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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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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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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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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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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1.

DUMMY

대웅이 빌려온 회색의 승용차가 태악동으로 부드럽게 들어선다.


“차 멋있죠?”


대웅이 현에게 물었다. 하지만 현은 그가 보내준 자료만 연신 읽을 뿐이다. 오로지 현의 답을 들을 수 있는 대화 내용은 조구현과 관련된 질문이었다.


“바로 아파트로 가실 거예요?”

“응.”


가뜩이나 현과 함께 하는 게 영 불편한 대웅이라, 이런 분위기는 숨조차 제대로 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래서 계속하지 않아도 될 질문들을 해댄다.


“몰라도 돼. 이번엔 네가 필요 없으니까.”

“혼자 가시려고요?”


대웅의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료를 넘기며 말한다.


“응.”

“고동만 때처럼 당하시면 어쩌려고요.”


현의 고개가 돌아간다. 순간 대웅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지만, 운전대를 잡은 손이 살짝 씩 떨리고 있었다.


“그때랑 다르니까 걱정하지 마.”


현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잘하면 자윤도 데려올 수 있을 거야.”

“정말요?”

“응. 그렇게 대단한 놈은 아닌 거 같더라고.”

“조구현이요?”


대웅이 고개를 빠르게 저으며 말을 이었다.


“에이, 형. 자료 잘 보신 거 맞아요?”

“왜?”

“조구현 전과 보셨잖아요. 미친놈이라니까요?”


현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마치 대답해 줄 가치도 없다는 의미 같았다. 하지만 그 의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대웅은 그저 현이 고동만 때와 똑같은 실수를 하길 내심 바라고 있었다.


‘재수 없게 뻗대기는.’


대웅은 그대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현은 그 속도에 뒤로 조금 밀리면서도 자료에 적힌 한 가지 사항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조구현의 스폰을 대주고 있는 “백이수”라는 이름이었다.


* * * *


셔터 눌리는 소리가 들린다.

흐느끼는 울음이 뒤늦게 그 소리를 따른다.

떨어지는 눈물과 피. 그 광기를 카메라에 담을 때 흐르는 환희에 찬 웃음소리.


“그거야, 그거! 정말 완벽해·········!”


조구현의 입에서 흐르는 침이, 피와 눈물이 고인 곳에 떨어진다. 단번에 더럽혀진 웅덩이 옆에, 자윤이 쓰러진 채 몽롱한 정신을 힘겹게 붙잡고 있다.


“······하, 씨·········.”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조구현의 의도대로 포즈를 잡는 희서가 보였다. ‘악마의 선율이 흐르는 아이’를 능가하는 걸작이 조구현의 손에 연신 담기고 있었다.


“그게 아니잖아!!!”


힘차게 올려간 손이 희서의 뺨을 때리기 직전에 멈춰 선다.

조구현은 가까스로 모델에게 상처 입히는 걸 통제한다. 그러기 위한 대가로 자신의 손목에 칼자국 하나를 새겨 넣는다. 그걸 본 희서는 쇳소리를 내며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다리를 떨었다.

그건 희서의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본래의 날붙이를 보았을 때, 정신이 나간 상태로 죽일 듯 달려들었어야 할 본능을 희서는 간신이 참아내고 있었다. 그건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 큰 부담이었다.

희서의 눈이 자윤에게로 향한다. 그러자 초점을 잃을 것 같은 눈이 핑 돌아 눈물을 쏟아낸다.


“그거야! 잘하면서 왜 그러지?!”


다시 셔터가 눌린다. 조구현이 원하는 표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본능을 억누르는 눈.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 야성에서 이성을 찾기 위한 사투.

그것을 위해 자윤을 이용하고, 희서를 농간하는 그의 태도에 진저리가 난다.

광기에 찬 그의 웃음소리가 방안을 뜨겁게 채워간다.


“······하, 하! 이제······ 이제 좀 쉬자.”


조구현의 몸이 그대로 방바닥을 찍었다. 땀에 절어 무거워진 고급 셔츠가 몸에 끈끈하게 달라붙는다. 그가 주저앉는 것과 동시에 희서의 다리도 완전히 풀려버린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자윤은 희서를 바라보았다.

도망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갑작스레 분위기가 뒤바뀌어버렸다. 그건 소용돌이처럼 걷잡을 수 없었다. 이미 상대가 그 모든 걸 예상한 채 움직였으니 말이다.

자칫하면 끊어질 것 같은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아본다.

그리고 물었다.


“왜 하필 박 현이야?”

“네? 너무 간단한 거 아닌가요?”


자윤의 물음에 조구현이 답답하게 묶여있던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어플에 떴으니까요. 걔가 날 죽일 거라고.”

“뭐?”

“저도 깜짝 놀랐어요.”


조구현이 피로로 무거운 몸을 일으켜 자윤의 앞으로 걸어갔다.


“고동만이 죽고 대타 업체에서 뿌린 소문의 가격 50만 원. 정보 하나가 추가될 때마다 10만 원 씩. 추가 비용만으로도 제 걸작이랑 대충 맞는 수준의 금액이었어요.”


그가 자윤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왜 그런 돈까지 했느냐 하면, 다 똑같은 이유지 않겠어요? 누님이나, 저나. 그리고 동네에 어슬렁대는 아저씨나 아줌마나. 살려고. 다 살려고 이러는 거잖아요.”


가슴을 툭, 툭 치는 그의 표정은 자윤이 오늘 본 표정 중에 가장 인간적인 얼굴이었다.


“인간이. 사람이 돈을 쓰고 사람을 죽이는데 거창한 이유 없는 거 알잖아요. 일 분. 아니, 일 초라도 더 살기 위함일 뿐이에요.”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물론이죠. 그 돈을 지불할 정도로 녀석은 가치가 있었어요. 일 분. 일 초가 아닌, 제 인생의 일주일을 벌 기회였으니까요.”


묘한 웃음을 품는다.


“웃기지 않아요? 얼굴을 본 적도 없는데. 근데 진짜 웃긴 건 말이에요. 얼굴을 본 적은 없는데, 나랑 관련은 있었다는 거예요.”

“관련······?”


자윤의 눈이 가만히 떠진다.


“네. 같은 학교를 나왔더라고요, 녀석이랑.”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자윤의 눈을 조구현은 음미하듯 살핀다.


“중학교. 그걸 알아내니까 딱 알겠더라고요. 걔 중학교 때 좀 화려했거든요. 특히 졸업식 날.”

“······그, 그건.”


망연하게 앉아있던 희서가 그의 말에서 떠오르는 게 있는지 입을 뗐다.


“오, 기억나니. 동생?”

“그건 오빠 잘못이 아니었어요.”

“흐흐. 그래? 근데 어쩌지. 세상은 그놈 잘못이라 못을 박았거든.”

“도대체 무슨 말이야.”


자윤이 도저히 대화를 따라갈 수 없어 물었다.


“뭐 그런 일이 있어요. 녀석이 쏘아 올린 작은 공에 몇십 명이 그대로 모가지가 날아갈 뻔했거든요, 그때. 재수 없게 이 예술가의 인생이 중학교 때 쫑날 뻔했다는 거죠.”

“그래서 노린 거야?”

“어플도 그렇게 말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겸사겸사죠. 일주일의 목숨을 구한 값에 사은품으로 복수가 딸려온 느낌이랄까. 일석이조. 알죠?”


양 검지를 흔들다가 ‘X’자로 만드는 그의 표정에는 즐거움밖에 보이지 않았다.

조구현이 고개를 돌려 아직 정신을 회복하지 못한 희서를 돌아봤다.


“많이 지쳤나 봐요. 저 아이는 애초에 목적도 아니었는데, 뜻밖의 수확이에요. 이렇게 보니. 단순히 일석이조라는 느낌을 훨씬 웃도네요. 이번 거래는 남는 장사였어.”

“미친 새끼········· 그래 봤자 박 현, 안 와.”


조구현이 반쯤 정신이 나간 눈으로 자윤을 돌아봤다. 그리고 그녀를 보자 눈빛은 다시 차분하게 돌아와 있었다.


‘이 새끼 희서 볼 때 저딴 눈빛으로······!’


조구현이 그녀에게 묻는다.


“왜죠? 왜 안 오죠?”

“걔 뒤졌거든.”


도발적인 미소를 그에게 날린다.

조구현의 눈이 커진다.


“거짓말이죠?”

“진짜야. 네가 쟤 데리고 온 이유. 그게 지금 시간이랑 맞아?”

“·········조금 늦긴 하네요.”


조구현이 턱을 쓸었다.


“아니 사실 상당히 늦어요. 근데 진짜로 믿진 못하겠네요, 누님.”


자윤의 눈앞에 조구현이 핸드폰을 보여준다.


“왜냐면 아직 어플은 저를 노리고 있다고 나와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누님의 말을 믿으면, 여기서 저 아이는 죽어요. 반드시. 죽여서 걸작으로 만들 거예요.”


조구현은 그 말에 한 치의 거짓말도 없다는 듯, 희서를 바라볼 때의 표정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자윤의 이가 바득바득 갈린다.


‘어째서.’


어째서 자신을 그렇게 무력한가.

몸을 감싸고, 정신을 걸어 잠근 이 답답한 느낌이 도저히 떨어지질 않는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그저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고, 눈앞에 손을 뻗은 것으로 깨달았을 뿐이다.

우리 안에 갇혀 있다는 걸.


‘·········개 같은·········.’


사실 자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날 때부터 정해진 틀.

규정지어진 한계. 낙인찍힌 역할.


“그럼 깨면 되잖아.”


퍼뜩, 눈을 뜬 자윤은 조구현의 집이 아닌 완전히 다른 공간에 있었다. 마냥 새하얀 공간. 사방이 막혔는지도 뚫렸는지도 알 수 없는 공간이었다.

어쩌면 어둠보다 더 두려운 빛에 감싸여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러고 있는 거야?”


그 안에 덩그러니. 얼굴이 없는 아이가 앉아있었다.


“네가 말한 거야?”


자윤이 쓰러져 있던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내가 아니면.”


아이가 주변을 둘러본다.


“또 누가 있나?”


자윤이 침을 삼킨다.


“여긴 어디지······?”

“지금 너한테 중요한 건 그거야?”

“무슨 의미지?”


아이는 한숨을 쉰다.


“네가 뒤처리 반이 된 건, 남의 뒤처리를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잖아.”


자윤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그녀의 머리에 잔상처럼 기억이 스친다.


“내가 남에 뒤처리해 주려고 왕 박사한테 이 일을 배운 게 아니라고!!!”


자윤이 이마를 짚는다.


“뭐, 뭐야 이거.”


하지만 이미 스위치가 들어가 버린 머리는 그녀에게 이제껏 묶여 있던, 갇혀 있던 기억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 * *


내가 태어났을 때, 맨 처음 눈을 뜨고 본 것.

천장. 검은 비닐봉지. 그리고 왕 박사의 얼굴.


내가 태어났을 때, 맨 처음 맡은 냄새.

매캐한 소독약의 냄새.


내가 태어났을 때, 맨 첨은 들은 소리.


“누가 우리 집에다 애를 버려놨어?”


왕 박사의 투정 섞인 말.

나는 태어나자마자 비닐봉지에 감싸여 쓰레기통 안으로 던져졌다. 하지만 다행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그 쓰레기통은 왕 박사의 집이었고. 나는 그녀의 손에서 자랐다. 온갖 의료를 배운 왕 박사의 식단과 교육 방식은 이미 인생의 출발선이 삐뚤어진 내게는 꼭 맞았다. 그녀와 함께하는 건 언제나 좋았고, 그녀가 나를 위해 웃어주는 미소가 더없이 소중했다.


“아, 참고로 난 네 엄마가 아니야.”


왕 박사는 내 머리가 어느 정도 커지자 그렇게 말했다.


“그게 17살 되는 애의 생일 선물이야?”

“너도 대충 알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감동이 없잖아!”

“아아, 그거였어? 감동 선물이면 따로 준비했지.”


왕 박사가 나에게 두 장의 종이를 건넸다.


“이게 뭐야?”


받은 종이 하나는 추천장이라 쓰인 짧은 편지였고, 다른 하나는 두 사람의 인적사항이 간략하게 적혀있었다.


“하나는 네 진짜 부모님에 대한 정보고. 두 번째는 그 두 부모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려줄 사람. 이게 내 진짜 선물이야.”


왕 박사가 멋대로 내 케익을 먹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할래? 부모부터 볼래, 아니면 그 사람부터 만나볼래.”


그렇게 만난 사람이 할배였다.


“그려. 내가 누군지 알고?”

“왕 박사가 그러던데. 사람 죽이는 사람이라고.”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알지?”

“응. 한 번 죽어봤으니까.”


그때 할배의 눈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놀란 게 아닌, 올 녀석이 왔다는 당연한 표정.


“왕 박사 추천장은 잘 봤다. 종이는 가지고 왔지?”

“네,”


나는 내 부모라는 사람의 인적사항이 담긴 종이를 그에게 건넸다.


“언니 하나. 네 또래 동생 하나. 이렇게 둘이 널 따라 갈겨. 알겠지?”


할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 그게 내 첫 살인이었다.

어렵지 않았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비닐봉지에 담겨 버려지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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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 20.06.26 30 0 8쪽
32 #32. 20.06.25 27 0 8쪽
» #31. 20.06.24 26 0 12쪽
30 #30. 20.06.23 28 0 9쪽
29 #29. 20.06.22 24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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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20.06.17 27 0 8쪽
25 #25. 20.06.15 31 0 9쪽
24 #24. 20.06.15 26 0 8쪽
23 #23. 20.06.12 3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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