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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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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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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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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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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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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0.

DUMMY

찰칵.

앙상할 정도로 얇은 검지 끝이 셔터를 누르는 것과 동시에 플래시가 터졌다.


“그래도 순순히 따라와 주셨네요?”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곧바로 사진을 토해냈다. 흔히 예술가라는 걸 뽐내기 가장 좋은 머리 모양을 한 사내가 동그란 안경을 고쳐 올렸다. 그는 방금 토해진 사진을 여러 차례 흔들어 열기를 식혔다.


“아아, 잘 나왔어요. 기쁘네요.”


그가 인화된 사진을 눈앞에 두며 말했다. 그리고 사진 안과 뒤로 의자에 앉아 두 팔과 다리가 묶여 있는 희서와 자윤을 더듬듯 바라봤다.


“조구현. 약속은 지킬 거지?”


자윤이 그의 시선을 끊어내듯 이를 갈며 물었다.


“물론이죠. 누님과의 약속을 깨진 않아요. 아리따운 소녀에게는 손 데지 않겠습니다. 다만 사진만은 계속 찍을게요.”


조구현.

15살부터 취미로 시작해 20세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떠오른 젊은 사진작가. 두려우면서도 연민이 느껴지는 그의 사진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전율과 순수한 아름다움의 눈물을 선사해 악마와 같다는 평을 들었다.

지금도 그가 자랑스레 등 뒤에 걸어놓은 사진인 ‘악마의 선율이 흐르는 아이’는 그에게 ‘파가니니’라는 이명과 함께 막대한 부를 선사해주었다.


“저 아이도 이런 식으로 찍었어?”


자윤이 그의 뒤에 걸린 걸작을 보고 물었다.

조구현은 그녀의 말에 슬쩍 뒤를 돌아 자신의 작품을 만족스럽게 바라본다.


“그럼요. 저 기괴한 포즈. 또렷한 공포를 품은 얼굴. 그러면서도 더 없이 벗어나고 싶은 순수함이 들어찬 눈. 제가 아니면 저 아이의 저 천재적인 모습을 끌어내지 못했을 겁니다.”


짙은 푸른색의 셔츠 위로 와인색의 조끼 정장을 입은 그가 유명한 메이커의 구둣발 소리를 내며 다시 사진을 찍을 자세를 취했다.


“제가 하는 일은 예술의 진보이자, 세계의 축복이지요.”


음흉하게 올라가는 입꼬리에 자윤은 얼굴을 구겼다. 그러자 조구현이 카메라에서 얼굴을 떼고 딱딱한 얼굴로 자윤을 노려본다.


“누님. 이러실 거예요?”

“미친 새끼.”


조구현의 구둣발이 망설임 없이 발자국을 찍어댄다. 그리고 거침없이 들린 오른손이 자윤의 뺨을 내리쳤다.

차진 소리가 희서의 오른쪽 고막을 강타했다. 두 눈을 질끈 감은 희서가 차마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끙끙거렸다.


“누님은 건들지 않겠다는 조건은 없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땐 얼굴을 피셔야죠.”


후두둑.

코에서 터져 나온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조구현이 탄식을 내뱉으며 자윤의 얼굴 앞으로 바투 다가왔다. 그리고 자윤의 턱을 붙잡고 이리저리 살폈다.


“쯧, 쯧. 이거 보세요. 아름다운 얼굴에 상처가 났잖아요. 누님 사진은 못 찍겠네요.”


조구현의 눈들이 뒤쪽을 바라보기 위해 왼쪽 끝으로 옮겨갔다. 그게 마치 벌레가 단번에 기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벌레들은 벽에 걸린 네모 반듯한 그의 사진에서 멈춰 선다.


“잠깐의 피. 순간의 죽음이 평생의 예술을 탄생시키지만.”


시선은 다시 자윤에게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죽여 버리면 할배가 노하실 테죠. 그분의 미움을 사는 건 되도록 사양하겠습니다.”


조구현이 몸을 바로 하고 방문을 열었다. 매캐하고 섬뜩한 공기들이 새로운 바깥 공기와 섞여 역한 내음이 났다.


“그래도 더 까부셨다가는 어떻게 될지 몰라요. 저도 작정하고 데려온 거니까.”


조구현을 데리고 문이 닫힌다. 그제야 자윤은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그건 희서도 마찬가지였다.


“희서야, 괜찮아?”


자윤은 자신의 안위보다 희서의 상태를 먼저 살폈다.


“으응·········.”


대답과 다르게 희서는 딸꾹질을 하고 있었다. 자윤은 그런 희서의 머리를 감싸 안아주고 싶었지만 묶인 손 때문에 안타까운 시선만 보내야 했다.


“걱정하지 마.”

“······언니. 우리 죽어?”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희서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나는 죽기 싫어······. 엄마처럼. 엄마처럼 죽고 싶지 않아.”


떨리는 목소리가 말하는 당연한 얘기가 자윤의 마음에 깊이 들어왔다. 자윤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숨을 크게 들이쉬고 뱉어낸다.


“나갈 거야. 나갈 수 있어. 언니가 너 꼭 살려줄게.”


자윤의 눈이 빠르게 방을 살핀다.


‘아무래도 이제 누가 구하러 올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 박 현. 그 자식이 일어날 리도 없고.’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조구현이 제대로 묶은 팔다리였다.


‘박 현 그 새끼랑 엮이고부터 제대로 되는 게 없어요, 하여튼. 내가 이깟 밧줄 풀려고 이렇게 몸을 비틀어야 하냐고······!’


아무리 단단히 묶은 밧줄이라도 굴곡진 신체는 반드시 빈틈을 만들어내는 법이다. 그리고 한없이 몸을 비틀어 그 틈만 만들어낼 수 있다면, 신기하게도 꿈쩍도 못 했던 팔이 그 몇 mm의 틈 때문에 수만 가지의 일들을 해낼 수 있다.

그때 희서가 자윤을 불렀다.


“언니.”

“응?”

“우리 오빠랑 무슨 사이에요?”

“무슨······ 사이? 그때 말해줬잖아.”


그때라 하면, 자윤이 희서를 처음 만났을 때였다. 자윤은 희서에게 자신을 직장 동료라 소개했다. 물론 희서가 갑작스러운 방문과 함께 한 시도 떨어지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거짓말을 보태야 했다.

오래된 동료라느니. 많은 도움을 받았다느니. 목숨도 내줄 수 있는 사이냐느니.

이제 생각해보니, 희서가 그저 ‘믿어준 것’뿐이었다.


“우리 오빠 친구 없어요. 직장 동료도 한 명뿐이고. 우리 오빠 어디 가나 미움받거든요.”

“그런데 왜······.”


희서의 표정이 촉촉이 젖어든다.


“믿고 싶었으니까요. 언니가 말해주는 오빠의 모습이 진짜였으면 싶었거든요.”


생각 없이 떠들었던 얘기들이었을 뿐이었다. 지금도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막 뱉은 말들이었다.


“우리 가족 얘기는 아세요?”

“······응.”

“오빠, 그거 때문에 진짜 힘든데·········. 저 하나 살린다고 그러고 다니는 거예요.”


슬프면서. 괴로운 얼굴.


“말주변도 없고, 대인 기피증에 공황장애. 피도 못 보고, 늘 어두운 곳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

“응, 말주변 없긴 하더라. 쭈뼛대고 도망가기도 하고.”


자윤은 현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옥상, 세 번의 살해와 고동만의 집에서 그의 모습들이 차례로 스쳐 간다.


“언제 한 번 제 방에서 나온 바퀴벌레랑 오빠가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음침한 게?”

“네. 도망가는 것도요.”


희서가 조용히 웃음을 터트린다. 그 웃음소리는 너무 작아서 금방 사라졌지만, 자윤에게는 더없이 값진 것이었다.


“나가자, 우리.”


자윤의 말에 희서의 눈이 반짝인다.


“어떻게요?”

“이렇게.”


자윤이 밧줄에서 벗어난 한쪽 손을 보여주며 방긋 웃었다. 희서의 얼굴이 단번에 희망으로 가득해진다.


“잠깐만 기다려봐.”


한껏 비틀고 난리 치느라 상처투성이가 된 손으로 주머니에서 작은 면도칼을 꺼내 밧줄을 모조리 끊어냈다.


“좀 편해?”


자윤은 서둘러 희서의 결박을 풀어준다.


“네.”


희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자윤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 언니가 오빠 옆에 계속 있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왜?”

“그냥요.”


자윤이 희서의 손을 잡고 방문에 가까이 붙었다. 창문조차 없는 이 방에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사실 언니가 직장 동료가 아니라 저희 오빠 여자친구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 말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그건 이곳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다. 그리고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말이기도 했다.

자윤은 지금 이 대화를 나누는 게 이곳이 아니었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그랬다면 순수하게 웃고 생각하는 이 아이의 웃음이 더 크고, 길었을 텐데.’


자윤이 바짝 붙은 방문이 천천히 열린다.

시선. 카메라. 그리고 손에 들린 가죽으로 된 벨트.

모든 게 얼어붙는다. 섬뜩하게 두 사람을 공포로 조였다. 그 안에서 모두의 웃음과 희망을 훔쳐가 주인 행세를 하는 건, 조구현. 그 한 사람뿐이었다.


“그래. 이렇게 깨진 희망에서 예술의 공포가 전율할 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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