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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냐무님의 서재입니다.

소설 속 배신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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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두
작품등록일 :
2021.07.26 10:00
최근연재일 :
2021.08.14 14:32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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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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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평가 테스트

DUMMY

"여기 앉아."


그렇게 커뮤니티를 살펴보던 중, 교수가 녹색 소파를 가리키며 말을 건넸다.


그녀의 방은 넓었지만 비치된 가구들 탓에 발을 디딜 곳 하나 없었고, 널브러진 연필들과 수많은 책이 공간의 주를 이뤘다.


“황금빛은 모든 원소 계열을 다룰 수 있다는 뜻이야. 전속성 계열이라고 부르지. 보니까, 내가 따로 부른 이유도 눈치챈 것 같고. 그치?“


조용히 고개를 움직이자 교수가 무덤덤하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길게 설명 안 할게. 업계 최고 대우야. 어딜 봐도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을 거야. 장담할 수 있어. 대부분의 뉴비 플레이어들은 부당한 계약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란다?”


사실이다.

아마, 신규 플레이어 기준으로는 업계 최고겠지.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대륙은 매우 잔인해.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처음엔 말이지. 플레이어 대부분은 채석장 같은 곳에 갇혀 갈취당하거나, 탑에 도전을 강요당하다 죽는 게 부지기수니까.”


대륙으로 납치된 이방인들 중, 재능이 없는 사람은 먹고 살기조차 벅차다.


이것도 사실이다. 내가 쓴 설정이었으니.


“여기도 마찬가지야. 질서가 잡혀있는 기관 같지? 겉치레만 번지르르할 뿐. 사실은 괜찮은 애 어떻게든 데려가려는 도떼기시장이지.”


이미 알고 있는 정보.

한시아는 연이어 머리를 끄덕였고, 그러한 행동을 다르게 받아들인 교수가 답답해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둘도 없는 기회임은 맹세할 수 있어. 재능 꽤 있는 사람이 몇 년을 굴러도 못 쳐다보는 길드야. 동시에, 너의 재능에 많이 투자해줄 수 있는 곳이고.“

“···생각해보겠다.”


원했던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교수의 서글서글한 눈매가 점차 작위적인 눈빛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잘 생각해. 너, 납치될 수도 있어.”


공기중에 응집되기 시작하는 마력.

거절하면 보복하겠다는 무언의 협박이었지만, 그 이상 가진 않았다.


잠깐의 침묵이 테이블을 감돌았고, 흐르는 정적을 깬 것은 교수였다.


”후. 일단 알겠어. 혹시 뭐 더 궁금한 것은 있어?"


'궁금한 것이라.'


딱히 없다.

진작에 커뮤니티를 통해 해결한 상태니까.

있다고 해도, 한시아가 모르는 것을 교수가 알 리 만무하다.


···일반인이 오브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정도 물어보는 게 좋겠지.


"어제 커뮤니티에서 동영상을 봤다. 어떤 마법사가 원형 구체를 만드는 영상."

"구체? ···아, 오브 말하는 거구나."

"어떻게 하지?"

“낸들 알겠니? 지구인 중에서도 오브를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어. 고위 마법사 중에서도 못 쓰는 자들이 있을 정도니까."

"보니까, 오브 만드는 법이라는 동영상이 있던데."


한시아가 말하는 영상은 랭커, 알렉스 테건이 올린 동영상이었다.


제목, 오브 만드는 법.

조회수 1,600억을 기록하고 있는 4분 49초짜리 동영상.


그 화제의 영상에는 알렉스 테건이 오브 만드는 법을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하하! 그 영상을 보는 걸로 해결이 되면 모든 사람이 오브를 만들고 다니게? 모르는 것이 당연한데, 오브는 마나 컨트롤의 정점이야. 꿈의 경지라고. 나도 동영상으로밖에 보지 못했고."

"······."

"뭐, 너는 재능이 있으니까. 우리 길드에 가입한다면 혹시 모르지?"

"커뮤니티에서 재능있는 사람은 10년이면 만든다고 들었다."

"거짓이야. 최고의 재능을 가졌다는 신인들조차 평생을 가도 못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태반. 설마 네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한시아는 무뚝뚝한 눈으로 교수를 바라봤고, 대답하는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싱긋 배어 나왔다.


"귀엽네. 그거 자의식 과잉이야. 심하면 독인 거는 알지? 아무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알겠는데 너 그 정도 몸값 아니야."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비록, 생각하는 것은 달랐지만.



***



“J-51번 부터 100번 플레이어들은 지금 나와주십시오.”


밤의 어둠이 게워지며 밝음이 들어섰고, 화랑 훈련소에서는 평가 테스트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떨리네."

"교수가 말하더라. 잘 보여야 길드한테 컨텍도 오고 그런다고."


느닷없이 들려오는, 잔뜩 긴장한 사람들의 대화 소리.


“제한 시간은 3분! 시작합니다!"


챙─!


검사 클래스의 평가 테스트는 간단하다.


지명된 플레이어들과, 강당 위 교수와의 대련.


말이 대련이지, 50명 모두가 한꺼번에 덤비더라도 교수 하나 이기지 못한다.


그저, 괜찮은 품질을 걸러내기 위한 1차 거름망.


챙─! 챙─!


"······쟤 누구야?”

“누구? 저기 잘생긴 남자?”

"교수가 밀리는 거 같은데? 아닌가?"

"봐주는 거겠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대련장 위, 주강혁과 교수의 전투였다.


챙─!


청아한 소리가 대강당을 가로지른다.


검을 쥔 주강혁의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지도 않았고, 휘두름에는 화려한 멋이 베이지도 않았다.


챙─!


하지만, 희멀건 궤적은 유려하여 잔광을 남기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챙──!


검이 만들어낸 바람 가르는 소리는 모두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앞선 사람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현란한 전투의 연출.


"···우리랑 같은 사람 맞아?"


놀라움과 경악.

대강당의 넓은 관중석에서는 오직 이 두 가지 감정으로 가득 찼다.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던, 나머지 플레이어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두 명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고, 할 수 있는 것은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서있는 것 뿐.


그만큼 동작 하나하나가 감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챙─! 챙! 챙! 채앵─!


어떨 때는 깔끔하고, 또 어떨 때는 뭉툭하게.


검끼리 부딪히는 쇳소리는 쾌활함을 휘감고 선명하게 울려 퍼진다.


"종료까지 10초 남았습니다. 10, 9, 8······"


어느덧 진행자가 카운트를 시작했을 때.


스릉─


"······?"


넓은 강당이 한동안, 아니. 꽤 오랫동안 정적으로 가득 찼다.


가속.

주강혁의 고유 특성으로, 사고 회전과 근육의 활동이 극한에 다다르는 특성.


모두가 눈앞에서 일어난 광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점멸하는듯한 속도와, 갑작스레 박살 난 교수의 검.


방금의 움직임은, 명백히 21회차 플레이어 것이 아니었으니까.


"봐, 봤어?"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저게 갑자기 왜 부서져? 불량인가?"

"방금 검 휘두르는 거 못 봤어?"

"원래 저렇게 쉽게 부서지는 건가?"

"아니, 방금 검 휘두르는 거 못 봤냐고!"


대련의 결과는 충격적으로 교수의 패배였다.


뒤로 넘어진 검술 교수.

그의 당황한 기색은 한시아가 위치한 뒷자리까지 전해졌고, 교수의 굳은 표정은 혼란스러운 분위기에 박차를 가했다.


'···이유가 뭐지?'


한시아는 주강혁의 의도를 가늠할 수 없었다.


'여기서 힘을 드러낸다고 해서 좋을 것이 있나?'


굳이?


‘···관심을 받기 위해서?'


갑작스레 떠오르는 가설이었지만, 곧바로 기각됐다.


'만약 그렇다면 대성공이지만. 아마, 아닐 거다.'


게임 속 주인공이었던 주강혁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배신을 당해서 성격의 변화가 있더라도, 말이 안 되지.'


생각하자.


회귀하기 전.

주강혁은 평가 테스트에서 어떻게 행동했는가?


그렇게 돋보이지 않았다.


‘···아니, 못한 건가.'


게임 속 주인공으로서 수많은 메리트가 있다지만, 회귀하기 전인 지금 시점에서 주강혁의 무력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앞서 보여준 무력이 아닌, 딱 평범함에서 살짝 웃도는 수준.


'······설마.'


생각하던 도중, 문득 뇌리를 스치고 가는 한 가지 단어.


이레귤러(Irregular).

말 그대로 이례적인, 상식의 틀에서 벗어나는 존재.


대륙으로 전송되는 수많은 사람들 중, 극히.

정말 드물게 나타나는 괴물들.


'훈련소는 의무적으로 황제에게 이레귤러 보고를 해야된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황제와 접점을 만들기 위해.’


생각할수록.


‘이레귤러로 판정되기 위한 퍼포먼스.’


자연스레 차곡차곡 맞춰지는 머릿속 퍼즐 조각들.


'···운이 좋군.'


넘어진 교수를 뒤로한 채 계단을 내려오는 주강혁.


그를 바라보는 한시아의 입가에는 미소가 만개하고 있었다.



***



"이, 이게 말이 됩니까?!"


대강당 2층에 자리 잡은 교수 회의실.

이곳에서는 작년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방금 움직임! 최소 탑의 중층을 거치지 않는 이상 나오지 않는 속도입니다!"

“튜토리얼을 막 끝낸 플레이어가 저런 속력은 말이 안됩니다. 규격 외 아닙니까?"

"규, 규격 외라고요? 설마요."

“신규 플레이어의 민첩 스텟이 높을 리는 없고···. 특성이겠죠. 꽤 높은 등급의.”


혼란스러운 분위기.

그 열기를 진정시킨 것은 화랑 훈련소의 이사장이었다.


“찾았다. 저 친구가 21회차 튜토리얼 2위겠군.”

“2위라면··· 주강혁. 10만 포인트 말씀이십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지.”

“······허. 진짜 지구인이었다니.”


모두의 입에서, 동시에 나온 탄성이었다.



***



“H-96. H-96번 플레이어는 단상 위로 올라와 주세요.”


검사 클래스와는 달리 마법사 클래스는 한 번에 한 명만 시험을 본다.


비교적 인원수가 적었고, 무엇보다 시험을 치르는 데 필요한 시간이 짧았으니까.


"제한 시간 1분.”


시험의 내용은 검사 클래스와 같았다. 제한시간 안에 자신의 최대한을 보여주는 것.


“시작합니다!"


모두의 시선이 여성에게 집중된다.

그녀는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은색 구를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 플레어! ]


갑작스레 허공에 생긴 작은 불꽃이 새하얀 잔상을 남기며 쇄도한다.


지─잉


일직선으로 쏘아진 화염이 은색 구와 부딪혀 진동이 일었고, 그 작은 울림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와, 마법 실제로 처음 봐!"

"개 멋지네. 시발."

"나도 직업 마법사로 바꾸고 싶다."

"꿈 깨라. 재능이 있어야 한다더라."


마법 클래스의 특권 중 하나, 스킬북 하나를 지원받는 것.


실제로 어제 마력 관련 수업을 들은 플레이어들은 모두 한 가지의 스킬북을 지원받은 상태였다.


물론, 마나 대신 수명을 소비하는 양산형 쓰레기들이었지만.


“H-97. H-97번 플레이어는 단상 위로 올라와 주세요.”

“어? 저 사람, 어제 그 사람 아니야?”

“금색 나온 사람? 맞네. 근데 왜 가면은 왜 쓰고 있는 거야?”

“쟤는 튜토리얼 때 마법사로 전직했다던데, 무슨 마법을 쓰려나?"


진행자가 번호를 호명하자 관중석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고, 한시아는 단상 위로 올라섰다.


"제한시간 1분, 시작합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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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법사가 되기 위한 조건 +5 21.07.26 1,549 8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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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브 +3 21.07.26 1,756 98 12쪽
3 회귀 +5 21.07.26 2,071 20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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