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ㅎㅇ

아, 귀찮게 좀 하지 마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휴학생P
작품등록일 :
2020.05.14 19:41
최근연재일 :
2022.05.17 09:05
연재수 :
188 회
조회수 :
45,454
추천수 :
1,358
글자수 :
1,034,157

작성
22.04.16 08:00
조회
34
추천
0
글자
12쪽

177. 기사, 최선의 기사 (8)

안녕하세요~




DUMMY

풍경은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변해버렸다.

하늘과 가장 마주 닿아있던 산의 정상도, 깎아 지르는 비명의 절벽도, 낮게 깔린 구름의 바다도 사라졌다.


이상을 살던 맹우의 주검까지도.

다만 그 자리에는 작고 검은 돌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그는 지체없이 그걸 주워들었다. 그러곤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여긴...”


이미 경지를 넘은 통찰력을 얻어낸 뒤였다. 하지만 기감에 잡히는 왜곡이 없었다. 마법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산을 오르면서도 이런 지형은 본 적이 없었다. 하늘은 잿빛으로 어두웠고 들판에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를 제외한 그 어떤 생명의 기운도 감지되지 않았다.


“역시 아무것도 없어.”


누군가의 장난이 분명했다. 다만 마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이런 공간에 부른 것이다. 이어지는 의문은 간단했다.


‘대체 왜? 누가? 이 장소에 날 부른 거지?’


의문은 그리 길어지지 않았다. 번개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회색의 세계에 몇 번이고 빛이 있었다. 기사는 그 안에서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그가 위치한 장소로 모여드는 구름들을.


“누군지 몰라도 격이 꽤 높으신 분인가 보오.”


공간은 그 자체로 상당한 혼돈을 내포했다. 그저 눈을 한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구름에 가려졌던 해가 떴고, 달이 그옆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으며, 해가 있음에도 별들이 알알이 박힌 어둠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려치는 번개들은 그 형상으로 조형이 되어 대지에 박혔으니 기이한 조화가 아닌가.


그는 감히 단언할 수 있었다.


‘최소 아신위의 격에 해당하는 존재로군.’


지난 10년의 시간동안 대륙 각지는 물론 산맥을 넘어 그 너머까지도 보고 왔다. 그 기억 안에 이런 경험은 없었다.


“거기로군. 숨어도 소용없다. 간은 그만 보고 모습을 드러내지.”


그는 허공의 어느 지점을 보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검을 뽑아들었다. 그의 조바심으로 일그러진 감정을 나타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새까만 대검이었다.


“대화의 의사가 없다면 죽음뿐이겠지.”


허공이 크게 일렁였다.


“그만! 아, 거참! 대체 어떻게 찾은 거야? 이거 순엉터리잖아.”


펄럭펄럭.


사내는 날개처럼 보이는 신비한 망토를 펄럭이며 그에게 다가왔다.


“모습을 숨긴다고 해도 그 개념을 세상에서 지울 수는 없는 법이지.”


기사는 검을 내리지 않았다. 응전태세였다. 인간으로 보이는 존재를 이리도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는 건 되살아난 이후 처음이었다.


‘아, 인간은 아니겠군.’


“넌 누구지? 여기는 어디고?”


“난 도굴꾼 프리즈비. 형씨는?”


“...”


결코 무시한 게 아니다. 이름이라고 댈만한 게 없었다. 앨리스에 대한 기억만 선명하게 기억이 났을 뿐이다. 그 외에는 아직도 희미했다.


“거, 대답이 너무 늦는 거 아니요? 이름이 없지는 않을 테고.”


“...반.”


“반? 수수하네.”


프리즈비는 넉살좋게도 그에게 악수를 건넸다.


“안 받으쇼? 이거 사람 여러번 무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시네.”


“난 이 공간에서 나가야 한다.”


‘앨리스 님을 만나기 위해서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


“일단 진정하고 좀 앉지. 피차 갇힌 건 마찬가지니까. 당장에는 할 것도 없고.”


프리즈비는 어느새 꺼낸 도구들로 임시적인 주둔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공간 마법?”


“오, 형씨, 이걸 알아보네? 비슷한데 달라. 아공간이라는 거야. 내가 마법사처럼 보이지는 않잖아?”


처음에는 그를 무시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던 결국 이 장소로 돌아오는 통에 결국 정보를 얻기로 했다.


“그나저나 끈기가 대단하네.”


그는 따뜻하게 달군 컵을 건넸다. 기사는 그 컵을 받아서는 아니 되었다. 그는 말이 정말 많았다.


“뭐야? 그럼 형씨는 나처럼 도굴이나 하다가 잡혀온 게 아니라는 거네?”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 그곳에서 고원을 찾기 위해 성산 마르치아를 올랐다.”


“하하! 이거 농담이랑은 거리가 먼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재치가 넘치는군!”


“...”


이어지는 무거운 침묵에 프리즈비는 재빨리 웃음을 거뒀다.


“...농담이 아닌가보군.”


기사는 그가 그녀와 함께 했던 기억을 되짚어가며 그때의 지명들을 그에게 캐물었다.


“다난이라는 국가를 아나?”


“다난? 글쎄? 일단 내가 갔던 장소 중에 그런 국가는 없었는데 말이지.”


“대륙 중동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국가다. 들은 것도 없는가?”


“없어.”


그쯤부터였다. 뭔가 크게 엇나갔다는 걸 느낀 것은.


“...그렇다면 대륙에 제국은? 제국은 몇 곳이나 존재하지?”


“지금 대륙에 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한 국가는 존재하지 않아. 오크 놈들이 대륙 중부를 한번 쭉 휩쓸고 가버렸거든.”


“오크가? 내가 아는 그 오크가 맞나?”


“아마? 대충 갈색이나 검붉은 피부의 들창코들. 뭐, 여하튼 거기에 직접적으로 찢긴 건 아니고 그걸 막는 과정에서 알아서 사분오열해주셨어. 플랑드레 그 양반이 모습을 감추지만 않았어도...”


기사의 입장에서는 전혀 생소한 느낌의 조합이었다.


“라르크 왕국은 어떻게 되었지? 기슈르 공국은? 그곳의 꽃을 여왕께서 좋아하셨다. 그래! 랜파트! 랜파트산 와인이라면 전 대륙에서 알아주지! 랜파트라는 도시국가는 모르나?”


그답지 않게 말이 길었다. 이어지는 프리즈비의 대답은 그의 희망을 사정없이 찢어버렸다.


“후, 이건 뭐, 되다 역사서를 뒤져야 간신히 들어볼 법한 국가들이잖아. 형씨, 대륙사에 빠삭하네? 다른 국가는 모르겠고 랜파트나 라르크는 나도 조금 알지.”


‘역사서?’


대체 왜 현존하는 국가들이 역사서에서나 이름을 들을 법하다는 건가?


“아는 대로 말해라.”


“성미도 급하셔. 라르크는 오토 왕국에 패배해서 그 아래에 복속되었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라고.”


“뭐? 그렇다면 랜파트는?”


“거기 와인이 죽여주긴 하지. 먹어본 적은 없지만...”


기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자신의 기억이 남아있는 지역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래! 랜파트산 와인! 나가면 랜파트로 가야겠어!”


허나 프리즈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랜파트는 이제 없어. 고귀한 귀족가의 고분에서나 간혹 발견되는 게 랜파트의 와인이지.”


기사의 시야가 어둠에 잠겼다. 기사에게도 오토라는 이름은 생소했다. 투구로 가려져 프리즈비에게 표정을 보일 일은 없었지만 호흡은 명백히 떨리고 있었다.


“대체 시간이... 얼마나 흘러버린 거야.”


“평범한 형씨는 아니었네. 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건지 모르겠지만 심심한 애도를 표하지.”


그의 말은 기사의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프리즈비는 혀를 찼다.


“나도 40 평생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군.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스.”


“뭐라고?”


“...리스.”


“형씨, 그렇게 쥐 오줌보만한 목소리로 말하면 내가 듣지를 못한다고.”


“앨리스! 난 앨리스 님을 찾으러 가야한다!”


그의 전신으로부터 강렬한 기의 파동이 터져나왔다. 돌연 프리즈비의 배낭에서도 강렬한 섬광이 터져나왔다.


“이, 이게 갑자기 왜!”


한번도 보이지 않았던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는 다급히 배낭 속으로 손을 넣더니 빛무리를 강하게 쥐었다.


“이 녀석이 성광의 빛을 낼 일이 있으리라고는...”


그는 다급하게 거리를 벌렸다. 입에는 억지로 웃음기를 보였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이거, 형씨, 이제 보니까 인간이 아니었군.”


“...”


“위험한 냄새라고 정말이지. 언데드였잖아. 이 빛에도 녹아서 없어지지 않는 걸 보니 그것도 상당히 고위계의 언데드야.”


정답이었다. 다만 그를 분류할 수 있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굴레를 벗어난 영혼을 드래곤이 가공한 육체에 담아둔 존재였기 때문이다. 고룡의 마나를 가득 머금은 최상 중에서도 최상에 해당하는 언데드.


그는 그대로 고개를 들어 프리즈비를 바라봤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지?”


처음으로 그의 음성에서 감정이라는 게 묻어나왔다. 짜증이었다.


“그래서라니... 인간인 내가 언데드를 곱게 볼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또 제멋대로지.”


“뭐?”


“항상 자기 좋을 대로 생각을 하고 또 좋을 대로 결정하지. 상대의 의사란 안중에도 없어. 그저 본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당연한 이치이고 거기에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대로 오류로 치부해버려.”


투구의 안에서 푸른 안광이 불꽃처럼 번뜩였다.


“먼저 검은 겨눈 건 그쪽이야. 후회하지 말도록.”


기사는 검을 뽑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프리즈비는 그의 손에서 뽑혀서 나오는 검을 보고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자신의 배낭에 있었던 검과 동등한 기운을 뿜는 검이었다.


죽은 자의 무덤이나 파헤치는 천박한 도굴꾼의 손.

죽음에서 돌아와 운명의 굴레를 벗어버린 언데드의 손. 다른 점이 있다면 기사의 손과 검이 맞닿은 부분에 하얀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젠장...”


“자, 누구 검이 더 고결한지 한번 겨뤄보자고.”





◎◎◎◎◎◎





“앨리스.”


콰앙-!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쪽이 찾는...!”


어떻게든 검을 회수하게 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의 등은 흘린 땀으로 전부 덮혀 있었다.


“앨리스가 아니라고!”


‘제길, 빈틈이 없잖아.’


확실히 달랐다. 누구보다 고고한 위치에서 흔들림이 없었다. 태풍도 그의 검을 흔들 수는 없으리라. 이제 그의 능력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어떤 검이든 상관이 없었다. 적어도 손에 쥐어지기만 한다면 인간의 극한의 재능을 끌어올렸다. 애시당초 검 대 검. 일 대 일로 겨루라고 이 장소에 가둬둔 적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앨리스.”


깡-! 촤악!


 오른쪽 어깻죽지였다. 검을 든 손이 무거워졌다.


“끄으윽.”


‘사기잖아. 젠장. 기술을 쓰라고 만든 검으로 무슨 힘싸움을 저렇게 해!’


어디까지나 프리드의 자기위안이었지만. 찌르는 검을 예측하면 본인이 대검이라도 들고 있는 거라고 착각을 하는 건지 큰 동작으로 베어왔다. 그게 하체에 힘을 꽉 주고 버텨도 버거운 수준이라는 게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압박이 강하게 느껴졌다. 놈이 힘으로 검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체격에도 차이가 좀 있었기에 그 동작에 걸림돌은 없었다. 검날이 어깨를 파고들며 강렬한 냉기가 느껴졌다.


‘젠장! 움직여! 움직이라고!’


“씨바아알!”


버티고 있는 것도 신기할 정도였다.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순간 칼이 박힌 어깨부터 좋은 꼴을 당하지 못할 것이다.


오브가 번뜩였다.


“크윽... 밥값 좀 해라.”


그는 프리드의 품으로 파고 들어서 뭔가를 꺼냈다.


“단... 검?”


기사는 동요하지 않고 프리드를 향하던 힘을 더욱 강하게 줬다. 저런 단검으로 뭘 하려고 해봤자 통하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 깔린 움직임이었다.


‘얌마. 그걸로 뭐하려고.’


오브의 생각을 알 리가 없던 프리드는 부활을 준비했다. 고통은 잠깐이었다. 뭔가를 가져간다고 하지만 그런 것 정도는 나중에 생각해도 좋을 부분이었다.


허나 오브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책이 없는 녀석이었다. 잠깐 검날을 감싸던 빛이 손잡이로 옮겨가더니 그대로 프리드의 허벅지를 강하게 찌른 것이다.


“크아악!”


옷과 살이 찢기고 그 사이로 피가 흘렀다. 따뜻한 감각과 함께 경직된 근육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에 들어간 힘이 무너졌다.


‘틀렸어. 옆으로 비킨다.’


콰앙!




제 글이 여러분에게 어떤 방향으로라도 영향을 끼쳤기를 바랍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 귀찮게 좀 하지 마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이모저모 22.05.21 15 0 -
공지 매주 화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21.08.24 34 0 -
공지 간략한 대륙도입니다. +5 20.06.09 481 0 -
공지 원래 프롤로그입니다. 그냥 가장 기본적인 세계관이 궁금하시면 한번 읽으셔도 좋을 것 같아서 +5 20.06.04 267 0 -
공지 참사님, 표지 감사합니다. +4 20.05.16 169 0 -
188 장막을 내리는 글 22.05.17 13 0 15쪽
187 186. 종막 (7) 22.05.17 18 0 10쪽
186 185. 종막 (6) 22.05.14 11 0 19쪽
185 184. 종막 (5) 22.05.10 11 0 11쪽
184 183. 종막 (4) 22.05.07 13 0 11쪽
183 182. 종막 (3) 22.05.03 14 0 11쪽
182 181. 종막 (2) 22.04.30 25 0 11쪽
181 180. 종막 (1) 22.04.26 23 0 11쪽
180 179. 기사, 최선의 기사 (10) 22.04.23 17 0 11쪽
179 178. 기사, 최선의 기사 (9) 22.04.19 16 0 12쪽
» 177. 기사, 최선의 기사 (8) 22.04.16 35 0 12쪽
177 176. 기사, 최선의 기사 (7) 22.04.12 21 0 11쪽
176 175. 기사, 최선의 기사 (6) 22.04.09 16 0 11쪽
175 174. 기사, 최선의 기사 (5) 22.04.05 27 0 12쪽
174 173. 기사, 최선의 기사 (4) 22.04.02 35 0 12쪽
173 172. 기사, 최선의 기사 (3) 22.03.29 26 0 10쪽
172 171. 기사, 최선의 기사 (2) 22.03.26 30 0 12쪽
171 170. 기사, 최선의 기사 (1) 22.03.22 43 0 11쪽
170 169. 왕이 잠든 땅 (13) 22.03.19 22 0 11쪽
169 168. 왕이 잠든 땅 (12) 22.03.15 33 0 12쪽
168 167. 왕이 잠든 땅 (11) 22.03.12 36 0 11쪽
167 166. 왕이 잠든 땅 (10) 22.03.08 24 0 12쪽
166 165. 왕이 잠든 땅 (9) 22.03.05 26 0 12쪽
165 164. 왕이 잠든 땅 (8) 22.03.01 25 0 12쪽
164 163. 왕이 잠든 땅 (7) 22.02.26 30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