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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준 님의 서재입니다.

개 같은 견주에게 죽고 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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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준
작품등록일 :
2023.12.2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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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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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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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시즌2 3. 의뢰자 이강현 (1)

DUMMY

“너 뭐야! 왜 나한테 이런 이상한 알바 시킨 거야!”


송시현이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소리를 질렀다.


송시현의 꾀에 넘어가 김남운은 미행한 건 나인데, 송시현에게 전부 죄를 떠넘기고 싶었다.


스스로 너무 창피했기 때문이다.


“왜 그래?”


송시현은 목소리에서도 웃는 기색이 나타났다.


여유로웠다.


나는 송시현에게 김남운과 있었던 일을 설명하며 나머지 화를 쏟아 냈다.


“미행도 들키고, 너 때문에 나만 창피를 당했잖아! 장난이지? 미행 알바라는 거 다 거짓말이고, 넌 날 가지고 장난친 거야? 맞지?”

“아, 역시 계획대로네.”


어째서인지 송시현은 좋아했다.


그 반응에 나는 기분이 안 좋아졌다.


“뭐? 계획? 너 진짜······.”


내가 한마디 하려고 하자 송시현이 말렸다.


“잠깐만. 일단 진정해.”


송시현이 목소리에 웃음기를 거두면서 말했다.


그러나 진정하라는 말에 나는 더 흥분하여 날뛰었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진정해? 나는 바보가 되고, 너만 좋은 꼴 되었잖아. 네 말 듣는 게 아니었어. 그러면 이런 시간 낭비는 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시간 낭비라니?”


내 말을 잠자코 듣던 송시현이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난 너한테 장난친 적 없어. 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이야.”

“거짓말. 누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기다려. 네가 보내준 계좌로 돈 입금해 줄 테니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상대가 송시현이라면 삼십만 원을 준다고 해 놓고서 삼만 원을 입금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기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확인해 봐.”


하지만 잠시 후에 통장 내역을 확인해 보니, 정말 송시현 이름으로 삼십만 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어? 뭐야, 이거?”

“약속했잖아, 삼십만 원 준다고. 이제 내가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


나는 송시현에게 뭐라고 한 게 창피해서 말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돈 때문에 화냈다가 또 돈 때문에 화가 풀리다니. 너무 창피하다, 나.’


내가 말이 없자 송시현이 나에게 불쑥 말을 꺼냈다.


“너 지금 어디야? 만나서 이야기하자.”

“나 지금 집 앞인데.”


나는 송시현이 있는 곳으로 가기 귀찮아서 은근슬쩍 직접 오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송시현은 바로 눈치챘다.


“내가 지금 거기로 갈게. 문자로 주소 보내줘.”


전화가 끊겼다.


‘뭐야, 얘?’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송시현에게 내가 사는 아파트 이름을 알려 주었다.


-금방 갈게.-


송시현이 답장을 보냈다.


나는 대꾸 없이 놀이터 그네에 앉아 시간을 때웠다.


‘진짜 오려나······?’


송시현이 정말로 올지, 안 올지 반신반의하면서.



***



“전예은!”


여름 저녁 날씨가 추워서 몸을 덜덜 떨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송시현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네에 앉아 뚱하게 송시현을 쳐다보았다.


몇 분 내로 안 오면 집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에 송시현이 나타났다.


“타이밍이 기가 막히네.”


내가 작게 중얼거리는 걸 송시현은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근데 너 안 춥냐?”

“추워.”


송시현이 나에게 캔 커피를 건넸다.


“자.”


겉을 만져 보니 따뜻했다.


자기를 기다리느라 내가 추워할까 봐 편의점에서 일부러 사 온 듯했다.


‘센스는 인정!’


내가 캔 커피를 받고 손을 녹이고 있는데, 송시현이 겉옷을 벗어 주었다.


“덮고 있어.”

“어? 괜찮―.”

“―덮어.”


송시현은 그 말을 하며 내 어깨 위에 자기 잠바를 걸쳤다.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뭐지?


호의라기에는 너무 지나친 거 아닌가?


‘얘 설마 나 좋아하나?’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송시현 같이 잘생긴 아이가 평범하게 생긴 나를 좋아할 리는 없었다.


‘아니, 송시현은 원래 이런 애야. 그래서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거고.’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은 이성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고마워.”

“뭘.”


송시현이 싱긋 웃었다.


“추워 보이는 것 같으니까 최대한 빨리 끝낼게.”


그렇게 말하고, 송시현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에게 김남운 미행을 시킨 건 장난이 아니라 확인할 게 있어서였어.”

“확인? 뭘 확인하는데?”

“네가 미행을 들켰을 때 김남운이 보일 반응. 그게 궁금했어.”


그럼 내가 미행을 들킬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야?


“뭐야, 그게!”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나를 완전 바보로 아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내 말 좀 끝까지 들어봐.”


송시현이 부탁했다.


“사실 나는 지금 다니는 학교에 전학 오기 전부터 김남운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었어.”


그래서 전학 오자마자 김남운의 이름을 입에 올렸던 거구나.


머릿속에 그럴 리 없는 생각이 하나 들었다.


잠깐만, 그러면.


“······혹시 우리 학교에 전학 온 거, 김남운과 관련 있는 거야?”

“역시 여자는 날카롭네.”


송시현은 부정하지 않고 순순히 인정했다.


“맞아. 나는 일부러 이 학교에 전학 왔어. 김남운을 가까이에서 감시하고, 조사하고 싶었거든.”

“대체 뭘 감시하고, 뭘 조사하는데?”

“김남운은 살인 사건 용의자야. 그놈은 이미 여러 차례 살인을 저질렀지만, 경찰에 체포되지 않았어. 나는 김남운이 또 살인을 저지르지 않도록 감시하고, 혹시라도 내가 놓친 중요한 부분이 있나 확인하러 온 거야.”


살인 사건 용의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김남운이 용의자인 사건 이름이 뭔데? 증거 있어?”

“증거는······.”


송시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없어.”


나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그럼 못 믿어. 증거가 있어도 믿기 힘든 이야기인데, 네 말만 듣고 내가 어떻게 김남운이 살인자라는 걸 믿을 수 있겠어?”


송시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렇게 나오는 것도 이해가 돼. 솔직히 내가 너라고 해도 이 이야기는 믿기 힘들 거야.그 사건과 관련된 관계자가 아니면 믿기 힘들지. 충분히 이해해.”


나는 송시현이 미쳐서 나에게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닐까 의심이 되었다.


내가 자기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는 걸 눈치챈 송시현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렇게 봐? 내가 미친 것 같아서 그래?”

“아니, 딱히 그렇지는······.”


나는 거짓말이 서툴렀다.


송시현의 밝은 미소가 어느새 슬프고 씁쓸한 미소로 바뀌어 있었다.


“······.”


분위기가 가라앉자 내 입이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내가 너무 대놓고 송시현을 미친 사람 취급했나 싶어서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근데 그 사건을 왜 네가 조사해? 난 믿지 않지만, 네가 김남운이 저질렀다는 사건의 피해자라도 돼?”


송시현이 닫혀 있던 입을 뗐다.


“난 피해자가 아니야. 관계자는 더더욱 아니고.”


송시현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의문이 생겨났다.


“그럼 대체 왜? 너랑 아무 상관도 없는 일에 왜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져? 너한테 무슨 이득이 있다고?”


내 물음에 송시현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사실 난 탐정이야. 얼마 전에, 김남운의 실체를 밝혀 달라는 의뢰를 받았어.”

“의뢰?”


그나저나 21세기에 웬 탐정?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송시현이 금세 말을 이었다.


“아, 물론 탐정이라고 말한 건 과정해서 말한 거야. 지금 이 세계에는 탐정이 없지. 실은 나, 심부름 센터에서 일하거든.”

“뭐어?”


이번에는 정말 깜짝 놀랐다.


고등학생이 심부름 센터에서 일한다는 말을 처음 들어보았다.


“거기, 조폭들이 모여 있는 데 아니야?”


심부름 센터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조폭들이 떠올랐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려. 조폭이 운영하는 건 맞지만, 다 착한 사람들이야. 직접 만나 보면 그동안의 네 생각이 편견이었다는 생각이 들걸?”

“그, 그런가······?”


송시현은 조폭들을 동료로 두고 있었다.


착한 조폭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해서 나는 열심히 눈동자를 굴렸다.


말을 잘못했다가는 산 채로 구덩이에 묻힐 것만 같았다.


그 모습에 송시현이 쿡 웃었다.


“그렇게 긴장하지 마. 내가 조폭이라는 말이 아니니까. 넌 그냥 평소대로 행동하면 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좋아.”

“으응······.”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송시현에게 김남운의 실체를 밝혀 달라고 의뢰한 사람의 이름이 궁금했다.


듣는다고 해도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어떤 사람이 송시현에게 그런 의뢰를 한 걸까? 김남운의 실체를 밝혀 달라는 의뢰라니······.’


김남운이 살인자라는 송시현의 말은 여전히 믿지 않지만, 궁금한 건 궁금한 거였다.


“그 의뢰자 이름이 뭐야?”

“응?”

“너한테 의뢰했다고 한 사람 있잖아. 그 사람 이름이 뭐냐고.”


송시현이 약간 곤란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거 아니라고 말하려는데, 송시현은 금방 입을 열었다.


“의뢰자 이름은―”


나는 송시현 입에서 과연 어떤 이름이 나올까 집중해서 들었다.


송시현은 자기에게 사건을 의뢰한 의뢰자의 이름을 차분하게 입에 올렸다.


“―이강현이야.”


나는 그 이름을 어디에서 들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으음. 모르는 이름이야.”


아무리 기억력이 한계치까지 올려도 이강현이라는 이름은 알지 못했다


내가 신중하게 생각한 후에 말하자 송시현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푸핫 웃었다.


“그야 그렇겠지! 연예인도 아니고 일반인이니까! 모르는 게 당연한 거야.”

“그래도 이름을 들으면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조금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뭐,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


송시현은 내가 무안하지 않게 잘 넘어가 주었다.


나는 내가 의뢰자의 이름을 알고 있어도 되는 건가 싶어, 송시현에게 물었다.


“그런데 나한테 그 의뢰자 이름을 알려줘도 괜찮아? 물론 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싫어하지 않을까?”

“강현이? 강현이는 괜찮아. 걘 마음씨가 넓거든.”

“아, 그래? 그럼 다행이다.”


내가 안심하는 모습을 본 송시현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넌 믿을 만한 사람이야. 상대가 네가 아니었다면 난 의뢰자 이름을 말하지 않았을 거야. 널 믿으니까 말한 거지.”

“뭔가 고맙네······.”


나는 송시현이 나를 너무 좋게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생각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송시현은 지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너 나랑 같이 일해 볼래?”

“응?”


가만히 있던 나는 송시현에게 동료가 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하지만 송시현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마침 우리 쪽에 여자가 한 명 필요했는데, 전학 와서 널 만난 게 참 절묘하단 말이지. 난 이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하는데. 넌 어때?”


그렇게 말하며 묻는 송시현 앞에서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라고 말할 수 없었다.


송시현의 말을 듣고 생각을 해 보니 정말 이것도 인연이기는 인연인 것 같았다.


‘첫 만남 때는 내가 조금 오해를 했지만.’


어제 내가 생각한 송시현의 모습과 오늘 내가 본 송시현의 모습은 180도 달랐다.


어쩌면 송시현이 학교에서 보인 가볍고 쾌활한 성격은 연기이고, 지금 내 눈앞에서 보이는 무겁고 진지한 모습이 진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좋아!”


말하고 있는데, 중간에 송시현이 벌떡 일어나서 말을 멈추었다.


“우리 같이 이강현 만나러 가자!”

“어?”


내가 그 말을 듣고 당황하는 사이, 이미 송시현은 내 손을 잡아서 나를 그네에서 일으켜 세웠다.


“잠깐 통화 좀 할게~.”


그리고 내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이강현이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강현아. 나야.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내가 우리 계획에 딱인 적임자를 찾았거든. 지금 같이 거기로 가려고 해.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 손해야. 왜냐하면―.”


나는 송시현이 이강현과 통화하는 내용을 옆에서 다 듣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목소리를 들으니 남자였다.


꽤 묵직한 목소리였다.


송시현은 길을 걸으면서 한참 동안 통화를 했다.


이강현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의뢰자는 김남운 사건의 관계자가 더 생기지 않기를 원했는데, 송시현이 포기하지 않고 설득을 했다.


“저기, 송시현. 그 사람이 싫어하면 너무 그렇게 안 해도······.”


내가 눈치를 보자 송시현은 괜찮다고 말하며 설득을 이어갔다.


마침내 이강현이 알겠다고, 집으로 오라고 말했을 때, 나와 송시현은 딱 이강현의 아파트에 도착한 상태였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송시현이 미리 나를 데리고 이강현의 집 쪽으로 간 것이었다.


“드디어 설득했네.”


근데 여기서 진짜 웃긴 거 한 가지.


난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거!


‘같이 일한다고 말 안 했는데. 아직 결정도 못 내렸는데······.’


그러나 송시현은 내 의견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나를 이끌었다.


송시현은 아파트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에야 자기가 내 손을 잡고 있다는 걸 깨닫고, 빠르지만 천천히 손을 놓았다.


“미안. 계속 잡고 있었네.”

“아니, 괜찮아.”


기분 나쁠 만한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불쾌하지 않았다.


‘따듯했어······.’


그런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 벽에 좌우로 붙은 거울로 보았다.


볼이 조금 빨개진 소녀가, 창피한 듯 수줍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그리고 그 뒤에서 송시현이 거울을 통해 나를 보고 있었다.


송시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싱긋 웃었는데, 나는 창피함에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얼굴이 완전 홍당무가 되었다.


나는 내가 너무 송시현 좋을 대로 이용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송시현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복도 맨 끝에 있는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난 당연히 초인종을 누르려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송시현은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눌러서 문을 열고, 내가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어? 비밀번호를 알고 있네?’


그러고는 큰 소리로 이강현을 불렀다.


“이강현! 나 왔어!”


으악!


나는 너무 창피해서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고개를 푹 숙였다.


대리 수치심.


송시현이 낸 소리가 복도 전체에 울렸다.


나 왔어, 나 왔어, 나 왔어, 나 왔어······.


“야, 조용히 해. 시끄러워.”


목소리가 들리더니, 욕실에서 한 남자아이가 나왔다.


막 샤워를 하고 나왔는지, 하얀색 목욕 가운을 입고 있었다.


이강현은 수건으로 머리를 박박 문질러 말리면서 말했다.


“내가 큰소리로 이름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창피하다고.”

“아, 미안미안. 까먹었어.”


송시현이 웃으며 사과했다.


전혀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넌 맨날 까먹지.”


그 말을 하며 이강현은 나를 보았다.


나는 의뢰인이 막연히 어른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강현은 나와 송시현 또래의 남자아이였다.


동갑인 것도 같았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지만, 어른에게는 있는 성숙함이 보이지 않았다.


“얘야?”


이강현이 나를 힐끔 보았다.


나는 어색하지만 용기를 내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

“어.”


이강현은 짤막하게 대꾸하고는 고갯짓을 했다.


“문 닫고 들어와, 거기 계속 서 있지 말고. 바람 들어오잖아.”


목욕 가운 차림의 이강현은 바람 때문에 추운지,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어어······!”


나는 급히 현관문을 닫았다.


내가 조심스레 신발을 벗자 이강현은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쾅!


방문 닫히는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불안해하며 송시현에게 물었다.


“화, 화난 거 아니지······?”

“응, 아니야. 쟨 원래 저래. 성격이 까칠하거든. 네가 이해 좀 해줘.”

“아, 응. 그런 거면 다행이지.”

“여기 앉아. 추우면 담요 가져다 줄까?”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송시현이 방에 들어가 담요를 가지고 왔다.


‘담요가 어디 있는지도 알아? 뭐지, 얘?’


나는 송시현이 이강현의 집 구조를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강현이랑 많이 친해?”


담요로 무릎을 덮으면서 한 질문이라 송시현은 내가 뭘 궁금해하는지 바로 눈치챈 듯했다.


“응.”


한 마디 덧붙였다.


“나 여기서 살거든.”

“······뭐?”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송시현이 웃으며 답했다.


“참고로 저기 내 방이야.”


송시현은 방금 자기가 들어갔다가 나온 방을 가리켰다.


“당연히 그 담요는 내 거고. 하지만 깨끗이 빨아서 아직 안 쓴 거니까 안심해.”

“그런 걸로 일일이 불쾌해하지는 않아.”


나는 그렇게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송시현이 너무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아서였다.


“다행이네.”


송시현은 그런 내 무던함에 좋은지 싱긋 웃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이강현이 나왔다.


“야.”


처음에는 나를 부르는 건가 싶어 긴장했는데, 다행히도 이강현의 시선은 내가 아닌 송시현에게로 향해 있었다.


“네가 설명해. 빨리 끝내게.”


왜 자꾸 짜증을 내나 했더니, 피곤해서 그런 듯했다.


‘하긴. 벌써 저녁 시간이니까.’


그러고 보니 7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저녁을 먹지 못했다.


‘배고프네.’


벽시계를 보며 속으로만 생각했는데, 눈치 빠른 송시현이 구세주처럼 나섰다.


“알았어. 근데 배고프지 않아? 우리 뭐 좀 먹으면서 대화할까?”

“난 배 안 고파.”


이강현은 큰 덩치만큼이나 눈치가 없었다.


“내가 배고파서 그래.”


반대로 송시현은 눈치가 정말 빨랐다.


집주인의 못마땅한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냉동실에서 햄버거 세 개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



위이잉~.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소리가 적막한 집 안에 시끄럽게 울렸다.


송시현이 햄버거를 데우는 동안, 나는 이강현과 어색하게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이강현이 먼저 물었다.


“이름.”


조금 더 다정하게 물어보면 좋을 텐데.


“전예은이야.”

“전예은······.”


이강현이 내 이름을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이강현이 다리를 꼰 채로 부엌에 있는 송시현 쪽을 보고 있을 때, 이강현의 팔과 다리를 보았다.


‘······진짜가 아니야.’


멀리서 봤을 때는 잘 몰랐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가까이에서 보니 모를 수가 없었다.


이강현은 양팔과 양다리에 의수와 의족을 끼고 있었다.


‘어떻게 사지가 다······.’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사지를 의수와 의족으로 대체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사고, 였을까?’


내가 너무 빤히 쳐다봤는지, 내 시선을 느낀 이강현이 나를 보았다.


나는 내가 너무 무례했다고 생각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그 아이는 픽 웃더니, 내 쪽으로 자기 손을 들이밀었다.


“이거, 김남운 짓이다.”


그 말을 하고 이강현은 뭐가 웃긴지 혼자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이강현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조금 둔한 나는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야 이강현이 웃는 게 아니라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전부 그 괴물 새끼가······!”


손에 의해 가려져 있던 눈이 자유를 갈망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헉!’


나는 사람의 눈을 보고 처음으로 살기를 읽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은 처음 경험했다.


‘무서워······.’


왜인지 그때, 나는 이강현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저 아이를 함부로 건들면 죽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지배했다.


“이강현.”


타이밍 좋게 나타난 송시현이 이강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


송시현의 손길에 이강현이 천천히 정신 차렸다.


이강현이 고개를 들자 송시현은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조용히 내렸다.


“햄버거 다 데워졌어.”


그리고 이강현의 앞에 햄버거를 내려놓았다.


이강현은 자기 앞에 놓인 햄버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강현의 덩치와 비교하니, 그 햄버거는 먼지처럼 작게 보였다.


‘저 덩치에 하나로는 안 될 것 같아. 적어도 세 개는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언제 내려놓았는지, 내 앞에도 햄버거 하나가 놓아져 있었다.


“고마워.”


나는 송시현에게 말했는데, 송시현의 반응은 알쏭달쏭했다.


‘아.’


송시현이 너무 자연스럽게 행동해서 몰랐다.


이곳은 이강현의 집이었다.


“저기, 잘 먹을게······.”


나는 이강현의 눈치를 보며 햄버거를 집어 들었다.


배가 고팠기에 창피해도 어쩔 수 없었다.


먼저 먹는 수밖에.


‘맛있다!’


나는 햄버거를 한 입 먹고 놀랐다.


냉동실에 있길래 당연히 싸구려 햄버거인 줄 알았는데, 맛이 너무 좋았다.


뭐지, 하며 햄버거 포장지를 보자 유명한 햄버거집의 로고가 보였다.


‘이거 엄청 비싼 거잖아!’


나는 놀라서 이강현을 보고 송시현도 보았다.


이강현은 햄버거의 맛이 익숙한지 별 반응 없이 먹었는데, 송시현은 달랐다.


나와 눈이 마주친 송시현이 물었다.


“맛있지?”

“엄청!”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다소 흥분하는 경향이 있었다.


흥분한 내 모습을 보고 송시현이 싱긋 웃었다.


“많이 먹어. 냉동실에 아주 많아.”

“왜 그렇게 많아?”

“우리 둘 다 요리를 못하는데, 매일 배달 음식 시키는 게 귀찮아서 한번에 시킬 때 많이 시키거든. 그러다 보니까 피자나 치킨, 햄버거, 이런 것들이 냉동실에 많이 쌓여 있어. 먹고 싶을 때마다 꺼내 먹으면 돼.”


그 말을 하고 송시현은 이강현을 보았다.


집주인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어? 벌써 다 먹었네?’


이강현은 먹는 속도가 빨랐다.


나는 겨우 3분의 1을 먹었는데, 벌써 햄버거 한 개를 다 해치웠다.


“한 개로 되냐?”


배가 안 고팠다가도 맛있는 걸 먹으면 다시 배가 고파진다.


이강현은 질문을 해 놓고서 나나 송시현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주방으로 갔다.


감자 튀김과 피자를 따뜻하게 데워서 내 앞에 내려놓았다.


“많이 먹어라.”


그 말을 하는 이강현의 얼굴은 살짝 빨개져 있었다.


손님이라서 챙겨 줬는데, 자기가 말해 놓고도 꽤 창피한 듯했다.


“고, 고마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서 내 얼굴도 살짝 빨개졌다.


송시현이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뭐야, 둘이 연애해?”


이강현은 송시현에게 말없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송시현은 이강현의 그런 반응에 낄낄 웃었다.


둘이 말다툼을 시작했다.


나는 남자 두 명이 유치하게 싸우는 동안, 마음에 흡족한 저녁 식사를 했다.



***



햄버거와 감자 튀김, 피자를 다 먹고 나서 이강현을 보았다.


‘까칠해서 그렇지, 좋은 애였어.’


어쩌면 이강현은 겉으로 보이는 차가운 인상과는 달리, 무척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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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견주에게 죽고 신이 되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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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즌2 3. 의뢰자 이강현 (1) 24.08.12 44 1 23쪽
32 시즌2 2. 미행 알바 24.08.11 43 1 16쪽
31 시즌2 1. 이상한 애 24.08.10 42 1 14쪽
30 시즌2 0. 전학생 24.08.10 45 1 3쪽
29 28. 휴식 24.08.09 50 1 13쪽
28 27. 배보다 배꼽이 더 크면 벌어지는 일 (3) 24.08.08 52 1 12쪽
27 26. 배보다 배꼽이 더 크면 벌어지는 일 (2) 24.08.07 51 1 13쪽
26 25. 배보다 배꼽이 더 크면 벌어지는 일 (1) 24.08.06 54 1 11쪽
25 24. 초대형견과 가출견 24.08.05 58 1 12쪽
24 23. 목줄 사건 24.08.04 67 1 12쪽
23 22. 돼지 껍데기 남자 (3) 24.08.03 70 1 15쪽
22 21. 돼지 껍데기 남자 (2) 24.08.02 73 1 11쪽
21 20. 돼지 껍데기 남자 (1) 24.08.01 78 2 11쪽
20 19. 이강현의 협박 24.07.31 86 0 19쪽
19 18. 일진 사냥3 -이강현3- 24.07.30 81 1 11쪽
18 17. 일진 사냥3 -이강현2- 24.07.29 87 1 11쪽
17 16. 일진 사냥3 -이강현1- 24.07.28 94 2 13쪽
16 15. 일진 사냥2 -안재호3- 24.07.27 97 2 13쪽
15 14. 일진 사냥2 -안재호2- 24.07.26 97 2 11쪽
14 13. 일진 사냥2 -안재호1- 24.07.25 9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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