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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쉘오리진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쓰는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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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쉘오리진
작품등록일 :
2021.05.12 19:01
최근연재일 :
2024.04.2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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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03.2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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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양면5

DUMMY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측입니까!”


“그럼 유교 경전에 여성이 관료를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구절이라도 있소? 아니면 과학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논문이라도 하나 있소? 교수란 작자라 주장을 한다면 적어도 그럴듯한 근거가 있어야 할 것 아니오?”


“서경에 이르기를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고 하였고 주역에 이르길 ‘건도는 남자를 만들고 곤도는 여자를 만든다’ 하였소. 양은 건괘이며 하늘이고 음은 곤괘이며 땅이니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은 당연한 이치요, 양이 음보다 귀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사실이오.”


학장은 기가 찬다는 듯이 웃었다.


“기껏 든 것이 몇 천 년 전의 근거란 말이오? 그때는 화폐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기였고 강철을 만들지도 못하는 시기였으며 논농사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기거니와 제대로 된 도로조차 없던 시기이고 통치 체제는 열등하여 그 당시의 왕은 왕이라기보다는 대족장에 가까운 존재였소! 학자로서, 교수로서 맹목적으로 몇 천 년 전의 근거만 꺼내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소이까!”


“그건-”


“그리고! 양 교수께선 세상 모든 여성을 비천히 여기니 양 교수의 모친마저도 하찮게 여기겠구려! 자신의 모친조차 자신보다 낮게 보면서 어찌 입이 닳도록 말하는 효를 행할 것이며 아내를 업신여기는데 어찌 부부간의 의를 행하겠소?


왜, 아니면 양 교수의 모친과 아내는 특별한 여인이라 낮게 여기지 않소? 그리하다면 세상 모든 남성이 자신의 모친과 아내, 딸을 특별히 여길 것이니 세상에 낮은 여인은 없겠구려? 그러면 도대체 양 교수는 무슨 근거로 여인이 사내보다 못하게 여기는 것인지 진실로 궁금하오”


몇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패드립에 양열의 입이 굳게 닫혀버렸다. 제대로 언쟁을 벌인다면 저 논리를 깨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은 했으나 학장의 논리는 지극히 단순하여 둘러싼 사람들조차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간단한 논리 아닌가


세상 모든 여인은 낮다 → 자신의 모친은 여인이다 → 자신의 모친은 자신보다 낮은 존재다 → 자신보다 낮은 존재에게 어찌 효를 행하겠나? → 자신의 모친에게 효도를 안해? 이런 불효자 새끼


무엇보다도 유교에서도 기본이 되는 것도 효였으니 주변의 유학자들까지 술렁이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왜냐? 자신들이 들어봐도 말이 되거든.


그리고 주변의 반응을 느끼고 나서야 양열은 학장이 무엇을 노리는지 정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말들은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논리에 반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적당한, 그럴듯하면서도 충격적인 말로 주변을 뒤흔들어 자신을 완전하게 고립시키기 위한 행동이다.


그 증거로, 보라. 자신과 함께한 주변인들은 물론이거니와 둘러싸서 구경하고 있던 군중들까지도 학장의 말에 동요하고 있다.


애초에 일개 유학자인 양열과는 다르게 중앙대 학장은 원래가 지영의 곁에서 업무를 하던 고위 관료 중 한 사람이었고 그 말은 바꿔 말하면 지영이 언플을 하는 걸 다른 사람보다는 한 번이라도 더 볼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중앙대 학장이 군중의 지지를 받아 양열을 말로 두들겨 패고 있을 때 궁전에서는...


“올해 세금 중 칠 할이 화폐로 들어왔소.”


“죄송-”


“아니, 죄송할 것까지 있나. 이제 일 년 차일세. 나 스스로가 올해 세금은 쌀로 내도, 화폐로 내도 좋다고 했으니... 그리고 칠 할이라면 적어도 어지간한 도시나 마을은 잘 따라오고 있다는 것 아닌가?”


특히나 기업가들은 화폐로 세금을 납부한 비율이 구 할을 넘었다. 상업과 산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지영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기꺼운 성과였다.


“문제는 내년부터일 텐데... 총재, 무슨 좋은 방안이 있는가?”


“가장 확실하며 효과적인 방안이 있긴 합니다만...”


“있으면 있는 거지, 있긴 한 건 뭔가?”


“그렇게 하면 세입이 줄어듭니다.”


지영은 잠시간 고민하다가 이내 그 ‘효과적인 방안’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아하, 돈으로 내면 세금 좀 깎아주자, 뭐 이런 거겠지?”


“예, 신민 대부분이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으니 몇 년 정도만 감세해도 화폐가 더 널리 쓰이긴 할 겁니다. 허락해주실 수 있는지요.”


“후... 이렇게 하면 장관들이 개지랄할 텐데...”


진소화도 그걸 짐작했는지 어두운 낯빛으로 물끄러미 예산안을 노려보았다.


“일단 차라도 마시면서 조금 느긋하게 생각해 보지. 혹시 아나? 느긋하게 생각하면 또 좋은 게 나올지?”


지영의 말에 둘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이 놓였다.


“이게 그 새로 들어온 유채 꽃차라는 걸세. 기름은 식용으로 영 못 써먹을 정도인데 꽃잎은 차로 만들면 그 향과 맛이 썩 좋아.”


유채유, 즉 카놀라유를 식용으로 사용한 지는 그리 얼마 되지 않았다. 70년도부터 에루스산이 없는 품종을 개량하여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보다도 훨씬 짧은 기간이다.


지영이 이 사실까지 알 턱이 없긴 했으나... 먹어보니 어지간한 건 잘 먹는 지영의 입맛에도 이건 아니다 싶었고 즉각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해버렸다.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지만 여기에 튀기면 튀김이 맛이 없는 기적을 목도할 것 같았기에.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전하”


나름 향기로운 향을 풍기며 고운 빛깔을 띤 유채 꽃차를 입가 근처로 옮기...


“우읍”


려다 말았다.


“...? 자네, 차가 좀 이상한가? 한번 줘 보게”


빼앗듯이 찻잔을 집어든 지영은 그 향을 음미했다.


“... 별 차이는 없는 것 같다만. 아니, 애초에 같은 주전자를 썼으니 이상이 있다면 내가 먼저 알았을 터.”


지영은 잠시간 고민하다가 이윽고 ‘이게 맞나?’라는 표정으로 진소화를 쳐다보고선 이내 주치의를 호출했다.


“찾으셨습니까?”


“음, 저기 총재 좀 진찰해주게나.”


“... 멀쩡해 보입니다만?”


“내 생각이 맞다면 저건... 아니지, 그냥 한번 진찰해주게나”


그 말에 주치의는 여러 가지 몸 상태와 평소의 식습관, 생활습관 등을 묻고 그것을 끄적이고는 ‘별 이상 없는 거 같은데...’ 라고 중얼거리며 마지막으로 한 번만 확인하겠다며 맥을 짚었다.


“으음...”


“...”


“...으음?”


그는 이게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금 신중하게 맥을 짚었다.


그러고서는 모호한 태도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간단한 검사만 해서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임신이지?”


“임신.. 예? 어떻게 아셨습니까?”


지영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내 애가 여섯이야, 이 사람아. 원래 꽃차 즐겨 마시던 사람이 그 향만 맡아도 구역질을 하고 그 몇 달 전에 결혼했으면 대충 짐작이 가지 않나. 아닐 수도 있긴 한데, 서연이 입덧할 때랑 꼭 닮았거든.”


“아니... 하지만 저는..”


“선생, 거기 배 까서 보게나. 자궁 위치 아니지?”


그는 조심스레 진소화의 흉터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는 이내 확신했다.


“자궁 위쪽입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아무리 봐도 자궁 위쪽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럴 것 같더라고.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나중에 인체도 보니까 대충 알겠더만. 여튼 축하하네, 애 엄마 된 거.”


“아니... 그... 예... 감사합니다...”


대답하는 진소화의 양 볼은 색조 화장이라도 한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부끄러워서인지 기뻐서인지, 혹은 당황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셋 다일 터였다.


“어... 하지만, 전하? 이렇게 되면...”


지영은 그녀가 뭘 우려하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게. 이번 일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 있으면 모두 나한테 오라 해. 뒷감당은 내게 맡기고 자네는 그냥 몸조리랑 태교만 잘 하면 그만이야. 오늘은 오전 근무만 하고 오후에 내가 말해놓을 테니 간단히 검진이나 받고 남편이랑 함께 일찍 퇴근하게. 내 알기로... 자네 남편이 국세청에서 일하는 거로 아는데...”


“감사... 어? 제 남편은 어떻게 아시는지...”


“왕이 그 정도도 모르면 쓰나. 여튼 오늘은 일찍 퇴근해. 보고서는 나 주고.”


“아닙니다. 이번 보고까지만 마무리 짓고...”


“내일 하게, 내일. 어차피 나도 오늘 할 일 많아. 선생, 임산부 조용히 모시고 나가시게나”


“예, 전하. 가시지요.”


지영이 그렇게까지 나오자 진소화도 어쩔 수 없이 감사 인사만 꾸벅하고서는 주치의의 인도 하에 조용히 집무실을 나왔다.


“전하께서 말씀하셨듯이 오늘 오후에 한 번 더 들리시지요. 가급적 지금부터는 아무것도 드시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맥으로는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에...”


“... 보통 맥 짚으면 다 알지 않습니까?”


그 말에 주치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진소화를 빤히 쳐다보았다.


“몇 가지 질문하고 맥 하나 짚고 진단결과 정확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죠. 상황으로 봐서는 임신이 거의 확실해 보이나 단정 지을 수도 없고... 애당초 임산부들에게는 활맥이 잡히는데 이 활맥이라는 것도 임산부한테만 잡히는 게 아니거든요. 여튼, 금식하고 이따 들리십쇼.”


“예,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주치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방을 들고 바삐 떠나갔고 그녀는 괜히 집무실과 작아져 가는 주치의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부풀지도 않은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아이... 엄마... 내가...?”


진소화가 미친년처럼 중얼거리며 복도를 활보활 때 지영은 피식피식 웃으면서 식어버린 찻잔을 들이키고 있었다.


“내 총재가 저리 부끄러워 하면서도 좋아하는 건 처음 보는 거 같은데, 비서실장도 그렇지 않나?”


“확정 지을 순 없지만, 어머니가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럴 만하지요.”


김양순은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헌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반발이 다시 심해질지도 모릅니다.”


“쯧, 애 엄마가 되었는데 축하는커녕 반발이라니. 인성들하고는”


“...”


“그게 아니면 자네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


지영은 여유로이 웃으며 되물었다.


“내가 뽑은 유능한 신하를 모함하는 반역도당이 있으리라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가 이내 푹 수그렸다.


저 오만할 정도의 여유로움.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듯한 눈빛


누가 봐도 자신감에 넘치는 군왕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럴 만한 근거가 지영에게는 넘치도록 있었다.


탄탄한 지지층, 충성하는 군부, 전국 각지에 퍼진 첩보망과 행정력. 어지간히 똥을 푸짐하게 싸지 않는 이상 지영의 권위는 절대 흔들리지 않으리라.


작가의말

선동과 날조의 힘을 맛봐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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