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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리메르 공녀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연어럼블
그림/삽화
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18.11.05 21:22
최근연재일 :
2019.07.28 15:06
연재수 :
72 회
조회수 :
15,084
추천수 :
237
글자수 :
421,154

작성
18.11.05 21:36
조회
322
추천
6
글자
12쪽

2.신데렐라와 목걸이

DUMMY

(1)


"올까?"


세실이 분수대에 걸터앉아 하는 말에 흐음- 의미 모를 소리를 낸 시르가 주머니를 뒤적여 10동짜리 동전을 꺼냈다. 시르 얼굴에 특유의 개구진 웃음이 걸렸다.


"온다에 10동."


시르와 10동짜리 동전을 번갈아 보던 세실이 혀를 찼다. 입술을 삐죽인 시르가 반격했다.


"눈으로 욕하는 거 아니라 했다."

"흥. 이 내기는 성립이 안 돼."

"어째서?"


진심으로 모르겠다며 고개를 기울인 시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세실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중얼거렸다.


"나도 온다에 걸 거니까."

"엑. 모처럼 재밌어지나 했더니만."


시르가 푸념조의 말을 뱉으며 허리 뒤쪽으로 팔을 쭉 뻗었다.


언덕 소동이 있던 그 다음 날, 리메르와 세실, 시르, 리나는 분수대에 앉아서 햇살을 즐기는 중이었다. 작열하는 태양에 기분 나쁠 만도 했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이 그저 사랑스러웠다.


기분 좋게 눈을 감고 눈 위에 내려앉는 따스한 햇살을 즐기던 시르 앞으로 그림자가 졌다. 의아한 눈으로 눈을 뜨니 분수대 근처를 부산스럽게 서성이는 리메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시르는 통렬할 정도로 염세적이다가도 이렇게 가끔 귀여운 반응을 보여주는 친구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리리이-."

"···으응?"


시르가 웃으면서 제 옆자리를 탕탕 두들겼다.


"자, 이 언니 옆에 앉아!"


언니라는 말에 잘게 눈동자를 떨던 리메르가 주춤거리면서 시르에게 다가왔다. 시르는 한 발자국을 남겨놓고 멈춰서는 리메르를 놓치지 않고 얼른 잡아 끌었다. 빠르게 앉는 바람에 치마가 붕 떠올랐다가 넓게 펼쳐졌다. 열심히 치마를 정돈하는 리메르에게 바짝 붙은 시르가 작은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올 거야."


어깨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운 울림에 리메르가 소리를 내어 웃었다. 하지만 웃음은 곧 어색한 미소로 바뀌었다. 과연 파비안이 분수대에 나타날 지 확신이 서지 않은 탓이다.


안 올까봐 조금 겁이 난 리메르의 눈꼬리가 축 처졌다. 그리고 무심한 얼굴로 사람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던 리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소녀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걸렸다.


“리메르.”

“응?”

"저기, 누가 왔는지 봐봐."

“···어!”


리나가 살며시 손을 들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리메르가 눈을 크게 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파비안이 분수대에서 가까운 골목에서 얼굴만 내밀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쇄작용처럼, 리메르가 갑자기 어딘가를 보고 웃는 것에 의아함을 느낀 소녀들이 리나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고는 활짝 웃었다.


시르가 벌떡 일어나서 파비안에게로 달려갔다. 리나가 저가 있는 쪽을 가리킬 때부터 어쩔 줄 몰라하던 소년이 기둥 옆 벽 쪽에 바짝 붙어 섰다.


"아하하하! 어서 와, 파비안!"

"으윽. 이, 이거 노, 놓···"


파비안이 쩔쩔매는 것을 보며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 * *



한 여름이었다. 리메르는 턱을 따라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포근한 향기가 그녀의 코 끝을 간질였다.


리메르는 서둘러 문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나왔어어어."


말과 동시에 방 한가운데에 드러눕는 리메르를 보고 소녀들이 꺄르르 웃었다.


"오늘은 좀 빨리 왔네?"

"응. 조금 일찍 끝났어."


세실과 시르가 얼른 부채를 들고 다가와 잔뜩 지친 표정의 리메르에게 부채를 부쳐줬다.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진 리메르가 눈을 감고 고양이 같은 소리를 냈다.


"으으응. 너무 좋다아."


시르는 아예 이마를 들춰 뽀송뽀송한 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준 후 이마에 집중적으로 바람을 보냈다. 어느새 리메르는 시르의 무릎을 베고 누운 상태였다. 그런 리메르를 웃으면서 바라보던 시르가 눈살을 찌푸렸다.


"리리.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눈이 퀭해."

"어··· 그래?"


두 눈을 문지면서 대답하는 말에도 피곤이 짙게 깔려 있었다.


파비안과 친구가 된 그 날 이후, 그들은 시장과 언덕은 물론 제도를 쏘다녔다.


그러다 보니 동년배의 남자애들과 시비가 붙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그 날, 파비안을 때려눕힌 날은 리메르가 앞으로 참고 살지 않겠노라 다짐한 날이기도 했다.


그녀가 한 번 결심하고 나니 행동은 빨랐다. 파비안이 나서기 전에 리메르는 팔을 걷어붙이고 그 남자애들을 상대했고, 리메르에게 시비를 건 애들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녀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갔다.


예를 들면,


‘네가 서쪽 구역의 리메르냐!’

‘그런데?’

‘가, 각오해라아!’


이러고는 죄다 얻어맞고 도망가는 식이었다.


리메르는 모르는 듯했지만 어느새 그녀는 제도 내에서 골목대장으로 통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별명이 '돌격의 리메르'였다.


그녀가 그렇게 불릴 수 있던 이유에는 괴물 같은 체력도 한 몫 했는데, 항상 활기차던 친구가 물먹은 솜처럼 축 처져 있으니 시르는 리메르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 배경에는 리메르의 <축, 10주년> 이라는 계획이 있었다.


리메르는 올해 10살이 되었다.


예전 한국에서 기념일을 챙기던 것처럼, 리메르는 헤르시아와의 10주년을 기념함으로써 그동안의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녀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헤르시아의 허전한 목을 채워주고 싶었다. 팔찌나 반지도 후보에 올리긴 하였으나 시녀 일을 하는 헤르시아에게는 오히려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액세서리 자체가 귀족의 전유물로 여겨지긴 하지만 평민들을 위한 액세서리 매장도 발달되어 있었다. 물론 아직 어린 리메르에게 부담되는 금액이긴 하지만 조금만 무리해서 돈을 모은다면 귀족 저택에서 착용하고 다녀도 민망하지 않을 정도의 목걸이를 구할 수 있을 터였다.


리메르가 이 계획을 정한 것은 네 달 전으로, 우연히 길을 거닐다가 헤르시아에게 딱 맞는 목걸이를 찾은 게 발단이 되었다. 딱 보자마자 ‘이건 엄마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상점 안으로 직행했다. 잠시 졸고 있던 힐다는 시끄럽게 울리는 종소리에 놀라 빠르게 침을 닦고 인사를 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잠시 꿈을 꿨나 하고 눈을 비비는데, 자신의 소매를 잡아당기는 손길이 있었다. 내려다보니 보라색 눈을 깜빡거리는 여자아이가 열렬한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아주머니. 저기 저, 저 목걸이 얼마에요?’

‘으응? 저게··· 18실버였던가?’

‘1,18실버···.’


아이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힐다는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가게에서 취급하는 액세서리들은 조금 가격이 비쌌다.


‘누구에게 주려고?’

‘엄마 생일선물로···.’

‘어머!’


힐다의 눈에 불이 붙었다. 그녀는 이런 유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열 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엄마 생일선물을 준비한다는 것이 너무 기특했다. 그녀는 좌절해 있는 리메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미 이윤이고 뭐고 그녀의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15실버.’

‘네?’

‘15실버에 해줄게. 너한테만.’

‘엇! 정말요?! 사장님은 천사신가요?’


리메르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힐다의 손을 마주 잡았다.


뜨거운 계약 이후 리메르는 아침마다 목걸이가 잘 있는지 보러갔고, 가끔 마주칠 때마다 힐다는 은근하게 말을 남겼다.


‘이건 절대로 너한테만 팔테니까 꼭 사러 와야 해!’

'사장님, 너무 사랑해요!'

'아이, 그 말은 엄마한테만 해.'


이 말은 덤이었다.


약속을 받자 리메르는 더 의욕에 불탔다.


리메르는 지금까지 종종 시장 어르신들의 심부름을 하고 돈을 받긴 하였으나, 지난 4개월간은 아예 어르신들에게서 일을 찾아다녔다.


그뿐인가. 리메르는 닭꼬치 아저씨를 대신에 닭꼬치를 팔기도 하고, 닭을 꼬치에 끼우거나 손질된 닭을 옮기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아저씨가 닭 손질까지는 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외에 솜사탕 판매도 해봤고, 상가 어르신들이 쉬고 싶으신 날 대신 가게를 열어 장사를 하기도 했다.


필사 일도 했었는데 책이 귀한 시대라 그런지 수입이 꽤나 좋았다. 게다가 필사를 하면서 새로운 책을 읽을 수 있어 리메르에게 이득이었고 필사 아저씨 입장에서는 리메르의 유려한 필체와 그 필체를 유지하면서도 빠른 필사 속도가 이득이었다. 필사 아저씨가 ‘자네, 나랑 평생 종신 계약하지 않겠나?’라며 매달리는 통에 좀 귀찮긴 했지만 결과만 보자면 리메르의 소득의 일등 공신은 필사였다.


리메르는 헤르시아가 했던 것처럼 옷 수선과 바느질, 자수도 받아왔다. 그리고 흰 손수건에 지옥화를 탄생시켰다. 완성 전이니 결과를 다를 수 있다며 애써 침착하게 작업을 완료했으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한참동안 작업물을 바라보던 리메르는 자신에게 이쪽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빠르게 재료를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날, 소녀는 아줌마를 찾아가 죄송하다고, 천 값은 물어드리겠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아줌마는 그럴 필요 없다고, 요상한 것이 재미있다면서 깔깔거리고 웃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느낄 새도 없이 리메르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손수건 값을 아줌마 손에 쥐여주고 눈물을 흩뿌리며 도망쳐왔다.


그 이후에 리메르는 시험 삼아 곰돌이 인형의 도안과 재료를 가져와 제작을 시도했으나 또다시 지옥에서 온 곰돌이를 탄생시켰을 뿐이었다.


헤르시아에게는 돈 버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으므로 리메르는 흔적을 없애기 위해 분수대에 곰돌이 인형을 가지고 나온 적이 있었다.


'으햐햐햐햨, 저건 뭐야?'

'···리메르! 저거 설마 네가 저번에 보여줬던 그 곰돌이 도안이야?'


세실과 시르는 날 것 그대로 리메르를 비웃었고, 파비안과 리안은 미묘한 얼굴을 했다. 오직 리나만이 눈을 반짝이며 곰돌이 인형에 관심을 보였다.


'리메르, 그거 버릴 거면 나 주지 않을래?'

'그래. 맘껏 비웃어라. 니들은 얼마나 잘하는지··· 으응? 뭐라고? 달라고? 이거를?!'

'응응! 귀엽잖아!

‘괜히 그러는 거면 안 그래도······.'

‘무슨 소리야! 진짜 주면 안 돼?’

'흑, 고마워, 리나. 역시 너뿐이야.'

'헤헤. 뭘 이런 걸 가지고.'


친구들의 비웃음에 정신을 놓고 있던 리메르는 리나에게 불신이 가득 담긴 시선을 던졌으나, 리나는 이 세상에 저와 곰돌이밖에 없다는 것처럼 뚫어지게 리메르의 손을 바라보았다. 진심임을 깨달은 깨달은 리메르는 눈물을 글썽이며 리나에게 곰돌이를 선물했다.



얼굴을 찡그리고 눈물범벅의 과거를 돌아보고 있던 리메르가 시르의 말에 고개를 기울였다.


"어머니 생신이 얼마나 남았었지?"

"으음. 2주 정도 남았어."

"얼마나 모았어?"


짙은 보라색 눈이 두어 번 깜빡였다 내가··· 얼마나 모았더라.


현재 리메르 수중에 있는 돈은 13실버였다.


‘2실버···.’


뭐랄까. 금방 채울 것도 같고, 2주 내내 일해야 할 것 같기도 했다. 일이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고, 지금까지 나이에 비해 빨리 모으긴 했지만 2실버는 절대 작은 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으음. 한 2실버 정도 더 모아야 하는데···."

"끄응···. 쉽지는 않은 돈이네."

"그러면 우리 며칠 정도만 다 같이 리메르의 일을 도와주는 건 어때요?"


시르의 앓는 소리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던 리메르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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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부정 (否定) 18.11.08 266 7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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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신데렐라와 목걸이 18.11.07 240 8 19쪽
9 2.신데렐라와 목걸이 +2 18.11.07 260 8 14쪽
8 2.신데렐라와 목걸이 18.11.06 253 8 12쪽
7 2.신데렐라와 목걸이 18.11.05 320 7 16쪽
» 2.신데렐라와 목걸이 18.11.05 323 6 12쪽
5 1.리메르라는 소녀 18.11.05 347 7 14쪽
4 1.리메르라는 소녀 18.11.05 364 8 16쪽
3 1.리메르라는 소녀 (2) 18.11.05 464 9 14쪽
2 1.리메르라는 소녀 (1) 18.11.05 594 9 15쪽
1 0.프롤로그 +2 18.11.05 842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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