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리메르 공녀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연어럼블
그림/삽화
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18.11.05 21:22
최근연재일 :
2019.07.28 15:06
연재수 :
72 회
조회수 :
15,076
추천수 :
237
글자수 :
421,154

작성
18.11.07 01:39
조회
239
추천
8
글자
19쪽

2.신데렐라와 목걸이

DUMMY

(5)


“응? 무슨 소문이 돈다고?”

“어제 서쪽 시장에서 연극을 보던 시녀들이 보라색 눈을 가진 소녀를 보았다고 합니다.”

“흐응. 그래?”


네르온은 여유롭게 찻잔을 들어 올렸다. 헤이든은 미간을 모았다. 네르온은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저렇게 태연자약하지. 그는 자신의 주인에게 현실을 일깨워주기로 했다.


“짙은 자색이었다고 합니다.”

“큭,켁,켁. ···뭐라고?”


그래.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지. 그는 네르온이 어느 정도 위기를 느꼈음에 안도했다.


얼굴이 붉게 물든 채로 연신 기침을 하는 네르온에게 조용히 물을 쥐여준 헤이든은 그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하자 손수건을 건넸다. 네르온은 손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거칠게 문질렀다.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잖아. 나는 아냐.”


헤이든은 물끄러미 네르온을 내려다봤다. 양손으로 물 컵을 쥐고 저를 올려다보는 눈동자에는 한 점 거짓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이 저택의 사용인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이 공작가의 주인이 공작부인에게 얼마나 끔찍한지.


헤이든은 평소 그의 행동을 생각하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누가 뭐라 했습니까. 방계 중에서 피를 강하게 이어받은 아이가 태어난 것 같기도 합니다만···.”

“뭔가가 더 있나?”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 말이 오히려 진실을 찾는데 있어 시야를 가릴 수도 있었다.


헤이든은 아주 잠시 동안 이 사실을 보고할지 말지 고민했다. 있는 대로 다 말하고 조금 더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말 안 하고 자신이 짊어질 것인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짐은 다 같이 나눠 들어야 한다. 자신 몸만 상하게 왜 혼자 모든 고난과 역경을 짊어진단 말인가.


그는 일단 무심하게 운을 뗐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헤이든.”

“예예. 압니다. 말해드릴 거예요.”


방 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헤이든은 속으로 혀를 찼다. 선대 공작님과 다르게 성질머리가 급해도 너무 급했다.


“말할 예정이니 살기나 지워주시지요.”


그는 네르온을 마주 보았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저 맹금류의 눈빛은 언제 봐도 적응이 안 된다.


네르온은 날카로운 시선을 지우고는 다시 장난기 다분한 눈망울을 빛냈다. 입을 댓 발 내밀고는 그러게 왜 자기를 시험하냐고 투덜거리는데 아까 그 위험해 보이는 남자랑 저 철없어 보이는 공작님이 동일인물이 맞는지 의문이었다.


그 짧은 시간 마주했다고 살기에 몸이 반응해버린 헤이든은 구토감이 이는 입을 틀어막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속을 다스렸다.


조금은 미안한 표정으로 헤이든을 힐끗거리던 네르온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그래서, 아직 보고하지 않은 것이 뭔가?”


헤이든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그 소녀가 진갈색 머리의 여자와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진갈색? 그게 왜?”

“그게.. 짙은 갈색 머리에 금안, 20대 후반 여성이라 들어, 헤르시아님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금안과 짙은 갈색이 희귀한 색도 아니긴 합니다만···.”


네르온의 표정이 굳었다. 물론 짙은 갈색은 흔했다. 하지만 금안은-


쾅-


“자네.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인가? 10년 전 그렇게 제도를 뒤졌는데도 못 찾은 헤르시아가 자색 눈동자의 아이와 이 제도 안에 있었다?”

“··· 면목 없습니다.”

“그러면, 진짜 헤르시아라면, 형님은 어디 계시는 건데.”


네르온의 살기가 짙어졌다.


그는 10년 전 그날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화려한 파티 장소,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던 헤르시아와 형님. ···그리고 그들의 행방불명.


그건 정말이지, 순식간이었다.


잠시 테라스에서 바람을 쐬고 돌아오겠다던 신혼부부는 환하게 웃는 그 모습을 끝으로 종적을 감췄다. 조금 오래 걸리는 듯해도 신혼이니까 그러려니 하던 사람들이 이상함을 느낀 것은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렸을 때였다. 모두가 이상함을 느낄 정도로 3시간 동안 그들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공작가 정원과 테라스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일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 네르온이 급히 그들의 행적을 쫓았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습격이 있었나 싶었지만 공작가의 기사들과 가신들은 모두 믿을만한 자들이었고 오늘을 위해 경비도 몇 배나 강화시켰다. 이 경비를 뚫고 조용히 공작 부부에게 접근해 그들을 납치하는 건 네르온 조차도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그의 자랑스러운 형님은 나라에서도 으뜸가는 마법사인 것을.


이쯤 되자 네르온은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형님을 향한 가신들의 충성은 그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가신들을 쥐 잡듯이 족쳤다. 오히려 이렇게 족쳐서 형님의 행방을 알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마음은 모두가 같았는지 아무도 그를 말리는 자가 없었다. 심지어 뤼르시엔과 헤이든조차 평소와 다르게 날뛰는 그를 잠자코 지켜만 봤다. 하지만 불행히도 사라진 공작 부부에 대한 단서는 어디에서도, 누구에게서도 얻지 못했다.


새 공작 부부의 결혼식에 참여한 모든 가신들은 가주에게 광적으로 충성하는 자들이었다.


결국 아무 단서도 못 찾은 채 날이 밝았다. 갑자기 파티에서 긴급회의로 바뀐 상황에 가신들의 식솔들은 공작성의 손님방으로 안내되었고 가신들은 네르온을 따라 회의장으로 모였다. 그리고 불행히도 자신들의 주인을 잃은 가신들의 다음 표적은 네르온이었다. 공작위를 노리고 일을 저질러놓고 의심을 피하기 위해 지금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유였다.


그들의 태세 전환에 헛웃음을 흘린 네르온이었지만 그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그 또한 흥분하여 가신들을 몰아가지 않았나. 게다가 다행히도 공작의 오른팔인 휴스티안 백작이 중재해준 덕분에 갈등은 크게 번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네르온은 그들에게 전심전력으로 형님을 찾을 것을 약속했고, 실제로도 후작가의 기사들까지 동원하여 제도 내를 뒤졌다.


하지만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째에 접어들어서도 그들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침중한 얼굴로 다시 공작가에 모인 가신들은 결국 더 이상 공작가를 비워둘 수 없다는데 입을 모았다. 정작 네르온이 형님이 언제 올지 모른다며 공작위를 거부하는 탓에 가신들은 네르온에게 임시 가주로서 공작가를 이끌어줄 것을 청했다.


형이 돌아올 자리는 있어야 했기에, 그 또한 공작가가 휘청거리는 것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오롯이 그의 검 하나로 받았던 후작위를 잠시 반납하고 임시 가주로서 황제에게 공작위를 받았다.


공작가가 워낙 철저히 입을 막은 탓에 사교계에서도 공작 부부의 부재를 아는 귀족들은 드물었다. 하지만 공작가의 상징인 매 문양을 갑옷에 새기고 돌아다니는 기사들의 움직임까지 모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더 수색을 진행하고 싶었으나 황제로부터 은근하게 압박이 들어와 하는 수 없이 대외적으로는 수색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도 공작가의 그림자들에게 계속 흔적을 쫓을 것을 명했지만 자그마한 흔적조차 못 찾았다.


그런데 고작 시녀들이 찾았다? 그 당시에는 헤르시아와 형님이 어디 멀리 숨어버린 건가 했는데 이 제도 안에 있었다는 것을 보니 제 부하들이 무능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짙은 자색 눈동자를 가진 소녀와 함께 있었다고 했다. 자색 눈동자는 공작가의 상징으로 짙을수록 직계 혈통임을 뜻했다. 그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는 분명했다.


“무능한 것들.”

“죄송합니다.”

“만약에 진짜 헤르시아라면··· 형님은······.”

“죄송합니다. 공작님으로 보이는 남자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헤이든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팬을 돌리던 네르온이 혀를 찼다. 그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눈썹 한 쪽을 찡그렸다.


헤이든은 그런 네르온을 보며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저 표정은 네르온이 억지로 미소 지을 때의 버릇이었다. 선대 공작님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며 아직도 임시 가주직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이 소식이 독이 된 것이 분명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자신은 지금 그를 희망고문 시켰다.


“꼭 헤르시아였으면 좋겠군. 그리고··· 형님도 말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여자아이는··· 내 조카이려나?”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네르온이 천천히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쓸어올렸다. 갑자기 들이닥친 소식들에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무언가 기대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기대를 했는데 아니면? 헤르시아는 맞는데 그녀의 곁에 형님이 없으면?


사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마법사가 아무 일이 없는데도 10년씩이나 공작가에 나타나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래도,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 현실로 다가오는 것은 무게가 달랐기에, 괴로웠다.


“곧 축제였지?”

“네. 그렇습니다.”


잠시 턱을 쓰다듬던 네르온이 고개를 들었다.


“축제 때는 사람이 굉장히 많으니까, 눈을 피해 데려오기엔 제격이지. 축제 전까지 헤르시아가 맞는지 확인해보고 맞다면 데려왔으면 좋겠군.”

“저···.”

“응? 왜 그러나?”


다시 서류로 고개를 처박았던 네르온이 눈을 껌뻑였다.


헤이든은 잠시 입술을 깨물며 뜸을 들이다가 네르온의 미간이 모아질 때쯤 입을 열었다.


“혹시··· 혹시라도 거부하신다면······.”


탁-


펜을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네르온이 의자에 기대 눈을 감았다. 톡톡 의자 손잡이 부분을 두드리는 소리가 공간을 채우기를 수 분, 그 고요한 정적을 뚫고 네르온의 나른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최대한 부드럽게 데려와. 상처 하나 없이. 하지만 거절한다면··· 만에 하나 거절한다면······ 그때는 기절시켜서라도 데려와. 그녀인 것을 안 이상 방치할 수는 없어. 아, 뤼르에게 말해 그녀의 편지를 같이 보내는 것도 좋겠어.”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봐.”


네르온은 눈가를 문질렀다. 급 피로가 밀려왔다.



*



"으아아아, 떨려."


연극의 다음날, 아무래도 가격이 꽤 나가는 물건을 구매하러 가는지라 긴장된 리메르는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같이 손잡고 목걸이를 사러 가달라고. 그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리메르 일행은 하나씩 닭꼬치를 해치운 채로 가게 앞에 당도했다.


후우- 리메르는 한 번 심호흡을 하고는 가게 문을 열었다. 기계적으로 어서 오세요-라고 운을 떼고 고개를 든 상점 주인은 낯익은 얼굴에 반갑게 미소 지었다.


"어머, 오늘이 그날이야?"


리메르는 뿌듯하게 가슴을 펴고 웃었다.


"그렇습니다! 오늘이 그날입니다!"

"가만있어 봐라, 아줌마가 기특하니까 멋지게 포장해줄게!"

"헤헤. 감사합니다!"


리메르는 신이 나서 진열대에서 나온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전체적으로 은색으로 빛나고 있는 목걸이는 가운데에 리메르의 새끼손톱 반 정도 크기의 호박색 토파즈가 박혀있었고 양옆으로 얇고 긴 날개가 토파즈를 물고 있었다. 리메르는 이 목걸이를 처음 본 그날, 마음을 빼앗겼다. 리메르의 취향이기도 했지만 이건 헤르시아가 아닌 사람이 착용하면 빛이 바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혹여라도 이 목걸이가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매일매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기다리다 보니 상점주는 말했던 것처럼 근사하게 포장을 해주었다. 고급스러운 레드벨벳 상자에는 무거운 오렌지색의 리본이 묶여있었다. 상점가의 로고가 박힌 끈 달린 주머니에 벨벳 상자를 넣어준 주인은 보증서는 안에 넣어놨으니 이상이 생기면 찾아오라고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대망의 헤르시아 생일날.


헤르시아는 아쉽게도 생일날 일을 나가야 했다. 아침에 하는 수 없이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며 보내주긴 했지만 빨리 선물을 주고 헤르시아의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싶었던 리메르는 후작가가 야속했다.


"그렇게 고대했던 생일날인데, 조금 아쉽네요."


점심을 내려놓으며 에드쉬가 건네는 말에 리메르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너무해. 오늘은 엄마랑 하루 종일 보내고 싶었다고."

"흐음. 어쩔 수 없는 것··· 인가요."

“응. 엄마는 일을 하니까. 그래도 에드쉬가 있으니까 같이 기다릴 수 있어.”


리메르가 식기를 들며 한숨을 토하듯 말했다. 버섯 수프를 한 입 떠먹던 리메르는 자신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는 시선을 느끼고는 슬쩍 시선을 올렸다.


“푸흡! 쿨럭!”

“리메르, 괜찮아요? 일단 물부터 마셔요.”


에드쉬가 다급하게 내미는 물 잔을 간신히 받아든 리메르는 잔기침을 하고는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목이 조금 따갑긴 했지만 아까보다는 나았다.


“도대체 왜 그런 거예요? 나 보고 사레들린 것 맞죠?”


리메르는 잔뜩 걱정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에드쉬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왼손에는 손수건이 들려 있었다. 리메르는 물을 한 잔 더 따라 마시면서 웅얼거렸다.


“아니, 그게, 네가 너무···.”

“너무?”

“엄마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

“······.”


리메르는 슬그머니 눈을 피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인 에드쉬의 표정은 가끔 헤르시아가 ‘우리 딸, 잘 먹네.’라면서 짓는 표정이었다. 엄마 미소. 그 얼굴이 너무 온화해 보여 리메르는 순간적으로 사례가 들렸다.


에드쉬는 가끔 그런 표정을 지었다. 친구들에게 애늙은이 소리를 듣는 것은 리메르였지만, 그녀가 볼 때 그 별명이 제일 잘 어울리는 것은 리안과 에드쉬였다.


잠깐 멍청한 표정을 짓던 에드쉬는 이내 침착하게 리메르에게 손수건을 쥐여주며 입을 열었다.


“흐음. 뭐, 리리 먹는 게 보기 좋아서 그런 것도 있고요.”

“어어··· 그래?”


에드쉬가 피식 작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뭔가 말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리메르는 괜히 애꿎은 수프를 푹푹 찌르며 필사적으로 다른 주제를 찾았다. 마침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수프를 한 입 떠먹으며 리메르가 입을 열었다.


“근데 에드쉬는 언제까지 존댓말 쓸 거야? 안 불편해?”


에드쉬는 처음에 깨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모두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초면이라 어색해서 그런가 싶어 두고 봤지만 요사이에는 그가 혹시 존댓말을 내려놓을 타이밍을 못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던 터였다.


에드쉬의 옥색 눈동자가 난처한 빛을 띠었다.


"으음.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냥 경어가 더 편하다고 해야 할까."

"진짜로?"

"그럼요. 저는 오히려 반말이 어색해서요."


존대가 더 익숙하다라···. 리메르는 고개를 좀 더 기울였다.


자신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과 선배들과 친해졌지만 반말이 어색해서 끝까지 존댓말을 썼던 경험. 하지만 동갑을 만나면서 끝까지 존댓말을 고수한 적은 없었는데.


혹시 우리 사이의 거리가 일 억 광년쯤 떨어져 있다는 무언의 표현인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리메르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에드쉬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 무엇을 상상하던 그건 아닐 거예요."

"···.”


에드쉬의 해명이 무색하게 리메르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에드쉬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대로 뒀다간 리메르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널 것이 뻔했다. 머뭇거리던 에드쉬는 겨우내 입을 열었다.


“나는 이게 익숙하지 못··· 하다고······.”


언제나 여유롭게 웃으며 리메르와 아이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던 에드쉬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눈에 보일 정도로 허둥거리고 있었다. 리메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한 마디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녀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에이. 진짜로 어색한 거구나? 난 또.”

“네. 절대 리메르나 다른 친구들이 불편해서가 아닙니다.”

“뭐야! 어떻게 알았어?”

“얼굴에 뻔-히 보이는걸요.”


깜짝 놀라 튕기듯 일어나 허리를 곧추세우는 리메르였지만, 정작 에드쉬는 태연하게 수프나 떠먹을 뿐이었다. 리메르는 끙 소리를 내며 에드쉬를 노려보다가 다시 스푼을 집어 들었다. 그런 리메르를 보며 에드쉬가 작게 미소 지었다.


너무 전투적으로 수프를 먹은 탓일까. 에드쉬보다 훨씬 빨리 먹은 리메르는 식탁을 치우는 것보다 에드쉬의 얼굴을 구경하는 것을 택했다. 너도 좀 당해보라는 고약한 심보도 한 스푼 정도 녹아있었다. 리메르는 식탁에 턱을 괴고 그의 눈, 코, 입을 나노 단위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시선이 분명 다 느껴질 텐데도 그는 눈 하나 꿈쩍 안 하고 수프를 해치웠다.


리메르는 한국의 아역 모델들을 떠올렸다. 그 왜, 어렸을 때부터 얼굴에서 빛이 나는 아이들. 에드쉬도 그러했다. 그대로 자라면 굉장하겠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를 정도로 그는 잘생겼다. 게다가 그의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곱게 휠 때면 세상이 밝아지는 듯했다.


”뭘 그렇게 빤히 보십니까?”

“응? 에드쉬 예쁘게 생겼다고.”


간단하게 내뱉는 말에 그가 왼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뭐야, 왜. 예쁘다니까.


10살한테는 잘생겼다는 말보다 예쁘단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실제로도 예쁘고.


“제가 예쁘게 생겼습니까?”


진지하게 자신의 턱을 쓸며 하는 말에 리메르는 웃음을 꾹 눌러 참았다.


“응. 진짜 예쁘게 생겼어.”

“좋은 건가요?”

“당연하지. 자고로 예쁜 게 최고거든.”


리메르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박은 받아들이지도 않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에드쉬가 생소한 말을 듣는다는 듯 연신 자신의 얼굴을 매만져서 도리어 리메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런 말 들어본 적 없어?”

“그다지.”

“하긴, 예전에는 귀엽다에 가까웠을 테니까.”

“귀여움도...”


에드쉬의 어색한 반응에 리메르는 미간을 찡그렸다. 이건 왠지 그의 과거와 관계있는 것 같다. 어떻게 이야기를 넘기나 고심하고 있는데 에드쉬 쪽에서 먼저 넌지시 말을 건넸다.


"흐음. 그러면 리안이랑 저 이렇게 둘 중에서는요?”

“뭐야, 순위 따져달라고? 그냥 둘 다 예뻐. 순위를 왜 정해. 이 세계에서도 미남은 귀한데.”


귀찮다는 표정을 숨기지도 않은 리메르는 손을 휘저으며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순간 에드쉬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는 눈을 반달로 곱게 접어 웃었다.


"그렇군요."

"응. 그런 거야.”


심드렁하게 대답한 리메르는 이내 몸을 곧추세웠다.


쾅 소리를 내며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리메르 공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 3.부정 (否定) 18.11.09 254 9 10쪽
12 3.부정 (否定) 18.11.08 266 7 19쪽
11 2.신데렐라와 목걸이 18.11.08 253 8 9쪽
» 2.신데렐라와 목걸이 18.11.07 240 8 19쪽
9 2.신데렐라와 목걸이 +2 18.11.07 259 8 14쪽
8 2.신데렐라와 목걸이 18.11.06 253 8 12쪽
7 2.신데렐라와 목걸이 18.11.05 319 7 16쪽
6 2.신데렐라와 목걸이 18.11.05 322 6 12쪽
5 1.리메르라는 소녀 18.11.05 346 7 14쪽
4 1.리메르라는 소녀 18.11.05 363 8 16쪽
3 1.리메르라는 소녀 (2) 18.11.05 464 9 14쪽
2 1.리메르라는 소녀 (1) 18.11.05 594 9 15쪽
1 0.프롤로그 +2 18.11.05 841 12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