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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귀찮게 좀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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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생P
작품등록일 :
2020.05.14 19:41
최근연재일 :
2022.05.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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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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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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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83. 종막 (4)

안녕하세요~




DUMMY

《감히 일개 오크가 지닐 수준의 힘이 아니구나.》


“대충 시간도 한참이나 흐른 것 같고. 당대에 이 문신을 공유하는 오크라고 하더라도 아마 본인 혼자만 남았을 테지요.”


지금의 오크와 당대의 오크들이 지닌 가장 큰 차이였다. 시간이 흐르며 혼돈에 잠긴 비율이 높아지며 지성은 낮아지고 품위는 바닥에 떨어졌다.


“검은 태양은 일족을 등지지 않습니다. 이는 그걸 위한 안배이지요.”


모든 오크들이 위대한 혼으로부터 힘을 공유한다. 이는 그 힘의 한계가 명확함을 의미했지만 달리 말하면 그 힘 내에서는 누구도 이길 수 있다는 소리였다.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일족의 전성기 당시의 일익을 맡았던 본인보다 지금의 본인이 훨씬 강해졌음을 느꼈다.


“그렇다면 본인은 스스로 섬겼던 위대한 혼보다 약하다고 볼 수 없을 겁니다.”


그의 두툼한 검지가 가슴팍에 박힌 검은색의 태양을 문질렀다. 검은 문신은 이내 피처럼 붉은 박동을 느끼게 했다.


“임시방편이기는 하나 단지 음성을 받아들인다고 각혈을 하지는 않을 테지요. 귀는 그게 무슨 꼴입니까?”


“현세에서 저 존재와 네 사이의 고리를 끊었다. 일어설 수 있을 정도는 될 것이다.”


프리드는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크의 손에서 푸른빛이 잠깐 일렁였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대화만 나눠보던 상대들과 조우했다.


========================================

「정복왕, 로넬 실라드」

「알 카르탄, 시대의 마지막 검은 태양과 조우합니다.」

========================================


둘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 강함을 가늠할 수 없었다. 기록조차 얼마 남지 않은 대륙을 호령했던 강자들.


《재미있구나. 이건 아버지가 남긴 격이 아니야. 인간이 스스로 그만큼의 격을 쌓은 건가?》


“격? 적어도 대륙에서 가장 강했던 시간은 있었지. 절반이 넘는 땅에 내 깃발을 꽂았으니.”


“이 모든 건 내 형제들이 남긴 힘입니다. 물론 당신에 맞서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한 힘이지요.”


로넬은 투심을 불태웠지만 오크는 고개를 조아렸다. 프리드는 기억했다. 콘쿼러의 본신으로 추정되는 눈앞의 로넬 실라드라는 이름의 사내. 그가 자신의 몸에서 그 무위를 잠깐 보였을 때 보여준 강함을 기억했다.


《탐이 나는구나. 인간이나 오크가 받은 게 아닌 온전히 스스로의 격을 쌓다니... 이 지긋지긋한 감옥을 깨고 나가며 챙겨가기에 알맞은 선물이다.》


그의 의지 어디에도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크 카르탄은 등 뒤에 떠올라 있던 거대한 마법진을 거의 절반가량의 크기까지 압축했다.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발언이군요. 위대한 존재를 존중하기에 제가 보일 수 있는 미미한 전력을 다해서 이 사내를 바깥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그의 손짓은 투박한 곡선을 그리며 춤처럼 이어졌다. 천천히 내려온 생명의 원은 이 폐쇄된 공간으로 그의 시간을 불러왔다. 프리드는 그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참 재미있지요? 성향이 명백히 어둠에 치우쳤다고 생각하는 종족이 생명의 힘을 이리 다루다니.”


수많은 수의 꽃들이 피어났다. 막대한 에너지가 모이며 생명의 힘을 뿌리고 있는 것이다. 질서를 바로세우는 힘이었다.


‘나와 싸웠을 때보다 월등하다. 이게 대륙의 진짜 강자...’


덥썩.


《놀랍군.》


“크허업.”


오크는 울컥 피를 쏟았다.


“이건 위험하군.”


딱. 딱. 딱.


집채와도 비슷한 크기의 거대한 입이 바로 코앞에서 쩌억 벌어진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인지하지도 못했다. 어느 순간 저 먼 하늘에서 바닥까지 내려와서 그 앞에 있었다. 놈의 입질 한 번에 하나의 진이 깨졌다.


“터무니없는 간섭이로군요. 쿨럭!”


그는 서둘러 기운을 수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프리드는 위기감을 느낀 거신이 손을 썼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놀랍군. 차원아귀를 끌어들일 수준이라니.》


프리드는 홀린 듯이 반문했다.


“차원아귀?”


놈은 그 흉악한 생김새와 다르게 마법을 삼키고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존재에게서 방출되는 차원의 왜곡을 잡아먹는 괴물들이다.》


세계의 비틀림을 잡아주는 생물이라는 걸로 들렸다. 외관과는 다르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려서 말하면 오크가 방출한 힘은 차원에 일부지만 왜곡을 만들어낼 정도였다는 말이었다.


로넬은 조금 길어진 백색의 검을 들고 차원아귀의 움직임에 대비했다


딱. 딱. 딱.


《이래서는 대화가 되지 않겠구나.》


빛의 덩어리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시야를 가득 채우던 거대한 차원아귀가 시야에서 지워졌다. 문자 그대로 이 세상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다시 빛덩이가 시야에 돌아오기까지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난 뒤였다.


《이제 대화를 할 수 있겠지?》





◎◎◎◎◎◎





《나는 흔히 너희가 말하는 불멸이다. 영속이며, 근원에 가까운 존재다.》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 프리드에게 그가 던진 답변이었다. 가늠이 가지 않는 답변이었지만 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가 거북할 수준이었다.


“미궁 최심부의 시련은 당신... 입니까?”


일순 정적이 흘렀다.


《피조물아, 감히 내게 투쟁을 논하는 건가? 그것 참 놀라운 발상이구나.》


그의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너희는 내 불멸에 상처를 입힐 수 없다. 그건 이 사이에 좁힐 수 없는 무한이 있기 때문이지. 이 물리적인 세계에서 내 존재를 정의하는 것조차 불가능한데 어찌 투심을 보이느냐?》


짓누르는 기운이 순간이지만 강해졌다. 그가 표현하는 불쾌함의 표시였다.


“위대한 존재시여. 그대는 얼마나 오래된 존재이신 겁니까? 이 대륙을 언제부터 지켜보신 겁니까?”


《모든 걸 지켜봤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을 지금의 세계라 정의할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장난에 불과했지.》


그의 말을 일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의 대화가 이어짐에 따라 뭔가 이질적인 단어가 느껴졌다.


“위대한 존재께서 칭하는 아버지는 대체 어떤 분을 일컫는 건지 여쭈어도 괜찮겠습니까?”


후웅!


보이지도 않았다. 프리드의 앞에 자리를 지키고 서있던 로넬이 검으로 무언가를 비스듬히 막아서는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그는 지면으로부터 거의 발등이 잠길 정도로 눌린 상태였다.


“크윽. 성급하시군.”


“콘쿼러!”


《오호. 우리의 세계에 들어오다니. 네놈은 최소한 저 오크보다 강하구나.》


프리드는 혼란스러웠다. 확신을 할 수는 없었지만 놈에게는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공격할 수단이 있었던 걸로 보였다.


“물러나라.”


로넬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


《피조물들아, 너희는 이 인간에게 감사해야 한다. 내가 저 인간에게 흥미가 생겼거든.》


“콘쿼러? 괜찮습니까?”


두 발이 파묻힐 정도의 압박이 가해졌었다. 그러나 그의 외견은 의외로 멀쩡했다.


“상당히 터프한 움직임이군. 지금부터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말도록. 보고 반응할 수 없는 속도였다. 본능이었어.”


프리드는 침을 삼켰다. 그에게 남아있던 호승심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당신은 신인 겁니까?”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었고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신성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이었다. 시스템에서 수식어조차 알려주지 않았고 대륙의 역사를 다루는 여러 문헌에서도 그 신성을 찾을 수 없었다.


이름조차 없는 대륙 위의 존재하는 그 너머의 존재. 가장 먼저 떠오른 존재의 이름은 하나였다.


‘신.’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눈앞에 하나의 작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 공백이 서서히 채워지고 있었다.


「이름 없는 대륙의 신」


프리드의 두 눈은 경외로 물들었다.


“후인, 지금 하는 생각은 접어둬라.”


그는 로넬의 말을 듣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온 감각을 ‘신’에게 집중하고 프리드에게 전음을 전해왔다.


‘저건 신이 아니다. 아신위에 오른 잡종들보다 격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불멸이니, 영속이니 붙여주기에는 너무 천박하다.’


그의 전음과 동시에 변했던 활자는 다시금 공백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건가? 이거 한방 제대로 먹었군.》


프리드는 긴장했다. 눈앞에 존재에게 신성은 없었다. 허나 마주친 존재 중에 가장 신에 어울리는 무력을 지닌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끝내 신성을 얻어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불멸의 격과 영속의 격을 얻어낼 수는 있었지만 결국 신성은 허락받지 못했지. 그래도...》


콰앙!


로넬을 중심으로 붉은 격류가 흘렀다. 이번에 받아낸 피해는 좀 더 가시적이었다.


“코, 콘쿼러!”


《이번에는 너무 과했어. 그걸 판단하는 건 피조물들의 몫이 아니다. 그것도 가장 근접했던 나에게.》


로넬은 한쪽의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아아, 무료하군. 그냥 전부 죽일까.》


빛이 사라졌다. 차원아귀를 지웠을 때의 어떤 권능의 전조 현상이었다. 프리드는 로넬을 부축하며 다급하게 입을 뗐다.


“왜 당신들은, 초월적인 힘을 얻었음에도 그 힘을 대륙을 위해서 사용할 생각은 않는 겁니까?”


《관심 없어.》


“재앙에서 태어난 괴물이 이 미궁을 지나갔습니다. 당신을 지나지 않고 대륙으로 이미 나갔을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관심 없어.》


콰앙!


로넬의 신형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타인의 기억을 엿본 거지만 당신과 비슷한 격을 느꼈습니다.”


《관심 없... 뭐?》


프리드의 시선 속에서 단 한 번도 움직임을 보인 적 없던 거신의 본체가 움직임을 보였다. 하늘이 사라졌다. 아마 거신의 손이었던 것 같다.


“팔마스 강역으로 추정되는 어느 구역에서 당신과 비슷한 존재를 느꼈습니다.”


실내의 광원이 전부 깨져버렸다. 어둠 속에서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살았군. 일단은.”


오크의 전신으로부터 은은한 광원들이 나타났다.


“콘쿼러, 정신 차리시지요.”


“아서라. 어차피 진짜 몸도 아닌 이상 그렇게 아낄 필요는 없다. 자세를 낮춰.”


그 넓었던 공간이 극도로 수축되었다. 시야는 더 너머를 볼 수는 없었다.


딱!


그 거대한 공동 안에 맑은 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시야가 밝아졌다.


〔오랜만이군!〕


〔으아아! 시간이 대체 얼마나 흐른 거야!〕


〔무슨 일이지? 호출인가?〕


〔아가께서 부르셨다. 다시는 눈을 뜨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득하다는 표현이 적당했다.


====================================

「반전 세계에 진입합니다.」

====================================


상황을 알려주는 단 하나의 메시지. 그리고 어깨에 얹어지는 손.


“정신 바짝 차려라. 후인. 저기에 있는 전원. 준 아신위 급이다.”




제 글이 여러분에게 어떤 방향으로라도 영향을 끼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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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186. 종막 (7) 22.05.17 18 0 10쪽
186 185. 종막 (6) 22.05.14 11 0 19쪽
185 184. 종막 (5) 22.05.10 11 0 11쪽
» 183. 종막 (4) 22.05.07 14 0 11쪽
183 182. 종막 (3) 22.05.03 14 0 11쪽
182 181. 종막 (2) 22.04.30 25 0 11쪽
181 180. 종막 (1) 22.04.26 23 0 11쪽
180 179. 기사, 최선의 기사 (10) 22.04.23 17 0 11쪽
179 178. 기사, 최선의 기사 (9) 22.04.19 16 0 12쪽
178 177. 기사, 최선의 기사 (8) 22.04.16 35 0 12쪽
177 176. 기사, 최선의 기사 (7) 22.04.12 21 0 11쪽
176 175. 기사, 최선의 기사 (6) 22.04.09 16 0 11쪽
175 174. 기사, 최선의 기사 (5) 22.04.05 27 0 12쪽
174 173. 기사, 최선의 기사 (4) 22.04.02 35 0 12쪽
173 172. 기사, 최선의 기사 (3) 22.03.29 27 0 10쪽
172 171. 기사, 최선의 기사 (2) 22.03.26 3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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