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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리메르 공녀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연어럼블
그림/삽화
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18.11.05 21:22
최근연재일 :
2019.07.28 15:06
연재수 :
72 회
조회수 :
15,079
추천수 :
237
글자수 :
421,154

작성
18.11.05 21:35
조회
363
추천
8
글자
16쪽

1.리메르라는 소녀

DUMMY

(3)


끼익-


문을 열고 나온 리메르는 열쇠로 문을 잠갔다.


문을 잠글 수 있는 걸 처음 알았을 때 그녀는 매우 놀랐다. 자신은 이 세계를 너무 낮게 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격차가 너무 컸다. 분명히 자물쇠를 만들 수 있고 검을 제련하며 분수대에서 물을 뿜게 할 수 있는 고급 기술이 있는데 수도꼭지는 없었다.


‘씻으려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와야 한다니, 이게 무슨 시대야.’


소녀는 집 열쇠를 집 앞 화분 밑에 잘 숨겨놓고는 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긴 소매가 팔에 달라붙어 기분이 불쾌했다. 리메르는 얼른 소매를 걷어 올렸다.


“후. 덥다, 더워!”


어느새 날씨가 더워지고 있었다. 크세트 제국은 기본적으로 여름이 길고 겨울이 짧았다. 농경이 중요한 이 시대에 최고 온도가 한국 정도밖에 안되는 이 제국은 실로 축복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울은 짧지만 매우 지독해서, 이 땅의 모든 것을 얼려버렸다. 그렇기에 겨울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그 과정에서 땅은 냉기를 밀어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의 땅은 그 겨울을 밀어내고 여름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중이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어머, 리리 왔니?”

“아저씨, 오늘도 닭꼬치 많이 파세요!”

“오냐!”


시장 입구에서부터 아줌마, 아저씨들한테 인사를 하면서 걸어오다 보니 어느새 분수대였다.


분수대 앞에서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는 시르, 리나, 세실이 있었다.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뛰어간 리메르가 자연스럽게 무리에 녹아 들었다.


“리리!”

“어서와!”

“맨날 늦냐, 너!”

“헤헤, 미안. 열쇠 찾느라고.”

“변명에는 응징뿐이다!”

“으아악, 잠깐! 세실, 살려줘!! 진짜 아프다고!”


가차 없이 어깨를 휘갈기는 매운 손길을 피해 리나 뒤에 숨은 리메르가 우는 소리를 했다. 리나는 리메르를 보호하면서도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연신 웃음을 흘렸다.


이 친구들과도 벌써 수 달째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넷은 약간씩 성향이나 성격이 달랐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지난 몇 달 간 그들은 시장 끝까지 가보기도 하고 골목 구석구석을 쏘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은 시르가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언덕?"

"응! 이 시장에서 쭉 올라가면 주변이 탁 트인 언덕이 나온대!"


리메르는 고민했다. 자신도 그렇고 요 꼬맹이들도 그렇고 아직 성인의 허리 정도밖에 안 된다. 근력 또한 그들에 미치지 못한다. 운 나쁘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들을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리메르가 근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안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우린 아직 어려."

"에이~ 리리 또 애늙은이 같은 소리 한다! 위험할 일 없어!"


애늙은이란 말에 움찔한 리메르는 끙-하고 소리를 냈다. 잠자코 지켜보던 세실이 입을 열었다.


"나도 리리에게 찬성. 위험은 피하는 쪽이 좋아."

“진짜 아무것도 없는데.”


단번에 시르의 입이 댓 발 튀어나왔다.


‘사실 가고 싶긴 하지만,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진 않아. 그래도 과연 위험할까?’


시르를 보고 갈등하던 리메르의 속내가 튀어나왔다.


물론 이 제국은 현 황제의 통치 아래 아주 좋은 치안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법의 손길이 안 닿는 곳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괜히 재수 없는 일에 걸려 삶의 종지부를 찍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까웠다. 리메르는 정말로, 매우, 너무나, 가능하면 아무 위협 없이 헤르시아와 길고 얇게 혹은 길고 굵게 살고 싶었다.


안전과 모험 사이에서 씨름하고 있자니 리나가 '저어기'하면서 손을 들었다.


"그렇게 걱정되면 우리 오라버니랑 가는 건 어때? 나이는 별로 차이 안 나지만 엄청 세."

"나이는 별로 차이 안 나는데 엄청 세다구···?"

"응응. 그렇다니까?"


모두가 해맑게 웃고 있는 리나를 바라보았다. 저 말에는 한치 거짓도 보이지 않긴 하지만. 리나 기준의 ‘세다’는 도대체 어느 정도인걸까.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애가 13살 먹은 친오빠를 보고 ‘와아, 크다’하는 수준의 강함일까?


‘꼬맹이라도 넷보다는 다섯이 낫지 않아?’라고 누군가가 속삭이는 듯했다. 짧게 고민을 마친 리메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모험이 승리한 순간이었다. 그녀가 헤르시아와 길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 지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리나의 오빠가 동생한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이건 가라는 계시야.’


다시 생각해보니 별로 위험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리메르는 못 이기는 척 입을 열었다.


"그으···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다들 생각은 어때?"


헤실헤실 웃고 있는 리나는 발의자니 당연히 찬성이고. 나머지는···


"좋아! 넷이 가는 게 더 좋지만 그래도 좋아!"

"흠. 나도 그 정도면 찬성."


정작 당사자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시르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리나의 오빠와 함께 언덕에 가기로 결정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근데 오빠 금방 불러올 수 있어?"

"응. 지금 바로 불러올게. 여기서 잠깐 기다려봐!"

“어? 리나!”


리나는 말을 끝내자마자 활짝 웃으며 가까운 골목으로 뛰어들어갔다.


‘리나의 집이 이쪽이던가···?’


리나가 귀가하던 방향을 떠올리며 고개를 가웃거리고 있자니, 리나가 누군가의 손을 잡고 뛰어왔다.


“애들아!”

“빨리 왔네?”

“마침 오빠가 근처에 있더라구. 덕분에 빨리 왔어. 그치, 오빠?”

“···응.”


리메르는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리나는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의 손을 질질 끌고 오고 있었는데 리메르는 그 곤란해하는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진짜··· 진짜-


"진짜 잘 생겼네."


옆에서 시르가 리메르의 마음을 대변해 줬다. 아니, 기껏해야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주제에 짜증스럽게 찡그린 에메랄드빛 눈은 그윽해 보였다. 움직일 때마다 흩어지는 금발은 햇빛이 더해지자 무엇보다 찬란했다.


‘이건 완전히 왕자님 상이다!’


혜빈일 때의 덕질 본능이 요동쳤다.


리메르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가 애써 태연을 가장했다.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자 리나의 오빠를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허리춤에 찬 검이 빛을 받아 새파랗게 반짝이는 것을 보니 대장간을 지나갈 때 봤던 것과 같이 진검이 아닌가 싶었다. 리메르의 시선을 사로잡은 또 한가지는 남색의 운동복이었다. 운동복 주제에 묘하게 질이 좋아 보였다.


"다들 인사해. 우리 오빠야."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 모였다. 리안은 ‘등에서 땀이 난다’는 표현을 몸소 느끼며 괜히 목 부분을 팔락거렸다. 분명 온도 조절 마법이 걸려있는데도 이상하게 더웠다.


소년은 그만 시선을 흩어주면 좋겠다는 뜻을 담아 리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제 동생은 어깨를 으쓱이며 한 발 뒤로 물러날 뿐이었다.


눈썹산이 크게 꿈틀거렸다. 어울리지 않게 순하게 웃고 있는 동생을 원망스레 바라보던 시선이 이내 세 사람에게 옮겨갔다. 소년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리안··· 이라고 해."

"우와."

"우와."


리안이 왜 그러냐고 묻듯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잔뜩 날 선 반응에 리메르가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 아무렴, 목소리까지 잘생겨서 이런 감탄사를 뱉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혀를 차며 두 사람의 반응을 지켜보던 세실이 입을 손으로 가리고 있던 시르의 허리를 살짝 꼬집으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세실이라고 해요."

"저는 시르에요!"

"리메르입니다."


잔뜩 엄살을 부리던 시르와 리메르까지 인사를 하자 분위기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아이들은 가타부타 말없이 바로 언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리안은 본인 의사를 묵살당한 채 이곳에 끌려왔다고 했다. 급하게 끌고 오길래 무언가 심각한 일이 생긴 줄 알았다고.


‘어쩐지 칼 손잡이에서 손을 놓지 않더라니.’


리안은 리나에게 잡혀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설명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지만 결론은 ‘오빠가 우리를 지켜야 해’였기에 리안의 얼굴이 처참히 일그러졌다. 소년은 살짝 경직된 얼굴로 말없이 걷다가 갑자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야, 나 저렇게 생긴 사람 처음 봐."

"세실, 나도야.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나도 동감이야."


역시 사람 생각하는 게 거기서 거기지, 뭐. 말로만 내뱉지 않았지 완전히 동일한 의견이라 리메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덕은 시장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아이들의 걸음으로 20분이면 굉장히 가까운 거리라, 리메르는 이렇게 탁 트인 곳이 제도 내에 존재한다는 것에 내심 놀랐다.


완만한 언덕을 올라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 아래에 나란히 선 아이들이 제 발 밑에 펼쳐진 제도를 눈에 담았다. 건물이 점처럼 보인다-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멀리서 보니 제도는 꽤나 장난감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특히 제도 한가운데에 자리한 황궁은 그 형태 자체로 귀하게 느껴져서, 그 안에 살고 있다는 황족에게 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눈을 감고 풀 내음을 느끼고 있자니 기분 좋은 바람이 리메르의 볼을 간질였다. 모두가 이 풍경과 분위기에 심취해 아무 말없이 이 순간을 즐겼다.


"와···. 진짜 예쁘다."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리메르가 첫 말을 내뱉었다.


"그치? 그치? 오길 잘했지?"

"응! 진짜 너무 좋아. 고마워, 시르."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하는 말에 시르가 배시시 웃었다.


나무 그늘 아래에 옹기종기 앉아 소소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위에 그늘이 졌다.


"야."


리메르는 낯선 목소리에 슬쩍 눈을 떴다가 살짝 겁에 질렸다. 분명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데 웬 덩치 크고 사나워 보이는 남자아이가 저를 바로 앞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남자 아이가 발을 들어올리면 바로 저를 타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불안한 듯 입술을 깨물던 리메르가 문득 든 생각에 눈을 번뜩였다.


‘얻다 대고 반말이야?’


"왜 그러시죠?"

"여긴 내 자리야.”


리메르는 속으로 혀를 찼다. 어느 세상이던 이런 꼬맹이 한둘은 꼭 존재하는구나. 속으로는 통렬한 비판이 이어졌지만 리메르는 겉으로는 누구보다 침착하게 미소 지었다.


"이상하네요. 여기가 누군가의 소유라고는 듣지 못했는데."


그저 가볍게 한 마디 해준 것뿐인데 소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씩씩거리던 소년이 소리를 빽 지르며 팔을 들어올렸다.


"이익! 내가 먼저 발견했으니 내 자리지! 어서 안 나와?"


어이없는 논리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리메르는 그대로 밀쳐졌다. 옆으로 쓰러지기 직전 손바닥으로 받친 덕분에 완전히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땅에 닿은 손바닥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팠다.


“꺄악!”

“리리!”


놀라서 굳어있던 네 사람이 리메르에게 달려가 손을 살피고 흙에 더러워진 옷을 털었다. 한창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와중, 아이들은 리메르가 반응이 없자 고개를 들었다가 묘한 얼굴을 했다.


‘허허···.’


리메르는 가만히 있다가 당한 봉변에 헛웃음을 흘렸다.


과거 그녀는 그다지 져주는 성격이 아니었다. 억울하게 몰린 일이나, 후려쳐진 일, 자신이 손해 보는 일 등 다른 사람들의 악의에 의한 행동에는 되갚아줬다.


이 세계로 넘어오고 나서는 옆에 항상 상냥한 헤르시아가 있었고, 그 이후에 만난 친구들도 자신에게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리메르는 그런대로 유순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타인의 억지 논리에 의해 피해를 입은 경우는 참을 수 없었다.


"리리···?"

"응. 괜찮아."


시르의 떨리는 목소리에 미소로 화답해준 리메르는 손을 탁탁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메르를 살피던 시르와 리나, 세실도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서 불안한 눈으로 리메르를 살폈다.


리메르가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깊은 한숨과 함께 고뇌를 털어낸 리메르가 뒤돌면서 다리를 뻗었다. 원심력에 의해 힘이 더해진 발길질이 씩씩거리며 서있던 소년의 복부에 정확히 꽂혔다. 발목이 찌르르하고 울리는 느낌에 리메르가 표정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만큼 느껴지는 타격감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공격이 유효하게 먹힌 건지, 아니면 의외의 공격에 당황한 건지. 남자아이는 당황한 얼굴로 뒷걸음치다가 땅이 푹 꺼짐을 느끼며 언덕 아래로 굴렀다.


‘크게 다친 거 아냐?’


소녀가 걱정 어린 얼굴로 언덕을 뛰어내려갔다. 하지만 언덕이 그렇게 가파르지 않아서 괜찮을 것 같았다.


걱정이 사라지자 통쾌함이 자리했다.


'흥! 내가 이래 봬도 검은띠다, 짜샤!'


어렸을 때 남동생과 함께 다니던 태권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흥-하고 거칠게 콧바람을 뀐 리메르가 양손을 허리에 올린 채 대자로 누워있는 남자아이에게 다가갔다. 온몸이 풀을 잔뜩 묻힌 채, 남자아이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괜찮아?"


자신을 밀친 사람에게 존댓말 할 예의는 가져다 버린 지 오래였다. 리메르는 옆을 휘휘 둘러보다 딱 좋은 것을 발견하고는 끙-하고 허리를 숙여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살짝 신난 얼굴로 남자아이 곁에 앉은 소녀가 여전히 대자로 뻗어 있는 파비안의 팔을 푹푹 찔렀다.


꺼끌꺼끌하고 뾰족한 나뭇가지의 감촉에 파비안이 인상을 구겼다. 달싹이는 입술 사이로 푹 꺼져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파."

"응?"

"···아프다고! 이 계집애야!"


‘깜짝이야!’


갑자기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놀란 리메르가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아무 데나 던지고는 벌떡 일어났다. 하필이면 그 아무데나가 남자아이의 얼굴이었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뒤에서 ‘아야!’라는 깜찍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소녀는 이 모든 것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 사이 어느정도 정신을 차린 파비안이 힘겹게 상반신을 일으켰다. 온 몸이 다 욱신거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는 저를 날려버린 데다 나뭇가지로 찌르기까지 한 범인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도토리만 한 애한테 질 리가 없어. 애초에 이 언덕은 내가 먼저 발견한 장소야.’


소년의 눈에 독기가 떠올랐다.


"그렇다고 소리 지를 것 까지는···. 응? 얘 왜 이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파비안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내, 내가 질 리가 있냐! 좋아! 결투다!"

"하···?"

"이 언덕을 걸고 결투라고!"


아까는 방심했다. 절대로 지고 돌아갈 수 없다. 그렇게 다짐하고 나니 앞에 있는 게 자신의 턱까지 밖에 안 오는 여자애라는 인식도 사라졌다.


”우아아아!”


파비안이 우렁찬 고함을 내지르며 바닥을 박찼다.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한 리메르가 제게 달려오는 소년을 멍하니 눈에 담았다. 그 눈에 점점이 공포가 서렸다.


그리고 파비안과의 거리가 채 두 걸음이 안 되었을 때, 작은 등이 리메르의 시야를 가렸다. 리안이었다. 언제 움직인 건지 리메르 앞에 버티고 선 리안이 싸늘한 얼굴로 파비안을 훑었다.


"적당히 하지."


싸늘한 표정만큼이나 살벌한 목소리에 파비안이 분노를 서서히 가라앉혔다.


덜컥- 내리쬐는 햇빛에 반사된 검이 쨍하니 빛났다. 당장이라도 칼을 뽑을 듯 손잡이를 힘 있게 쥐고 있는 손을 두렵다는 듯 바라본 소년이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일이 일단락 되는듯했다. 적어도 리안이 느끼기엔 그랬다. 소년은 완전히 기세를 꺾은 파비안을 보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칼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리안이 리메르의 상태를 보기 위해 몸을 반쯤 돌렸을 때 자그마한 손이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더니, 옆으로 부드럽게 힘을 줬다.


어어,하는 사이에 옆으로 밀린 리안이 자초지종을 듣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가 활활 불타는 자안을 마주하고는 몸을 경직시켰다.


리메르가 한껏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여기서 그만두자고? 안되지. 일어서."


작가의말

이래서 비축분을 쌓는 것이군요.

뒤가 있으니 계속 올리는게 두렵지가 않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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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부정 (否定) 18.11.08 266 7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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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신데렐라와 목걸이 18.11.07 240 8 19쪽
9 2.신데렐라와 목걸이 +2 18.11.07 259 8 14쪽
8 2.신데렐라와 목걸이 18.11.06 253 8 12쪽
7 2.신데렐라와 목걸이 18.11.05 320 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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