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x한스그레텔 님의 서재입니다.

검마전생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새글

한스그레텔
작품등록일 :
2024.01.23 19:39
최근연재일 :
2024.07.04 20:1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248,190
추천수 :
3,728
글자수 :
693,928

작성
24.05.22 20:10
조회
1,027
추천
26
글자
12쪽

내면과의 대화(3)

DUMMY

“오랜만에 세상 바깥으로 나온 경험이 어때?”


그곳에서 소검성 무현은 자신의 과거였던 검마를 맞이했다.


“그리 나쁘진 않았다.”


순간, 심상 세계에 커다란 파문이 일면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마교 시절 홀로 지냈던 검각으로 변한 세계.

둘은 의자를 끌고 앉아 서로를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오랜만이네, 이곳도.”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

“개처럼 길러져 마교의 검으로 살던 시절이었지.”

“······.”


따악-!


손가락을 튕기자, 앞으로 찻주전자와 찻잔이 눈앞에 나타났다.

비록 모양새만 갖춘 형식에 불과했지만, 이 둘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전부 보진 못했지만, 동정호에서 재밌는 걸 봤다.”

“고작 잡것 하나 치웠을 뿐이다.”

“뭐, 파계승 하나랑 세가의 망나니 정도면 약과긴 하지.”

“공동의 기연도 봤나?”


찻잔을 홀짝이는 무현.

아무런 맛도, 향도 없는 환상에 불과하지만, 뭐라도 안 마시면 허전했다.


“이름 모를 협곡에서 발견했던 것과 유사했지.”

“어땠지?”

“동일 인물이 맞아.”

“······.”


순식간에 가라앉은 분위기.

무거운 분위기를 깨고 무현이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네가 봤던 것도 말해봐.”

“내가 봤던 건···.”


이 뒤로 검마의 입에서 감상이 튀어나왔다.


“···이 뒤로 자그마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여파가 저 꼴이고?”


무현의 손이 가리킨 곳엔 균열 너머로 잔뜩 흔들리는 유화루가 있었다.

검마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중에 보상해 주면 되는 일 아닌가.”

“얼씨구? 이거 인격이 바뀌니까 더 뻔뻔해졌어?”

“너가 나고 내가 너 아닌가?”

“···맞는 말만 해서 더 얄밉네.”


검마 역시 맛대가리 없는 차를 홀짝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다시 돌아갈 건가?”

“돌아가야지. 우리 둘 때문에 속 썩이는 이들이 한둘만 있겠어?”

“그렇군.”

“뭐 할 말이라도 있어?”


무현은 검마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검마가 말했다.


“우리의 과거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나?”

“···솔직히 썩 좋지 못한 삶이었지.”


툭 까놓고 말해서 마교는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온갖 인간군상이 다 모인 광신도 집단인데, 그들을 하나씩 통솔하는 일은 교주라고 해도 쉽지 않았을 거다.


“어쩌면 첫 단추를 잘못 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지?”

“우리가 추구하는 마도와 그들이 생각하는 마도에서부터 잘못되었다고 느꼈으니까. 아니, 애초에 광신도들 사이에서 우리 같은 놈들이 변절자였던 걸까.”

“전자에 해당하겠지.”

“그러니 우리는 애초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설득이 아닌, 강제로 규합했어야 했다고 생각한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되면 표적이 되기 십상이지.”

“무림맹을 이용해 우릴 죽일 수도 있고.”


대화를 주고받는 내내 서로의 감정을 느끼게 될 수 있었다.


검마는 삶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자책했고, 무현은 그런 자신의 과거를 마주 보며 한마디 했다.


“솔직히 뭐가 잘못됐다고 말하기가 곤란하지. 각자만의 삶의 방식을 고려하지 않은 우리의 잘못도 있고,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 꼴통들을 상대로 백날 이야기해 봤자 들어 처먹지도 않았는데.”

“······.”

“누군가에게 변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가 세상의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지. 우린 그걸 실패했고, 죽었지.”


천재는 항상 변화를 추구한다.


무현은 천재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변화를 항상 갈망했고, 이를 도전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세상을 몰랐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었다.


“어쩌면 여인도 우리처럼 변화를 추구하려고 했던 것일 수도 있다 생각했다.”

“그리고 실패했지.”

“무림인과 이를 믿지 않은 이들로 인해서.”


두 사내가 보기에 여인의 삶은 협객에 가까운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스스로의 삶을 희생하여, 남을 위해 헌신하며, 개인의 영달마저 저버린 삶.

마치 설화 속에서나 존재할 법할 성모나 성녀처럼.


귀부(䝿腐).


여인은 스스로 고귀하게 스스로를 부패시켜 버렸다.


“그래도 여인이 무엇을 추구했는지 대충 보이더군.”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지?”

“협객이었으니까.”


많은 의미가 함축된 단어였지만,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협객이었기에 보지 못했던 걸까.”

“남을 살릴 생각만 했지, 정작 이들의 삶 전체를 보지 못했던 이유였지.”


협객의 방식으로 접근했던 여인의 실패를 엿본 두 사내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협객이 아니지. 그러니 일반인의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었던 거야.”

“······.”

“그러니 방식을 처음부터 갈아치워야겠지.”

“성검련도 그런가.”

“갈 곳 잃은 얘들 끌어다 키운 거지만, 스스로 일어서라는 의미에서 만들기도 했지.”

“첫 단추는 잘 끼었군.”


무현이 남은 찻물을 들이키곤 말을 이었다.


“이후로는 네 도움이 필요해.”

“내 도움이?”


따악-!


무현이 손가락을 튕기자, 검각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억을 토대로 만든 성검련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가 웃고 떠들고 서로 의지하며 나아가는 이상적인 모습.


무현이 말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둘은 서로 분리되어 있어. 살왕에 의해 내가 의식을 잃고 네가 대신 나온 것처럼, 언제든지 네가 내 몸을 차지할 수도 있는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지.”

“네 빈자리를 대신 채워달라는 것이냐?”

“이번 사건의 배후에 동창이 있는 건 너도 알고 있지?”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현이 말을 이어 나갔다.


“놈과 같은 변수가 언제든 발생할 수도 있어. 그 자리를 네가 대신 채워서 내 역할을 대신 수행해 줬으면 해. 어차피 육신이 죽어버리면 너나 나나 그대로 죽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렇군.”

“이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 싸우는 헛짓거리나 해 봤자 시간 낭비라는 건 너도 잘 알 테고. 그냥 새로운 신분 생겼다 생각하고 편하게 해. 그렇다고 무작정 아무나 죽이지는 마라.”


그 말에 검마는 눈썹을 찌푸렸다.


“불쾌하군. 나도 정도를 알고 있다.”

“아, 그래서 과거에 그렇게 무림인을 그렇게 죽이고 다니셨어요?”

“······.”

“뭐, 그건 됐고. 이 심상은 어떻게 수습할 거냐?”


무현의 손가락으로 심상 세계를 가리켰다.

급격하게 확장하는 심상 세계의 빈 부분을 채워 넣기 위해선, 깨달음을 수습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런 경우는 없었지, 아마?”

“애초에 심상 세계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도 몰랐지.”


심상 세계를 투영하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삼제 씩이나 되는 인물들은 제각각의 세계를 가지고 이것을 외부로 드러내지만, 무현은 그런 게 없었다.


“솔직히 우리가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람 아니겠냐. 스스로 생각해도 본성이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고, 이해하기도 힘든 사람한테 뭘 바라겠어.”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무현이 말했다.


“우리가 저놈들의 수장이기 전에 한 명의 검수 아니겠냐. 애초에 성검련도 내 멋대로 지은 거긴 하지만, 내 목적은 일단 무공이다. 강자의 입맛대로 움직이는 중원을 상대로 헤쳐 나가려면 철저하게 준비되어야만 하지. 하지만 쉽지 않을 거야. 근데 중요한 게 뭔지 아냐?”

“뭐지?”

“너나 나나 저놈들의 수장임과 동시에 한 명의 무인이라는 거다.”

“······”

“길게 보자고. 내가 한 말은 우리에게 닥칠 미래를 생각하자는 소리다. 우리는 천재가 아니지만, 놈들을 상대할 방법을 알고 있지. 무림인에게 필요한 오성이 지금 우리에게 있다. 그럼 여기서 문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순히 무력일까? 아니면 저들을 통솔할 능력일까?”

“······.”


질문을 들은 검마와 무현 역시 스스로 되물은 문답에 깊은 고민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한참의 고민 끝에.

검마가 먼저 해답을 내놓았다.


“군림(君臨)하되 지배(支配)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신념이자,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다.”

“···계속해 봐.”

“남을 지키되, 삶에 자유를 둔다. 왕조처럼 지배하지 않되, 그 위에서 군림하여 삶을 이끌어 준다.”

“반대하는 이들은 어쩌고?”


이 뒤로 이어진 검마의 해답은 명쾌하고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을 설득할 필요가 없겠지. 아니, 애초에 왜 우리가 그들을 설득해야 하지?”

“···계속 말해봐.”

“시대의 흐름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게 설령 제국의 주인인 황제라고 해도, 태산을 부수고 장강을 가르는 절대 고수라고 해도.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인다.”

“변화를 거부하는 이들은 스스로 무너지게 될 테니까.”


검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는 그저 위에 서서 지켜본다. 중원을 지배하는 제국의 황제조차 중원 전체에 영향력을 뻗칠 수 없어 무림인과 관무불가침 조약을 맺었지.”

“그럼 해답이 나왔네.”


두 사내가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세상의 흐름대로 살되, 개입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냐 약자의 편에 서서 사람들을 살릴 것이며 끝없이 죽음 속에서 투쟁할 것이니.”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


두 사내는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오랜만에 웃으니, 서로의 표정엔 무언가 해소되는 듯한 개운함이 절로 느껴졌다.


“이제 꿈에서 깰 시간이다.”


검마의 말에 무현이 피식 웃었다.


“그래. 긴 꿈이었지.”


흑백의 세계였던 심상 세계에 빛이 찾아온다.

형형색색의 빛들이 모이고 모여 세계를 밝히니, 이내 심상에 격변이 찾아왔다.


흑백의 세계가 색으로 점철되어 마치 외부의 세계를 옮겨놓은 것처럼 생기가 넘쳐흘렀다.


무현은 정신을 더더욱 집중했다.


심상 세계 내부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근원에 접근했다.


다른 무엇도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저 근원 단 하나.


무현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무언가가 땅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그곳에는 칠흑의 옥좌가 하나 놓여 있었다.


무현이 걸음을 옮겼다.

옥좌에 서서 가만히 지켜보던 무현은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영역이 변하기 시작했다.

의지만으로 영역을 변화시킬 때와는 다른, 본질적인 변화.

마치 육체를 확장하고 원하는 대로 조율하는 듯한 감각이었다.


무현은 영역에 퍼져나가는 근원을 향해 의지를 집중했다.


바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자신이 얻은 깨달음.


퍼져나간 근원이 의지에 호응하여 변화하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바람이 불었다.

산들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오며 피부를 간지럽힌다.


"이게 심상의 구현인가."


깨달음을 얻은 무현은 눈을 감았다.

그러자 눈앞에 시야가 빠르게 점멸했다.


그 빛은 너무도 따스했다.


***


‘무겁다.’


유화루에 홀로 남은 아량이 홀로 중얼거렸다.


고작 깨달음을 수습 중인데 몸이 무거워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렇다고 사술을 썼거나, 마공을 익힌 것도 아니었다.


‘이런 무인이 세상에 존재했구나.’


사람 자체의 분위기가 남다르다.

마치 격변의 혼란 속에서 태어난 제왕처럼, 한없이 높은 곳에서 세상을 굽어보는 느낌이었다.


두근-!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둔중한 울림.


아량은 본능적으로 눈앞의 무현에게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후우.”


짤막한 한숨과 함께 눈을 뜬 무현.

그와 동시에 유화루에 울려 퍼진 굉음과 흔들림이 순식간에 멎었다.


그러자, 바닥에 머리를 박은 아량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경하드리옵니다.”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예의의 목소리.

절대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예의 바른 자세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검마전생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9 검주의 무덤(2) +1 24.05.24 1,053 21 12쪽
88 검주의 무덤(1) +1 24.05.23 1,063 23 12쪽
» 내면과의 대화(3) +1 24.05.22 1,028 26 12쪽
86 내면과의 대화(2) +1 24.05.21 1,057 23 12쪽
85 내면과의 대화(1) +2 24.05.20 1,135 25 14쪽
84 기연 아닌 기연(3) +1 24.05.17 1,323 26 13쪽
83 기연 아닌 기연(2) +2 24.05.16 1,261 24 12쪽
82 기연 아닌 기연(1) +1 24.05.15 1,314 26 12쪽
81 혼란스러운 기억(2) +2 24.05.14 1,322 25 13쪽
80 혼란스러운 기억(1) +1 24.05.13 1,327 29 13쪽
79 공청석유(6) +3 24.05.10 1,462 30 11쪽
78 공청석유(5) +1 24.05.09 1,330 24 12쪽
77 공청석유(4) +1 24.05.08 1,377 29 12쪽
76 공청석유(3) +1 24.05.07 1,431 27 11쪽
75 공청석유(2) +3 24.05.06 1,526 25 12쪽
74 공청석유(1) +1 24.05.03 1,685 28 12쪽
73 중독(3) +3 24.05.02 1,619 26 12쪽
72 중독(2) +3 24.05.01 1,608 27 12쪽
71 중독(1) +3 24.04.30 1,642 26 13쪽
70 용을 끌어내리다(13) +2 24.04.29 1,683 28 15쪽
69 용을 끌어내리다(12) +6 24.04.26 1,676 31 12쪽
68 용을 끌어내리다(11) +4 24.04.25 1,631 29 13쪽
67 용을 끌어내리다(10) +2 24.04.24 1,641 27 12쪽
66 용을 끌어내리다(9) +3 24.04.23 1,657 28 13쪽
65 용을 끌어내리다(8) +1 24.04.22 1,689 27 12쪽
64 용을 끌어내리다(7) +4 24.04.19 1,765 28 13쪽
63 용을 끌어내리다(6) +3 24.04.18 1,788 29 13쪽
62 용을 끌어내리다(5) +3 24.04.17 1,790 30 13쪽
61 용을 끌어내리다(4) +1 24.04.16 1,828 29 12쪽
60 용을 끌어내리다(3) +1 24.04.15 1,785 3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