 색상도, 모양도, 거기에 새겨진 문양도 당 시대의 누구도 만들 수 없는 물건들이다.


망토에 가려 절반쯤 드러난 갑옷은 은빛이라고도 할 수 없는 묘한 빛을 냈다. 인간들이 사용하는 금속이라고 보기에 어렵다. 갑옷 위에는 음각으로 용들이 새겨져 있다. 몇 마리인지 셀 수 없는 수많은 용들이 꼬이고 꼬여 있었다.

그중 한두 마리 용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빛에 발해 꿈틀거렸다.


바이킹은 어딜 가든 칼과 활을 칼을 소지하고 다니는 편인데 그들에겐 무기로 쓸 만한 물건들이 보이지 않는다. 말 안장 위에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사냥감으로 노릴 곰 같은 맹수를 만난다면 여지없이 잡아먹힐 지도 모를 일이다.


편평한 듯하지만 울퉁불퉁한 돌이 많은 바닥 위로 두 뼘이 넘는 풀이 잔뜩 자라 말도 걷기 어려울 지경이다. 말들은 바닥을 골라 걷느라 걸음 자체가 엉성하다. 움직일 때마다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근육이 멋지게 율동하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명마라고 할 수 없을 같다.

두 남자의 발걸음은 말들과 달리 평화롭고 가볍다.


말들은 하루 간격으로 태어난 배 다른 형제다. 오로지 한 주인만을 섬기며 오직 두 사람에게만 등을 허락하는 고집 센 녀석들이다. 어찌된 일인지 다른 말들과는 달리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 능력이 태어나면서부터 있었던 것인지 나중에 생겨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두 남자는 두 말의 주인이자 친구다.


"파파, 고집 센 요르가 순순히 따라올까요?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잖습니까? 항상 거짓말만 일삼고 말입니다."


오른쪽 남자가 시선을 앞에 둔 채 말했다. 그는 요르문간드를 요르라 불렀다. 여전히 걸음을 가벼웠다.


"이번에는 믿어봐야지. 그들의 능력은 각각 제 때 필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잖나. 특히 요르는 머리가 좋은 녀석이야. 의심이 좀 많을 뿐이지. 녀석도 우리말을 믿어줄 날이 오겠지."


파파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미소가 피었다. 그리고 한마디 더 이었다.


"푸라고, 자네는 아직도 우리 과업에 의심이 있는 건가?"


"설마요. 파파.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이제 우리뿐인데. 우리마저 손을 놓는다면..."


푸라고는 더는 말하지 못했다. 지난 시간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파란 불이 일어나던 그 밤, 그는 가족을 모두 잃었다. 선조들이 수천 년 전부터 예고했던 그 일, 그토록 미리 준비하라 일렀던 그 일이 벌어지고도 엄청난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과업을 이루지 못했다.

앞으로 얼마나 긴 시간을 더 투자해야 모든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푸라고는 쓰라린 기억을 가라앉히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한숨에 발아래 풀들이 검게 녹아내렸다. 뒤를 따르던 말들은 괴성을 지르며 뒤로 펄쩍 뛰었다. 말들 역시 첫 경험은 아닌 듯했다.

그것도 잠시 그의 주변으로 일 미터 반경의 풀들이 모두 녹아내렸다. 불에 탄 것도 아니고 그냥 존재감 없이 녹아버린 것이다. 온통 검은색이었다.


"자꾸 떠올리지 말게, 푸라고. 그래 봤자 속만 쓰리지. 이게 어디 일이 년 된 일도 아니고. 자네 말대로 이젠 우리뿐이지 않나.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게든 버텨 내야지."


세 시간 정도를 더 걸었을까, 앞에 보이던 절벽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갈수록 흰 갈매기의 개체수가 많아졌다. 푸라고는 몇 번이고 바위틈 사이의 갈매기 둥지를 밟을 뻔했다. 갈매기는 그들에게 놀라지 않았지만 말이 지나갈 때면 긴장해서 예민하게 반응했다. 말들이 실수로 갈매기 알 몇 개를 밟자 갈매기들이 하늘을 덮을 듯이 몰려들어 공격을 하기도 했다.


절벽이 얼마나 높은 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멀리 보이는 바다는 절대 낮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겨우 절벽 끝에 다가서자 푸라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절벽 사이 사이에 물안개도 구름도 아닌 것들이 걸쳐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놈이라도 잡아끌고 왔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어느 세월에? 그리고 데려왔으면 요르가 우리말을 믿기나 하겠어? 세상 모든 것들을 미워하던 녀석인데."


"하긴, 그렇죠. 그러니까 파파는 왜 토르를 도와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드신 겁니까? 그때 그렇게만 안 했으면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되는 건데 말입니다."


푸라고는 툴툴거리며 절벽 아래를 내려다봤다. 파파는 그저 피식 웃고 말았다. 푸라고는 한쪽 뿔이 잘린 후로 동굴 속에 숨어 사는 늙은 영노를 떠올렸다. 남극으로 데려가는 건 실패했지만 그들과는 소통이 가능한 녀석이었다.


"그나저나 이거 힘 빠지면 내려가다 바닥에 내동댕이 치겠는데요. 대체 이게 높이가 얼마나 되는 거죠? 그리고 요르는 대체 어디에 숨은 거랍니까? 위에서 봐도 안 보이는데. 어쩌자고 여기까지 도망쳐 온 걸까요? 좋은 데 다 놔두고 말입니다."


"우리가 편히 갈 수 있는 곳에거 우리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었겠어? 언젠가 책에서 이 지역에 대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어. 저 아래 부분은 천정이 높은 짧은 동굴들이 많다고 하더군. 아마 거기에 숨 죽이고 있지 않을까?


파파는 그의 아버지가 전해준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렸다. 사고 때 책은 사라져 버렸다.


책 속에 어느날 갑자기 생긴 두 페이지 짜리 삽화가 있었다. 요르문간드가 토르와 싸우고 간신히 빠져나온 후 자리 잡은 곳이라고 했다. 인간의 노르드어 문헌에도 없는 내용이다. 인간 세상에서는 토르가 요르문간드를 죽였고 토르 역시 요르문간드에게 물려 독이 번져 죽었다고 했다. 어릴 때 그는 인간이 말하는 신도 죽을 수 있다는 것에 상당한 의문점을 가졌으며 절대 믿으려 하지 않았었다. 그들의 사고 전까지는 그랬다.




파파는 푸라고가 찾아낸 하강 루트로 발길을 옮겼다. 90도에 가까운 절벽이지만 멀리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길이 보였던 것이다. 잡을 것도 없고 피할 곳도 없다. 누군가와 마주친다면 그중 한 명은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가파른 경사로 봐서는 그마저도 불가능해 보였다. 바위는 풍화되어 그들이 걸어가는 동안에도 간간이 돌이 떨어지곤 했다.


"생각보다는 쉽지 않았는데요. 여기 내려가다 힘을 뺄 수도 없고 참 곤란한 상황입니다."


푸라고는 벌써 걱정이 앞섰는지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했다.


"그럼 나 혼자 다녀와도 돼. 자네는 여기 있게."


"파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파파를..."


푸라고는 파파의 제지로 말을 끊었다.


"저기 요르가 보이는 것 같네."


아직 절벽을 타기도 전인데 요르문간드의 꼬리가 바닥에 살짝 드러나 보였다.


"꼬리가 짧아진 것 같은데요."


푸라고가 말했다. 왠지 힘이 난 듯했다.


"토르에게 당한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게지. 어쩌면 다행인지 몰라. 이제는 우리말을 들어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어때? 그냥 내려가도 되지 않겠어?"


파파는 피식 미소 짓더니 절벽 아래로 뛰어들었다.


"파파!"


푸라고는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순간 요르문간드의 꼬리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파파의 모습은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졌다. 절벽은 예상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푸라고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두 말에게 손을 흔들더니 절벽 아래로 뛰었다.


작가의말

대체 두 사람은 무슨 배짱으로 절벽 아래로 뛰었을까요?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ㅎㅎ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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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화-용 사냥꾼 20.01.19 16 0 8쪽
5 5화-푸라고의 마법 20.01.18 17 1 6쪽
4 4화-푸라고의 일기 20.01.17 16 1 8쪽
3 3화-용의 시간 20.01.16 16 1 9쪽
2 2화-용들의 무덤 20.01.16 24 1 11쪽
» 1화-요르문간드 20.01.16 7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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