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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연재수 :
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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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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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수 :
505,603

작성
20.07.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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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6.

DUMMY

광호는 손을 흔들었다. 멀어져가는 희서가 고개를 돌려 그런 광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희서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광호는 한껏 웃던 얼굴을 굳히고 뒤를 돌았다. 광호의 뒤에는 연우와 함께 있던 철가면을 쓴 남성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연우님이 찾으신다.”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같이 좀 가자.”


광호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 빛에는 묘한 흥분감과 드디어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열망이 담겨 있었다.


“얼마든지요.”


올라가는 입꼬리를 진정시키느라 광호의 안면근육이 달싹였다.

철가면을 낀 남성을 따라 광호는 우들동의 버려진 폐교로 들어섰다. 넓은 흙바닥 운동장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둘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철가면이 조회대 단상 밑에 있는 작은 쪽문을 열어 대타 업체의 내부로 광호를 안내했다.


“저 처음 와봤어요.”


그제야 광호는 입을 열었다.


“신기한가?”

“엄청요. 제가 여기를 들어오려고 얼마나 애썼는데·········. 이렇게 올 줄이야.”


낡은 전등에 의지한 채, 복도를 따라 걸어가자 저 멀리서 난데없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인가 끊어지고 으스러지는 소리는 덤이었다.

광호는 당장 저 해괴한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속된 말로 ‘가오’가 상할까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불안하게 철가면을 쓴 이 남자는 자꾸만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정확히 열 걸음 남짓한 거리에 열린 문밖으로, 허연 빛줄기와 함께 다시 한 번 커다란 비명소리가 들렸고, 드디어 광호의 ‘가오’가 무너져 내린다.


“저, 저기요!”

“응?”


남자가 돌아보았다. 철가면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불쾌한 투였다.


“저기로 가려는 건 아니죠?”

“저기?”


철가면이 고개를 돌려 광호가 의미하는 곳을 바라본다. 그리고 알았다는 듯.


“아.”


라고 한번 말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구경할래?”


어느새 문 앞까지 걸어간 그가 광호에게 물었다.

광호는 침을 한 번 크게 삼키고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멈추면 지금까지 한 게 다 개지랄이었던 거잖아. 움직여! 움직여!’


광호가 후들대는 다리를 옮겼다. 그리고 남자가 서 있는 문 앞에 간신히 차렷 자세로 서서 눈을 뜬다.


“으으······.”

“뭐하냐?”


실눈을 뜰까 말까 애쓰고 있는 광호의 어깨 위에 손을 두르며 남자가 과감히 안으로 밀어 넣는다.


“할배, 할매~ 뭐해?”


남자가 그렇게 외치자 섬뜩한 소리와 비명이 멈춘다. 그리고 그 대신 성별이 다른 나이 지긋한 목소리 두 개가 들려왔다.


“뭐야?”

“철가면 아냐?”


목욕탕을 연상시키는 바닥과 천장. 그리고 벽지까지.

환자용 침상이 여러 개 벽면에 붙어 있고, 반대쪽 벽면에는 안치실로 보이는 시설이 놓여있다.

두 목소리는 그 가운데, 조금 굵은 하얀 비닐이 쳐진 의미심장한 공간 속에서 들려왔다.


“철가면이냐!”

“그럼 누구겠어?”

“나는 연우 녀석인 줄 알았지.”

“연우님은 다음 주에 오실 거야.”


고무장갑을 벗는 소리가 들려온다.


“잠깐 기다려.”

“예~ 예~”


철가면을 쓴 남자가 두 손을 들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광호를 내려다본다.


“곧 나오실 거다. 너랑 같이 일하실 분들.”

“저랑요······?”


광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철가면을 본다. 그러다 그의 말이 뜻하는 의미를 깨닫고 얼굴이 환해진다.


‘같이 일할 분! 같이, 일!’


그리고 고개를 돌려 하얀 비닐이 거두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는 수술용 복장을 한 두 사람이 마스크를 벗으며 나오고 있었다. 자글자글한 주름과 검버섯이 따개비처럼 나 있는. 70~80대 정도는 돼 보이는 정말 나이 지긋한 분들이셨다.

그들이 바로 대타를 제작하는 왕철과 이덕순 부부였다.


“철가면이. 옆에는 뭐냐?”


손을 씻으며 왕철이 물었다. 그의 말에 덕순도 궁금했는지 옆에서 손을 씻다가 고개를 빠끔히 내밀어 광호를 바라본다.


“참하게 생겼네.”

“그렇지? 이래저래 만지면 특급 대타가 될 것 같은데?”

“에헤이!”


철가면이 두 사람의 말을 끊는다.


“새로 들어올 뒤처리 반인데, 대타로 만들지 마쇼.”

“아, 얘가 이수 녀석 따까리야?”


손을 털며 왕철와 덕순이 광호에게 다가와 이리저리 몸을 만지기 시작한다.


“근육은 괜찮고.”

“심장 박동도 들을 만 하구만.”


이해하려고 할수록 어려운 말들만을 뱉던 둘을 철가면이 간신히 떨어트려 놓는다.


“그건 그렇고 제아는 어디 있어요?”

“꼬맹이?”

“걔 자고 있을걸?”


왕철와 덕순의 눈이 안치실로 향한다.

철가면이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돌린다.


“애 정서 망치게 이상한 거 알려주지 마요.”

“저기가 얼마나 편한데. 정신 수양하는 데도 딱이고, 생각 정리할 때도 딱이야.”

“암!”


광호는 이 분위기에 속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했다. 그런 광호의 어깨에 철가면이 손을 올려 안심시킨다.


“조급해 하지 마라. 아직 들어온 것도 아니니까 천천히 해.”

“······네.”


광호가 그런 철가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답했다.

어수선한 대화가 그 후에도 한참 이어졌다. 철가면이 두 늙은이에게 질린다는 말을 뱉어내고서야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대타 업체에 들어온 지 약 한 시간 만에 광호는 드디어 연우를 만날 수 있었다.


“어서 와.”


서리처럼 차가운 눈. 고결하게 빛나는 짧은 머리카락. 별처럼 박힌 눈 밑의 점. 완벽히 맞아 떨어지는 슈트.

광호는 입을 다무는 것도 잊고 감탄하고 말았다.


“오랜만이네?”


연우가 웃으며 광호에게 물었다.

광호의 얼굴이 붉어진다.


“아, 네. 그렇네요.”

“앉으렴.”


연우가 손짓하자, 어느새 광호의 뒤에 의자가 마련돼 있었다. 철가면이 소리도 없이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광호는 조심스럽게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의자에 앉았다.


“그래. 지금까지의 보고를 먼저 들어볼까?”


광호는 주먹을 꽉 쥔다. 온몸의 근육이 긴장하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때가 왔다!’


광호는 긴장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네!”


그런 광호가 귀엽다는 듯, 연우는 여유로운 미소를 품고 질문을 시작했다.


“학교생활은 어때? 꽤 재미있는 일을 벌이고 있던데.”

“아아, 그거요?”


광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뭐라도 하고 있으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조금.”

“정확히 뭘 한 건데?”


연우의 말에 광호가 손가락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말한다.


“좋아하는 애가 생겨서. 그런 거죠. 좋아할수록 괴롭히는 거.”

“그러니?”

“네.”


광호의 눈이 순식간에 광기로 물든다.


“보스도 아시죠? 어떤 기분인지.”


연우는 그 말에는 대답을 아꼈다.


“내가 부른 이유는 알겠지? 보고를 받겠다는 것도.”

“네, 당연하죠.”

“이제부터 그런 어린애 장난에서는 손 떼. 네가 만든 조직도 모조리 해산시키고. 이해했지?”


광호의 표정이 밝아진다. 참아왔던 웃음을 당장에라도 터트릴 것만 같았다.


“네.”


연우가 철가면에게 손짓한다. 철가면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그녀의 손짓을 정확히 알아듣고 준비해 놨던 가방 하나를 광호에게 건넨다.


“받아.”


광호가 철가면과 연우를 번갈아 바라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가방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철가면의 눈빛을 따라 가방을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백이수가 쓰던 휴대폰과 칼이다. 이제 네 것이야.”


백이수의 백색 스마트폰. 그리고 온통 새까만 팔뚝 정도의 회칼이었다.

광호는 조심스럽게 두 물건을 손에 쥐어본다.


“그 폰에는 어플 하나가 깔려 있어. 거기엔 앞으로 널 죽일 사람의 이름이 뜰 거야.”

“저를 죽이는 사람이요······?”

“그래.”

“왜 죽일 사람이 뜨는 거죠?”


연우가 의자에 몸을 기대고 다리를 꼬았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타겟은 따로 문자가 갈 거야. 다만 그 일을 하는 와중에 생기는 앙금은 우리로서는 파악하기 힘들어.”


연우의 손이 광호를 가리킨다. 정확히 그가 들고 있는 휴대폰을 가리킨다.


“그걸 파악해 주는 게 백이수의 휴대폰에 깔린 어플, ‘살인앱고’야.”


그렇게 자기가 말하고 연우는 몸을 떨었다.


“어우, 얘는 왜 이런 이름으로 지어가지고 사람 부끄럽게 하니?”

“제, 제가 말할 걸 그랬나요?”


철가면은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조아리며 물었다.

연우는 그런 그에게 됐다는 손짓을 했다.


“아냐, 됐어. 다음에 이 녀석 오면 이름 바꾸라고 단단히 일러놔야겠다.”


연우는 황급히 헛기침을 몇 번 했다. 분위기가 다시 진지하게 돌아온다.


“어쨌든 그 어플이 네 생명을 보존해 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제 애들 장난은 끝났다는 말이 이거군요?”

“맞아. 넌 이제 진짜 생존사회에 들어온 거야.”

“생존사회···”


연우는 고개를 끄덕인다.


“부디 대타의 얼굴로 다시 보지 않길 바란다.”


광호는 대답 대신 백이수의 칼을 굳게 쥐었다. 그런 그의 앞으로 종이봉투 하나가 던져진다. 발끝에 정확히 닿은 갈색의 두툼한 봉투를 광호가 내려다본다. 연우의 눈치를 보며 그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집어 올렸다.


“이번 네가 노릴 타겟이야. 첫 임무.”


광호가 뜯어본 봉투에는 한두 명이 아닌 여럿의 사진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렇게 많이요?”

“미안한 일이지만, 한동안 백이수가 없어서 일이 밀려서 그래. 보수랑 대우는 확실히 해줄 테니까 부탁할게.”


부탁이라는 말에 광호는 몸을 떨었다.

드디어. 드디어 자신이 빛을 보고 날뛸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생각에 환호했다.


“맡겨만 주세요!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연우는 미소를 품은 채 그런 그에게 말한다.


“고맙군.”


그리고 이어서.


“대부분이 대타용 시체를 구하는 임무니까, 1층으로 내려가 왕철이랑 덕순을 만나보는 게 좋을 거야.”

“이미 아까 안면은 텄습니다.”


철가면의 말에 연우의 표정이 한층 밝아진다.


“아, 그래? 잘됐네. 거기 제아라는 애랑도 친해지면 편할 거야.”

“보통은 뒤처리 반이랑 대타 제조업자는 한 페어거든.”

“아아······.”


광호가 철가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했다는 의미였다.


“그럼 이제 가봐.”


광호가 벌떡 일어나 90도로 허리를 꺾어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가방과 봉투를 챙겨 서둘러 나간다. 문을 닫으려는 광호에게 연우는 나지막이, 말한다.


“다음엔 내가 먼저 부르기보다는 네 쪽에서 결과를 가져오길 바랄게.”


굳게 닫히는 문에서 광호의 대답이 그대로 느껴졌다.


작가의말

드디어 종강을 했습니다.

대학생에게는 잠시나마의 휴식 시간을 갖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휴식기를 맞이 했나요?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어디도 못 가게 돼서 슬프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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